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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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럼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성전(聖戰)은 과연 성전(聖戰)인가?」 中
백여 년 전쯤이었다. 인계 북 대륙에 ‘타이타’라는 제국이 있었는데, 거룩한 신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페지르가 타이타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킨 역사가 현재에 남아있다.
타이타 제국의 터는 그보다 오래전 페지르의 완벽한 이단이라고 불리는 ‘황동의 언덕’의 본거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 이유가 멸망을 초래한 전부였다고 볼 수 있었다.
제국이 그곳에 자리를 잡기 전 ‘이그리스 십자회’를 통해서 이단의 뿌리를 남김없이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잔재를 남기는 것은 페지르의 수치라며 제국을 지도상 없던 대륙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선고도 없이 제국을 초토화한 것은 아니었고, 페지르가 타이타에게 신성 혈맹을 권유했으나, 타이타의 황제는 이를 완고히 거부했다. 타이타 황제는 이때 ‘그저 살기 위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어째서 믿어가야 하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창조주 서시’ 뿐만 아니라 아칸 전역에는 인류를 위해서 ‘원천’의 역할을 하고 ‘기원’의 역할을 하는 ‘주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타이탄 황제가 뱉은 말은 결코 ‘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며 ‘제국의 자유를 무시한 페지르의 종교적 이념전파가 신의 포옹이 아닌 철퇴 같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있다. 「정교를 위한 전쟁은 언제나 ‘성전(聖戰)’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거룩한 사명을 띤 전장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곳은 성전(聖戰)을 통해 성전(聖殿)」이 된다는 성가대의 이념 말이다.
문제는 페지르가 근래 타 제국을 방문할 때나 혹은 정치적 사교라는 접점을 이룰 때면 ‘헤르메딕트 성가대’를 보낸다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방문에 대한 답례로 위문 공연에 의미를 둔 것이었으나, 좌우지간 역사적으로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수많은 제국이나 왕국을 초토화한 공포의 상징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위문 공연이 이루어지는 제국은 하나도 빠짐없이 ‘아칸의 정교 페지르와의 신성혈맹이 아닌 곳’들이었다. 단순히 ‘위문’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과연, 위문을 위한 것이었다면 페지르는 어째서 그냥 성가대가 아닌 ‘헤르메딕트 성가대’를 보내는 것일까.
#2 칼럼 「이달리브 묵시록 ‘사라진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中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교로 침투하여 성유물을 무단으로 복제한 학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페지르에게 잡혀 처형당했다.
어떻게 정교의 성유물을 평범한 학자가 훔쳐서 달아날 수 있냐는 물음이 쏟아졌고, 이에 대해 묵인하는 정교였다. 무엇보다 이달리브 묵시록이 세간에 퍼지는 것을 막기 바빴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페지르의 대표적인 지침서, 세계의 모든 것이라고 불리는 ‘이달리브 묵시록’에 누락되어있는 사라진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역사와 세계의 나타날 비극이 기록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용의 등장이 있기 전부터 시작하여, 모든 이야기가 기록된 성전. 이것에 누락되어 사라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죽은 학자가 밝혀낸 것이었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 세계의 결말을 의미했던 비극이 나타날 시기, 기적의 상징이 떠오른다. 7인의 영웅들. 그들의 이야기가 이달리브 묵시록에 대부분 누락되어있음을 추측하는 학자들이 근래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7인의 영웅들이 존재했다는 근거가 부족했기에 역사의 공백에 대해서 의구심이 더욱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이를 숨긴 정교를 향해 인류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교 측에서도 세간에 퍼져버린 이달리브 복제품에 대해 어찌할 방도가 없었는지, 끝내 이달리브 묵시록의 존재를 인정했다.
하물며 ‘실제로 그 역사의 한쪽이 누락되어있기 때문에, 위대한 정교의 교황께서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는 식의 대답까지 했다.
결국 ‘7인의 영웅’에 대한 것들은 정확한 것이 없다. 그들이 행했던 인류를 위한 모험에는 무엇이 있었고,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지금처럼 세계의 가장 큰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중요한 것은 역사 누락 또한 페지르가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7인의 영웅에 대한 역사의 진실은 더욱더 수면 아래로 잠긴다는 것이다.
페지르가 숨기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왜 숨기고 있는 것인가. 「#1」「#2」의 칼럼니스트 노엘―― 집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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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서대륙 / 용사의 쉼터 ]
“하여간, 정교 새끼들은 하는 짓이 꼭 변태 같다니까.”
“…신문은 댁에 가서 봐도 되지 않나 싶은데.”
“아서, 친구 사이에 우리 너무 그러지 말자고.”
“누구더러 친구랍니까, 아베스타는 어쩌고요.”
“휴가라고, 휴가. 그리고 갑자기 존대야, 어색하게.”
“저는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엊그제까지만 해도, 나를 반쯤 죽여 놓으려고 했던, 아니 그냥 없애버리려고 했던 5대 마왕,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가 용사의 쉼터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사람 자체가 사교성이 뛰어난 바람에 브라운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이들과 친해진 지 오래였다. 물론 ‘아베스타’라는 마왕을 상징하는 이명을 숨기고 ‘마리’ 정도로만 자신의 신분을 공개했다.
휴가란다. 휴가.
휴가라면 마계에 내로라하는 관광지에 가거나, 근사한 자기 여관에서 유유자적하게 휴식을 즐기면 될 것을 굳이 인계까지 찾아와서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어쨌든, 한 번은 가보려고 했으니. 온 거다.’라는 식의 5대 마왕께서는 용사의 쉼터에 며칠을 묵었고, 그간 내게 ‘그냥 이 여관을 팔지 않을래? 제국 하나 정도는 구축할 수 있을 법한 금액으로 쳐주지.’라는 말을 셀 수 없이 해댔다.
“아, 안 판다고.”
“그럼, 홉스만이라도 팔아.”
“어이가 없네, 누가 홉스를 파느니 마느니, 화가 난다고 했더라.”
“크흠, 흠.”
렌은 마리에게 차를 가져다주며, ‘아니면, 마리가 용사의 쉼터에서 일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나와 마리는 동시에 ‘절대, 싫어.’라고 대답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등을 돌려 사라지는 렌, 떠난 자리에는 마리와 내가 계속해서 으르렁거리기 바빴는데.
심지어 꼴에 아이리스가 ‘렌. 저것을 보라, 임자의 눈에는 우리의 싸움이 저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라며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타르툰이 홀로 들어와 ‘아서, 델타 산맥의 사는 생명체들의 고기는 상당히 질이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잿빛 늑대는요.’라는 말과 함께 내게 종이를 건넸다.
“아, 타르툰. 이번에 산양계열의 고기가 조금 필요한데.”
“오, 그렇담 그쪽으로 수량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쳇, 타르툰도 완전히 적응했잖아.”
“마, 마리 님. 언제 오셨습니까.”
“한 사흘 됐거든.”
타르툰, 흰 갈퀴 부족으로 이족보행에다 온몸에 새하얀 털이 뻗어있는 것이 특징, 장모종이라면 장모종이다. 털이 보드랍게 나 있어서 레니의 말을 덧붙이자면 이른바 ‘얼굴을 파묻고 뭉게뭉게 하고 싶다.’는 느낌.
그는 인계로 도착하여, 델타 변방 레르마을 근처로 쭉 이어지는 평야에 거처를 마련한 가족과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로는 어떻게 델타의 사회 구성원으로 타르툰이 자리를 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이어졌는데, 홉스가 델타의 늑대들이 창업한 여관 ‘던전 할머니’를 소개했다.
‘아, 되도록 아내가 전투의 향이 물씬 풍기는 곳은 피하라고….’
타르툰의 아내는 남편을 휘어잡는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듯했고, 이어서 홉스는 ‘정육점’창업에 관련된 정보를 주며, 마커스처럼 사냥꾼이 되어보는 것은 어떤지 권유한다.
‘아내가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합니다. 하하….’
이어서 용사의 쉼터를 포함하여 델타에 있는 다양한 요식업계열 자영업자들과 계약했고, 퇴직금 명목으로 마리가 타르툰에게 거액을 지불하여 정육점의 간판을 빠르게 달 수 있었다.
“인마, 타르툰. 행복해 보인다?”
“…하하, 네 그렇습니다. 마리.”
“그래, 누구 덕이지.”
“당, 당연히… 마리 님 덕이 아니겠습니까.”
보란 듯이 나를 향해 ‘낄낄낄’거리며 웃는 마리는 분명 나에게만큼은 나쁜 사람이 틀림없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 모양으로만 대응했다. ‘성질이 얼마나 더러우면 부하들이 하나같이 쩔쩔매고 다닐까.’라고.
내가 현역에다 힘이 꽤 셌을 때였더라면 네가 마검 아칼라를 뽑기도 전에 뒈졌어. 라고 전해주고픈 심정이 굴뚝같았으나, 홉스나 타르툰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마리에게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좌우지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타르툰의 아내가 보냈던 편지 첫 번째 문단 ‘둘째가 생겼어요.’가 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것. 녀석의 기운찬 울음소리가 고요한 평야를 잔뜩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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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륙 델타 / 던전 할머니 ]
새벽, 한파가 찾아오는 바람에 공기가 더욱더 서늘하다. 손님이 모두 나가고 직원들은 분주하게 마감을 하고 있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잔뜩 들어왔던 아네스가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맡기 위해 여관 밖으로 나왔다. 비어있는 거리 바닥에 사람들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음을 보고는 오늘도 바쁜 하루였음을 느꼈다.
던전 할머니가 위치한 거리는 날이 밝아있을 때 잡화점 같은 다양한 상점이 모여있어서 가장 혼잡한 곳이기도 했는데.
해가 저물고 새벽이 되면 가게 앞에 걸린 은은한 호롱불이 어둠을 비추는 유일한 것이기에, 아침과 달리 매우 적적하고 고요하다.
판금 갑옷이 아닌 따뜻하게 두른 옷가지 사이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호롱불의 은은한 빛을 분위기 삼아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웃음을 짓는다.
‘노튼 프리실라’
자신의 성을 가지고 굳세게 성장했던, 아리따운 아가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 고운 우리 딸.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아네스는 그녀가 자신의 핏덩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노튼의 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피부에 스며드는 추위, 뼈를 시리게 하는 공기. 오늘따라 입김이 경쾌하게만 느껴지는 혁명의 검, 전장의 늑대 아네스.
“….”
여관의 외벽, 사각형으로 파인 구조는 비어 있는 오크통을 꺼내두기 위한 공간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그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노장이라고 하여도, 살기 정도는 가볍게 느낄 수 있는 아네스. 그러나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을 뽑을 필요가 없을 정도에 연약한 것이었다.
조금씩 그곳을 향해 걸어갔더니,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로브를 입고 있으나 체형으로 보았을 때, 갓 성인이 된 여성에 가깝다. 게다가 로브에는 델타 왕실의 상징이 자수로 놓여있다.
추위에 의해서 온몸이 얼어버린 탓에 마력의 흐름이 고르지 않고, 호흡이 쉽지 않다. 계속해서 줄어드는 마력을 보아, 이대로 놔둔다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릴 것이다.
아네스는 쓰러져 있는 여성의 로브를 걷어 얼굴을 확인했다. 호롱불의 미세한 빛으로 인해 소녀가 살며시 눈을 뜨고 말았다.
“―――.”
그런 젊은 여인과 눈을 맞추며.
아네스가 떨리는 동공과 함께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야.”
“아가씨가 이 늙은이의 여관 앞에 쓰러져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아가씨를 발견한 것.”
“…왕실의 자녀, 아니 보랏빛의 눈을 가진 아가씨는.”
“가지고 있는 모든 운을 이곳에 맡겨야 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