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3화 (123/222)
  • 123화

    * * *

    [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엑스칼리버, 용사의 쉼터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 갈대 나무라는 자연을 다스리는 드라이어들과 그들의 주신 ‘아와’의 힘이 연결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와는 이 나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분명 로아가 여관에 처음 찾아왔을 때 ‘저 여인이 아와 님의 나무를 거두신 겁니까.’라고 했다. 그래, 여인…. 한 때 잠깐 그랬었지.

    ‘자네가 엑스칼리버라 이름을 붙인 이 나무는 내 기억에 없다.’

    ‘참고로, 이 나무는 갈대 나무가 아니란다.’

    아와는 사계에 퍼져있는 모든 갈대 나무를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마당에 심겨 있는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의 나무는 내 것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흠… 그리고 정령계와의 접점을 만든 것은 정령왕이지 이 나무가 가진 본연의 힘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있던 아와 옆에서 잔망스럽게 마당을 뛰어다니던 정령왕이 ‘맞아, 정령들이 이 여관을 오갈 수 있게 나무에다 내 힘을 실어 차원을 연결한 것이네, 여관 내부에다 차원을 연결할 순 없잖아.’란 다.

    나무는 계속 자라고 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나무는 정령과 자연 마력을 흡수하며 계속 성장해 가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렌이 ‘이렇게 계속 커지다간, 이 언덕을 전부 뒤덮을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밤마다 은은하게 노란빛을 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정령이나 아와의 영향으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저것은 자신의 힘으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라며 정령 왕이 덧붙였고.

    ‘열매가 맺히고 있어요, 아서.’

    주로 레니가 엑스칼리버에 대한 관찰을 자주 하곤 했다. 내가 볼 땐 파르파르의 꽃이 혹여 피기라도 한다면 그때처럼 뽑아갈 심산이지 않을까. 다음에는 쥬드나 브라운 아저씨를 노리는 게 좋을 것이다.

    저번에는 망할 파르파르의 꽃이 피더니,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매가 맺히고 있다. 여러 개가 맺힐 법도 하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저 거대한 나무에서는 열매가 딱 하나만 자라나고 있었다. 크기도 소심한 것이 내 주먹보다 작은 듯.

    “단장, 길드원들이 전원 도착했다네!”

    “오, 그럼 시작해볼까요. 프리실라.”

    “단장은 감독만 해도 된다. 우두머리의 특권이지. 하하!”

    “당연하죠, 진작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하하하, 하하!”

    프리실라는 부하들을 이끌고 마당의 눈을 치우거나 파손된 곳을 수리하기 위해 움직였고, 마당을 지나던 홉스와 아이나는 연말정산을 위해서 조용한 자리로 이동했다.

    ‘오늘은 여관 보수의 날.’

    여관 일동이 다들 모여서 우리가 일하는 곳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여관을 틈만 나면 박살 내버리는 두 마리의 용에겐 ‘휴일이라 뺀질거리고 싶어도 눈치 보기 바쁜 날’이기도 하고.

    * * *

    1. 마당 정리 및 보수 담당 : 렌

    엄동설한을 손에 쥔 겨울이 찾아오고, 마당과 나무는 눈에 잔뜩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하늘에서 예쁜 쓰레기가 자꾸 내렸기 때문에 쌓인 눈이 녹기는커녕 계속해서 수북해지고 있었다.

    “마스터, 쌓인 눈 때문에 나무가 힘겨워 보여요.”

    “네가 나무를 붙잡고 몇 번 흔들면 되지 않을까.”

    렌이 엑스칼리버를 붙잡고 흔들자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렌, 그만둬!’라고 외치자 하던 것을 멈추고는 ‘힘 조절이 안 됐나 보네요. 아하하.’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눈이 아니라, 여관이 내려앉을 뻔했어.”

    “아하하… 주먹으로 살짝 쳐볼까요?”

    렌은 가볍게 쥔 주먹으로 자기보다 약한 스파링 상대에게 날리는 가벼운 잽 같은 느낌을 살려서 엑스칼리버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

    ‘쿵’하고 사방의 공기가 진동한다. 폭설 준비를 위해 길드 시설에서 망치질을 하던 브라운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 ‘전, 전쟁인가!’라며 나를 쳐다보더라.

    추가로 정령계에 있던 잔망스러운 초록 머리가 엑스칼리버의 차원을 타고 나타나더니, 놀란 눈으로 ‘방금, 정령계에 지진이 일어났다네!’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 3절까지 하자면 마차를 수리하는 퍼플이 화들짝 놀라버렸던 탓에 녀석의 두개골이 데굴데굴하고 마당으로 굴러들어왔다.

    달그락 소리를 내지 못하는 두개골을 보고는 퍼플이 죽어버렸다며 원래 죽어있던 애를 한 번 더 죽이는 레니의 비명도 끊이질 않는다.

    “…엑스칼리버가 죽어버릴지도 몰라, 멈춰!”

    “흠, 그렇담….”

    “그렇담 이라니, 빌어먹을 네 생각을 멈춰!”

    렌이 검지와 중지를 이어 딱밤을 장전하고는 엑스칼리버를 향해 쐈다. 굵직한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또다시 ‘쿵――’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나무에 쌓인 눈이 마당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그 여파로 여관 지붕에 있던 모든 눈이 바닥을 향해 죄다 떨어지고 만다.

    붉은 머리의 여인이 화사하게 웃으며 ‘이 정도면 대성공이죠?’라며 입을 열었는데, 자기설정이 빌어먹을 드래곤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혀를 내밀어 ‘헷’을 이어 붙였다. 제법 어울리는 게 문제다.

    “렌, 저 멀리 델타 산맥의 꼭대기를 봐.”

    “렌은 오로지 마스터만 바라보는데 말이죠. 재미없는 산은 관심 밖인데요.”

    “시끄럽고, 근래 델타 산맥의 꼭대기가 눈 때문에 하얀색이었거든.”

    “…흠, 지금은 하얀색이 아니네요, 마스터.”

    “그래, 네가 저길 털어버린 거야, 아까 그 딱밤으로.”

    * * *

    2. 주류창고 정리 및 보수담당 : 아이리스

    자칭 똑똑이. 박식하여 아는 것이 홉스보다 많은, 참고로 제 입으로 이야기했다. 아이리스가 주류창고이자 플로우들의 집을 담당한다.

    “작고 소중한 것들아, 저리로 비켜 보아라.”

    “플로, 플로.”

    ‘작고 소중한 것들이라, 녀석치곤 제법 표현이 귀엽잖아.’라고 생각할 때쯤, 아이리스가 ‘저리로 비켜 보아라.’라고 말했던 것이 무언가를 치우거나 청소해주려고 한 말인 줄 알았다.

    녀석이 플로우들을 향해 훠이훠이 손짓을 하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플로우들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내게 날아왔다.

    이내 빌어먹을 아이리스는 폴로우들이 앉아있던 그 책상 위에 대자로 누워 책을 꺼낸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미간의 열십자를 더욱더 짙게 만든다.

    “호호호, 일할 때 보는 책이 최고지, 자 읽어볼까.”

    “야, 너 뭐 하냐.”

    “뭐 하긴,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읽는 중…… 임, 임자!?”

    “팔자 좋네, 남 대륙으로 돌아갈래?”

    별안간 주류창고의 벽을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온도가 높군, 은혜로운 짐이 도와주도록 하지, 작고 소중한 것들이 좋은 환경에서 지내야 하니까 말이야.’

    어지간히 남 대륙으로 돌아가기 싫었는지, 렌과 첫 전투를 벌였던 순간마냥 혼신을 다해서 주류창고를 보수하는 자칭 똑똑이 아이리스였다.

    * * *

    3. 여관 내부 시설 대청소 담당 : 캡틴, 블루, 네이비

    골치 아픈 두 마리의 용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여관으로 들어온다. 눈이 부시도록 깔끔하게 청소해둔 여관의 덕에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을 내려놓게 만들고 입을 벌어지게 했다.

    “대단해, 역시 너희들은 내 보물이야.”

    “달그락, 달그락.”

    캡틴, 블루, 네이비가 쑥스러운지 머리카락 하나 없는 두개골을 동시에 긁어댔다. 뭐랄까 흠칫하고 놀랄 정도의 소름 끼치는 싱크로.

    여관 내부는 평소보다 더욱더 깔끔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닦았는지 주변의 사물들이 죄다 광이 나고 있다.

    전고가 높은 편인데, 천장은 어떻게 닦았냐고 묻자… 캡틴이 자신의 소매에서 팔을 뽑은 다음 걸레를 말아서 남은 한 손에 쥔다. 그다음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너, 너희들에게 보상을 주고 싶은데, 뭐 가지고 싶은 건 없어?”

    “…달그락.”

    “그 달그락의 뉘앙스를 보아하니, 흠… 같은 의미로군.”

    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정적에 빠졌고, 동공 없이 깊게 파인 그림자 속에서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도대체 녀석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사고를 지니는 것일까.

    살 하나 없는 손바닥에 주먹을 ‘통’하고 찍더니 번뜩 생각났다는 뉘앙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캡틴, 목 주위에다 손을 옮겨 나비 모양을 그리고 있다.

    “나비넥타이?”

    “달그락, 달그락!”

    “알겠어, 조만간 브레드 씨에게 부탁할게.”

    * * *

    4. 투숙객 시설 대청소 담당 : 오렌지, 옐로, 그린

    투숙객 시설은 후방 건물 한 개와 마당에 새로 지은 한 개가 있었는데, 마당은 프리실라 쪽에서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오렌지는 내부시설을 돌아다니며 코팅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후방 건물의 경우 마당에 있는 투숙객 시설보다 좋은 자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끔은 마력으로 정제된 마감재를 발라주어야 했다.

    내부도 청소가 끝나가는 상황이었는데 부풀려서 광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시선을 돌리며 2층 창문을 통해 전방과 후방 건물 사이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엘로와 그린이 보인다.

    …투닥. 투닥. …투다다다다다다.

    착용 중이던 양복의 상의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양팔을 회전시켜 빠른 속도로 빨래를 패기 시작하는 두 명의 해골신사.

    어쩐지 빨래가 빨리 마른다고 했는데,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 마치 꼬마들의 무자비한 싸움법과 흡사하다.

    녀석들의 독특한 방식의 빨래 말리기를 한참 동안 구경하던 중. 얇은 손가락뼈로 내 어깨를 톡톡, 고개를 돌리자 턱을 움직이는 오렌지가 옆에 있다.

    “달그락, 달그락”

    “혹시 모르니 우리 방에도 마감재를 바르고 싶다고?”

    “달그락, 달그락!”

    “그렇다면 구경… 아니 흠, 감독을 가보도록 할까나.”

    처음은 렌의 방이었다. 일단은 들어갔더니 내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어디서 찍혔는지 모를 다양한 사진들이 벽에 붙어있다. 이를테면 사이코패스의 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던전 할머니 여관이냐!’

    머리를 흔들며 오렌지에게는 ‘먼저 나가 있을게, 이곳에 더 있다간 아칸 최초로 관자놀이와 손가락만으로 불을 지핀 사람이 탄생하고 말 거야.’라며 조용히 복도로 나왔다.

    “달그락.”

    “다음은 프리실라의 방인가.”

    “달그락, 달그락.”

    “내가 하나 예상하지, 곰 머리 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을 거라고.”

    저번에 분명 버렸다고 했는데. 새로운 곰 머리 같은 것으로 추측되는 장식품이 벽에 붙어있다. 역시 프리실라의 취향은 한결같다고나 할까. 레르마을에서 보았던 저번 곰 머리보다 난폭하게 생겨먹었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아네스와 찍은 사진과 델타의 늑대 및 태양 새에서 활동했던 시기의 사진들이 탁자에 놓여있거나 벽에 붙어있었다. 그중 용사의 쉼터에서 찍은 사진도 꽤 눈에 띈다.

    “달그락, 달그락.”

    “다음은 아이리스의 방인가.”

    “달그락.”

    “녀석의 방엔 아무래도 책이 많지 않을까?”

    역시 지혜를 갈구하는 유파의 드래곤, 개체 중에서 가장 박식하고 아는 것이 많다더니 책을 이렇게 읽지 않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특성이었다.

    책상과 침대, 옷장 외에는 모조리 책을 꽂아두는 책장으로 갖추어져 있다. 대부분이 고고학자 월키스의 단행본 서적. 인간을 열등하다고 표현하는 녀석치곤 인간학자를 향한 팬심이 대단해 보인다.

    ―부스럭.

    옷장에서 자꾸만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쥐가 아니고서야 저런 소리를 낼 수 없다. 부스럭, 바스락. 옷장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여관에 쥐가 있다는 것은 ‘여관의 자재가 좋다.’며 자랑하고 다니는 내게 아주 큰 수치심을 안겨 줄 수 있었기에, 고민 없이 녀석의 옷장을 열어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이리스가 망할 고고학자 월키스의 단행본을 쥔 채로 고이 잠들어 있다. 수면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종이를 건드는 부스럭, 바스락 소리가 미간을 점점 조여 오도록 만든다.

    코 고는 소리에 맞춰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참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고. 여전히 꿈나라에 있는 빌어먹을 푸른 용을 향해 ‘마안의 뭉치를 개안한다.’라고 외치는 것을 오렌지가 뜯어말리는 데 간신히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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