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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15화 (115/222)
  • 115화

    * * *

    “분명 이쯤이었는데 말이죠. 단장님.”

    “이 홉스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홉스는 동굴 벽면을 만지작거리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벽면에 장치되어있는 특정한 마법에 의해 작동되는 문. 위치만 안다면 마력만 주입하여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듯했다.

    마력을 주입하더니 돌로 되어있는 벽면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찰흙처럼 요동치며 그사이에 숨어있던 문이 비집고 나타났다.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평범한 재질의 문이었으나, ‘비밀 제단’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분명 몇 분 전에 보았던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홉스는 다시금 내 로브 속으로 숨어들었다.

    ‘꼴에 9와 3/4 승강장 같은 거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에 달린 호롱불 하나 없이 어두운 동굴이 나타났다.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니 이내 거대한 동굴이 펼쳐진다.

    “단장님… 이건 도대체, 맙소사….”

    “…미쳤군.”

    내 로브 안에서 홉스의 ‘우욱!’소리가 들렸다. 속이 좋지 않아 억지로 토사물을 참아내는 듯하다. 분명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는 광경은 지금껏 느꼈던 관자놀이의 당김보다 더욱 강렬하다. 렌이나 아이리스가 내 관자놀이를 누르게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이나도 자신의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단장님,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어서 숨으십시오!”

    동굴 내부에는 돌 같은 재질이 풍화되어 다양한 지형지물이 존재했고, 우리는 몸을 숨길 수 있는 지형으로 조용히 숨어들었다.

    몹시 지독한 냄새. 그리고 동굴의 천장에서 바닥으로 뚝 떨어진 사슬과 그 끝에 달린 갈고리. 그 갈고리에 사람이 걸려있다.

    하나, 둘, 아니 차례대로 숫자를 세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쇠사슬과 갈고리. 그리고 걸려있는 사람들. 보아하니 아포네트의 연구원으로 추측된다.

    ‘마도연구원 측의 사람이 걸려있다니. 대충 감이 잡히네.’

    일반적으로 마도연구원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아포네트 가문과는 관계가 멀다. 그저 그들은 본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나 제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야에 포착된 공간에 적용된 모든 마법을 ‘파악’ 가능한 마안 결속.’

    [ 해당 마안의 결속상태 지정 : 지속형 / 일시형 ]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지속형으로 하는 건데.’

    [ 해당 장기(눈)에 ‘SSS 랭크 : 셜록의 단서’ 일시형 마안 결속 ]

    눈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조만간이면 마안의 뭉치가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까지 도달할 듯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홉스와 아이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익숙하니까, 부탁인데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하지만 단장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방법이 없잖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굴의 천장으로부터 내려와 있는 쇠사슬, 그리고 그 끝에 수분기가 하나 없이 미라처럼 매달려있는 인간들이었다.

    셜록의 단서가 이끄는 마력 유동을 따라 조금씩 추리를 시도했다. 먼저 미라처럼 되어버린 인간들은 완전히 마력이 고갈된 상태가 분명했다. 그 마력이 쇠사슬 위를 타고 올라간다.

    ‘종유석, 종유석이 만들어지고 있어.’

    마력은 쇠사슬을 타고 올라가게 되면 동굴의 천장에서 응축되어 종유석을 만들고 있었다. 종유석의 색이 ‘눈이 부실 정도로 청아하게 푸르다.’

    마력의 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짙으면 짙을수록 청아한 색을 나타낸다. 일정 이상의 순도는 금단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일정 이상의 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명이 가진 영혼에서 추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아포네트 가문은 살인공장을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완전 또라이 새끼들이네.”

    아이나와 홉스에게 천천히 설명했고, 녀석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분 좋은 모험이 가득할 아칸에는 사실 마석이나 뛰어난 아티펙트 같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빌어먹을 인신매매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촉매는 무엇일까, 영혼에서 추출되는 마력을 어떠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것인가. 계속해서 셜록의 단서를 이용해 특이점이 있는 마력 유동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천장에 무언가가 있다. 천장 내부에 무언가가 있다. 강력하게 느껴지는 마력 유동은 보통이 아니었다. 지르고트 마석을 만드는 원천의 역할을 하는 장치인 듯했다.

    ‘마법인가, 아니면….’

    ‘아니, 저건.’

    피부를 쭈뼛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마력 유동, 세포로 비유하면 주변에 있는 마력을 계속해서 침식하고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천장이 찰흙처럼 움직이더니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그 안에서 아포네트 로브를 입은 원로가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지면에 착지하여,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주 거대한 플라스크 앞으로 향한다.

    “단장님 저자는 아까 보았던…!”

    “재수 없는 면상을 보니 확실하네.”

    거대한 플라스크에 수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내부에는 붉은색의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선거운동을 펼쳤던 원로는 소름 끼치는 광기가 담긴 웃음소리를 냈다.

    플라스크 내부에 있는 액체를 어느 통로를 통해 작은 플라스크에 담으며 혼잣말을 하던 남자였다.

    “내일도 피로회복제라며 좋다고 받아 가겠지.”

    “병신 같은 새끼들, 좋다고 받던데 말이야.”

    “그게 뭔 줄 알고.”

    “많이들 마셔라, 이렇게 또 준비해줄 테니까.”

    “그렇게 다들 투표의 노예가 되는 거다.”

    그 작은 플라스크의 모양을 보아하니 남자가 자치령에서 선거운동을 하며 나눠주었던 ‘피로회복제’와 닮아있다.

    다시금 닫혀있던 천장이 찰흙처럼 움직이며 강렬히 요동친다.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그 사이로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얼굴이 남자가 있는 쪽으로 비집고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뚜렷하지 못한 생김새, 검은색의 피부, 살점이 녹아내려 어떻게 생기었는지 알아보기 힘들다.

    “…단장님?”

    “홉스, 아이나 쪽으로 들어가 있어.”

    “알, 알겠습니다. 사장님.”

    남자는 자기를 뒤에서 직시하는 거대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스산한 기운에 조금씩 고개를 돌리며 거대한 얼굴을 마주한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자, 잠깐…. 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우, 우리 통제를 벗어난다면. 우리도 인간을 바칠 수 없다고.”

    “얼, 얼른, 지르고트 마석이나 만들지 그래.”

    천장에서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남자를 강하게 부여잡고는 순식간 입으로 집어넣었다. 남자의 공포가 섞인 괴성은 별안간. 입 구멍으로 들어가자 단말마의 비명 따위는 밖으로 일절 새지 않는다.

    『육체의 수복 기간을 위해 이곳에 잠든 나를 오랫동안 이용하더니.』

    『대지에 사는 생명체들은 주제를 모르는군.』

    『부활 준비는 끝났다.』

    거대하고 흉측한 얼굴은 자신이 단숨에 집어삼킨 남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찰흙처럼 그 얼굴이 요동치더니 집어삼켰던 남자와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모습이 변형된다.

    『아아, 아, 아. 쓰레기 같은 목소리로다.』

    『이 지르고트가 이런 열등한 소리를 내야 한다니.』

    말이 많던 지르고트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녀석이 아무 소리를 내지 않은 후로 미세한 숨소리마저 크게 울릴 정도의 정적이 이어졌다.

    ―쾅!

    보랏빛 날벼락이 우리가 숨어있던 바위를 강하게 내려쳤고, 그 날벼락으로 인하여 주변의 지형지물이 썩으며 타들어 갔다.

    지면까지 타들어 가는 이상한 공격으로 인하여 아이나는 홉스를 안은 채 앞으로 피했다. 나 또한 바위에서 나와 어둑하니 서 있는 지르고트를 직시했다.

    『쥐새끼가 숨어들었었군.』

    『아니지, 아니야. 제 발로 죽음을 자초한 것인가.』

    『상황 파악은 되는가, 그대들은 내 부활을 위한 제물이 될 터인데.』

    “그래, 감잡히네. 뒤처리는 우리 몫이라는 것도.”

    『잠깐… 네 녀석은.』

    지르고트의 눈이 보랏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인류의 언어가 아니다. 완전한 이계의 언어, 절망을 집어삼킨 거대한 구멍, 그 안의 존재들의 것.

    녀석은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나온, 상급 마물로 판단된다. 냄새, 행동, 마력, 모든 것이 이곳과 완전히 다르다. 이질적이고 음침한 그 기운은 분명 절망의 것이 분명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때 네 고향을 헤집었던 난봉꾼이랄까.”

    『…이런, 이런. 그렇군. 오랜만에 느끼는 공포감이었다.』

    지르고트의 주문이 끝나자, 쇠사슬의 걸려있던 미라들이 지면으로 떨어졌고, 보랏빛의 일렁거리는 기운을 내뿜으며 우리에게 접근했다. 어마어마한 물량에 지르고트의 모습이 점차 가려지기 시작한다.

    아이나는 검을 꺼내 들었고, 날이 없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미라들을 계속해서 내려치지만 줄어들 기색이 없다. 홉스는 허리춤에 있던 소형 마법 화기를 꺼내어 멀리서 접근해오는 미라를 사격했다.

    “아이나, 검을 들게 해서 미안해요.”

    “홉스, 이런 상황…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군요.”

    아이나는 검을 들어도 살해를 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라는 본래 아포네트 마도연구원의 억울함이 가득 담긴 사념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녀는 검은 들어도 벨 수 없다.

    “단장님, 지르고트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지르고트는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소환했는데, 셜록의 단서가 이를 ‘이동 술식’과 비슷한 카테고리로 간주했다. 녀석은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했으니 힘을 복원하기 위해 도주할 셈이다.

    ―콰직!

    현재 마안의 뭉치를 포함해 육체의 상태는 EX 등급의 마안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다. 나는 지면을 강하게 누르며 전방을 향해 단숨에 이동했다.

    ―!

    지면에는 이동술식 이외에도 술자 이외에 접근을 강하게 거부하는 보호막이 중첩되어있다. 강한 중력과 탄성이 느껴지는 공기.

    허공으로부터 빠른 속력으로 양손으로 그 공기를 찢고 지르고트에게 접근, 녀석의 몸이 이동술식 안으로 계속해서 진입하고 있다.

    하체의 대부분이 지면에 들어가 있었고, 단 몇 초면 이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한 상황. 계속해서 치명적인 저주가 덮인 결계를 찢으며 나아간다.

    뒤를 잡는다. 지르고트는 고개를 돌리며 내 얼굴을 마주했다. 인간의 육체를 흡수한 터라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고유결계를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없었을 터!』

    “그런 걸 쉽게 하라고, 신이 내게 이런 힘을 주었거든.”

    “글쎄, 부활은 아쉽게 됐네.”

    ―우직.

    특별히 지니고 있던 무기가 없었기에, 양손에 마력을 담아 지르고트의 목을 단숨에 비틀어서 찢어버린다.

    이동술식이 파괴되고 이어서 동굴 내부에 있는 지르고트의 모든 마도가 작동을 멈추기 시작하자 아이나와 홉스는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지르고트는 흑색의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육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얼굴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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