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2화 (112/222)
  • 112화

    * * *

    “절 데려가셔야 합니다. 사장님!”

    “글쎄다, 홉스 네가 없으면 가게는 누가 보나.”

    “마스터, 제가 있잖아요.”

    “임자야 짐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래서 더 걱정이라니까.”

    ‘크루샤 홉스’ 마계 태생으로 고블린에서도 몇 없는 ‘풀 나무’ 부족이다. 아이나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홉스는 이번 의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이 동행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심지어 녀석은 대제국 첼로니아의 제국군으로 전역한 이력이 있는 고블린. 홉스가 있다면 이번 의뢰가 조금 더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아이리스, 가서 홀이나 보시죠, 일을 안 하네, 정말!”

    “무식한 빨간 용아, 방금 다녀오지 않았느냐!”

    “저거 보라고, 눈만 떼면 두 마리의 용이 싸우고 있으니.”

    “단장님, 그러나 홉스의 동행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린 안 되는데. 아이나!’ 서로의 볼을 꼬집기 바쁜 붉은 용과 푸른 용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다가 ‘망할, 싸우지 좀 말고 떨어지란 말이야.’라고 녀석들 사이를 비집어 뜯어말리는 데 간신히 성공한다.

    이렇게 눈만 돌렸다 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도 지려버릴 마력을 내뿜는 용들. 지능을 담당하는 홉스와 아이나가 가게를 비운다는 것은 빌어먹을 관자놀이가 몹시도 두근거릴 정도다.

    풍비박산의 플래그가 분명했다.

    “이봐, 아서.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있으니.”

    “브라운 아저씨, 몰래 케피탄 맥주나 빼먹지 마시고요.”

    “크하하, 벌써 들켜버린 것인가.”

    브라운 아저씨의 옆으로 레니가 얼굴을 삐죽 내밀더니 초롱초롱한 눈빛과 함께 입을 열었다. ‘히끅’거리는 소리가 함께인 것을 보니, 주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광란의 치유마법 파티’ 말이다.

    “히끅… 아서.”

    “응, 안 돼. 특히 취해서 딸꾹질하는 레니는 더 안 돼.”

    “히끅… 아서, 레니도 사장이 돼보고 싶다고요오!”

    “사장이잖아, 드래곤 엘릭서.”

    “히끅, 사람들이 똥간이라 놀린단 말이에요.”

    “미, 미안…. 그건 내가 시작해서 그래.”

    파르파르의 꽃으로 나를 여자로 만들어버린 네가 신뢰가 두터우리라 생각하느냐 레니. 역시 레니의 주사를 보니 정신이 말짱해졌다. 홉스나 아이나 중 한 명이 여관을 총괄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무래도, 둘 중 한 명이….’

    여관의 홀은 사람들의 수다 소리로 시끄러웠기에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별안간 프리실라만큼이나 여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메이가 이목을 잡았다.

    ‘하하…. 저는 들어올 때마다 자주 주목을 받는 것 같네요.’라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충 비어 있는 테이블을 향해 엉거주춤 걸어가는 메이.

    아이나와 홉스는 아무 말 없이 메이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혔다. 이내 홉스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메이 씨, 일해 볼 생각 있나요.”

    “네, 네?”

    “아르바이트요. 메이.”

    “아이나까지. 여, 여관에 일손이 필요한가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메이 씨밖에 없거든요.”

    “월, 월간지에서 휴가를 길게 받긴 했는데….”

    ‘일단 시간 있음’ 같은 말이 메이 입에서 떨어지자, 홉스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명찰을 떼어내 손톱으로 무언가를 했다.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메이에게 고블린은 미소를 머금으며 명찰을 쥐여준다.

    [여관 매니저 / 메이]

    손을 펼치자 메이의 동공은 어마어마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변 손님들의 ‘출세했잖아, 메이!’라던가 ‘하하, 용들을 제치고 단번에 매니저를 달다니!’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크, 메이가 날 쳐다보잖아.’

    ‘해줄 수 있는 말이라면, 파이팅, 메이! 밖에 없다고.’

    메이는 ‘월간 세계의 모험에서 기자가 되어 첫 현장을 향했을 때보다 긴장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장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여자니까, 빌어먹을 두 마리의 용보다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 해골 녀석들이 도와줄 거야.”

    “달그락, 달그락.”

    ‘길드의 전 인원이 부재이기 때문에, 혹여 의뢰를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면 의뢰서를 작성시켜 아이나의 서랍에 넣어두도록 한다.’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운영내용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관주인이 부재중일 때는 ‘레니에게 3잔 이상의 케피탄 맥주를 주지 말 것.’과 ‘용들의 싸움을 되도록 묵관 하지 말 것.’을 더욱 강조했고.

    ‘초록색 머리의 미남(정령왕)이 찾아오면, 관찰순위를 렌이나 아이리스 보다 높여야 한다.’고 말하자 메이는 ‘아하하….’라며 여관 운영을 앞두고 벌써 피곤함에 찌든 얼굴을 보였다.

    외에도 설명할 것이 많은 우당탕, 좌충우돌 용사의 쉼터이기 때문에, 메이의 패닉을 대비하여 홉스는 종이에다 ‘매니저 대리로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작성한다.

    * * *

    [ 마계의 서대륙 / 대제국의 자치령 블러드 럼 ]

    ‘아빠 찾아 삼만리’의 타이틀을 지닌 우리는 델타의 대륙이동선을 타고 무사히 대제국의 자치령인 ‘블러드 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지는 이곳을 보면 분명히 마계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계와는 환경이 다르므로 마력의 농도가 상당히 짙고 묵직하다.

    홉스의 말에 따르면 본래 마계의 하늘은 보라색, 분홍색, 주황색, 등의 다채로운 색감을 가지고 있는데, 순도 높은 마력이 허공에 맴돌며 특이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일한 붉은 하늘. 전자가 상징인 곳이 대제국 첼로니아가 위치한 서대륙 중앙부였다. 고고학자 월키스도 난제였는지, ‘어째서 서대륙 중앙부만 붉은 하늘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블러드 럼(Blood Rum). 어제였다. 그 이름에 맞게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면 붉은 하늘이 펼쳐졌는데 몹시 장대하고 근사했다. 날이 저물면 달이 쏘는 빛이 붉은 구름을 통과해 천공이 주황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이름 없이 그저 ‘외곽 지방’이라 불렸던 곳이 ‘블러드 럼’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대제국의 벽을 넘어 위치한 이곳의 하늘도 함께 붉었기 때문이었다.

    “아포네트 가문의 ‘그리드 아포네트’를 뽑아주십시오!”

    “아포네트 님은 저력을 다해, 마계를 그 무엇보다 근사한 곳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블러드 럼에 시내라고 불리는 ‘럼’의 거대한 분수 앞, 꽤 고급스러운 복장의 어느 마계인,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아포네트 가문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분수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것’을 나눠주며 선거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홉스에게 ‘저자도 선거에 나가는 양반?’이냐고 묻자, ‘흠, 보아하니 17 가문 중 아포네트 가문이 이끄는 당의 임원인 것 같군요. 그리드 아포네트 본인은 아닙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포네트’는 17 가문 중에서 현시점 지지율이 제일 높은 곳이었다. 그러므로 선거에 출마하는 ‘그리드 아포네트’가 다음 마왕으로 가장 유력하다.

    현재 마계에서 통치자를 뽑는 시스템은 굉장히 특이했다. 기본적으로 17 가문의 종자만이 마계를 이끄는 수장이 될 수 있었는데, 전자의 가문들은 마왕이 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해야만 한다.

    임기 100년, 그리고 교체되는 마왕. 지구와 달리 평균 수명이 길다고 할 수 있는 아칸에서도 ‘마계인’에게는 100년이 우스운 숫자였다.

    ‘마계 17 가문이라….’

    열일곱의 고귀한 혈통을 지닌 가문은 각 대륙에 위치하여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데, 관할지역이 있는 열일곱의 가문이 아닌 이상, 일반 시민이 마계의 통치자가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100년 선거를 통해 가문에서 마계의 통치자가 탄생하면, 해당 인물이 마계의 대제국이라고 불리는 첼로니아 속 마왕의 거처 ‘아베스타’에 머무르게 되고, 마왕을 일컫는 단어인 ‘아베스타’를 이름의 끝에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아이나. 우리가 블러드 럼에서 정보를 수집한 지 하루가 지났고, 얻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잖아. 과연 이 의뢰를 성공이나 할 수 있을까.”

    “본래 정보 수집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요. 혹시 몰라 단장님께서 잠을 자고 계실 때, 아베스타로 접근해봤습니다만.”

    “어쩐지 아침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더니, 아이나가 첼로니아까지 다녀온 거였군. 그래서 입장이라도 성공해서 마왕의 얼굴이라도 보셨나?”

    “아, 아. 경계가 너무나도 삼엄한 나머지 입구에서 거동수상자로 판단되어 끌려 나왔답니다.”

    “…결국 얻은 건 없다는 거잖아.”

    흰 갈퀴라는 수인의 한 뿌리에서 ‘마계 사령부의 핵심 인물이 종종 나온다.’는 정보도 정확하다 판단하기 어려웠고, 하물며 ‘위대한 분을 모시는 타르툰’이라는 자가 ‘마왕’을 모신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타르툰이 저렇게 선거운동을 하는 녀석처럼 ‘17 가문의 뭐시기 아포네트’ 정도의 인물을 받드는 임원 정도일지도 모른다는 점인데.

    홉스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베스타에 위치한 간부를 포함한 일원들 외에 마왕의 정체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추가사항을 더했다.

    전대를 포함하여 마법을 통해 ‘마왕의 위상’이라는 정해진 모습으로만 나타난다는 것. 그러니 일반인의 경우 마왕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까지 얼굴은커녕 진짜 목소리조차 알 수 없다.

    델타에 사는 아네스처럼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아이나는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하여 타르툰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위치를 도출했을 때, 아베스타가 나왔다고 한다. 아이나는 이에 대해 확신했다.

    “임기가 끝나기 전. 마계의 핵심 통치권을 두고 혈전을 벌이는 17 가문의 부정행위를 막는 것. 현 마계를 통치하는 아베스타의 일원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분명합니다. 타르툰은 마왕의 간부이기 때문에, 자신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죠.”

    “더군다나 임기가 끝나는 시점, 100년 선거의 끝이 다가왔으니. 현 마왕의 간부나 주변 인물들이 17 가문에게 주의할 인물로 찍혔을 테고, 타르툰은 신변을 위해 가족을 인계로 떠나보낸 것입니다.”

    홉스와 나는 입을 벌린 채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이나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추리는 상당히 신뢰가 높았다. 총명한 아이나의 분위기는 하늘을 뚫고 나아갔다.

    “…으윽.”

    “왜, 왜 그래 아이나.”

    “…혼자 급하게 아베스타로 향하느라, 아침부터 굶었습니다.”

    ‘홉스, 괜찮은 곳이 없을까? 잠깐 쉬면서 아베스타로 들어갈 방법을 모색하자.’라며 제 고향에 찾아온 것과도 같은 고블린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하하, 마침 이 근방에 제가 근무했던 여관이 있습니다.”

    “발레포르 토벌 때 가봤는데, 본점은 첼로니아에 있던 게 아니었구나.”

    “본점은 블러드 럼에 있지요. 마리의 여관이 시작된 곳입니다. 하하.”

    “아무렴, 아이나의 얼굴을 보니 얼른 가야 할 것 같아.”

    내가 부축을 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아이나, 대식가인 프리실라의 왈이 떠올랐다. ‘아이나는 나보다 많이 먹어, 배에 코끼리라도 있나 보다.’

    추가로 란베르크의 말이 스쳐 간다. ‘과거였죠. 아이나는 기사단에 있을 적에 많이 먹기 대회에서 1등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먹어놓고도 배부른 티 한번 내지 않더군요.’

    “단, 단장.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깨를 빌리게 되다니.”

    “아침부터 굶은 채로 혼자서 대제국까지 다녀왔는데,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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