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9화 (119/222)
  • 119화

    * * *

    [ 며칠 전…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타르툰을 찾아 마계로 떠나는 아서와 아이나. 이어서 홉스가 마지막으로 여관 문을 나와, 마당으로 유유히 향했다.

    세계를 이동해야 한다는 귀찮음을 호소하며 ‘이럴 때, 프리실라를 보내야 하는 건데.’라고는 퍼플의 해골 마차로 걸어가는 아서.

    아이나는 의뢰 관련 정보를 읽으면서 정신없이 걷고 있었기 때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불안하다.

    용사의 쉼터에서 바라보는 언덕으로부터 이어지는 평야. 이어서 드넓게 펼쳐진 하늘. 홉스는 이것을 바라보며 같은 곳에 있지만 늘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마리의 여관을 떠나, 새로운 삶과 성공을 위해서 인계의 도착한 홉스. 예상하지 못한 차별과 조우하기 바빴기 때문에, 이렇게 감상에 젖을 여유 따윈 없었다.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얼굴에 멍이 드는 것도 부지기수. 끼니라도 때울 수 있다면 다행이다. 홉스는 델타로 넘어오고 나서 제대로 된 음식을 한 번도 먹을 수가 없었는데.

    고블린이기 때문이었다. 아득히 머나먼 시기부터 존재했던 종족으로 특정한 부족으로 인해 모든 부족이 예외 없이 차별을 받기 시작한 안타까운 종족.

    특히 인계에 거주하는 이들은 유독 고블린에 대한 반감이 심한 편이었는데, 과거 마계에서 넘어온 ‘칼날 나무의 고블린’들에게 어린아이들이 학살을 당했던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델타에 거센 폭풍우가 치고, 옷이 홀딱 젖은 채로 델타 시내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홉스. 소문과 달리 지적인 느낌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도, 몇몇 사람들은 혀를 찰 뿐이다.

    ‘마계에서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델타에 거센 폭풍우가 계속해서 불어왔다. 그 어떠한 곳에서도 홉스라는, 아니 고블린이라는 종족을 받아주는 여관은 없었다.

    잔뜩 부푼 기대감으로 마계에서 자신이 해왔던 것들을 채워 넣은 활자, 홉스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이력서. 취직은 뒷전이고 비용을 지불한다고 말했건만 투숙객 시설조차도 이용할 수 없다.

    홉스의 품에 있는 어마어마한 스펙이 나열된 이력서는 이들에게 그저 고블린이 들고 있는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일 뿐.

    지금 이곳에 그 누구도 이 고블린이 홉스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마계의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제국군으로 몸을 담았던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 리가 만무하며, 관심도 없다.

    ‘난 고블린이니까…. 그래요. 이해합니다.’

    배가 찢어질 것만 같은 느낌의 공복감, 거세게 시야를 가로막는 빗줄기, 아무 길고양이나 먹으라고 놔둔 온갖 음식 찌꺼기. 정신 나간 짐승처럼 미친 듯이 기어갔다. 그 무엇도 공복을 이길 수 없다.

    그 찌꺼기를 허겁지겁 씹어 삼키며 몰아치는 공복을 간신히 거짓으로 때우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우리라 다짐했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지만, 가로막힌 시야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전단지는 ‘직원을 구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용사의 쉼터 여관, 직원 모집.’

    .

    .

    .

    “홉스?”

    “…아, 죄송합니다. 사색에 빠져있었네요. 렌.”

    “이걸 가지고 가세요. 홉스.”

    “음, 이게 뭐죠?”

    “스크롤이에요. 텔레포트… 빨, 빨리 마스터가 볼지도 몰라요.”

    어제는 난리가 났다. 홉스와 아이리스가 아이나를 향해 계속해서 마계에 함께 따라가겠다며 온갖 생떼를 부린 나머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시끄러워.’라고 말하기 바쁜 아서의 하루였다.

    절대 그칠 줄 모르던 두 마리의 용. 다행히 마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두 분이 가시면, 저는 어떡해요….’라는 한마디가 종결을 냈다.

    “아이리스와 함께 만들었어요. 마스터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 생기면, 이 스크롤을 강하게 찢으면 됩니다.”

    “용의 계약자인 마스터의 마력을 추적해서 용이 계약자를 향해 이동할 수 있도록 강제적으로 도와준답니다. 용의 마력 소모가 다소 크다는 게 문제지만요.”

    홉스는 묶어놓은 스크롤을 건네받으며 모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생긴 것은 일반적인 스크롤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느낌의 묘한 마력이 흐른다.

    * * *

    마리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며 사방을 부수고 있었다. 단순히 걸어온다는 행위만으로 지면이 파괴되고 중력이 강해진다. 아베스타에 있던 많은 간부가 고막의 압력이 올라가 귀를 틀어막는다.

    세계의 유산 ‘그 속을 보는 자.’를 가지고 있는 마리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어떠한 인물이든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의 기관이 있다.

    마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 중 하나였던 홉스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 속을 보는 자로도 아서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좌우지간 세계의 유산을 사용하지 않고 아서의 내면을 확인하려 했기에, 강력한 무력으로 압박하면 아서의 내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리가 의아했던 것은, 고블린 홉스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접근했던 녀석들과는 아서가 다소 다르다는 점이었다. 속을 알 수 없으니 연기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속을 읽을 수 없는 아서의 앞에, 대뜸 홉스가 나타나 양팔을 벌린다. 마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홉스에게서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아집과도 같은 것이다.

    “비켜라.”

    “안 됩니다.”

    “비켜라, 했다.”

    “용사의 쉼터로 돌아가겠습니다.”

    “저 속을 알 수 없는 자에게 보낼 수 없어.”

    지금까지 홉스를 해하려 했던 자가 수없이 존재했고, 그 속을 들여다보며 홉스에게서 악의를 품은 자들을 멀리하게 했으니, 별안간 인계로 떠나겠다던 홉스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대화만으로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몹시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잘 아는 마리. 세계의 유산으로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아서라는 자는 홉스에게 어떤 해를 가할지 모른다.

    홉스의 사지를 잘라 약제로 탁월하다며 상인에게 비싼 값에 팔아버릴지, 노예처럼 온갖 궂은일을 시키다가 대뜸 죽어버리면 터져 죽은 쥐 시체를 본 것처럼 밖으로 내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나를 시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홉스.”

    “….”

    허공에는 아베스타를 두를 수 있는 거대한 크기의 마법 서클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지프가 ‘…5대께서는 마검, 아칼라를 소환할 예정이다.’라며 입을 열었다.

    ‘마검, 아칼라’는 마계의 주신이라고 불리는 ‘아칼라’의 후손 ‘마계의 통치자, 아베스타.’에게만 허락된 금단의 마법이었다.

    마계의 중심인 전제국 첼로니아가 파국에 치닫게 될 위험 앞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마계가 가진 비장의 수단을 고작 고블린 한 마리를 위해 사용하는 마리.

    ―지익.

    홉스는 마리 앞에서 요상한 스크롤을 찢는다.

    거대한 돌풍이 아베스타를 감싸며 모두의 눈을 감게 만들었고, 감았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빛이 천공에서 쏟아진다.

    마검, 아칼라를 소환하기 위한 거대한 마법 서클 아래에 또 하나의 마법 서클이 생성된다. 술식의 모양새를 보아 ‘다차원’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한 지프와 타르툰. 세계와 세계를 단숨에 활보하는 대마법이 천공에 나타났다.

    다차원 공간이동 마법은 제국의 이동 장치가 아니고서야 드래곤만 가능한 영역일 터. 지금 홉스가 찢어버린 스크롤과 저 마법 서클의 마력 유동이 일치했다.

    웅장한 크기의 부유 선이 아베스타 천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안간 첼로니아 전역에 퍼지고 있는 강대한 마력, 사람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겠지만 이 마력의 주인은 마리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날아오는 두 개의 무언가.

    투기장 전체를 감싸는 마리의 강력한 결계를 일격에 뚫어버리고, 홉스와 아서 옆에 나란히 위치한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날개로 이들을 보호하는 모습.

    이어서 마리를 향해 맹렬하게 쏟아내는 짐승의 포효.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자르툰과 지프에게는 정신을 짓누르는 공포감이었다.

    아베스타부터 한참이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도 피부가 쭈뼛해지며 소름을 느낄 정도였다. 투기장에 번져가는 공포감은 당연 이루 말할 수 없다.

    ―포효의 정체는 두 마리의 용이었으니.

    마계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던 성체의 용이었다. 심지어 마브리우스 산맥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붉은 용이 눈앞에 있다.

    투기장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부유 선에서 수많은 인원의 고함이 들려왔다. 펄럭이는 장대한 깃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드래곤 길드’라 적혀있다.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 마계의 이 5대 마왕께서 말이야.’

    ‘세계의 유산 없이는 통찰력이 부족한 왕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홉스.’

    어느새 투기장은 홉스와 아서를 둘러싸고 마리를 노려보는 이들로 가득 채워졌다. 홉스도 여전히 5대 마왕을 노려보며 ‘이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를 지켜줄 분들입니다.’라는 말을 더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 쪽에는 용 모양 흉장 같은 것이 붙어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홉스가 입은 상의에 붙어있는 것과 같다.

    투기장 내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속을 통찰하는 마리. 속을 읽을 수 없는 아서를 제외한 전원 ‘홉스와 아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강력하게 띄우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그랬다.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대상이 홉스와 아서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프리실라가 대표해서 마리를 향해 외친다.

    “식구가 맞고 오면, 식구가 가서 때려준다!”

    ―이어서 모두가 한 입을 모아 회답한다.

    “식구를 아프게 하면, 식구가 가서 아프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홉스가 마리를 향해 지긋이 입을 열었다.

    “누구 하나가 원한다면, 그것이 세계 정복이든.”

    천공에 있던 마계 비장의 수단이자 최후의 보루, 마검 아칼라의 마법 서클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기장에는 마리의 살벌한 마력 유동이 완전히 사라진다. 백안을 띄우며 금방이라도 아서를 잡아먹을 것 같던 마리의 분위기도 평소처럼 돌아오고 있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

    어느새 이곳에서 완전히 배척되고 있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마리의 작은 움직임에도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5대 마왕에게 칼끝을 향하는 이들이다.

    아서는 전투 불능 상태, 뛰어나 보이는 검객 한 명과 두 마리의 용이 있다 한들 아칼라의 위력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 테지만.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대단한 동료애를 가진 바보들. 그들을 바라보는 마리. 머리를 긁적이다가, 얕은 미소를 머금으며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겠어, 알겠다고. 아주 그냥 질투나 죽겠네.”

    “네 맘대로 해라, 홉스.”

    “쳇, 아서가 팔아먹으려 했다고 울면서 찾아와도 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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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저 녀석이 그렇게까지 할 놈이 아니란 건 알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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