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10화 (110/222)
  • 110화

    * * *

    늦잠을 일삼는 붉은 용의 경우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 어마어마한 특성이 있었는데.

    마당에서 격하게 울리는 쇳덩이의 마찰음 때문에 끝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자신의 침실에서 ‘세계의 모험’ 신문을 읽으며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아이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잠들어 있던 작은 정령들과 플로우들이 무슨 일인가 하며 소리의 원천을 따라 움직이기까지.

    하필 여관의 주인은 외출인 상태였고, 이미 퍼플은 마당의 상황을 잘도 아는지 급하게 시내를 향해 마차를 끌고 달려 나갔다.

    ―쾅!

    ―콰직!

    이것이 과연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란 말인가, 델타에 거주하는 검객들의 대련을 지켜보았다면, 이런 소리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칭’ 같은 갸름하다거나, 단절된 음색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쾅’ 소리는 분명 검끼리 맞닿는 소리가 맞았다.

    문제는 검의 날을 포탄처럼 다루는 대포의 근력을 지닌 두 명의 검객이 그 소리의 주인이라는 것인데, 주위의 환경이 풍압에 의해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제법이군.”

    딱히 돌아오는 대답 따위는 없었다. 제법이라는 칭찬에 안부를 전하기에는 프리실라가 이루고 있는 고도의 집중이 흐트러지기 때문이었다.

    모르딕 아젤이 말했던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단 첫 합에 느끼고 말았던 프리실라. 숨을 거두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달라, 확실히 달라.’

    ‘란베르크 선생과는 완전히 다른 검이다.’

    ‘이것은 마치….’

    모르딕 아젤에게서 나오는 저 강력한 공격을 통해 ‘내가 란베르크 선생을 만나지 않고, 죽지 않았다는 예를 걸었을 때. 저런 검이 되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생각한 프리실라였다.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란베르크는 프리실라에게 주로 예를 들던 ‘비슷한 검객’은 언제나 ‘모르딕 아젤’이었고, 프리실라가 지겹도록 들어본 검객의 이름 중 하나가 사실상 ‘모르딕 아젤’이 되는 셈이었다.

    “합!”

    ―칭!

    “대단하군, 이런 소리를 울리게 할 줄 생각도 못 했는데.”

    모르딕의 검격은 궤도에서 나오는 마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물론 이것도 검격을 버틸 수 있는 자의 한해서였다.

    얇고, 가냘픈 ‘칭’소리에 모르딕은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프리실라에게 정말로 ‘란베르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빌어먹을 실력을 갖춘 란베르크가.

    ‘쳇, 진심이고 싶지 않았는데.’

    검의 선구자라는 위치에 있던 모르딕 아젤이 당연히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초심자에게 진심을 담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고수의 입장에서 수치라는 말이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 전력으로.’

    모르딕은 계속해서 속도를 올렸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프리실라는 검격을 막아내느라 뒤로 밀리는 듯싶으나, 생채기가 조금 늘어날 뿐, 크게 베이는 상처는 없었다.

    ―칭!

    ―콰직!

    ―칭!

    프리실라는 모르딕의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는 속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딕이 여전히 한 손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드시, 양손을 사용하게 해주겠어.’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 표현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감을 가진 검격을 힘겹게라도 막아내는 것이 가능했던 프리실라. 근래 가속 마법을 연속 중첩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 눈빛은 나와 판박이인데 말이야.’

    ‘검의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란베르크를 닮아있다.”

    “…아니, 모르딕! 추가사항이 있다.”

    “이런 공격에 잘도 입을 열 수 있다니. 대단한데.”

    “이 몸은 또한… 그대를 닮아있단 것을!”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두 개의 검이 허공을 타고 올라갔다. 두 개의 검은 합에 의해서 완전히 주인에게서 벗어났다는 의미였다.

    마당에다 주저 없이 박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더니 황당함을 느끼고 있는 모르딕 아젤. 그 눈빛은 가히 가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란베르크가 말한 ‘모르딕 아젤이 나를 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모르딕 아젤은 자신의 힘을 간혹 제어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고양된 전투 중, 미세한 순간을 포착하여 손잡이 부근의 균형을 상실시킨다. 위 목적의 공격을 성공했을 때. 녀석은 60% 확률로 자신의 검을 놓치곤 한다.’

    ‘그리고 프리실라. 네 녀석도 모르딕과 같다.’

    ‘네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꽤 검을 놓쳤지.’

    물론 란베르크가 모르딕을 상대하는 것처럼 자신의 검은 자신의 손아귀에 온전하게 있어야 했으나, 강한 부딪침에 의해 검을 쥐기는커녕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여지지 않는다.

    “자네가 검을 양손으로 쥐게 할 유일한 방법.”

    “하, 하하.”

    “어떤가. 델타 검객의 실력은.”

    “그래, 란베르크만큼 열 받는 여자가 분명하군.”

    모르딕은 순식간 바닥에 꽂혀있던 검을 빼어내, 프리실라가 바라던바,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 전력’으로 프리실라에게 별안간 접촉한다.

    그 별안간은 실로 별안간이었다.

    프리실라가 자신의 검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모르딕의 검이 프리실라의 목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득히 빠르다고 볼 수 있다.

    ―칭!

    그 별안간에 별안간으로 비집고 들어와, ‘가문의 의지’라 부르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검으로 묵직한 아젤의 격을 막아낸 란베르크가 서 있다.

    “거기까지다. 모르딕.”

    “…쳇, 란베르크.”

    “곧 오시게 될 선생님께서 분개하실 거다.”

    “설, 설마 동료를 죽이려 했다는 이유로.”

    “아니… 마당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 * *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르딕 아젤, 그리고 그 표정과 달리 얼에 웃음꽃이 피어있는 노튼 프리실라, 눈을 감고서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서 있는 블헤이드 메인 란베르크.

    그저께 자르문과 얘기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던지라, 세 조합에 대해서 묘한 신경전을 보며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관 내부에서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급발진을 할 것만 같은 녀석들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 이유는 전부 빌어먹을 마당 때문이었다.

    “흠.”

    “선생님. 모르딕이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흠.”

    “미, 미안합니다. 철혈의 꽃에서 배상은 꼭.”

    “흐음….”

    “단장, 내가 모르딕의 검을 놓치게 했다고!”

    “네 녀석! 그, 그건!”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가 처음부터 전력이었다면 당신 집에 걸려있는 곰 머리 장식 같은 게 되었을지도 몰랐다고요.’라며 프리실라의 볼을 꼬집었다.

    꼬집히는 중에도 혀가 뒤집히는 소리를 내며 ‘어헷흔, 호르힉희 험흘 놓히헤 했핬힜하.’라고 모르딕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프리실라.

    여관의 운영 시간이라 손님들이 북적했는데, 브라운 아저씨 같은 단골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마당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런, 또 누가 한바탕 했나 보군!’

    ‘크하하, 이번엔 누구 차례야? 렌인가, 아이리스인가?!’

    같은 짜증 나는 소리와 함께 여관의 주인장인 내 얼굴을 구경하기 바빴다. 아니 심기가 불편해서 힘껏 구겨진 내 얼굴을 놀리기 바빴다.

    “아서 님이 아끼는 마당이라고 들었는데, 꼭 배상하겠습니다.”

    “배상은 됐습니다. 프리실라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겠죠.”

    마당의 훼손 상태는 어차피 모르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철혈의 검을 이끄는, 게다가 검의 선구자 반열에 있는 여사에게 겁 없이 덤빈 프리실라의 문제도 있었으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란베르크가 적절한 시기에 대련을 말렸다고 하는데, 녀석이 둘의 싸움에 훼방을 놓을 정도였다면….

    분명 프리실라가 다시는 검을 쥐지 못하거나, 죽거나. 같은 두 개의 상황을 예측했던 것 같다.

    당연히 프리실라도 죽음을 예측하고 덤볐겠지만, 모르딕이 검을 놓치게 했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그때는 분명 여성이었던 것으로….”

    “아, 아. 정말 머리 아픈 이야기니까, 생략하도록 합시다.”

    .

    .

    .

    “그래서 당분간은 델타에 있을 예정입니다.”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는 제국이죠.”

    모르딕 아젤은 로아의 부탁으로 아와의 황금 광산에 찾아갔을 적 만났던 인물이었다. 광산으로 향하는 부유선에서의 만남은 잊을 수 없으니까.

    문제는 그때의 내 모습이 여성이었다는 것인데, 남성인 나를 보며 의아해하는 모르딕을 이해시키기 위해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리고 파르파르의 꽃, 이 단어가 내 입에서 나왔을 때, 모르딕은 지금까지와 묘하게 다른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와의 공이 컸다며 ‘르파르파의 꽃’까지 언급하자, 모르딕은 ‘잘하면 페지르에게 힘을 빌리지 않고도….’라고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이미 무를 수 없는 의뢰….’라는 속삭임과 함께 고개를 흔들며 이야기의 소재를 황급히 돌리는 모르딕이었다.

    본래 용사의 쉼터에 굉장한 기대를 품은 채로 지냈단다. 직접 찾아와 음식을 맛보고 웨라의 연주도 들어보고, 분위기에 젖으니 상상보다 더욱더 멋진 곳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 그녀였다.

    모르딕은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했고, ‘헤르메딕트 성가대 수호’라는 ‘보상만 아니면 정말로 피하고 싶은 임무.’라며 얼굴을 구겼는데.

    얼마나 수행하기 싫으면 그런 표정을 짓는지, ‘보상이 무엇이기에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철혈의 꽃 수장을 혹하게 했죠?’라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다소 특별한 꽃’이란다.

    ‘…분명 ‘파르파르’나 전자의 단어를 거꾸로 읽은 ‘르파르파’가 붙은 꽃일지도.’

    급작스럽게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머릿속에 회상되며 자연스럽게 관자놀이에 손이 올라간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 더 물어보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당장 필요로 했다면 적극적으로 모르딕이 물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성가대가 델타에 오는 이유를 아십니까. 모르딕.”

    “음… 델타가 곧이어 신성혈맹으로 페지르와 협정을 이룬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윽고 델타도 신성혈맹제국이 되는군요.”

    ‘보통은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아닌, 일반 성가대가 협정을 이룬 제국에 초청될 터. 조금 의문이 드는 맥락이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더하는 모르딕을 보고는 나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신성혈맹제국’이란 페지르에게 있어서 ‘수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제국’이라는 말이 있다. ‘수호할만한 가치가 있는’이라는 문장이 꽤 거슬리는 것도 사실.

    우호적인 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관계, 정교라는 울타리 아래, 신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좋은 말을 가져다 붙여도.

    어쨌거나 페지르의 자치제국이 되었으니, 가장 중요한 권한이 페지르에게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성전의 헤르메딕트 성가대.’ 그 이명의 실체를 아는 자들은 델타에 불어오는 페지르의 강한 바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겠는가.

    지금까지 자치제국이 되기를 반대했던 델타. 대놓고 자치제국이 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의 헤르메딕트 성가대?

    “정교라는 곳이 깡패도 아니고.”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아서.”

    ‘페지르의 임무로 델타에 머무르는 저를 욕해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하고서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르딕이었다.

    수많은 조합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거대하다고 손꼽히는 ‘철혈의 꽃’의 수장을 향해 ‘먹고 살아야죠.’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관심도 없음’을 표하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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