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2화 (122/222)
  • 122화

    * * *

    [ 서대륙 델타 / 던전 할머니 여관 ]

    델타에서 제일가는 여관, 던전 할머니는 제국 중앙에 있다. 용사의 쉼터와 다르게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바바리안 같은 느낌의 사내들.

    이곳은 델타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여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던전이라는 그 고증을 뛰어날 정도로 표현을 잘했기 때문에, 간혹 진짜 있었던 던전을 고쳐서 만든 것이 아니냐며 묻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제국 한복판에 던전이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네스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이 던전을 침공해서 얻은 것.’이라며 손님에게 장난치는 사람이다.

    외부공간이 넓은 편에 속하는 용사의 쉼터도 여관 자체의 크기만으로는 던전 할머니 여관에 견줄 수가 없었는데, 애당초 이곳은 본래 여관을 건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던전 할머니 여관의 본래 모습은 현존했던 최고의 조합 중 하나인 ‘델타의 늑대 기지’, 그것을 뜯어다 고쳤으니 가히 요새에서 여관으로 탈바꿈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오크통, 그래 그것 좀 가져다줘!”

    “아직 주류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뭣, 오픈까지 얼마 남지 않았잖아!”

    해가 쨍쨍한 오후. 저녁이 되려면 한참 멀었건만 가게 운영을 위해서 분주한 직원들, 아네스는 동굴 같은 거대한 홀을 돌아다니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이들을 지켜본다.

    동굴 벽에는 수많은 사진과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노튼 아네스를 따르는 늑대들이 각자의 추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늑대들의 역사이자, 혹은 델타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했다.

    ‘용병단의 시간이 흐른다.’

    모든 흔적이 사진 속에 남아있다. 전쟁을 끝내고 온갖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나고 있었지만, 왠지 이들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처럼.

    ‘그리고 여관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생명을 낳거나 혹은 희생되고, 그 아픔이 뼈를 쑤시거나, 심장까지 사무치는 행복이 느껴지는, 그런 사진들이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여관의 벽, 다시는 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사진. 유목민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다.

    레르마을은 델타가 작은 국가에 불가하였을 때부터 있었는데, 이를테면 델타의 만리장성 같은 제국 벽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게다가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사라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온갖 마물들과 광기를 안은 짐승들이 들끓고 있는 혼돈이 도래한 시기였다.

    서대륙을 포함하여 전 대륙과 전 계가 암흑기의 잔재가 남아서 치안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때. 모두가 고달픈 시간이었고, 잘나가는 제국도 기아를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산적 떼나 도적 떼 같은 불한당들이 나타나 델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허다한 일이었고, 왕족 납치나 살인, 강간은 그저 스치는 해프닝에 불가한 일이다.

    차라리 마물을 먹은 짐승이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광인들이 쳐들어오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힘없는 국가에 불가한 델타는 토지에 흐르는 마력도, 이렇다 할 뛰어난 인물도 없었기에 그때만 하여도 머지않아 사라질 국가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망해가기 일보 직전인 국가의 근방으로 찾아온 것이 ‘레르민족’이다.

    레르마을의 사는 주민들은 사실 ‘유목민’으로 ‘늑대 무리’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열리기 전부터 이들은 온갖 수렁을 겪으며 세계를 횡단했던 방랑벽이 몹시도 강한 자들이다.

    ‘저자들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델타에 쳐들어오는 불한당들이 인근에 있는 레르마을을 습격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레르민족이 사라질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가지고 있던 병력을 레르마을로 보냈다.

    그러나 산적이나 도적 떼 같은 것은 그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도적 떼들을 완전히 뿌리 뽑는 데 성공한다.

    델타의 골칫거리였던 불한당들의 퇴치가 어느 민족에 의해서 완전히 종결 나게 된 것이다. 당대 델타의 황제는 이들을 보며 ‘델타의 운명을 뒤집을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레르민족을 델타의 수호자로 임명하며 심지어 기사단의 핵심 간부로 초청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호의를 완고히 거절했는데, 규율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귀족 신분의 생활은 방랑벽에 맡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제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악인을 잡아먹는 고고한 늑대들’이라 칭했고, ‘델타의 늑대’라는 조합을 창설하게 된다.

    그 조합의 수장이 당대 레르마을에서 최고의 전투력을 지녔던 자, 그것도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소녀라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도 강했다.

    ―사진. 근사한 표정을 한 멋진 여성.

    레르민족에서 세계의 유산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델타 근방으로 왔을 때는 곧 성인이 될 나이였다.

    키가 180cm는 되어 보였다. 체격이 좋은 사내에게도 무거울 법한 느낌의 갑옷을 아무렇지 않은 듯 착용하고 있다. 사진 그 아래에는 이름이 적혀있다.

    ‘노튼 아네스’

    기구하게도 이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시골 소녀는 언젠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검객 중 한 명이 된다. 그것도 ‘혁명의 검’이라 불리며 델타가 가진 최고의 전력이 된다.

    그렇게 암흑기가 끝나가며 제국 간의 전쟁이 활발하던 시기. 델타의 늑대들은 끊임없이 제국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기사단은 그저 집을 지키는 역할에 불가할 정도였다.

    ―사진. 아네스가 거대한 깃발을 들고 있다.

    ―부제로는 ‘100일 전쟁’이라 적혀있다.

    지금처럼 주름이 많지 않다. 어림잡아 40대 중후반으로, 그녀에게 느껴지는 강력한 기백이 사진을 뚫고 나오려 한다.

    자기 신장을 훌쩍 넘기는 거대한 깃발을 들고 근엄하게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 깃발 속의 상징은 델타의 것이다. 상대 제국으로는 ‘비루스 신성 제국’이다.

    서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비루스 신성 제국’은 인계에서 ‘대제국’이 될 뻔했던 곳으로 역사에 기재가 되어있다.

    비루스 신성 제국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전력 ‘정예군단’은 제국 하나를 가볍게 초토화할 수 있는 강함을 지닌 자들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측정방식으로 ‘SS 등급’의 인물들이라는 이야기다.

    그 정예군단을 100일 만에 씨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격파한 것이 바로 ‘노튼 아네스’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델타의 늑대. 그래서 ‘100일 전쟁의 아네스’라는 이명이 델타에서 유명한 것이었다.

    ―사진, 아네스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3명의 사내.

    ‘사킨보, 다르도라, 루픽스 그들의 죽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네스는 사진을 보며 100일 전쟁에서 전사했던 용맹한 이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전쟁은 이기지 못했고, 델타는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라며. 그렇게 사진 속의 동료를 바라보며 늘 슬픈 표정을 지곤 했다.

    계속해서 사진의 시간은 흐른다. 긴 여정과 세월을 암시하는 아네스의 얼굴에 빗어진 주름 개수도 함께.

    전쟁은 여전히 활발했으나, 이외에도 기아나 기근에 곤란했던 국가를 찾아 구제 활동을 하며, 델타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가했다.

    그렇게 작디작은 소국들이 모여 대제국 못지않은 거대한 세력을 구축한 델타, 이쯤 델타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아 상업이나 무역에 힘을 쏟아부었다.

    이른바 델타의 경제력이 끊임없이 높아질 수 있었던 최상의 시기로, 이어서 델타의 늑대가 전쟁에 나가는 일이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조금씩 벗어난 델타의 늑대들은 활동을 멈추지 않고 마물에게 침공당한 마을이나 작은 국가에 힘을 실어주는 일들을 계속해서 해나갔다.

    100일 전쟁이 시작되기 몇 년 전, 아네스는 전쟁의 잔재가 남았음을 보여주는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불길이 거세게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상급 마법사가 여럿이 힘을 쓰지 않으면 화마를 재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사진, 걸음마를 뗀 아기.

    아네스는 그 불길 사이로 들리는 갓난아기의 소리를 들었고, 그곳을 향했다. 불길 사이에서 목청이 터지라 우는 녀석, 자비롭지 못한 운명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해 보였다.

    그 화마 속의 울음소리도 아네스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보란 듯 걸음마를 떼고 있는 프리실라의 사진을 보면 더욱더.

    ‘그래, 너는 특별히 내 이름을 주도록 하지.’

    ‘앞으로 넌, 노튼 프리실라다.’

    * * *

    로브를 입은 젊은 여인은 동굴 같은 여관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진이 붙어있는 벽을 구경하고 있었다. 후드에 내린 그림자로 인해 표정이 자세하게 보이진 않았으나, 분명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아네스가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의 추억이라도 되새겨 보는 듯이 구경하는구나. 혹시 모르니 손님이 오면 올라가도록 해.’ 그녀의 머리를 가린 후드 위. 이어서 주름이 많은 손으로 다정히 쓰다듬는다.

    “…당신은 아네스.”

    “이런, 젖내가 빠지지 않은 애송이도 나를 아는 게냐.”

    “황실에서 내려오는 그 이름… 델타의 영웅이니까요.”

    “네 녀석, 제법 노인을 부끄럽게 하는 재주가 있군.”

    던전 할머니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네스의 부하, 그는 둘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외부에서 철저히 조사한 정보를 아네스에게 조심히 읊는다.

    “검문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복 조사관들도 보였고요.”

    “그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찾질 못하니. 애가 탔겠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네스가 여인 찾기 전부터 삼엄해진 델타의 검문, 그것은 왕실의 뜻이 아닌 거부할 수 없는 페지르의 어명이다.

    여인을 추적하는 페지르의 조사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당장이라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외치며 델타 외부로 나서야 할 텐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델타의 국문을 가로막는 페지르의 눈은 어떠한 변장 마법도 탄로 나니까.’

    그렇다고 타 제국을 향해 도주한다는 것도 무리였다. 페지르는 이미 다른 제국에게 어명을 내려서 검문을 강화하고 여성을 찾는 데 힘을 썼을 것이다.

    하물며 제국이 아닌, 황야나 숲 같은 곳에 몸을 숨기는 것도 무리가 있다. 도리어 페지르의 추적자들이 따라붙기 쉬워질 것이다. 여인이 말했던 소리를 내지 않는 자객 ‘그림자 기둥’은 더더욱 그렇다.

    예전처럼 미간에 힘을 주어서 동공 색을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쉽고도 희망적인 방법은 곧 여인의 행동으로 가망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이, 이럴 수가… 완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어.’

    여인은 ‘분명 내 눈이 늘 이렇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미간에 힘을 주어 무작정 애를 썼다. 그럼에도 마녀의 상징인 보랏빛의 눈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변장을 통해 신분을 숨기는 것은 일촉즉발의 순간에만 가능하게 되었으니, 아네스는 우선 여인의 새로운 신분을 조작해서 만든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는 것이 좋으니까.’

    델타의 거리가 떠들썩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시 검문하던 페지르의 수사관들에게서 약간의 광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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