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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29화 (129/222)
  • 129화

    * * *

    마커스가 돌아왔다. 제국에 폭풍이 부는 바람에 여관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는데,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사냥꾼이 나타나자 홀이 밝은 분위기로 시끌벅적해지고 말았다.

    ‘뭔가, 렌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렌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 누구보다 마커스를 반겨주지 않았을까 싶어서. 막 ‘마커스, 그래서 제가 가르쳐준 사냥 방법은 어땠나요?’라고 말이다.

    브라운 아저씨는 이미 마커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신이 난 지 오래였고, 레니나 쥬드는 ‘어째 먼 곳까지 떠난 이가, 표정을 보아하니 한 마리도 못 잡은 거 같네요.’라며 사냥꾼을 놀리기 바쁘다.

    “아서, 오랜만이야.”

    “네, 어서 오세요. 하필 이 시국에 말이죠.”

    “그러게, 지금 제국의 상태가 말이 아니던데. 하하.”

    “요즘 여관에서는 검문 횟수로 내기를 할 정도라고요.”

    “으하하, 이거 쥬드나 브라운 아저씨가 무조건 이기는 내기잖아.”

    쥬드와 브라운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금 그거, 꽤 우리 생김새가 검문을 잘 당할 것 같다는 이야기잖아.’라고 마커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있던 손님들이 폭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죽했으면 떨어진 배꼽을 찾는 데 애를 써야 할 정도일까.

    홀에서 서빙이나 잡일을 하고 있던 캡틴과 블루, 네이비는 마커스에게 다가가 두개골 회전하기를 선보이며 재회의 기쁨을 알렸고.

    ‘뭐야, 해골 녀석들 제일 신나 보이잖아!’

    멀리 있던 요리 삼인방 녀석들도 웍을 쥐고 있는 것도 모른 채 홀로 튀어나와 마커스에게 반가움을 전했다.

    그것을 보고는 마커스도 고개를 대강 30도 정도 손으로 돌린 다음, 얼추 흉내를 내는 방식으로 화답했는데.

    녀석들에게 질세라 머리를 더욱 돌리려고 애쓰는 사냥꾼을 향해 사람들은 ‘마커스 조금만 더 돌리면, 진짜 녀석들처럼 되니까 조심해.’라며 폭소했다.

    “달그락, 달그락.”

    “으하하, 캡틴, 블루, 네이비! 그리고 요리 삼인방까지!”

    “달그락, 달그락!”

    “그래, 퍼플은 들어올 때부터 일찌감치 인사했어. 하하.”

    마커스는 홀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가벼운 건배 몇 번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모두가 그를 반기고 좋아하니까.

    쥬드가 새로 장만한 검을 보며 ‘우와 죽이는데. 이번에 돈 좀 썼겠어.’라고 괜스레 기분 좋은 말을 던지는 건 기본이었고.

    여전히 능란한 말솜씨로 근래에 사람들의 어두웠던 표정을 활짝 피게끔 하는데 한몫했으니. 오늘은 마커스에게 무료서비스를 선물할 수밖에.

    “아이단.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반갑지 않나 봐요?”

    “….”

    누구보다 마커스를 반겨야 할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아이단. 모처럼 마커스가 왔는데도, 그에게 다가가거나 특별히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다.

    마치 뚱한 표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잡념에 빠져 맥주의 탄산이 튀기는 것만 바라보던 그를 보아, 헤어질 때 싸웠던 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나 보다.

    ‘뭐야, 왜 대답이 없어. 못 들은 건가?’

    아이단은 내 말을 고스란히 씹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마커스에게 다가갔다. 물론 아이단은 원래 그런 성격이니 머리에 열십자 표시가 마구 올라와도 아이단VS아서가 된다면 문제가 커지니 한보 물러선다.

    “살아있을 줄 알았어, 반갑다.”

    “어… 그래. 있는지 몰랐다고, 아이단.”

    “사냥은 잘했을까, 어디를 다녔지.”

    “하하, 뭐… 마계도 갔다가, 인계 북 대륙도….”

    특별하게 재회의 기쁨이 보이지 않는 아이단, 그리고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커스.

    사냥꾼이 ‘내가 떠나던 날, 네가 내게 욕을 갈겼던 건 벌써 잊었다고 친구.’라며 입을 열었으나, 애석하게도 기사는 사냥꾼의 말을 씹고는 자신의 말을 잇는다.

    “네가 내게 말했었지, 그림자는 밟아도 밟을 수 없다고 말이야.”

    “그림자를 밟을 수 없어도 빛이 내리쬐는 곳에선 티끌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잘 들어, 이게 내 결론이자 네게 하는 선전포고일 테니까.”

    “에드워드.”

    주변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망쳐진다는 것을 인지한 아이단은 마커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유유히 밖으로 나간다.

    ‘하하하…. 오랜만에 불리는 이름이라, 어색한데.’라고는 자리에서 맥주를 들이켜는 마커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측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진 관계를 보는 듯했으니까.

    “크하하, 원래 친구는 서로 싸우라고 있는 법.”

    “브라운 아저씨. 그건 이 사냥꾼에게 위로가 못되네요.”

    “그렇담, 나이 많은 이 드워프가 대신 친구가 되어주지. 크하하!”

    그렇게 마커스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 중에도 아이단이 떠난 빈자리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곤 했으나, 딱히 그렇게 신경을 쓰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쉽겠어요.”

    “아냐, 아이단 녀석 원래 그렇잖아.”

    “그렇담 다행이고.”

    “그나저나, 렌은 어디에 있어?”

    정신없던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마커스가 내게 물어왔다. 틈만 나면 아이리스와 말싸움을 하며 홀을 시끄럽게 만들어야 수지가 맞을 법한데.

    푸른 용은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으니 렌의 공백이 별안간 다가왔을 것이다.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기다리는 마커스였다.

    “잠깐 요양 겸, 마브리우스 산맥에 갔어요.”

    “…마브리우스 산맥!”

    “아시나 보죠. 그런 눈치인데?”

    “당연하지, 인간은 근처에 얼씬도 못 한다는 곳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브라운 아저씨 덕에 마브리우스에서 살다 온 느낌이에요.’라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마브리우스 산맥은 드워프들의 성지라며 브라운 아저씨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몇 시간이고 들어야만 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고마워, 아서.”

    “엑, 왜 난데없이 그러는데요.”

    “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으니까.”

    마커스의 표정을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긴 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보조개가 억지웃음이 아닐까 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슬, 가봐야겠어!”

    “벌써 갑니까,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냥꾼은 사냥하러 가야지. 하하.”

    “의외로 성실하시네, 차라리 여관에서 일해 보는 건 어때요.”

    “아서, 이미 직원은 충분한 것 같은데. 아하하.”

    “참나, 쓸모 있는 직원은 홉스나 아이나….”

    “아니지, 줄어들 수도 있겠구나.”

    “네?”

    “하하, 아니야. 다음에 보자고.”

    마커스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여관 밖으로 나갔다. 별안간 등장에 별안간 사라지는 그를 보며 많은 사람은 아쉬움을 토했지만 마커스의 등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임자야.”

    “렌이 없어서 바빠지니까, 표정이 뚱한 것 같은데.”

    “흥, 이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하거늘. 다만….”

    “다만?”

    “저 사냥꾼의 분위기가 이전과 다르게 느껴져서 말이지.”

    “확실히 평지풍파를 겪은 얼굴이긴 하더라고.”

    “임자, 감이 많이 줄었군.”

    “감이 줄었다니 뭔 개소리….”

    생각해보니 아이리스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모르고 지냈는데, 마력 감지와 같은 내가 가진 신체적 능력이 계속해서 퇴행하고 있는 듯하다.

    이 빌어먹을 감지 능력 탓에 나뭇가지가 넘실거리는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반대로 렌이나 아이리스의 침입을 막는 데 편했지만.

    어쩐지 근래 수면의 질이 높아졌다고 했더니만, 마안의 뭉치도 그렇고 전체적인 능력이 계속해서 약화하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타르툰이 임자에게 할 말이 있다는 구나.’

    여관 끝자락, 눈에 띄지 않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타르툰. 그가 일어서서 천천히 다가오더니 ‘역시….’라는 말과 함께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마커스가 여관을 나간 뒤로 소통의 부재가 발생했으나, 이내 테이블끼리의 대화가 이어졌기에, 타르툰은 삼인방들이 요리하는 소리를 커튼 삼아 자신의 대화를 자연스레 덮어간다.

    ‘아서, 일전에 델타 산맥에서 조우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서 여관의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물론 확실하진 않으나, 방금 이곳을 떠난 사냥꾼과 델타 산맥에서 조우했던 자의 향기가 애매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향을 지운 것 같은데, 이것은 척후가 추적을 피하고자 사용하는 일종의 전술 마법. 그런데도 알 수 없는 지독한 향기가 마력에 배여 쉽게 지워지지 않나 봅니다.’

    ‘그런 흉흉한 마력을 맡지 못할 정도로 흰 갈퀴의 후각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마커스라는 사냥꾼… 제 후각이 자신의 기능을 똑똑히 해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주십시오.’

    ‘후각은, 과거 마왕께서 저를 정보원으로 고용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 * *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정교의 전문이 비에 젖은 땅 위로 질척하게 깔려있다. 그것도 셀 수 없이. 그 위로 꼭두새벽부터 마차 하나가 달리고 있다.

    이 마차는 검문을 위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정교가 어려움 없이 발견하기에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달려오던 작은 마차 앞으로 그들이 가로막는다.

    “잠깐 멈추시오.”

    작은 마차의 창이 내려가니, 로브를 뒤집어쓴 어느 노파가 있었다. 검문을 위해 안을 들여다보던 이들은 내부를 훑었고 로브를 쓴 일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 후드를 걷어보시오.”

    노파가 먼저 후드를 걷었으나, 특별히 의심되는 구석이 없다. 이어서 옆에 있던 자가 몹시 허름한 후드를 걷자, 그 안에서 양 눈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눈에 두른 천을 벗겨보시오, 당장!”

    “날 적부터 맹인이었소, 그리고 팔려나가는 중이지.”

    “정교의 명령을 이행하라!”

    “괜히 귀찮을까, 그대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거늘.”

    이들이 어기적거리며 정교의 명령을 듣지 않자, 마차의 문을 열어 강제로 검문을 시행하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교의 방침으로 ‘눈을 자세히 볼 것.’이라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뒤적거리며 여인의 팔을 강하게 잡아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정교의 일원들을 향해 소리치는 남성이 있다. 마차의 고삐를 쥐고 있던 마부였다.

    “제국의 검찰 기사단 소속, 에이덴입니다. 검문을 멈추십시오.”

    “이자의 눈이 수상쩍기에 검문을 할 수밖에 없소!”

    “후… 내가 마녀였더라면 차라리 변장 마법이라도 사용했겠다만.”

    “그, 그건….”

    마부의 정체는 정교에 제국의 지도나 지리 특성을 전달하는 검찰 기사단 소속의 기사였다. 전자와 같은 부분은 정교의 일원들이 다소 경계를 풀 수 있는 부분이다.

    기사는 이들에게 ‘그리고, 이건 내 사업입니다. 너무 이렇게 빡빡하게 굴면 부끄럽다고요.’라며 한숨을 내뱉는다.

    정교에서 지원해준 감지 장치는 이렇다 할 수상한 마력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허름한 로브를 착용한 아름다운 맹인 여자, 그리고 노파.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훤칠한 기사는 검문을 이행하던 자의 손아귀에다 금화 몇 개를 쥐어준다. 확실히 부업으로 묘한 사업을 하는 귀족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지, 지나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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