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6화 (116/222)
  •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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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아포네트의 빌어먹을 마도연구원에서 빠져나와 자치령에 도착한 뒤, 마리에게 그곳에 있었던 일들을 빼놓지 않고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때 홉스의 마법녹화는 큰 도움이 된다.

    아포네트의 마도연구원, 그 실태는 살인공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법녹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마리는 점진적으로 거친 숨을 뱉더니, 이빨을 으득으득 긁으며 군대를 출두시킨다.

    ‘아포네트 가문의 성으로 군대를 출격시켜라, 당장!’

    마도연구원을 빠져나오기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곳을 대표하는 몇몇 원로를 제외하고는 전원 일반인이었다.

    황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모른 채로 멀뚱하게 바라보던 금실 자수가 없던 그들이 또렷하다. 우리가 그곳을 향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들도 갈고리에 박힌 미라가 되어있었겠지.

    마법녹화에 촬영되어있던 시체만 해도 수백 구가 넘는다. 마법진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영상, 어느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 이것은 마계를 집도하는 17 가문의 아포네트가 확실하다. 증거는 완벽히 떨어진다.

    아포네트 가문은 마도 연구원에서 학술을 빌미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 희생자들은 전원 ‘지그리트의 마석’을 가공하기 위한 제물.

    그것도 마석을 가공하는 핵심 장치는 지르고트라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나온 마물이었다. 절망이라고 불리는 마수와 공생을 한다는 것은 큰 범죄.

    ‘마계 제국법 위반.’

    ‘마법 본국 등록 마법, 금단 마법 위반.’

    5대 마왕은 아포네트 가문은 17 가문이라는 위대한 통치자의 혈족이 될 자격이 없다. 저 악랄한 생각으로 만든 연구원에 관계된 모든 이들을 이승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할 것이라며 단단히 분개했다.

    ‘그 개새끼들을 이승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하겠다.’

    ‘이 아베스타의 어명으로 관계자들을 전원 사형하라.’

    공포감을 조성하는 마왕의 쓸데없는 무력행사가 아니었다. 통치자로서 당연한 명령, 타르툰에게 문제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희생자를 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숨겨진 비밀 제단에서 발견된 거대한 플라스크의 정체.’

    그것은 ‘매료제’의 일종으로 마법 본국에서 금지약물로 지정한 약물이었다.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시는 이들이 ‘무엇’에 매료될 수 있도록 만드는 효과.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운동을 펼치는 아포네트의 고위급 간부들. 그들은 매료제를 피로회복제로 속이고, 길거리에서 금지약물을 뿌리며 선거를 위한 지지율을 강제적으로 높이고 있었다.

    ‘마법 본국 금지 약물 제조법 위반.’

    마리는 모든 증거와 함께 아포네트를 박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했고, 자신의 세력에 있는 전 간부들은 100년 선거의 관찰 활동을 더욱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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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보니, 마계도 인계와 다를 바가 없네요.”

    “자네도 여관을 해서 알지 않은가, 평화로운 곳은 또 평화롭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 아포네트 같은 귀족들이 살인공장을 차릴지 모르지만요.”

    “그렇기에 평화를 위한 아베스타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래도, 마리는 통치자 중에서 꽤 훌륭한 편에 속한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타르툰 같은 멋진 동료가 내 곁에 있는 거겠지.”

    타르툰은 아베스타에서 부하들의 호위와 함께 치료를 받고 있다. 여전히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생사를 오간다고 했으나, 지르고트의 마석이 효과가 좋았는지 혼수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타르툰, 그의 성격으로 볼 때 지르고트의 마석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을 치료하고 싶지 않을 텐데. 일어나면 걱정이야.’라고 조용히 입을 여는 마리였다.

    지르고트의 마석. 한 개가 아니었다. 수많은 희생으로 만들어진 수북하게 쌓인 붉은 광석. 금단의 영역인 ‘영혼 추출’을 이용한 만들어져서는 안 될 물건.

    ‘실체를 몰랐던 이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탐구에 집중했을 뿐.’

    ‘그들의 영혼으로 빗어진 이 결정체를, 지르고트의 마석이 아닌.’

    ‘마법사의 영혼이라 부르라.’

    강력한 저주에 중독되어 죽음에 가까워지는 이들을 위해, 아포네트 마도연구원에 남아있던 ‘지르고트의 마석’을 아베스타의 주도권 아래 재개발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마리였다.

    ‘이어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도록 하자.’

    ‘…그저 지식을 갈구했던.’

    ‘죽은 마법사들의 장례를.’

    * * *

    [ 자치령 블러드 럼 / 마리의 여관 1호점 ]

    타르툰이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하루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마리의 여관이 갖춘 투숙객 시설을 이용하기로 했다.

    의뢰자의 말을 따르면 타르툰이 혹여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유일하게 연락을 취할 수단인 ‘마법 부엉이’의 위치추적을 거부했다고 한다.

    아내 쪽에서 마법 부엉이를 보내더라도 위치가 파악되지 않아 부엉이가 출발조차 하지 않는다고.

    좌우지간 지르고트의 마석, 아니 마법사의 영혼으로 타르툰의 황천길 건너기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몹시도 다행이었다. 이 사실을 가족이 알았더라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졌을지도….

    ‘자식은 아비를 잃을 뻔했고, 아내는 과부가 될 뻔했으니.’

    의뢰의 편지는 아베스타 특급병실에 누워있는 타르툰의 머리 옆에다 고이 모셔다 둔 상태라며, 그가 의식을 찾고 나면 편지를 읽어볼 것이라며 걱정 마라는 말을 더했다.

    편지를 읽은 타르툰의 의사를 판단하여 인계에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으나, 마리는 스스로 팔짱을 끼더니 ‘타르툰은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다.’라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부분은 타르툰이 잃어버린 의식을 되찾고 밀랍으로 봉해져 있는 아내의 편지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5대 마왕은 ‘그렇게 쉽게 돌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어떠한 재회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지금 마계의 상황이 탐탁지가 않아서 말이야. 타르툰은 현 아베스타 정권에서 큰 임무를 맡고 있으니까.”

    “가족도 몹시 중요하다. 다만 이곳의 통치자인 이 마리의 중요한 간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마계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스스로 택했으니,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

    “게다가 이 몸이 타르툰을 판단했을 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쉽게 져버리는 사내라고 판단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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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나는 한참 동안 마리의 여관 홀에 앉아 음식을 먹기 바빴다. 배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가 볼 땐 ‘델타 제일가는 대식가’가 아니라 ‘4계 제일가는 대식가’라는 타이틀조차 무색할 정도였다.

    ‘마리의 여관이라는 곳의 음식도 나쁘지 않군요.’라며 음식을 씹어서 삼키는 것이 아닌, 마시고 있던 아이나의 한 마디였다.

    “그나저나, 홉스 님은 마리 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나 봅니다.”

    “그래, 아주 질투가 날 정도라니까.”

    홉스는 마리와 분단선을 넘어서 만난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것마냥 기분이 들떠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야장천 풀어놓고 있었다.

    그중 ‘용사의 쉼터’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온 덕에 어느 정도 흡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나, 본인과 다르게 마리와 홉스의 사이는 더욱 친구 같은 느낌이라 꽤 보기가 좋지 않다.

    아이나는 음식을 전부 먹었는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이 아이나는 평생 단장님의 비서로 있을 예정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이었다.

    “뭐야, 홉스가 어디라도 갈 것처럼 이야기하네.”

    “며칠 전 홉스 님이 마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으니까요.”

    “뭐, 홉스가?!”

    “그,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봅니다만, 단장님.”

    “녀석은 사실 줏대가 없는 걸지도 몰라, 방랑벽이 심하다거나.”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케피탄 맥주보다 100배는 맛이 없는 마리의 여관 맥주를 마시며 멀리 떨어져 있는 홉스와 마리를 노려보기 바쁘다.

    ‘쳇, 알아서들 하라고.’

    아이나는 맥주를 마시며 입을 열었고, ‘그래서, 지르고트가 마지막에 뱉었던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단장님.’ 주위가 대화 소음으로 인해 시끄러웠지만 아이나의 질문은 내 머릿속을 관통하며 집중을 요구하게 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걔네는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소릴 많이 하니까.”

    “흠,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르고트의 얼굴.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르고트가 빼앗은 아포네트 마도연구원의 원로, 혹은 가문의 일원. 그것에게서 나온 말은 보통 기분 나쁜 것이 아니었다.

    ‘내게도 보이는군, 네 어딘가가 고장이 나버렸다는 것을.’

    ‘보라, 네 역할이 끝이 났는데도.’

    ‘이렇게 신의 뜻으로 살아남은 우리들을 파멸시키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결말을 유도하는 장치가, 새로이 열린 결말을 거부하고 있으니.’

    ‘네 녀석은 미려한 문장 사이에 끼어버린 비문이라도 되는가?’

    * * *

    [ 마계 서대륙 / 마왕궁전 아베스타의 특수병실 ]

    “지프, 타르툰은 다시 잠들었나.”

    “그렇습니다. 그가 회복에 성공한 듯합니다. 마리 님.”

    “아까 타르툰의 표정을 봤어. 돌아간다고 했겠지.”

    “…타르툰은 편지를 읽은 이후에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마리는 저 멀리 침대에 누워있는 타르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콧바람에도 꺼질 것만 같은 촛불처럼, 몹시도 위태로웠던 그가 무사히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내려놓기 쉬운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한 타르툰에게 엄벌은 삼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엄벌이라,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진작 보낼 생각이었어.”

    “그도 감복할 것입니다. 다만 마리 님께서 아서 일행에게 아집을 보이신 이유가?”

    지프는 마리의 앞으로 무릎을 꿇으며 대기했다. 고개를 숙여 아래로 내려다보는 통치자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며, 예를 갖춘 재로 마리의 대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리는 처음부터 타르툰을 은퇴시킬 예정이었다. 반면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아서 일행에게 타르툰을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서에게 있었다.

    “아서라는 자, 전혀 읽을 수 없었어.”

    “마리 님이 지니신 세계의 유산으로도 말입니까?”

    “보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가 깨질 것 같더군.”

    “혹시, 홉스의 안전을 위해 그자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응,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에게 홉스를 맡길 수 없으니까.”

    자신을 거치고 갔던 모든 충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통치자. 마음이 깊게 통한다면 그 누구도 가족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던 신념을 가진 자.

    홉스는 더욱 그랬다. 마리에게 있어서 타르툰만큼이나 소중한 동료.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마계를 떠난다고 했던 홉스에게 ‘보내고 싶지만, 보내고 싶지 않다.’던 마리.

    홉스가 없었더라면 아베스타의 정보부 ‘마리의 여관’을 성공적으로 창설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현 아베스타 정권에서도 언급하길 ‘그 고블린은 더욱 진보된 마계를 위해 큰 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계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통치자. 그 통치자 주변에서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는 동료는 마리에게 있어서 4계 내로라하는 보물보다 소중한 것.

    열정을 품으며, 여관을 좋은 방향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그 고블린과 현 마왕의 사이는 결코 느슨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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