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4화 (124/222)
  • 124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 길드’의 제휴여관.

    ◈ 여관 내부에서 로브 착용 금지 (델타의 불시검문 강화, 제국의 사항으로 여관 내에서 로브를 착용하는 것을 당분간 금한다는 명령)

    * * *

    “젠장, 오늘도 시내를 걷는데 불시검문을 하더라고.”

    “나도 오늘로 4번째야. 피곤해 죽겠어.”

    “퀭한 눈을 하고 말이지, 페지르 녀석들 기분 나빠.”

    “정교의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 잡겠어, 아주.”

    “그 뭐냐, 헤르메딕트 성가대도 들렀다 갔으니까.”

    “맞아, 말 다 했지 뭐.”

    보통, 이 시기쯤에는 ‘겨울’에 관련된 것들이 손님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정교가 델타에 찾아오고 알 수 없는 검문이 강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대신 할 줄은.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불시검문에 당한 듯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 렌과 함께 시내로 나갔을 때 불시검문을 피할 수 없었다.

    불시검문이라는 것이 적당히 신원을 확인하는 정도였더라면, 이렇게 페지르가 손님 사이에서 육두문자에 섞여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시 검문이 있겠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로브의 후드를 벗겨버린다던가, 타고 있던 마차나, 들고 있던 가방을 헤집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했다.

    그런 이유로 여관에서 ‘페지르’나 ‘정교’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들렸다. 올해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눈 때문에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 이들에게 페지르의 등장은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딸랑.

    쥬드가 거친 숨을 내쉬며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가히 광전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남자다우나 나름 인자한 편에 속한 쥬드의 표정이 말이 아니다.

    “젠장, 젠장!”

    “쥬드도 불시 검문을 당했나요.”

    “그래 아서, 심지어 녀석들이 내 검을 부술 뻔했다고.”

    근래에 파티를 구성해서 서대륙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쥬드는 겨울철이 다가오자 서서히 활동을 멈추고 휴지기에 들어가려 했다.

    이번 해는 수입이 나름 좋았던 것인지 며칠 전만 해도 브라운 아저씨에게 검을 슬슬 교체할 때가 되었다며 제작 관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서, 그런데 그 새끼들이 자꾸…….’

    그 검을 받기로 했던 오늘 오전, 브라운 아저씨의 대장간에서 반짝거리는 검을 등에 차고, 기분 좋게 나오던 중에 페지르의 불시 검문이 있었다.

    최근 들려오는 페지르에 관련된 미간을 찌푸리는 소식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반항적인 태도로 나간 듯하다. 쥬드는 그런 남자니까.

    델타에 저렇게 무식한 검을 들고 다니는 것은 쥬드를 제외하고 몇 없다. 생김새는 산적 우두머리같이 생긴 쥬드가, 그것도 명장이라 부르는 브라운의 고품질 대검을 들고 있었으니….

    ‘날 보고 범죄자의 느낌이 물씬 난다며, 검을 훔친 건 줄 알더라고.’

    스스로가 미남이라고 생각하는 쥬드의 나사가 반쯤 풀려버렸으니, 백안을 뜨고 수사관들에게 살기를 품으며 다가가는 것은 당연했다.

    ‘뭐, 내가 범죄자같이 생겼다고?!’

    다행스럽게도 폭주 기관차 같은 소리를 내는 쥬드를 발견한 브라운이 대장간에서 급급하게 나와 이를 증명을 했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고정하세요. 케피탄 맥주 한잔하시고.”

    “…얼른 줘, 빨리 이 답답한 속을 내려야겠어!”

    홀이 한숨 천지다. 델타에서 직접적인 검문이 아니라 정교의 검문이라는 사실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항간의 소문을 의식하며, 이대로 가다간 델타도 페지르에 의해서 사라지는 제국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게다가 데크에던 제국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는 둥.

    제국에 다양한 업종과 기술이 개발되고 발전하나, 가장 중요한 삶의 질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기분에다, 귀족들의 비리도 속출하니. 사람들은 이곳이 살기 좋은 제국인가 하고 고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인류의 사회구나.”

    “…언제 또 왔대요.”

    정령왕이 메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인류 사회를 비판하며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옆에서 고개를 흔들며 ‘어차피 잠깐만 진지한 척했다가 몇 분도 안 돼서 관둘 거야.’라며 옆에 있던 아와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뒤로 조용히 고개를 내미는 드라이어드 로아. 정령왕과 아와 사이에서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인사를 대신했다.

    “얼씨구, 오늘 정령팀이 다 모였네.”

    “인류란 정말 어리석… 아서, 리소토 하나 부탁해.”

    “그럼, 그렇지. 기다려요.”

    그런 적도 있었다. 대뜸 페지르의 수사관이 여관에 찾아와 불시 검문을 행했는데, 서빙하는 신사 해골들을 보며 불성 하다는 식으로 암흑마도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둥 압박 심문을 강행했다.

    당연히 해골 녀석들은 ‘달그락’ 소리밖에 내지 못했고,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정교 사람들은 신문도 안 봅니까,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한 착한 녀석들인데 암흑마도라니.’라며 혀를 찬 후에야 눈치를 보며 녀석들을 놓아주었다.

    우리 가게의 지고하신 용들이 알게 모르게 무서운 마력을 뿜어내지 않았더라면, 여관에 있던 모든 사람을 차례대로 검문했을지도.

    ‘델타 사람들은 얘네가 왜 이러는지 이유도 모른다고.’

    ‘자꾸 영업을 방해하고, 밭을 헤집거나, 난동을 피우고 그러니까.’

    ‘인식이 좋아지려고 했던 정교가 욕을 먹는 거지. 어휴’

    처음에는 델타의 국문에서 시행되었던 검문이 전부였으나 가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음식을 먹고 있던 메이도 ‘취재도 못 하게 하니, 나 참.’이라는 하소연을 더 한다.

    “취재를 못 하게 한다니, 메이?”

    “델타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활동을 정교에서 취재하지 못하게 막거든요. 모든 검문의 주체가 되는 것이 델타가 아닌 페지르라는 것도 수상한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더욱 수상하기 마련이죠.”

    “월간 세계의 모험은 베일을 밝히는 취재를 할 때, 웬만한 권력으로도 어림없는 독종으로 알려져 있잖아, 그 정도로 페지르의 압박이 심하단 거야?”

    “네, 정교의 압박이 추기경부터 시작해서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심지어 교황이 어명을 내렸다니까요. 회사가 말하길 세계의 모험을 발행하는 것이 금단이 되어버리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여기서 고집을 더 부렸다간….”

    정령왕의 말마따나 인류가 정말 안타까운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과거의 정교가 비교적 나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단이나 절망에 관련된 것은 몹시 예민한 문제였으니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페지르의 공권력은 상상 초월, 전 계를 아울러 모든 것을 장난감 다루듯 움켜쥐고 있으니까 말이다. 신의 축복을 받는 이들에게 방해를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현 정교를 운영하는 중심세력의 영향이 너무 강대했다. 교황부터 추기경까지 너무 급작스럽게 그들의 분위기가 바뀐 기분이랄까, 그들의 성향이 선보다는 현저히 악에 가까운 느낌이다.

    “웨라, 악기 바꿨나 보네요. 쥬드도 그렇고, 요즘 바꾸는 게 유행인가?”

    “남 대륙에서 공수해왔답니다. 좋아 보이나요, 아서?”

    “그럼요, 실력이 더 좋아지겠네. 여관의 뮤즈로서 영원히 남아주시길.”

    “네, 이곳이 제 음악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주는걸요.”

    웨라는 연주를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게 가까이 붙었다. 그녀가 슬며시 내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대더니 ‘할 말이 있어요.’라고 속삭였다.

    후방으로 넘어가는 복도 쪽엔 손님이 없어 조용했다. 대강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웨라가 입을 열었고, 나는 벽에 기댄 채로 이야기를 들었다.

    웨라가 이렇게 나를 따로 부르거나, 그것도 사람이 없어야만 하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자상한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헤르메딕트 성가대를 보고 왔어요.”

    “델타에 왔었다고 하던데, 행렬을 보셨다는 말입니까?”

    “네, 왕의 길을 따라 일제히 행렬하는 그 모습을요.”

    왕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델타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길이었다. 상인의 마차나 대형 이동수단이 수월하게 다니기 위함과 동시, 왕의 행렬이 이루어지거나 타국의 사신이 찾아올 때 맞이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교의 입국인 것을 고려하면 그들의 관례상 행렬과 동시에 위문 공연을 시작했을 것이다. 웨라는 왕의 길에서 그들의 행렬을 직접 눈으로 보며, 성가를 듣고 온 듯했다.

    “정교복을 입은 자들이 면사포 같은 것을 두른 채로 성가를 부르며 왕의 길을 걸어갔고, 아젤 제국의 검사들이 그 웅장한 행렬을 수호했어요.”

    “성가대의 행렬을 수호했던 자는 모르딕이라는 여성입니다. 수호 임무로 델타에 왔다가 이곳까지 들렀다 갔거든요.”

    말이 없이 과묵하게 서 있던 웨라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아서, 제 고민은…. 성가대의 음색이 수상했다는 겁니다.’라고.

    ‘성가가 이상했다니, 무슨 뜻이죠?’라며 의문을 제기하자, 웨라는 우선 자신이 음악이라는 예술을 심도 있게 공부했으며,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가에서 기분 나쁜 마력이 미세하게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마물에게 느껴질 법한… 그건 아주 교묘히 숨긴 것이기에 저 같은 절대음감을 가진 자가 아니면 결코 알아채기 쉽지 않죠.’

    ‘현악이나 관악은 목소리로 연주하는 성악에 비해서, 군중을 압도하는 마력이 약한 편입니다. 약 5배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저만 느꼈던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음색을 이루는 원천 신성력이 분명 틀림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름 끼치는 마력이 느껴졌다는 것이고요.’

    ‘강한 마력의 음색이 수없이 모이게 되면, 그것을 다루는 지휘자가 일종의 ’공연’을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아서 같이 전투에 특화된 자들은 그것을 보며 ’환경조성 마력결계‘라고 일컫기도 해요.’

    ‘지휘자이자 성가대장인 헤르메딕트 추기경. 의문스럽게도 기분 나쁜 마력의 원천은 지휘자의 것이어야 할 텐데, 또 추기경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억지로 표현하자면, 어느 이질적인 느낌에게 헤르메딕트 추기경을 포함한 성가대가 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일까요. 네, 마치 꼭두각시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름 끼치는 느껴지는 그 마력, 어디가 원천인지… 그렇다면 그것이 수없이 모이면 무엇이 되는 걸까요. …아서.’

    웨라가 아까와 다르게 자신의 양팔을 부여잡으며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다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거대한 공포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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