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8화 (128/222)
  •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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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단이 여관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케피탄 맥주를 시킨 지 한참이 지났기 때문에 탄산이 전부 날아가 맛도 없을 듯하다.

    물론 누구나 아이단에게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어본 것은 당연했다. 무심하게도 깊은 생각에 빠진 그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지 않은 손님들이었다. 다만 아이단의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손님들이었다.

    최근부터 용사의 쉼터를 오기 시작한 손님들은 ‘델타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기사인 아이단이 온갖 잡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브라운 아저씨나 쥬드 같은 원년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마커스가 떠나서 외로운 것처럼 보이는데, 근래 말수도 부쩍 줄어들고.’였다.

    아이단은 케피탄 맥주를 시켜놓고 김이 빠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사실 그것을 보고 있다기보다는 머릿속의 잡념이 아이단을 계속해서 맹인처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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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단의 과거 中 ]

    ‘아이덴에게 말을 심하게 했을지도.’

    아이덴이 조만간 검찰 기사단에 발령 난다고 했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특수공작과’는 안 된다며 비문이 섞였는지도 모른 채 욕설과 함께 동생의 의견을 반대했다.

    현재 특수공작과의 기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름없는 이들이다. 객사할 팔자에 놓일 이곳에 동생을 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비상한 머리와 재능을 가진 녀석이기 때문에, 검찰 기사단의 지원을 막지 못했다. 아무렴 전쟁으로 수를 세기도 꺼려지는 중앙기사단 공격대의 시체가 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에드워드 더프’

    이름 없는 아무개가 그림자 기둥의 수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는가, 근래 특수공작과에는 그림자 기둥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멀쩡하던 델타에 그림자의 수장이 있다’는 상부의 의심으로 조사가 떨어졌다. 지침의 내용이라고 판단하기에 심증밖에 없다, 저 말은 곧 그림자 기둥 전체를 비밀리에 조사하라는 의미였다.

    서대륙의 제국 간 첩자를 금한다는 공식적인 제국법이 만들어지고, 특수공작과가 사라지나 했는데, 빌어먹을 그림자 기둥을 조사하란다. 델타 내부에 존재 여부가 확실한지도 모를 빌어먹을 수장 새끼 때문에.

    제국의 첩자로 있다가 고문을 당한 것도 부지기수였고, 동생을 다시 보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주변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우리는 이들을 쫓다가 어느 산골짜기에 객사하여도 ‘비밀 유지’라는 항목을 누락시킬 수는 없다.

    내가 전시에서 눈을 감아도 ‘이 기사는 어떻게 장렬히 전사했는가.’ 따위의 제목으로 신문에 실릴 일은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은퇴를 고민하던 중, 저승으로 먼저 갔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임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덴도 이제는 기사가 되었으니, 몸이 불편한 부모를 먹여 살리는데 문제없다.

    ‘어쨌든 나는 양지를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기사니까.’

    그렇게 죽게 되면 아이덴에게도 ‘전시 중 사망’이라는 문장 하나만 마법 부엉이로 대강 전달될 것이다.

    ―마커스라는 사람을 만났다.

    사냥은 전혀 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사냥꾼이라 우기는 자를 만났다. 그림자 기둥의 첩자가 남긴 마력 유동을 쫓아 델타 산맥에서 굶주리다 그가 주었던 고기 조각 하나로 안면이 생기고 만 것이다.

    나를 제외한 요원들은 타계로 넘어가 그림자 기둥을 조사하고 있었고, 델타 산맥의 조사 발령이 떨어진 나는 마커스와 자주 볼 수 있었다. 늘 토끼 하나 잡지 못해 좌절한 표정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사냥꾼일세. 비록 실력은 없지만….’

    원래 요원들은 의심이 강한 편, 녀석에게 흉흉한 마력이 어느 날 미세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림자 기둥 관련 인물이 될 수 없을 법한 인상이었기에 심문을 유도하진 않았다.

    ‘그림자 기둥 때문에 내가 꽤 예민할지도.’

    산적이나 자연 외엔 아무것도 없는 산맥에 조사할 것이 뭐가 그리 많다는 건지, 해왔던 임무 중에 마커스라는 사냥꾼을 마주하는 이 순간이 가장 안전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와 만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 조사범위가 여전히 고정되어있었기에. 어쩌면 공작과에 몇 안 되는 선후배보다 자주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을지도.

    마커스는 본래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실력은 없지만 성실하기 그지없는 사냥꾼을 두고 둘은 먼저 하늘로 떠났다고.

    그의 이야기를 듣거나, 빌어먹을 사색에 빠져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으니, 유대감이 생길 수밖에. 마커스와 나는 그렇게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어느 날, 언제 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한 탓인지. 동생에게도 말하지 않은 업무의 관련 일들을 마커스에게 홀린 듯이 실토했다.

    ‘그림자를 밟는다고 밟아지나.’

    마커스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림자를 아무리 밟아봐야 밟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했다. 마치 내가 하는 행동이 그것과 같다는 듯이.

    그와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냥꾼이 아니라 이쪽 관련으로 일하는 것이 백번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 많았다.

    한 번은 타계에서 조사하는 이들의 정보를 마커스에게 말했는데, 그가 요원이라도 된 것마냥 조사범위를 멋대로 간추려 이야기했다.

    우스갯소리로 제국으로 복귀한 요원에게 마커스의 말을 토대로 조사범위를 줄여보라 했고, 놀랍게도 그림자는 밟혔다.

    비록 그림자 기둥과 연결점이 있는 하위 조직이었으나, 진행이 되지 않던 임무였기에 장족의 발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단하잖아, 마커스.’

    ‘하하, 그냥 멋대로 말해본 건데 말이지.’

    그렇게 계속해서 마커스의 조언이 그림자 기둥의 허를 찔렀다. 비록 핵심 간부나 핵심 조직까지 닿은 것은 아니었으나 하위 조직도가 탄로 날 수 있었다.

    그렇게 타계로 넘어가 조사를 하던 요원이 그림자 기둥의 핵심 간부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며 지원요청을 위해 제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왠지, 거기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당연히 마커스에게 개소리하지 마라며, 이게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놓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서 공작과 요원들과 함께 그곳을 향했다.

    비참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를 찾기 위해 꾸려놓은 덫처럼. 모든 요원이 그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거나.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그림자 기둥의 수색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공작과의 요원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수공작과의 유지를 위해 자금이 많이 들어갔던 탓에, 델타의 산업이 발전하는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귀족의 눈에 밟힌 것이다.

    그렇게 특수공작과의 마지막 요원, 아이단. 「그림자 기둥 수색 임무 / 임시중단」이라는 항목으로 남아 월급만 타 먹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된다.

    마커스는 그런 내게 ‘그래도, 자네가 살아와서 다행이야.’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곤 했다. 그때 델타의 산맥에서 녀석과 보던 절경이 여전히 생생하다.

    ‘한잔하자고, 아이단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은퇴를 위해!’

    ‘이봐 마커스. 아직 은퇴는 아니라고, 여전히 기사란 말이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있던 내게 녀석과 소소한 대화는 큰 도움을 주었다. 둘이서 간신히 잡아놓은 토끼 한 마리와 상인에게서 사 온 포도주. 그거면 우리의 하루는 충분했다.

    마커스와 나는 산맥에서 델타로 내려와 이상한 언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마커스가 가자고 보챈 곳이었다.

    외곽에 가까운 곳으로 국 벽이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노쇠한 이들이 전원생활을 위해 안착한 곳인가 농장이 많았다.

    “저기야, 아이단!”

    “저게 뭐지, 용사의… 쉼터?”

    “앞으로 우리 저기서 만나자고.”

    “이런 건 언제 찾았을까.”

    언덕 위에 잘 지어진 집이 있었다. 여관이었는데 사람들이 결코 발을 닿기 쉽지 않은 곳임으로 마커스가 이곳을 찾은 것도 우연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부는 설렁하다. 마법사로 보이는 여성 한 명과 대장장이로 보이는 드워프 한 명 외에는 손님이 일절 없다.

    그렇게 마커스로 인하여 우리는 그들 중 ‘사냥꾼이지만 사냥을 못 하는 사냥꾼’과 ‘성질 더러워 보이는 기사’가 되고 만다.

    ‘뭐, 나쁘지 않네. 우리도 원년 단골인 셈인가.’

    어느 날 나는 공작과의 사무실에서 그림자 기둥 관련의 필요 없는 자료들을 태우던 중이었다. 그리고 눈에 집히는 ‘에드워드 더프’ 그 이름은 새로이 바뀐 그림자 기둥의 수장을 의미했다.

    이 정보 하나를 위해서 죽어갔던 요원이 열 명이 넘는데, 간단한 화염 마법 하나로 태워지는 것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에드워드 마커스’

    에드워드 더프의 관련 인물로 ‘마커스’라는 이름이 있었다. 분명 마커스였다. 내 친구 마커스의 이름과 같다. 관련 인물로 기재되어 있으나 둘의 관계가 정확하게 명시되어있진 않았다.

    ‘이봐, 마커스. 네 성은 뭐지?’

    ‘에드워드라네.’

    똑똑히 기억한다. 에드워드가 마커스의 성이라는 사실을. 나는 헐레벌떡 검찰 기사단에 있는 동생에게 찾아가 에드워드 마커스라는 이름으로 델타 영지에 속한 국민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동생의 대답으로는 ‘그런 사람은 없는데?’였다.

    그렇게 의심이 늘어갔지만, 똑같은 이름이 한두 개도 아니고. 내 이름만 하여도 델타에 백 명이 넘으니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는 데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그랬는데도.

    마커스를 향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추측했던 그림자 기둥의 정보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친우라는 명목으로 그 의심을 어렵게 구겨 넣는 것이 최선이다.

    ‘마커스, 도대체 네 녀석의 정체가 뭐냐.’ 아니 물어봤자 ‘나는 그냥 사냥꾼이지, 뭘 그러나.’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뻔했기에. 이 불편하고 애매한 관계를 바보처럼 지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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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랑.

    아이단이 잡념에 빠져있는 가운데, 별안간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가 있다. 모두는 그 얼굴을 보며 활짝 웃거나, 휘파람을 불며 추파를 던진다.

    아서 또한 ‘델타가 흉흉하다 못해 미처 돌아가는데, 이 시기에 잘도 돌아왔네요.’라며 입을 연다.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가 ‘잠깐 들렸어, 걱정돼서.’라며 화답한다.

    그리운 얼굴의 등장만으로 델타에 마녀가 나타났다느니, 이대로 제국이 망한다느니 했던 이야기들이 없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곳, 용사의 쉼터.

    “표정들을 보아하니 내가 그리웠나 보군. 하하.”

    아이단은 손님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마커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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