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21화 (121/222)
  • 121화

    * * *

    [ 서대륙 델타 외곽 / 레르마을 ]

    노튼 프리실라의 고향이자, 아네스의 고향. 태양 새와 델타의 늑대에 속했던 모든 이들의 터, 이곳은 많은 사연이 있는 곳이다.

    레르마을. 천 리를 가볍게 넘는 기나긴 성벽 바깥에 위치하여, 이를테면 마계 대제국의 자치령인 블러드 럼과 닮아있다.

    마을의 모습은 십여 년 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토지에 마력이 고르게 유동하지 못한 상태로 몇 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발달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국 측의 답변은 이랬다. ‘델타 시내를 포함하여 다양한 시설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선 외곽에 있는 마력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외곽지에서 자연 마력을 끌어다 써도 문제가 없을 텐데, 왜 굳이 레르마을이었냐고 프리실라에게 묻자. 그녀도 미간을 찌푸리며 대뜸 허공에다 성을 내며 입을 열었다.

    ‘레르마을 지면 아래에는 델타를 중심으로 뻗어있는 자연 마력의 가장 큰 수맥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수맥의 흐르는 마력을 멈추지 않고 제국의 발전을 위해 중심부로 끌어다 사용하니, 마을은 어느새 천연 약제나 마법 없이는 가뭄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괜찮아, 우리는 젊어서 팔팔하니까.’

    ‘할매도, 나도, 마을 하나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물론, 이 모든 것을 무사히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건….’

    ‘아서 단장의 힘이 가장 컸지만. 하하.’

    지금의 프리실라는 더는 태양 새가 아니었다. 비록 드래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레르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이들에게, 차라리 좋은 곳을 찾아서 마을 전체를 이사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전과 달리 수익이 많아진 조합을 보라, 마음만 먹으면 영지를 구매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근본부터 틀려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프리실라와 아이나는 ‘내가 있었던 곳이기에 지키려는 의미가 더욱 커지는 것’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금의 내가 언덕 위에 있는 용사의 쉼터를 팔아넘기면서까지 경관이 아주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가뜩이나 온갖 업종의 개발로 인해 델타가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간신히 모두의 기억이 집합되어있는 곳을 마을 사람들이 쉽사리 버릴 리가 없다. 비슷하게 슬로 시티인 셈이라 치자.

    어쨌거나.

    어느 날 타르툰이 거대한 몸집으로 여관에 들어왔을 때, 또 어마어마한 짐승이라도 잡아서 자랑하러 온 줄 알았거니 했다. 수줍은 표정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했던 말이 ‘답례를 해도 되겠습니까.’였다.

    이로 인해 여관 일동은 휴일을 맞이하여 레르마을로 찾아오게 된 것, 다름이 아니라 타르툰이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레르마을이 아니라 그 뒤편에 넓게 펼쳐진 평야가 목적지라는 것이다.

    “단장, 마을은 어때 보이나.”

    “아 프리실라, 이번이 벌써 50번째라고요!”

    “그래도 이전보다 마력 유동이 약하진 않지? 하하!”

    퍼플이 운전하는 해골 마차를 타고 레르마을에 입성한 뒤, 프리실라가 줄곧 ‘마을은 어때, 멋있지.’ 같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니까 부풀리기 없이 지금까지 50번은 들은 듯하다.

    왁자지껄, 오는 길도 여간 고행길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이 마차는 20명까지 탑승이 가능한데 웬만한 여관 인물들은 모두 탑승해 있었다.

    그러니까 렌부터 시작해서 아이리스, 프리실라, 레니…. 등등, 참고로 란베르크는 마차에 타고 있다간 머리가 깨질지도 모르겠다며, 고삐를 잡고 있는 퍼플에게 ‘블헤이드 메인가에 따로 내려 줘.’라고 했다.

    근래 란베르크는 여관과 가문의 영지를 자주 오가며 보기보다 바빠 보였다. 여관 일도 자주 도와주는 데다, 조합의 선생님 역할 외에 하는 것이 많아 피곤할 텐데. 녀석.

    “하하, 이 프리실라가 마력 유동 보조 장치를 설치했거든!”

    “설마, 저기 보이는 알 수 없는 동상이 보조 장치입니까?”

    “돈 좀 썼다고, 브라운에게 괜찮은 마도 공학자를 추천받았거든.”

    그래 마력 유동 보조 장치… 다 좋은데. 판타지 장르에 꼭 있을 법한 평범함의 극치인 마을에다 드래곤 동상이라. 프리실라의 예술적 감각은 몹시 낮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건 마치…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노역시켜서 자신의 동상을 짓게 한 드래곤의 흔적. 꼭 지배를 당하고 있는 마을 같잖아.’

    다행히 동상 아래에 ‘드래곤 길드가 이 마을을 수호하고 있음’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시선이 동상 아래로 갔던 내게 프리실라가 입을 열며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았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전까지 찾아왔던 외지사람들은 분명 전자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저 동상의 모티브가 되는 렌도 마차에 타고 있는 바람에 자신이 지배하는 마을에 시찰을 나온 느낌이 되어버린다.

    “흠… 오늘은 던전 할머니도 휴일일 텐데.”

    “어째선지 할매의 갑옷 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군.”

    * * *

    [ 서대륙 델타 외곽 / 이름 없는 평야 ]

    이름 없는 평야라고 일컫지만 이젠 타르툰의 평야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 용사의 쉼터 언덕 부근을 연상하게 했다.

    그 평야 한가운데 거대하게 놓여있는 천막 재질의 움집이 보인다. 타르툰이 집 앞에 나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기고 있다.

    워낙 기분 좋은 마력이 흐르는 평야라 발목까지 올라오는 잔디를 밝으며 신사 해골들이 신명 나게 뛰어다녔다. 플로우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여관 일동의 주변을 날아다닌다.

    꽤나 좋은 곳을 거주지로 삼는 타르툰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편안하게 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으니까.

    타르툰은 ‘참 낙원 같은 곳이지요. 용사의 쉼터도 아서 님에게 그렇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건넸다. 지당하신 말씀, 용사의 쉼터도 내게 그런 곳이기에 낙원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다.

    “와, 이곳에 좋은 풀들이 정말 많은걸요.”

    “레니, 또 이상한 걸 제조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로는 이상한 걸 만들 순 없으니까.”

    발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마력만 보아도 이 드넓은 평야가 낳은 자연의 보고가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평야가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예시로 ‘재료라면 사족을 못 쓰는 레니’가 이를테면 이삭줍기 마냥 평야를 돌아다니며 풀을 뽑고 있는 것을 보라.

    『후… 오랜만이다. 상당히 개운하네요. 아이리스.』

    『뜻밖에 맞는 말을 하는구나, 짐 또한 나른하게 잠이 오는걸.』

    관자놀이가 어째선지 욱신거린다고 했다. 렌과 아이리스가 드래곤으로 변해 평야에 누워있었다. 통제 불가능 상태의 여관 일동을 보며 손을 흔들던 타르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해고당하기 싫으면, 5초 준다.”

    “타르툰 앞으로 일렬종대 헤쳐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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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 녀석, 정말 힘이 강한걸.”

    “제법 아이랑 잘 놀아주는데요. 프리실라.”

    “그럼, 레르마을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타르툰의 거대한 움집 안에서 제각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일종의 잡담 시간으로 차를 마시며 프리실라가 타르툰의 둘째와 놀아주는 것을 구경했고.

    새하얀 털이 잔뜩 나 있는 둘째가 내 눈에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몰티즈를 보는 기분이다. 아직 어눌한 말이 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내게 유아기의 수인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타르툰, 이야기하시겠어요?”

    “응, 부탁해.”

    타르툰은 둘째를 안고서 아내에게 데려가더니, 이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적당히 앉아 숨을 고른다. 아까와 다른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내는 이 자리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는 듯이 둘째를 안고서 조용히 움집 밖으로 나갔다. 평야에서 여관 일동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타르툰이다.

    “아서, 근래 알 수 없는 검문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전혀요. 타르툰을 인계로 데려온 뒤에 델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서.”

    때는 사흘 전, 타르툰이 사냥을 위해 델타 산맥을 오를 때였다. 그것도 새벽이었는데 근래에 주변 마을이 죄다 사라지는 바람에 인파가 없어 사람을 마주치기 어려운 시간대였다.

    우리는 당연히 ‘그래도 델타 산맥이라 몇 명 정도는 마주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의문점을 제기했으나, ‘델타에 거주한 뒤로 델타 산맥을 몇 번을 올랐는데 사람과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타르툰이 반문했다.

    거기서 델타 소속의 기사도 아닌 녀석이 검문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고위직의 복장이 분명하나 델타 소속의 기사는 아니기에 신원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자의 뒤로 어둑한 그림자 속에 몇몇 인물이 있었다. 흰 갈퀴족은 밤눈이 밝아 충분히 그 속을 일찌감치 들여다볼 수 있었고.

    들여다보았던 그림자 속에는 ‘데크에던’과 ‘아크론’의 상징이 있는 로브를 착용한 이들이 있었다며, 타르툰은 ‘심지어 두 제국은 제국 간의 전쟁이 있었던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산으로 오르기는커녕, 그저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사냥이야 다른 곳에서도 가능하지만.’

    ‘알게 모르게, 수상하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델타 산맥에서 마주쳤던 그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에게.’

    ‘용사의 쉼터에서 나던 향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이후 타르툰은 움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실컷 놀아준 뒤, 저녁에는 용사의 쉼터에 찾아가 가볍게 목을 축일까 하여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인 델타 국문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곳은 레르마을과 가장 가까운 국문이기도 했다.

    ‘거기서, 검문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2급 검문.’

    2급 검문은 제국에서 발행한 최고의 검문 중 하나였다. 높은 신분의 귀족이 살해되어 범인의 행적을 추적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해 발행되는 검문이다.

    프리실라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흠, 확실히 마지막 의뢰에서 복귀할 때쯤이었나, 델타의 국문에서 검문하고 있던데…. 아주 오랜만이었어.’라며 입을 연다.

    검문소 내부, 시야 속으로 잡히는 검문소장은 특이하게도 근래 페지르에서 넘어온 고위직 관료로 보였다. 착용한 의복을 보아하니 페지르를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어서 타르툰이 미간을 찌푸렸고 ‘흰 갈퀴는 시력뿐만 아니라 청력도 뛰어나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검문소장의 대사를 자신이 직접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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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에 있던 마녀가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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