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7화 (117/222)
  • 117화

    * * *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는 목재로 건축된 마리의 여관.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용사의 쉼터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꽤 산뜻했다.

    아포네트 마도연구원에서 있었던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지라, 홉스와 아이나도 어제저녁 투숙객 시설로 올라간 뒤 완전히 뻗어버렸고.

    편안하게 그들이 깰 때까지 마리의 여관에서 차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나름 긴 시간 동안 비워두었던 용사의 쉼터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다.

    ‘메이가 잘하고 있을까, 슬 프리실라 쪽도 돌아왔겠지.’

    여전히 두 마리의 용이 걱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제국 하나를 초토화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진 녀석들이 별안간 나쁜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별것도 아닌 일에 시비조가 섞인 말투로 서로를 마주할 때면 왕년에 자랑했던 힘을 쏟아부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니까 말이다.

    렌이 아이리스에게 자주 뱉는 ‘응 너희 선조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맞고 뒤짐.’은 내가 생각해도 용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비속어가 아닐까 싶다.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더니 아이나가 문을 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님 어째서 아침부터 관자놀이를 누르고 계시는지….’라는 측은한 느낌의 표정.

    “조식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단장님.”

    “조식 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이잖아, 아이나.”

    “일은 하더라도 밥은 굶지 말자는 신념이 있으니까요. 하하.”

    풍족한 기분의 아이나를 따라서 홀로 내려왔다. 여관의 음식이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주위에 투숙객 시설을 이용한 몇몇 모험가들도 다른 테이블에 앉아 조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마리의 여관에서 나오는 다양한 음식으로 아침 허기를 달래며 ‘얼른 타르툰이 깨어나야만 의뢰를 마무리하고 인계로 돌아갈 텐데.’라는 주제의 대화를 이어갔다.

    홉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나의 질투를 사야 마땅할, 본 여관의 주인이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쯤. 지프가 여관 문을 열고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입을 열었다.

    “아서 님, 아베스타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지프?”

    “5대께서 마왕궁전으로 아서 님을 모셔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어쩐지, 여관에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아베스타에서 보낸 귀인 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편히 이용하시길.”

    2중 의뢰자가 마왕인지라 안면이 있는 사이가 되니 대접도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라는 인물을 천계로 비유했을 때, 페지르 교황 격의 존재가 아니던가.

    아베스타의 귀인 마차라는 상당히 중요한 사람의 이동수단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자치령 사람들이 여관 앞에 모여서는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델타에서 열렸던 요리경연대회, 왕실 요리사들의 품위가 느껴지던 마차와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아베스타의 귀인 마차는 조금 더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을 가졌다.

    ‘전장의 공성 마차를 쓸데없이 고급스럽게 만들어 놓은 느낌이네.’

    * * *

    [ 마계의 서대륙 / 대제국 첼로니아 ]

    대제국 첼로니아는 다른 말로 ‘마법 본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인데, 4계를 포함하여 위대한 마법사 가문들이 이곳에 거주하여 마법 개발이나 발명에 힘을 쓰고 있었다.

    이를테면 마법계의 절대자라고 불리던 7인의 영웅 중 하나인 ‘셀로닌’이 포함되는 ‘네르브리안 가문’이 대표적으로 있었다. 마법 본국의 국장 역할을 맡는 가문도 네르브리안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5대 마법사 가문으로 알려진 곳들은 첼로니아의 거대한 영지를 이루고 있는데, 인계의 제국과는 다르게 상당히 많은 영지와 성으로 구축됐기 때문에 ‘서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성’이라고도 일컫는다.

    아이나는 끝없이 솟아오른 성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첼로니아를 보며 ‘첼로니아 대제국은 지금까지 봐왔던 제국 중에서 가장 강렬한 곳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더했다.

    이 빼곡한 영지의 주인으로 마법사 일족 ‘페르세포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물며 통치자의 피가 흐르는 마계의 17 가문이니 보란 듯이 페르세포 가문의 마리가 5대 마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차 밖의 풍경은 델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어스름이 찾아오고, 그 어스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붉은색’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바쁘다.

    ‘예술가가 첼로니아에 많다고 하더니.’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곳이라, 가끔 와야겠어.’

    ‘아 참, 렌도 원래는 마계가 거주 구역이었다고 했었지.’

    생일이랍시고 여관 일동이 내게 선물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가, 그중 홉스가 선물했던 ‘아린의 찻잔’의 ‘아린’도 본래 첼로니아 출신의 예술가라고 했다.

    인계 대륙에서 유명을 떨치고 있는 그런 그가, 첼로니아에 있을 적에는 천재성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너무 많아, 재능에 밀려 인계로 넘어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마계라는 곳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악마들과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그런 곳과는 다른 느낌의 세계라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볼 때 제일 악독하고 사건·사고가 많은 곳은 빌어먹을 인계이다.

    “사장님, 마법사의 제국이라고도 하는 첼로니아에 ‘게이트 가문’의 영지는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음, 현재 게이트 가문의 가주로 알려진 ‘게이트 디 마나’가 다른 대륙에서 ‘마도 연맹’을 구축했기 때문인가?”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추가로 ‘게이트 디 마나’는 첼로니아의 거주하는 고상한 마법사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지요.”

    “제자라고 하는 마리만 봐도 성격이 나오잖아, 페르세포 가문은 나름 고상하고 조용한 가문인 것 같던데 말이야.”

    “하하, 맞습니다. 마리 사장도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죠. 마치 소심한 마법사랄까요.”

    마법 본국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마도 연맹’의 수장 ‘게이트 디 마나’가 형식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지나가는 아무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본래 7인의 원정대 속 ‘셀로닌’의 자리에 있어야 할 마법사는 ‘게이트 디 마나’이기도 하며, 일단은 베르히만이니 바바비어니 7인의 영웅들을 제치고 세계관 최강자의 위치에 놓여있으니까.

    ‘내 기억으로는 마나도 ‘비형식적 등급, EX’로 지정되어있을 텐데.’

    생각에서 뱉은 독백이라고 착각했다. 혼잣말처럼 흘려버린 음성에 아이나는 의문을 품으며 내게 ‘단장님 비형식적 등급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는데.

    대충 흘려서 말했다. ‘7인의 원정대를 기준으로 삼으면, 원정대의 목적을 혼자서 달성 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지닌 존재랄까.’라고.

    “도착했습니다. 아서.”

    “고마워요, 지프.”

    거대한 성벽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마계의 위대한 통치자 그 이름 아베스타. 이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마왕궁전의 현 주인이 마리의 여관 주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그 풍압으로 인하여 성벽 곳곳에 일렬로 세워져 있는 거대한 깃발이 강하게 휘날렸고, 우리가 탑승한 귀인 마차는 아베스타 내부로 진입했다.

    “저 거대한 콜로세움이 보이십니까, 아서.”

    “마치, 지프 같은 분위기를 가진 검투사들의 투기장처럼 보이네요.”

    “저것은 아베스타에 있어서 ‘숙청 혹은 숙청’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숙청 혹은 숙청?”

    .

    .

    .

    [ 마왕궁전 아베스타, 숙청 혹은 숙청 ]

    거대한 콜로세움은 델타에 있는 것보다 훨씬 컸다. 모래가 깔린 작은 전쟁터.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벽돌이 원형을 이루는 공간, 여기는 ‘숙청 혹은 숙청’이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었다.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라는 5대 마왕의 이름까지. 마왕의 정체를 아는 인물은 권력을 두고 다투었던 17 가문과 아베스타 정권을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마왕의 정체가 궁금한 자, 투기장으로 향하라.’

    예로부터 마왕의 정체가 궁금한 자들은 끊임없이 존재했다. 통치자의 변장이라 불리는 ‘마왕의 위상’ 뒤에 가려진 얼을 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마왕궁전에 침투했는데.

    그런 이들에게 내리는 형벌로 ‘아베스타의 숙청’이 있었다. 마왕이라는 신비로운 정체를 알려고 한 대가. 저 투기장에서 심판을 달게 받는 것이다. 그것도 마왕에게 직접.

    ‘신비로운 통치자의 얼을 보고 나면.’

    ‘저 투기장에서 마왕과 혈투를 벌이고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마왕도 피곤한 위치였다. 관습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계라서 그런지, 마왕이랍시고 부하들에게 ‘대충 죽이던가, 삶던가 해.’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듯했다.

    관습에 따르면, 왕관의 무게를 엄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얼을 보려 했던 자를 직접 심판해야 하는 강함을 선보여야 한다고.

    이 말을 다르게 해석했을 때, 도전자가 마왕보다 강하다면 마왕은 곧 숙청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지 모르는 통치자의 위치라, 마계의 여담으로는 ‘마왕은 죽음과 죽마고우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좌우지간 이러한 ‘관습을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5대가 말씀하셨다.’며 지프가 말을 더했다.

    5대까지는 숙청 혹은 숙청이 유효하지만, 다음 통치자부터는 바뀐 관습을 시행할 것. 마리는 차기 마왕부터 통치자의 얼굴을 마계의 모든 이들에게 공개해야 할 것임을 단단히 강조한다.

    “그래서 지프, 왜 마차를 여기다 세운 거죠?”

    “저곳에서 타르툰과 마리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아…. 보이네요.”

    투기장 중앙에는 타르툰으로 보이는 자가 서 있었다. 수인족의 흰 갈퀴, 그 이름답게 새하얀 털이 온몸을 두르고 있는 늑대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지프의 ‘타르툰과 마리 님께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달리, 보여야 할 마리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거대한 가방을 짊어진 타르툰만 어둑하게 서 있을 뿐.

    “당신이 타르툰이군요.”

    “인계의 모험가시여… 덕분에 무사히 편지를 전달받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직 의뢰가 끝나지 않았는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만….”

    “다만?”

    투기장 끝, 검투사의 기로라고 부르는 문을 누군가가 열고서 보란 듯 걸어 나온다. 유유히 이어지는 그 걸음은 묵직하고도 우아했다.

    몹시 견고해 보이는 흑색의 아름다운 갑주를 착용한 마리, 지프가 이를 보며 ‘마왕이 전력을 다한 자태’라며 관자놀이를 누르고는 말을 덧붙인다.

    “아비 없이 자라는 슬픈 자식을 위해 타르툰은 보내기로 했어. 다만.”

    “홉스를 돌려받아야겠다.”

    “아득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여관 주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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