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5화 (125/222)
  • 125화

    * * *

    어제 웨라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단 한 번도 악기를 켜지 못했다. 우리들은 느낄 수 없는 음색 속의 소름 끼치는 마력을 잊지 못해 트라우마가 쉽게 재워지지 않는 듯했다.

    레니나 렌 같이 붙임성이 좋은 녀석들이 안색이 좋지 않은 웨라에게 다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그 기분을 풀어주자 얼굴에 화색이 올라왔다.

    ‘기타 같은 악기를 꽉 쥐고 있는 모습에서 두려움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어쨌든 홀에서 웨라의 음악 소리가 들리기는 힘들었으나, 오랜만에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많은 대화를 했다며 다행스럽게도 기분 좋은 얼굴로 여관 밖을 나갈 수 있었던 웨라였다.

    모두가 여관 마감 시간이 되자 마지막 해골 마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검문이 강해졌기 때문에 평소보다 마감 시간을 당기자 손님들은 아쉬워하기 마련이었고.

    ‘정말이지 이대로 가다간 페지르의 일방적인 계엄령이 선포될지도 몰라.’

    아네스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델타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조만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어 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크윽.”

    “렌, 괜찮아?”

    아무도 없는 조용한 홀, 묵묵히 바닥을 쓸고 있던 렌이 갑자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내가 관자놀이를 누르는 것마냥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신음을 흘린다.

    녀석은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녀석의 마력 유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내부에서 주체할 수 없는 마력의 순환, 이것은 녀석이기에 감당할 수 있지 일반인이라면 몸이 터져 죽고도 남았을 것.

    『…마, 마스터.』

    “렌, 인간인 상태로 용언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

    『…크윽.』

    음절을 내뱉을 때마다 자신의 마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려주기 위한 용들의 언어, 기어오르는 먹잇감에 전의를 상실시키게끔 만드는 먹이사슬 끝자락의 포효.

    ‘그래, 잊고 있었지만, 녀석은 드래곤이다.’

    하지만 용언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용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한정이었다. 지금 녀석은 인간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용언을 내고 있다. 렌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빨간 용에게 때가 온 것이다. 임자.”

    “때라니?”

    “…광폭화의 시기 말이다.”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해 보였다. 렌의 붉은색 눈동자가 더욱 달아오르며 녀석으로 인해 여관 내에 ‘정령왕의 호롱불’이 가져다주던 자연 마력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빨간 용! 설마… 네 녀석 억누를 셈이냐!”

    『…할, 할 수 있어요.』

    “임자, 도와줘야 한다. 녀석의 심장이 터지고 말게야!”

    나는 아이리스의 말을 듣자마자 주저앉아있는 렌을 감싸 안으며 마력의 유동을 잠재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옆에 있던 아이리스 또한 렌에게 손바닥을 펼쳐 무엇을 돕는 듯했다.

    달아오르는 붉은 눈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마력을 모조리 증발시키던 현상이 없어지고 렌이 품에 안긴 채로 의식을 잃는다. 고요하게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잠이 든 듯하다.

    “빌어먹을, 도와줘서 고마워. 아이리스.”

    “도와주었다니.”

    “방금, 렌을 살리려고 도와줬잖아.”

    “아니, 죽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아이리스를 쳐다보았고, 아이리스는 그에 맞서 더욱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웃기지 마라 임자, 녀석이 광폭화 상태에 빠져 용이라도 되어버린다면, 여관은 물론이고 제국은 폐허가 되어버릴 것이다.”

    “녀석이 광폭화 상태를 잠재우지 못해 용으로 변하려는 심산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때를 노려, 단숨에 죽여 버리기 위해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문제는 짐의 힘으로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거늘.”

    렌을 안은 채로 아이리스와 함께 후방 건물로 향했다. 아이리스의 말로는 녀석의 방에서 긴 시간 동안 잠을 자고 나면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라고.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면 무조건 광폭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거를 수 없는 용들의 당연한 생리현상이라고 했다. 그것을 거스르려고 한다면 죽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

    ‘녀석은 개체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다는 레드드래곤.’

    ‘임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붉은 용의 광폭화는 무서운 것이다.’

    ‘가능하다면, 렌의… 아니 빨간 용의 광화의 시기가 끝날 때까지.’

    ‘어딘가로 보내야 하느니라. 언젠간 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의 피 내음을 잔뜩 풍긴 채, 그 더러운 이빨을 들이밀겠지.’

    ‘…하물며 녀석에게도 너무나 잔인한 일일 것이다.’

    렌을 침대에 눕히고, 아이리스의 표정을 보았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녀석들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오만한 착각인 듯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직은 괜찮다. 다만 너무 시기를 늦추면 위험하다.”

    “알겠어, 렌이 깨어나면 천천히 이야기해보자.”

    아이리스와 나는 누워서 색색거리는 렌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만 보면 인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도저히 사람을 죽이거나, 잡아먹거나, 도시를 파괴할 것 같지 않은데.

    * * *

    “정보 고마워요. 타르툰. 오늘은 여관에서 쉬다 가세요.”

    “하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서 님의 발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피차일반, 5대 마왕이 극찬했던 정보 꾼이 제 동료가 되다니, 영광입니다.”

    마리 밑에서 일했던 때와 동일하게 드래곤 길드로 들어와 용사의 쉼터 정보조달자의 역할을 겸업으로 하게 된 타르툰. 이것을 본다면 마리가 배를 아파하며 나를 노려볼 것이 뻔했으나.

    무엇보다 타르툰이 아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가 의문인데… 뭐, 용사의 쉼터에서 정보조달자로 일하는 건 그렇게까지 위험하다고 볼 수 없으니까. 맞는 말이다.

    ‘참고로 내가 먼저 부탁한 건 아니니까.’

    어김없이 여관에 손님이 자리를 잡고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대부분 페지르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한탄을 내뱉을 때면 그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걸까.

    ‘어라, 렌은 어디 갔어. 코빼기도 안 보이는걸?’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들이 가장 많이 뱉은 말이었다. 렌은 어디 있냐며 두리번거리는 이들에게 ‘렌은 오늘 아파서 쉬어요.’라며 대답하자, 대부분 ‘하하, 렌이 아프기도 한단 말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친 일과를 마치고 여관에 발을 디디면, 케피탄 맥주를 가져다주고는 살갑게 웃어주던 렌, 그 빈자리가 컸다. 아무래도 녀석은 모든 이들을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해주니까.

    “아서, 렌은 여전히 방에 있나요?”

    “응, 아직 자고 있겠지. 궁금하면 찾아가 봐, 레니.”

    “그렇게 할게요.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회복 주술이라도….”

    ‘그래, 조심하고.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맛있게 생겼다면서.’ 그렇게 표정이 어두운 레니에게 장난을 쳤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장, 장난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쭈뼛한 걸음으로 후방 건물을 향했다. 살짝 겁먹은 듯하다.

    레니는 렌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이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문제가 되었지만, 레니나 브라운 아저씨 같은 손님이자 가족인 경우는 다르니까.

    심지어 레니보다 소식을 일찍 전해 들은 브라운 아저씨의 경우, 렌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후방 건물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었다. ‘레엔! 어디가 아픈 건가!’라고.

    녀석이 정신을 차렸을 때 요양(?)을 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읽으며 정보를 수집했다. 최대한 인류가 발을 닿지 못하는 곳으로.

    ‘아무렴,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

    길어도 2 별(달)이면 광폭 화 시기가 끝이 날 것이라고 하는데, 그간 조용히 숨어있을 수 있는 곳. 아이리스는 녀석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브리우스 산맥’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딸랑.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 평소에는 보지 못한 사내였다. 몹시 근사한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홀을 걷자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퍼진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죄송하지만, 뉘신 지.”

    “나, 모르딕 아젤입니다. 하하!”

    “…예?”

    “하하하하!”

    내가 아는 모르딕 아젤은 분명 여성인데. 눈앞에 있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모르딕 아젤 일 수가 없다며 관자놀이를 누르고는 ‘변태는 나가주세요.’라며 쉬쉬할 수밖에 없다.

    ‘에이, 그러지 말고 들어보세요.’

    아젤은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수호 임무를 통해 원하는 보상을 정교로부터 얻게 되었다고 했다. 혹시나 했던 그 ‘특별한 꽃’이 진정 르파르파의 꽃이 맞았고, 그 꽃을 얻어서 남자로 변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정갈한 외모가 제법 모르딕 아젤과 흡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딕 아젤이라 우긴다고 또 그걸 믿을 만한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쥬드가 내게 아서는 어디 있냐고 계속해서 물었던 것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아…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땐 통치자가 되어있을 겁니다.”

    나와 한참을 대화하던 아젤은 자신의 동료 ‘포그마’와 함께 대충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아젤 제국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렇게 메인 테이블로 돌아와 턱을 괴고서 여관의 분위기를 지켜보던 중, 앉아있던 아와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이 양반. 정령왕은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다.

    “아서, 방금 저자가 르파르파의 꽃이라고 했나?”

    “네, 그 꽃이 필요해서 복용한 것 같아요.”

    “흠, 이상하군.”

    “분명히 말하는데, 이곳에서 이상한 플래그 세우지….”

    “그 꽃은 더는 피어날 수 없어.”

    “하아….”

    파르파르의 꽃과 르파르파의 꽃은 매해 단 하나씩 피어난다고 했다. 내가 르파르파의 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와가 꽃을 마음대로 피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세계의 유산에 가까운 것이 파르파르, 르파르파의 꽃이다.’

    ‘네가 다 먹어 치웠는데, 다음 해가 되지 않고서 피어날 수 없다.’

    한번은 피어나야 할 꽃을 엑스칼리버에 피어날 수 있게 아와가 주신의 힘으로 유도했을 뿐. 그렇다면 파르파르의 꽃도, 르파르파의 꽃도 모조리 내가 먹어 치웠을 텐데 어떻게 아젤이 남성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냐는 말이었다.

    멀리서 동료와 떠들고 있는 아와는 명백히 남성이었다. 남장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변장 주술 또한 아니다. 흐르는 마력에서 느껴지는 호르몬은 완전한 남성에 가깝다.

    “뭐 다른 방법이 있었겠지, 이런… 관자놀이가 닳겠구나, 아서.”

    “제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와.”

    “오오, 이런…. 그만하게 관자놀이에 연기가 피어 오르잖나.”

    그러지 않아도 베로니카 사건 이후로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귀찮은 일이 여관과 연결점을 이룬다는 것에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용사의 쉼터는 내 유일한 낙원이라고.’

    ‘귀찮은 일은 질색이야. 제발!’

    ‘여관이 부서지는 것도, 안 돼!’

    과거, 아템이 델타에서 여관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을 때, ‘그래, 델타가 살기 좋은 곳인가 보네.’라는 대답보다. ‘아니, 여관을 하더라도 차라리 다른 곳에 할래.’라는 대답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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