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9화 (109/222)
  • 109화

    * * *

    아젤 제국의 ‘철혈의 검’은 인계 대륙에서 그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조합으로, 검을 쥐는 모험가에게 있어서 ‘최종 목표’에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본래 철혈의 전장이라는 이름으로, 아젤 제국을 위한 전쟁을 모토로 삼는 조합이었다. 즉 모험이나 탐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조합이었다는 말이다.

    ‘모르딕 아젤’

    그 이름은 모르는 자가 없었다. 세계에 전 종족을 통틀어 최강의 검이라고 불리는 ‘드사덴 아젤’의 영애로 태어나 ‘철혈의 검’을 이끄는 우두머리, 수장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드사덴 아젤’의 딸이라는 이유로 ‘모르딕 아젤’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현시대에 태어나 검으로 그 길을 이끄는 ‘검의 선구자’ 반열에 스스로 올랐다.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일찌감치 입지가 다져져 있었으며, 심지어 ‘드사덴 아젤’의 영애라는 사실도 그쯤 돼서 밝혀질 수 있었다.

    사내가 아니라는 이유. 그녀는 검의 선구자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드사덴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검의 선구자.’

    ‘베르히만에게 가장 가까운 검객들.’

    검을 다루는 실력은 분명히 인정받았으나,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 드사덴이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황제의 자리를 모르딕에게 순순히 넘겨줄 리 없었다.

    눈에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모르딕을 그저 아젤의 혈통을 이어가게 할 ‘도구’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사내가 아니라면, 도구조차도 될 수 없는 운명인 모르딕.

    신념을 가지고, 운명에 저항하기 위하여. 자신이 수장 위치에 있었던 조합 ‘철혈의 전장’을 ‘철혈의 검’으로 새롭게 개척한다.

    드사덴은 자손을 낳을 수 없는 상태였으며, 드사덴의 완전한 혈통이라 할 수 있는 모르딕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젤 제국은 정치적 파국에 치닫기 시작한다.

    다른 혈통이나 제국의 자녀들과 달리 사내가 제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드사덴, 그 이념을 따르는 뱀의 혀를 가진 주변의 인물들.

    겉으로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비치는 아젤 제국이 내부에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누가 이 제국을 정복할 것인지에 대해 권력을 탐하는 이들은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생명의 불씨가 점차 꺼져가며, 끝없이 노쇠해가는 드사덴. 이를 보며 최후의 수단으로 끝내 ‘신성 혈맹 제국’이라 불리던 ‘아젤 제국’의 정치적 권한을 ‘페지르 교황청’의 수뇌부로 대거 넘기는 것을 선택했다.

    ‘아버지, 제국을 페지르에게 넘길 만큼.’

    ‘제가 여자라는 이유가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그렇게 아젤은 정령들이 양기와 음기의 기운을 조절하기 위해 섭취한다는 ‘르파르파의 꽃’을 갈망했다. 아와의 황금광산이라고 불리던 곳을 향한 가장 큰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으니.

    다만 그 물건을 얻기에는 현세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으로는 터무니없이 불가능한 일이었고, 정령계로 갈 수 있다는 고대의 인물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유적을 탐사하거나, 아젤 제국에서 지령을 받아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르파르파의 꽃’ 색깔조차 보지 못한 모르딕,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 ‘철혈의 검’을 움직인다.

    ‘철혈의 검.’

    과연 이 조합은 단순히 아젤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조합인가, 아니, 철혈의 검의 이념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진정한 이념은 ‘모르딕을 아젤 제국 왕좌에 앉히기 위한 조합’이라는 것이다.

    수명이 다 되어 가는 ‘드사덴 아젤’에게 반기를 드는 ‘모르딕의 이념을 따르는 자’들의 모임, 그것이 바로 ‘검의 선구자, 모르딕’이 이끄는 철혈의 검이었다.

    * * *

    “아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말던.”

    “모르딕.”

    “무슨 일이지.”

    “다름이 아니라….”

    철혈의 검이라는 상징을 띄고 있는 거대한 칼 문양이 새겨진 날개 돛, 이 부유선은 현재 델타를 향하고 있었다.

    철혈의 검이 델타를 향하는 이유는 아젤 제국에서 정치적 권한이 많은 ‘페지르 정교’의 어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헤르메딕트 성가대를 포함하여 델타제국의 국문을 넘어 입성하게 될 이들을 안전하게 수호해야 했는데.

    페지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색을 하는 그 ‘모르딕 아젤’이 순순히 어명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르파르파의 꽃’을 찾기도 바쁜데,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페지르의 말을 따를 리가 없다.

    ‘르파르파의 꽃으로 보답하겠네.’

    ‘그것이라면, 자네가 아젤 제국을 이끌어 갈 수 있을 테지.’

    페지르 정교로부터 받은 문서에 마지막 단락, 그리고 ‘상품 추기경, 헤르메딕트’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기적도 일으킨다는 상품 추기경의 이름이 적혀있는 약속을 받았으니, 모르딕은 실로 르파르파의 꽃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내가 되어, 아버지가 말하던 제국을 이끄는 그릇으로. 충분하고도 반드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 주위에서 혀를 내어 탐욕스러운 표정을 하는 뱀 새끼들의 모가지를 단숨에 쳐버릴 생각을 했더니, 끓어오르는 흥분을 참을 수 없는 모르딕이었다.

    “델타에 도착하면, 성가대가 오기까지 며칠 남았는데.”

    “나는 가볼 곳이 있어서 말이지, 말던.”

    “응, 그전까지 조금 쉬어두라는 말이었어.”

    “드디어, 얼마 남지 않았어.”

    “모르딕, 이젠 닿을 수 있겠구나.”

    “아버지에게 제국의 권한을 이어받고….”

    “근사한 제국으로 이끌어가야지?”

    “하하, 너도 그땐 더욱더 바쁠 거야, 말던.”

    모르딕은 부유선 난간에 몸을 기대어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있던 말던은 ‘그곳에 가보려고 하는 거야?’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종이 쪼가리를 보며, ‘응, 어쩌면 이 여관의 주인은 베르히만이라는 전설적인 검사보다 강할지도 몰라.’라는 말을 더했다.

    “그것도 나처럼 여자였지.”

    “오, 그랬단 말이야?”

    “응, 뭔가 비밀이 많은 여자인 것 같기도.”

    “비밀이 많은 여자라, 그리고 그곳의 음식 때문이지?”

    “그, 그곳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라고.”

    “에이, 뭔가 표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종이 쪼가리를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모르딕, 그리고 황금광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새기며, 잊지 못할 전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조차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

    대단할 만큼 유명한 델타의 여관 ‘용사의 쉼터’를 모르는 사람은 적다. 모르딕도 예외는 아니었고.

    황금광산에서 여관주인을 만나기 전부터 ‘용사의 쉼터’는 이미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정말 괜찮은 곳 같은데, 꼭 가보고 싶네. 라는 생각에서.’

    ‘그녀가 있는 곳이라니, 반드시 가야겠어. 로 바뀌다니.’

    모든 일이 끝나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던 ‘탄산수 쿠폰’이 아니었다면, 앞면 없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하는 모르딕이었다.

    “그리고….”

    “델타라 오랜만이군, 란베르크 집에 놀러가곤 했었는데.”

    “무척 오랜 일이지만.”

    * * *

    “합!”

    “흐읍, 흡!”

    용사의 쉼터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해가 떠 있을 무렵’에 대표적으로 ‘프리실라의 기합 소리’가 있었다.

    당연히 기합 소리가 나는 이유는 훈련 때문이다. 정확히 다른 길드원보다 훈련량이 약 3배가 많은데. 그놈의 세계 유산이니, 불가사의 기관이니.

    그저 강해지기 위해서라는 목표가 프리실라의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업과 그 업이 만든 것들을 지키기 위한 신념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고.

    근래에는 란베르크의 훈련을 통해 상당히 강해지고 있었던 터라, 아네스는 던전 할머니에 가끔 찾아오는 프리실라를 보며 ‘많이 발전했다.’ 잦은 칭찬을 하곤 했다.

    더군다나 그 노력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전투력 ‘AA 등급’을 공식적으로 측정되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D 등급의 아이리스는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더는 ‘전투력 측정기’라고 불리는 A 등급과 A+ 등급이 아니라며 자신감을 느끼는 프리실라. 정면을 보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마지막으로 연습해보자고.”

    프리실라는 일전에 하거먼 필스와의 모의 공성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욱 내제된 힘을 강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란베르크는 ‘넘어야 할 벽’이라며 거대한 검기를 날려 보란 듯이 단번에 하거먼 필스 진영의 건물을 박살 냈는데.

    소드마스터의 정수라고 불리는 ‘검기 방출’이었다. 그 검기 방출을 차츰 란베르크를 통해서 숙달하기 시작했고, 훈련을 거듭한 끝에 작은 크기의 검기 방출이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먼저 심호흡.”

    “마음, 심장이 뿜어대는 마력을….”

    “고스란히 손으로 옮겨 보낸다.”

    성질이 급하다고 할 수 있는 프리실라에게 심호흡은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였다. 숨이 미칠 듯이 차올라도 맹목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짐승이 호흡이 필요하겠는가.

    제 상태가 어떻든 정신력으로 달려들어 ‘승리 외에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식의 전투를 강행해온 그녀는 과거에 란베르크를 향해서 이런 말을 뱉었다.

    “명상이나 호흡은 샌님이나 하는 것.”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 나여.”

    “상상, 이 마력의 흐름을 검에 담는다.”

    “검에 마력이 흐른다.”

    “집중, 검에 마력이 흐른다.”

    프리실라가 마력초 깔린 언덕에서 눈을 감고 검기를 모으는 행위를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아서의 지인이거나, 혹은 여관의 오픈 시간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손님일 가능성이 있었는데.

    ‘굳이 내 집을 찾아가는데, 인기척을 숨길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여관주인’은 둘째치고, 프리실라가 여관으로부터 인기척을 감지하지 못하는 인물은 ‘란베르크’외에 없었다.

    입이 아플 정도로 ‘감이 좋고, 그 감이 짐승 수준이다.’라는 말을 뱉는 란베르크가 인정한 그녀인데도, 저 멀리서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지지직.

    이전보다 크기가 배로 커진 검기가 프리실라의 검 끝에서 허공으로 거세게 날아갔다. 마력이 깃든 검기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구름을 분산시킬 정도로 꽤 먼 거리까지 향했다.

    “이런, 대단한걸.”

    별안간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검을 겨누는 프리실라, 그곳에는 근사한 갑주를 입고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제법 예쁘장한 얼굴이 그 갑옷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긴장을 늦추기엔 저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과 숱한 전장을 뚫고 나온 기운이 예사가 아니었다.

    “자네는 누군가.”

    “음… 이 여관을 찾아온 손님?”

    “미안하지만, 오늘은 저녁에만 영업한다네.”

    갑주를 입은 여인은 프리실라에게 다가갔고, 프리실라의 갑옷에 붙은 ‘드래곤 길드’의 문양과 ‘등급’을 확인하더니 이내 다시금 프리실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검기를 쏘던데.”

    “훈련 중이었으니까. 아무튼 여관은 저녁에….”

    “AA 랭크인데, 검기 방출이 가능하다라.”

    “마치 AA 랭크는 검기 방출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같군.”

    “왠지 말이야, 란베르크 녀석의 검기랑 비슷하단 말이지.”

    ‘란베르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리고 란베르크라는 이름을 가까운 지인인 것처럼 말했을 때, 이 자는 분명 ‘검’을 다루는 여인이라 생각한 프리실라였다.

    손끝을 저릿하게 만드는 여인의 기운.

    ‘싸우면, 100%의 확률로 죽음.’

    프리실라가 가진 감각이 미리 확정 짓는 패배.

    그 감각은 언제나 프리실라를 강하게 자극했다.

    물론,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이름은 노튼 프리실라, 그대와 대결해보고 싶다.”

    ‘노튼… 혁명을 이끄는 검, 노튼 아네스의 노튼은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개와 검을 겨누지 않아.”

    “내가 그대의 상대로서 부족하단 말인가!”

    “턱없이 부족하지….”

    여인은 프리실라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마치 ‘검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달려왔던, 그 길에 놓였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전장의 잔혹한 기운이 서린 마력을 내보내는데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프리실라의 기백을 보니 기가 찬다. 무엇보다 자신의 통성명에서 ‘노튼’이라는 성을 붙이기까지.

    “네가 나의 진심을 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

    “나는 하찮은 것에도 목숨을 걸지, 자네의 이름은.”

    “이 시대에서 ‘철혈의 검’을 이끌고 있으며.”

    “아젤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 모르딕 아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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