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7화 (127/222)

127화

* * *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

“그래, 몸조심하고.”

“정말 가기 싫은데 말이죠.”

“어쩔 수 없잖아, 델타의 상황도 그렇고.”

어젯밤 란베르크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할 때였다. 생각보다 눈치가 빨랐던 프리실라는 드래곤 길드의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며 입을 열었다.

란베르크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뒤돌았고, 용사의 쉼터 마당에서 퍼플이 끄는 마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가기 싫은 애처럼 인상을 찌푸리던 이유는 다름 아닌 ‘가문의 호출’ 때문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잠깐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근래 델타는 페지르에게 통치 권한을 빼앗겨 제대로 된 통제가 불가했고, 이러한 상황에 적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데크에던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제국이 최소한의 치안이라도 유지하려면 블헤이드 메인가의 힘이 필요했던 것.

‘우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란베르크 선생.’

‘어차피, 제국이 이 모양이니, 의뢰도 딱히 없네!’

프리실라가 했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아이나가 ‘단장님, 길드의 의뢰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전력보강을 위해 당분간 조합의 일정을 훈련 기간으로 설정하겠습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을까.

“다음은 렌인가.”

“임자, 빨간 용은 준비가 되었느니라.”

고개를 돌렸더니 여관의 문을 열고 소심하게 걸어 나오는 렌이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몹시 의기소침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말하자, 그저 피식 웃는 녀석이었다.

“마브리우스 산맥으로 가는 거지?”

“네, 마스터….”

“뭐야,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의기소침, 주뼛하게 서 있는 렌을 향해서 입을 연다. ‘짜증이 줄고 나면 언제든 돌아와. 알고 있잖아, 용사의 쉼터는 언제나 직원 부족이라는 사실을.’

고개를 쉽게 들지 못하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더니, 녀석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쓰다듬었고. 렌은 급기야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이, 이 자식! 임자에게서 떨어져라!”

“짜증 나게, 지금이 아니면 당분간 맡지 못할 냄새라고요.”

아이리스가 ‘쳇, 이번만 봐주는 것이다.’라며 한숨을 쉬고 렌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리스도 드래곤의 광화가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째진 눈을 하고 녀석을 떨어뜨려 놓고 싶었으나, 너무나도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틀어 홍조를 가리고 녀석의 등을 조심히 토닥인다.

여관에서 생활하며 머리를 꽤 길렀던 렌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줌 쥐더니, 자신의 손톱으로 과감하게 베어냈다.

‘혹시 모르니까요, 저는 싸울 때 단발이 편해서.’라는 말을 덧붙인다. 평소와 다르게 나는 ‘괜찮아, 똑 단발이 내 취향이거든.’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단발이 취향이라는 말 때문에 괜히 아이리스는 렌을 노려보며 ‘어차피 마브리우스 산맥에 도착하면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텐데, 쓸데없는 짓은.’라고 덧붙인다.

“얼른 가. 추우니까.”

“마스터. 저는 추위를 타지 않아요. 아하하.”

“아니, 나 말이야. 춥다고.”

렌을 마중하던 해골 녀석들도 여전했다. 무엇을 잔뜩 집어넣었는지 알 수 없는 거인이 맬 법한 거대한 가방을 렌에게 넘겼다.

렌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너무 크다고 말하자 ‘달그락’ 소리를 내며 ‘드래곤으로 변신했을 때를 고려해서 크기를 잰 것.’이라는 뉘앙스를 보였다.

부모처럼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에 지켜보는 우리들은 내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프리실라도 아이나도, 홉스도.

그리고 브라운 아저씨 레니. 쥬드와 웨라를 빼면 섭섭하니 전원 여관 손님들이라 일컫겠다. 모두가 렌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녀석이 처음 찾아왔던 마당에서 배웅하자.

“다녀와, 렌. 얼른 갔다 오라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마당 위에서 렌이 레드드래곤으로 변하자, 거친 바람이 마당의 잔디를 스치며 저 멀리 평야까지 전해졌다.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날아오른 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렌이 떠났다. 아이리스는 몇 별(달)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왕 고향으로 돌아가는 김에 조금 더 휴식하고 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너도 남 대륙으로 잠시 돌아가는 것이 어때.’

가뜩이나 델타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 드래곤이라는 개체가 정교의 눈에 밟히면 좋을 것이 하나 없다. 도리어 이상한 죄명을 붙여 귀찮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이리스에게 남 대륙으로 잠시 돌아가라곤 했지만, 팔짱을 끼며 ‘시끄럽다. 그럼 임자는 누가 지키나.’라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내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는 녀석이기에 얄팍한 제안을 걸었다.

혹시 모르니 아이리스에게는 정교가 델타에서 떠날 때까지는 용으로 변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몸이 조금 뻐근할 수 있겠지만 티를 안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흥, 까짓 정교쯤이야. 용으로 변한다면….”

“변신 자제하라고 했다. 아이리스.”

“당, 당연하다. 임자의 말이니 듣겠노라.”

‘마브리우스 산맥’ 렌의 고향이자, 녀석의 어미가 살던 곳. 녀석의 이름 중앙에 붙는 ‘레드아르토’는 마브리우스 산맥의 주인을 의미하기도 했다.

마브리우 산맥은 브라운 아저씨의 조상(일명 오리지널 드워프라고 하더라)에 고향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화염의 마력이 강대하여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물론 거처였던 렌은 예외다.

‘…예전보다 뜨끈해서, 지지기 좋을 것 같다니.’

내가 미미한 역사를 가진 채 렌에게 ‘광란의 뱀’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녀석이 쓰러지고 나서부터 아이리스에게 부탁해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공부 많이 했어, 나도.’

‘내 가족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옛사람들은 마브리우스 산맥에서 붉은 용이 하늘에 구름을 걷으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석양을 훔쳐 먹는다고들 했다. 하물며 붉은 용이 훔쳐 먹었던 석양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당시에 석양은 재앙을 의미하기도 했으니.’

붉은 용의 모습을 보며 ‘무한하게 타오르는 불꽃’이라 말하는 것처럼 옛사람들에게는 붉은 용이 석양을 훔쳐 먹는다는 것쯤은 상상하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일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칠 기회가 드문 붉은 용에게 광란의 뱀보단 ‘양지의 수호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양지의 수호자로 불리는 붉은 용이 ‘레드아르토’였다.

다른 개체들과 달리 붉은 용은 전쟁과 혈투를 사랑하는 개체들로 이들에게 도전하는 다른 색의 용들은 무자비하게 잇따라 패배했단다. 용이라는 개체 중 붉은색이 최강의 개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생각해보면, 아이리스는 상대도 안 됐었지.’

이 붉은 색을 가진 용들은 다른 색들과의 전쟁을 떠나 같은 개체들끼리의 전투도 상당히 잦은 편이었다고, 그중에서 인정받는 가장 강한 개체는 붉은색의 정점으로서 용들의 이름 두 번째 문단에 ‘레드아르토’를 울릴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드래곤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은 이미 붉은 용 중에서도 최강인 셈이었다. 아이리스는 이에 대해서 걱정을 했는데 광화는 용의 성향을 폭주시킬 뿐이지 힘을 강화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즉 렌에게 광화의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개체가 있다면, 분명 ‘레드아르토’의 이름을 뺏기 위하여 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를 걱정하던 아이리스에게 렌은 ‘에이, 광화에 빠졌다고 걔네한테 그렇게 쉽게 털리면 레드아르토라는 이름이 아깝잖아요.’라며 말을 돌리긴 했다만.

* * *

[ 서대륙 델타 / 제국의 북문 ]

이른 새벽이었다. 델타의 중앙기사단에서 북문을 수호하기 위해 경계병을 맡은 두 명의 기사는 보초를 서고 있었다.

겨울이라 밤이 길었기에 기도 비닉이 수월하여 타국의 첩자나 암살자들이 진입하기 쉽다. 더욱 보초를 강화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대에서 배운 겨울철 경계요령이었다.

그런 이유로 ‘감지마법’을 내내 사용하고 있어야 했기에 평소보다 피곤함이 몇 배로 몰려오는 것은 당연했다.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무거운 눈꺼풀을 여러 번 뜨고 감고를 반복해야만 시야가 또렷하게 잡힌다. 졸기 시작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시야에 잡혔다.

북문 외곽에 흐릿한 무언가, 군진용으로 사용할 법한 깃발의 길이를 가진 기나긴 꼬챙이. 두 개가 교차하여 꽂혀있다. 검문에만 신경을 쓰는 정교의 일원들은 보초병이 무엇을 보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두 명의 기사는 ‘저런 게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빌어먹을 정교 놈들은 관심도 없나 보네.’라며 투덜거리다가 그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저, 저건!”

“읍… 우, 웩…!”

기나긴 꼬챙이에는 기사의 시체가 박혀있었다. 어떻게 박혀있는지에 대해서 상상하기엔 두 명의 기사는 이미 토사물을 바닥에 뱉어낸다고 바쁘다.

기사. 갑옷의 박힌 엠블럼을 보아, 전시에 출전하는 델타 중앙 기사단의 공격대. 그리고 교차하고 있는 두 개의 기나긴 꼬챙이는 떡갈나무와 전나무로 ‘데크에던’과 ‘아크론’의 것이었다.

그리고 기사의 갑옷에는 칼 같은 쇠붙이로 거칠게 새겨놓은 글자가 있다. 정신을 차리고 중앙 기사단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두 명의 기사는 입을 틀어막고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마녀의 잔재를 숨기는 더러운 제국에게 바친다.’

두 명의 기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마녀’라는 글자를 다시금 확인했다. 서로를 마주 본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판단하기에 너무나도 강력한 공황이 몰아친다.

그도 그럴 것이 ‘마녀’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아무것도 밝힌 것 없이 모든 이들에게 숨기고 있었다는 제국을 생각하면 더욱더 불안함을 고조시킨다.

“설, 설마. 정교가… 델타에 찾아온 이유도.”

“일, 일단은 중앙 기사단에게 보고하자고.”

“…응, 그러세.”

두 명의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 북문의 입구로 향하니, 그 안으로 페지르의 대형마차가 지나다니며 종이로 된 무언가를 뿌리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종이에 적힌 것은 제국 곳곳에 뿌려질 정교의 전문이었다. 기사의 발끝으로 떨어진 전문, 그 전문을 주워 읽었다.

‘델타 제국에 마녀가 출현했다.’

그리고 기사들은 듣는다. 북문 안쪽에서 검문을 위해 서 있던 정교의 일원들이 하는 대화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나 봐.’ 광기가 배인 웃음을 지으며 파국을 야기했다.

새벽에서 아침, 해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잠을 이기고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델타의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국 내부에 있는 다양한 영지부터 시작해서 작은 마을까지 곳곳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정교의 마차에서 사방으로 전문이 흩어진다. 무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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