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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18화 (118/222)
  • 118화

    * * *

    “어째서 홉스는 선택권이 없는 겁니까. 마리.”

    “아니, 어째서 홉스에게 의사를 묻지 않는 건데.”

    “무게만 잡지 말고 입이라도 열지 그래.”

    어이가 없었다. 마왕이 전력을 다한 자태 앞에서 뱉을 수 있는 첫 마디였다. 홉스를 두고 가라는 소리에 관자놀이가 묵직하게 아파졌지만 손으로 누르는 것은 둘째.

    마리가 뱉은 말에 홉스의 그 어떠한 의사도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를 섣불리 판단했던 것인가, 질투는 났어도 홉스가 마계에 남아 마리의 여관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마리는 좋은 통치자니까.’

    ‘지금까지 몰랐던 진정한 그녀의 모습 옆에서.’

    ‘구멍 속에만 있었던 나와 달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어째서 홉스는 넋을 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것인가. 아이나도 내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홉스는 마리와 내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고양감에 땀을 삐질 흘렸다.

    “이곳에서의 선택권은 오로지 통치자에게 존재하는 것.”

    “마계의 왔으면, 마계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긴말은 필요 없다. 유흥을 위한 왕에게 그렇게 화가 나 있다면….”

    “내게서 목숨을 걸고 홉스를 뺐으면 되니까. 아서.”

    이전과 달리 마리에게서 흉흉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근래 델타에서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마력 유동을 만들어 낸 것은 렌을 제외하고 없었는데.

    면목이 없는 것인지 타르툰과 지프는 고개를 내리고 있었기에, 내가 주는 시선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다.

    아이나는 조용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내어 ‘솔직히 승산이 부족하다는 것이 보이나, 언제든 검을 빼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검을 제대로 다룰 생각이다. 홉스를 위해 신념을 내려놓고 살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투에 각오를 한 아이나.

    지프와 타르툰은 그런 아이나에게 ‘관중석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올라가시죠.’라며 입을 열었고, 아이나는 고개를 흔들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아이나, 직원 문제는 사장이 알아서 하는 거야. 지프의 안내에 따라 관중석으로 올라가 있어.”

    “하, 하지만!”

    “해고당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가 네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나약한 사장이었나?”

    “…단, 단장님!”

    완고함이 내 눈빛으로 무사히 표출되었는지, 아이나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었다. 아이나는 홉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홉스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로 서 있었고.

    “제가 남도록 하겠습니다.”

    “홉스, 무슨 소리야.”

    “아서 사장님께 피해를 주기 싫습니다.”

    아이나는 홉스에게서 몸을 돌렸고, 내 뜻에 따라 간부의 안내를 받으며 관중석으로 향한다. 와중에 ‘단장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 홉스.’라는 말을 더했다.

    마리는 홉스와 나를 보며 싫증이 나버린 것이 분명했다. 허공에서 마법진을 생성하여 그 속에서 검을 빼낸다. 이어서 그 묵직한 칼날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처럼 내려 찍힌다.

    그 검을 바라보고 있던 홉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그 표정에는 ‘남고 싶지 않아.’의 마음이 더욱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지는 홉스였다. 분명 여지없이 떠나면 내가 네 의사를 존중해줄 거로 생각했겠지.

    홉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이 과다하게 사용되면 생명에 지장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안의 뭉치 때문에 내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봐 연기를 한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티라도 내지 않았더라면. 네가 남겠다고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텐데, 얼굴에 ‘빨리 용사의 쉼터로 돌아가고 싶어.’가 너무 가득하다고 홉스.

    “홉스는 성으로 들어갔다. 근데 용사의 쉼터 사장님만 고집을 부리고 있네?”

    “시끄러워 마리, 거짓말쟁이 홉스 때문에 성질 더러운 사장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마계의 통치자에게 시끄럽다…라. 배짱이 두둑한데,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군.”

    “됐고, 네 역린이 꺾일 준비나 하라고. 5대 마왕.”

    마리는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검 하나를 뽑아 내게 던졌고, 나는 원래 받기라도 했었다는 듯이 그 검을 붙잡았다.

    ‘숱한 전장의 피 내음이 폴폴 나는 네가, 단검조차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니, 기가 찬다.’며 혀를 내두르던 마왕이었다.

    ―. ――쿵!

    마리가 별안간 엄청난 속도로 검을 바닥에 내려치자 온 대지가 흔들렸다. 콜로세움 외벽이 꿀렁거릴 정도의 엄청난 파장이었는데.

    다리 근육의 힘이 풀려 기동이 힘들어지겠다는 느낌이 든다. 강력한 마력을 주입한 채로 그저 검을 지면에 내려치는 가벼운 행위. 상대가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전의 상실을 느끼게끔 만드는 일종의 선제압박.

    “호오, 기백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걸.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다리가 간지러워서, 모기라도 붙은 줄 알았는데.”

    “묘하게, 짐과 말투도 비슷하고. 실력도 비슷한 것 같은데.”

    “실력도 비슷한 것 같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군.”

    나는 떠들고 있던 마리의 허점을 찌른다. 쾌속 이동을 통해 녀석이 이동과정을 시야에 확보하지 못하게끔 공격을 시도.

    ―. 치―――――잉!

    내 공격을 정확하게 막았다. 구태여 말하자면 란베르크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고, 게다가 녀석이 직접 막은 것이 아니었다. 마리는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하하, 진짜 당할 뻔했잖아, 네 녀석 정체가 뭐냐.”

    “막았다니, 의왼데.”

    마리 앞에 수호 병사라도 되는 것처럼 떠다니던 여러 개의 마법 서클. 그 속에서 두 개의 검이 고개를 내밀듯 웬만한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쾌속 이동의 일격을 막았다.

    ‘이 몸이 사부를 만나 만들었던, 최강의 마법이다.’라며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5대 마왕, 그 주변으로 수많은 마법 서클이 공중을 부양하고 있다.

    ‘마법 서클에서 무기가 나온다. 이동 술식인가, 아니. 차원 술식인가.’

    그리고 사방에 마법 서클이 생성되어 주변의 모든 사물이 그것으로부터 가려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발 디딜 곳 없는 함정이 가득한 숲에 사냥감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

    “보자, 대부분 이쯤에서 도전자들이 황천길을 건너곤 했는데. 과연 홉스를 뺏어가려는 도둑놈은 이것을 버틸 수 있을까.”

    “기껏 마도연구원까지 다녀온 사람을 도둑놈 같은 무뢰한으로 자꾸 몰아가는데, 숙청을 위해 찾아왔던 도전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 머리가 그냥 돌아버리셨나?”

    사방을 가리고 있던 마법 서클이 여러 개로 중첩된다. 그것도 하나씩. 중첩되고 있는 서클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순히 마력의 유동만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셜록의 마안’을 일시적으로 개방하여 확인한다.

    ‘가속 마법을 중첩했군.’

    허공에 떠 있는 마법 서클의 정체는 일종의 문 같은 것이었다. 문이 있다면 방이 있는 법. 마리는 ‘차원’이라는 방을 가지고 있다. 게이트 디 마나를 통해 만든 마법이라더니,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수준이 맞다.

    마법 서클을 통해 검을 사출하면, 그 앞에 중첩된 마법 서클을 통과하여 가속이 붙는다. 가속 마법의 흐르는 마력 질량과 유동량을 보았을 때, 속도를 가늠할 수 없다.

    하물며 하나의 방을 공유하고 있다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변에 가득 찬 마법 서클(문)도 공유한다는 말.

    검을 그저 사출하는 것에서 끝이 아닌 사출 된 무기가 차원(방)으로 오가게끔 할 것이 분명하다.

    “노잣돈을 준비할 때가 왔어, 아서 군.”

    “말했을 텐데, 네 역린이 꺾일 준비나 하라고.”

    마리의 눈이 붉게 달아오르자, 그로부터 주변의 마법 서클이 강력하게 반응했다. 마력의 유동점과 마력을 공급받는 위치를 읽었더니 마법 서클로 이어졌다.

    마법 서클에 변칙성이 많아진다. 마리의 작은 움직임, 날숨에도 마법 회로의 변칙성이 적용되는 무기를 뱉어내는 문. 이것은 차원 속에 있는 마리의 무기에 이어졌다.

    ―쾅!

    ― 치―――――잉!

    치―――――잉!

    ―칭!

    가속 마법을 통과시켜 검을 쏘는 것이 아니었다. 차원에 얼마나 많은 무기가 있는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모든 무기를 직접 조종하려는 것.

    하늘은 검 같은 것들의 바다가 되어, 물고기처럼 빠른 속도로 나를 공격해온다. 기본 안구로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은퇴 후로 육체의 감도가 줄어든 탓인지, 검들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생채기가 늘어났다.

    ‘제길, 이대로 가다간…. 어쩔 수 없나.’

    “아서, 지금이라도 목숨을 구걸하면 살려주지.”

    하물며 마리가 썩 좋은 검을 내게 던져준 것도 아닌 듯했다. 쾌속으로 날아오는 검들을 계속해서 받아치자, 칼날에 이가 지속해서 무뎌져 갔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시야에 포착된 마법을 제거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뭐든 좋으니까 빨리!”

    [해당 마법을 ‘침묵’시키기 위해 ‘EX 랭크 : 하델의 마안’ 결…. ]

    * * *

    지프와 타르툰은 마리의 초월 마법 ‘검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가 찬란한 빛에 의해서 완전히 파훼 되고 있는 장면을 두 눈에 담는다.

    “말도… 안 돼. 마리 님의 마법이.”

    “지프, 저자는 도대체….”

    마왕이 되기 전 게이트 디 마나의 유일 제자로 들어가 아주 복잡한 구성으로 탄생된 마법이 재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아서가 죽을까 봐 두 눈을 감았던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다.

    이 마법을 탄생시키고 공식적으로 ‘SSS 등급의 전투력’을 받은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 17 가문의 그 대단하다던 대마법사도 손쓸 방도가 없었던 미지의 마법이 어느 자영업자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지면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마왕의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마계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광석으로 제작된 마리의 드레스 아머. 가장 단단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갑주의 대부분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다.

    전투 불능상태가 되어버린 5대 마왕을 보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던 아이나가 입을 열었다. ‘당연합니다. 우리 단장님은 아칸의 그 어느 존재보다 강할지도 모르니까요.’

    [ 해당 장기의 파손 발생 ]

    [ 대체 카테고리 지정…. ]

    [ 재생(64% 가능) ]

    [ 제작(불가능) / 미안 대체(불가능) ]

    [ 재생 : 32시간 (920분 / 115,200초) 소요 ]

    “으… 윽. 빌어… 먹을.”

    문제는 아서의 상태였다. 아서의 두 눈에서 천사의 깃털처럼 보이는 것이 빛을 내며 허공에서 한참을 휘날리다 유유히 사라진다.

    아서의 눈에서 심각한 출혈이 일어나자 그 혈액이 뺨을 타고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아이나는 아서의 상태가 몹시도 악화되었다는 것을 파악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투기장 중앙으로 뛰어가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자르툰과 지프가 양팔을 잡아 뜯어말린다. 아이나의 힘이 어찌나 셌던지 그 발악을 말리는데 두 거구의 사내도 어렵사리 성공한다.

    “이 손 놓으십시오!”

    “아이나, 지금은 위험합니다!”

    “어차피 끝난 승부인 마당에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

    투기장 내부에서 기적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마리는 분명 패배에 가까웠다.

    가장 큰 이유는 허공에는 마리의 것으로 추측되는 마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비단 투기장 전체가 어느새 마리의 마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이전보다 몹시 흉흉한 마력. 피부를 쭈뼛하게 만들거나, 속을 매스껍게 만드는 기운. 이전보다 배로 살벌한 마력 유동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 돼! 단장님의 상태가!”

    투기장에는 두 눈을 부여잡으며 쓰러져있는 아서, 그런 아서에게 동공 없이 백안을 뜬 채로 다가가는 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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