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3화 (113/222)
  • 113화

    * * *

    [ 자치령 블러드 럼 / 마리의 여관 1호점 ]

    마계의 모든 대륙에 하나씩은 위치한 신비의 여관으로 마법사의 여관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타 상호와의 차별점으로는 직원들이 전원 마법사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

    홉스의 말에 따르면, 마리라는 인물은 대제국의 자치령인 블러드 럼에서 태어나, 마법 학부로 유명한 첼로니아의 마탑을 수석으로 졸업한 대단한 마법사라고 한다.

    그런 대단한 마법사께서 마법에 대한 연구는 뒷전으로 여관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마리는 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 ‘비밀’이라 했다고.

    1호점을 자신의 고향에 건축. 그 시기에는 ‘블러드 럼’도 단순히 ‘외곽 지방’이라 불렸으니, 1호점의 건축일은 다소 오래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1호점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네.”

    “사장님, 들어가시죠.”

    “으으….”

    “아이나, 다 왔어. 버티는 거야.”

    “으, 으으.”

    마리의 여관이라는 거대한 문구가 박혀있는 여관의 입구였다. 보라색의 목조로 된 근사한 탑. 용사의 쉼터를 운영하는 여관주인으로서 알 수 없는 승부심이 생길 정도였다.

    동공 대신 빙글빙글 소용돌이가 있는 아이나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느낌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로브를 입고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들이 서빙하고 있었고.

    용사의 쉼터처럼 칵테일 바 같은 메인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여관 내부가 용사의 쉼터 마당처럼 마력 순환이 고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향해 멀리서 직원들의 우렁찬 인사가 들려온다. 직원교육도 제법 잘되어 있는 듯했다.

    “마리의 여관입니다. 어서 오십….”

    “아하하, 마리. 무척 오랜만에 뵙습니다.”

    “호옵스…!”

    메인테이블에 앉아, 내가 여관에서 할법한 뉘앙스로 턱을 괴고 있던 마리 사장이 헐레벌떡 홀로 뛰어나왔다. ‘아하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냐, 꼬맹이!’라며 작디작은 홉스를 들어 올린다.

    ‘저런 반응이 나오리라는 것은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

    용사의 쉼터 매니저인 홉스가 어디론가 떠났다가 나타난다면 나 또한 ‘아하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 홉스!’라며 저 작은 고블린을 들어 올릴 자신이 있다.

    홉스라서 그런 것이다. 렌이나 아이리스라면 ‘빌어먹을, 왜 온 거야.’라며 1초라도 빨리 녀석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낼 자신이 있다. 기필코.

    마리 사장의 보랏빛 장발은 본 여관의 보라색 빛이 감도는 목조와 몹시 조화로웠다. 귀가 엘프처럼 길쭉하게 나온 것을 보아, 마계인인 듯했다.

    “마, 마리… 일단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크흐흐, 이 요망한 고블린 녀석.”

    “…저기 보이는 아이나 님이 아사로 죽기 직전입니다만.”

    “지프, 여기 이분들을 ‘별채’로 모시도록!”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리.”

    별안간 나타난 쥬드보다 큰 덩치를 지닌 ‘지프’라는 사내는 우리를 ‘별채’라는 곳으로 데려갔다.

    조심스럽되 격식이 느껴지는 그의 움직임은 생김새와 다르게 고귀한 집안의 자제로 예절교육을 받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 있던 곳이 그저 입구 정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여관의 중앙부로 이동하는 문을 지프가 열었을 때부터였다.

    여관으로 들어왔을 때 마력 순환이 좋았던 이유가 탄로 났고, 탑 모양의 여관 내부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수많은 테이블이 늘어서 있다.

    ‘…젠장, 굉장하잖아. 돌아가면 용사의 쉼터를 손봐야겠어.’

    “이쪽 계단을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볼이 깊숙이 들어간 채로 등에 업혀있는 아이나를 향해 딱한 표정을 짓는 지프였다. 그의 얼굴에서 ‘얼마나 굶었으면…. 요즘 모험가들은 식사도 쉽게 못 하나 보군.’이라는 생각이 드러났다.

    * * *

    “인계의 대륙에서 꽤 유명한 여관을 운영하시던데.”

    “뭐, 이곳에 비하면 조촐할 뿐입니다.”

    “홉스 녀석이 마계를 떠나, 어디에 있나 싶었더니.”

    “섭섭하시겠지만, 이제는 저희 여관의 매니저입니다. 아하하.”

    은근히 대립적인 구도가 나타나는 마리와 나였다. 아무래도 자영업자들의 치열한 경쟁이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서 나타난 듯했다.

    홉스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드디어 아이나의 식사가 끝났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계속해서 먹고 있었던 것.

    마리는 턱을 괴더니 ‘어떤 댓바람이냐, 성공하기 전까지 마계로 돌아오지 않겠다던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홉스.’라며 궁금함을 표했다.

    마리의 시선이 아이나와 내 쪽으로 번갈아 움직이는 것을 보아, 질문의 대상은 우리를 아우르는 듯하다.

    “여관에 접수된 의뢰 때문입니다. 마계에서 찾고 있는 인물이 있어요. 마리.”

    “오호,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나 보군.”

    “혹시, 마리…. 흰 갈퀴족의 타르툰이라는 자를….”

    마리는 마시고 있던 차를 허공으로 강하게 뱉었다. 고개를 돌려서 뱉어도 되었을 것을 굳이 우리를 향해 뱉어버린 까닭에 얼굴에서 알싸한 박하 향이 번졌다.

    “이 사람이….”

    “미, 미안해 아서 군, 실수였어. 크흠.”

    마리 사장의 뒤에서 보디가드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지프가 미간을 찌푸렸고 이전과 다르게 묘한 정적이 이어지더니, 이내 마리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들을 향해서, 아이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타르툰이 마왕의 간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베스타로 들어가야 합니다.”

    “마왕궁전이라… 아쉽지만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데.”

    “타르툰의 가족들이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가 저희에게 있거든요.”

    “편지?”

    “내용은 저희도 알 수 없으나, 편지를 주고 난 뒤 데려오라는….”

    “아이나라고 했던가, 그 편지는 내가 전해주도록 하지.”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마리의 귓속말을 듣기 위해서 지프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그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멀뚱한 표정을 짓기 바빴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와 우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별안간 ‘마왕의 위상’이라 속삭이더니, 마치 사우론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보랏빛 머리의 여인. 우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뱉을 수밖에 없다.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 이 몸이 마왕이니까.”

    “친히 이 몸께서 타르툰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말이야.”

    “대신, 조건이 있다. 의뢰를 하나 들어줬으면 하는데.”

    “이런, 이런…. 혼이 나간 표정이구먼 다들. 흠.”

    .

    .

    .

    알고 보니 공개선거를 통하여 다음 통치자를 정하는 시스템은 마리가 도입한 제도였다. 마리가 왕좌에 앉음으로써 더는 ‘가문 전쟁’을 통해 아베스타를 정하는 규율은 없어진다.

    ‘마계의 전통 규율대로 열일곱의 가문에서 통치자를 뽑겠다.’

    ‘하지만, 마왕이라는 자는 군중에게 얼굴을 보여야 할 것이고.’

    ‘하물며, 마계의 모든 이들이 통치자를 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군중을 이끄는 피를 가진 가문의 이들은 100년 동안 선거를 준비하라.’

    ‘이것을 나는 100년 선거라 부르겠다.’

    그렇게 탄생 된 것이 ‘5대 마왕의 100년 선거’가 되시겠다. 나름 민주적인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통치자가 되기 위해 가문들의 부정행위가 반드시 있으리라 확신이 있었던 마왕의 정권은 비밀수사처가 필요했다.

    마왕궁전 아베스타는 타 가문의 출입이 잦기에, 비밀리 특정한 부서를 아베스타 내부에 창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게다가 창설되었다고 한들 17 가문의 끄나풀이 들어올 확률이 높다.

    고민 끝에 마리는 묘수를 꺼내 드는데… 그것은 마리의 여관. 사실 그 본질은 마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5대 마왕의 ‘정보국’이라는 사실이 우리 앞에서 탄로 났다. …밝혀져도 되는 것일까?

    마계 각 대륙에 위치한 17 가문의 관할지에서 마리의 여관을 운영,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 가문의 부정행위 조사, 간단히 항간의 떠도는 소문을 캐치하기 좋은 여관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 아서 군. 수틀리면 죽이도록 할 테니.”

    “…크, 크흠.”

    “나는 특별한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특별한 능력이라뇨?”

    “내게 적이 될 만한 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거야.”

    “그거 사회생활에 쓰면 상당히 좋을 법한 기능인데요.”

    “게다가 무엇보다 홉스는 믿을 수 있는 이 마왕의 동료니까.”

    여기서 마리는 자신을 돕는 간부들을 상당히 총애했는데, 마리의 정체도 모른 채 나름 마왕의 간부였던 홉스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의뢰의 목표인 타르툰도 마찬가지였다. 마리가 몹시 신뢰하는 간부였고, 그의 첩보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지지율이 가장 높은 ‘아포네트 가문’을 비밀리에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타르툰이 마리의 여관 1호점에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매우 강력한 저주마법에 중독된 상태였고, 홀 가운데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타르툰이 중독된 것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저주, 다만 그 어떠한 중독 상태라고 할지언정 ‘지르고트의 마석’이 있다면 고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부재가 불가능한 마리와 간부들은 우리에게 이중 의뢰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고, 그 내용은 ‘지르고트의 마석을 가져올 것’이었다.

    ‘생각보다 귀찮은 일에 휘말렸잖아.’

    편지를 전달하는 의뢰란 타르툰이 의식을 찾지 않는 이상 완수했다고 보기 어렵다. 나를 포함하여 아이나와 홉스는 어쩔 수 없이 의뢰를 수락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지르고트의 마석이 있는 곳은 어딥니까?”

    마리가 말하길 타르툰은 현재 온갖 회복마법을 동원하여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는 정도라고 했는데, 그렇게 의식을 잃은 타르툰이 무의식 속에서 뱉은 말이 있었다.

    “아포네트 동굴의 비밀 제단.”

    “나는 타르툰의 상태를 보고 알게 되었다.”

    “…타르툰이 죽을 고비를 버텨, 저주마법을 증거로 가져오지 않았다면.”

    “그 마법의 출처가 ‘아포네트 가문’이라는 것을 결코 알 수 없었으리라고.”

    * * *

    ―게이트 디 마나의 ‘마도 백과’ 中 ‘지르고트 마석’에서 발췌.

    아포네트 가문은 17 가문 중 하나이며, 저주 관련 마법을 연구하는 학파로도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저주마법의 연구를 위해 ‘아포네트 마도연구원’을 창설한다.

    다루는 학술도 저주인지라, 가문 내의 인명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주가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해독할 방법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아포네트 가문에서 발견한 특이한 동굴. 그 내부에는 독성의 농도를 낮추는 자연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이들은 마력이 동굴 내부에서 순환하여 천장에 종유석으로 결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위 현상을 보며 연구의 가치를 느낀 아포네트 가문, 마도연구원을 동굴로 이전하면서까지 수많은 연구 끝에, 마도연구원에서 직접 창조한 저주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지르고트의 마석’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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