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8화 (108/222)
  • 108화

    * * *

    델타의 겨울은 이른 아침이 가장 추운 법이다. 손끝이나, 발끝이나 그 끄트머리가 쑤시지 않는 법이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추위를 자랑한다.

    델타의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디 손이라도 찔러 넣을 수 있는 곳이라면 호주머니가 아니더라도 그 어디든 집어넣고서 ‘아침만 버티자.’라며 일과를 시작한다.

    그렇게 ‘지금만 버티면, 따뜻함이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는 델타를 가볍게 무시하는 듯, 프리실라는 ‘지금만 버티면’이라는 유래가 나온 ‘델타의 겨울 아침’ 마당에서 훈련을 강행하는 중이었다.

    렌의 마법도 없었고, 플로우의 가벼운 축복 마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털이 가득 달린 한파를 이겨내는 옷을 입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추운 날이면 더욱더 차갑게만 느껴질 판금 같은 재질의 갑옷을 입고서 허공에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드래곤 길드의 부단장.

    “춥겠어요.”

    “흐――압!”

    프리실라는 훈련을 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거리를 두고서 ‘춥겠다.’는 응원이라는 메시지를 핑계 삼아 놀리려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날이 더욱 밝아오며 태양이 주는 빛으로 대지의 온도가 오를 때나, 오버 트레이닝이 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관절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할 때, 란베르크 선생의 ‘전 길드원 A 랭크를 향해’라는 훈련이 시작된다.

    프리실라는 며칠째 ‘감각’ 위에 ‘감각’을 깨우기 위해서 이들보다 몇 시간은 이르게 추위를 버텨가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으며,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추위를 버티는 것.

    ‘동장군이 발가락을 물어뜯는 것만 같군.’

    당신이 동장군을 어떻게 알아, 라며 태클을 걸었지만… 작년 겨울, 내가 했던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내가 저런 말을 했다니 델타가 어지간히 추웠나 봐.

    “――흡!”

    노튼 프리실라. 근래 란베르크에게 검을 배워서 그런지 이전보다 공격과 움직임이 배로 깔끔하다. 쓸데없는 아집이 담긴 기합은 없고, 단호하며 확실한 기합이 공격과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노튼 아네스’에게 배운 ‘짐승 같은 감각’은 더욱 프리실라를 강하게 만드는 발판을 했다. 재능 없는 노력파이긴 하나, 남들보다 ‘강해질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

    아네스에게 ‘어떤 방법으로 프리실라에게 그런 감각을 숙달시켰나요.’라고 묻자, ‘딱히 방법은 없었고, 일곱 살 때쯤에 델타 산맥에다 버려두고 왔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는데.

    ‘물론 어디선가 지켜보며, 쭉 함께했을 테지만.’

    눈을 감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프리실라.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나조차 순간적으로 따라가기 힘든 일격을 선보인다.

    이내 검을 집어넣고는 입김이 얼굴을 가릴 정도의 추운 공기를 비집더니, 여관을 향해 유유히 걸어온다. 프리실라의 아침 훈련이 완벽하게 끝난 모양이라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프리실라, 제법 실력이 좋아졌잖아요.”

    “오, 단장의 칭찬이라, 고맙네.”

    “역시, 란베르크는 대단해.”

    “큭, 란베르크 선생을 칭찬하려고 한 것인가.”

    함께 여관으로 들어간 이후, 캡틴에게 프리실라가 마실 차와 덮을 담요를 부탁했고, 한기가 도는 여관의 온도를 높였다.

    상당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다음 칭찬을 기다리는 프리실라를 위해서, 대충 ‘눈빛이 좋아졌어요.’ 같은 아무 소리나 던지도록 한다.

    “그, 그래요. 이전보다 눈빛이 좋네요.”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약하니까,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전형적인 왕도물의 주인공 같은 성격이시네.”

    “…불가사의 기관을 개방하겠어!”

    “그놈의 재능, 유전의 나무. 머리가 아프다 아파.”

    프리실라가 말하는 ‘세계의 유산’은 일종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란베르크 같이 특출한 재능을 가지려면 태생부터 달라야 한다며 늘 말했지만.

    후천적으로도 깨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는 그녀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그녀처럼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노력하는 자’에게 허락된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유산.’

    학자들이 숫자 같은 것으로 명확한 설명이 불가한 ‘세계의 유산’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나 자연에서 생성되는 막대한 힘의 기운이 내재 된 자연의 보고, 그 자체. ‘고대의 생명체’로 정의를 내렸다.

    그것이 인간이나 지성이 뛰어난 종족에게 스며들면 ‘유전의 나무’라고 불리는 인류 스스로가 진화할 힘의 도표 중, 마지막 코어에 피어난다고 한다.

    ‘유전의 나무.’

    시각으로 읽을 수 없는 단일 개체의 유전적 정보와 재능, 선천적, 후천적 능력을 의미한다.

    단일 개체 내부에 있는 모든 ‘유전적 마력 기로’ 어딘가에는 특이점이 존재하는 중심지가 있으며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코어(기관)이다.

    단일 개체의 천부적인 능력이나 성장 된 능력 및 유전. [생활 유전 & 전투 유전] 항목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되며, ‘기관’이란 단일 개체를 이루는 유전적 기관(재능, 능력)을 의미한다고.

    단일 개체가 몸에 개화시킬 수 있는 기관은 총 3개이다. 선천적으로 아무 코어도 없이 태어난 단일 개체도 있다.

    ‘대부분 1개의 기관을 자궁에서 가진다.’

    하나의 재능이 더 강한 유전으로 성장 될 수 있고, 같은 분류의 다른 재능을 개화시킬 수 있다.

    ‘첫 번째 개화 기관.’

    보통은 생명이 잉태되어 자궁에 안착할 시기부터 얻게 되지만, 때에 따라 코어를 개화하지 못하고 태어나기도 한다.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순수한 유전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후천적인 환경에 개화되는 기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의해 나타나지는 유전적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이때 첫 번째 기관의 영향과 진로 선택에 따라, 두 번째 기관은 생활형 코어와 전투 형 코어의 기로가 나뉘게 된다.

    ‘특수 예시로는 종족이 가진 특성’

    종족마다 고유 특성이 있고, 그 종족 특성을 나타내는 종족 특성 코어이다. 종족 고유 특성에 따라 자신의 코어를 우월하게 발현할 수 있다.

    ‘불가사의 기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노출되던, 어떤 노력을 하던, 어떤 것을 개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는 신비의 기관, 그 어떠한 영향과 무엇에 의해 개화되는지 정립이 불가능하다. 프리실라는 바로 이것에 목을 매고 있다.

    이 불가사의 기관에 ‘세계의 유산’이라 불리는 힘이 깃든 이들이, 마법이나 검술 같은 특정 분야에서 특출하게 뛰어난 ‘명문가의 첫 번째 가주’이올시다.

    불가사의 기관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손실된다고 하지만, 이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유전의 나무를 발전시켰다. 즉 자손에게 좋은 유전을 물려줄 수 있는 것.

    다음 세대는 불가사의 기관을 이어받을 수 없을지 몰라도, 이미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해버린 조상으로 인해서 ‘첫 번째 기관’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귀족 가문에서 ‘경험은 전혀 없는데, 높은 랭크로 측정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라, 이 여관주인이 입에 달고 살았던 흔히 ‘조상 빨’이 강한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불가사의 기관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란베르크,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오호, 그것도 그렇군. 란베르크 선생의 날카로운 질문이었어.”

    “나는 불가사의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게 충격적인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선, 선생님, 그렇다면 진정 오로지 노력만으로 도달하신 겁니까.’라며 쥐고 있던 스푼을 떨어뜨리는 란베르크였다.

    뜬금없이 프리실라는 ‘그렇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했던 그것은 무엇인가, 과거에 나를 구해줄 때 말이야, 그때 분명 단장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했다. 나의 긴급한 국면을 타개하는 것이라며.’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고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그것만큼은 평생 기억하겠네.’라며 한숨을 내뱉는다.

    “가끔은 상당히 억지스러운 힘을 가진 인물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아서는 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도통 이야기하질 않는다니까.”

    “적당히 무지한 법이 좋은 거라고요. 안 그래, 란베르크?”

    “늘 적당히 대답해 주시는 편이니, 이 정도로 만족하겠습니다.”

    프리실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고뇌하더니 ‘그렇담 말이야. 불가사의 기관을 개화시켰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힘이 막 솟아오르는 건가!’라며 책상을 내려쳤다.

    …그렇게 내려쳤다간 부서진다고!

    “자신의 몸 어딘가에 문양과 함께 고대어가 새겨진다.”

    “오호… 역시 란베르크 선생, 박식하군.”

    “문양의 형태와 고대어의 해석으로 그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곧 그것이 개화된 능력을 정의한다고 볼 수 있지.”

    “이런, 고대어라면 읽을 수 있는 학자들도 많지 않을 텐데.”

    “서대륙에도 그런 학자들이 몇 없으니 말이야.”

    .

    .

    .

    여관을 오픈하기 전, 아이나는 내게 드래곤 길드에서 받은 의뢰를 보고했다. ‘다행스럽게도, 특수등급의 의뢰가 없어서, 단장님이 출두하실 일은 없습니다. 하하.’라는 말을 더하기도.

    특수등급의 의뢰는 해당 조합의 수장이 직접 참가해야 하는 길드 관리기관의 법칙이 있었다. 나는 이 법칙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것 좀 보십시오, 단장.”

    “웬 신문이지, 야시장에 관련된 건가.”

    ‘겨울 야시장 강한 팔 챔피언은 용사의 쉼터 소속, 렌.’이라는 가벼운 외침과 함께 아이나가 건넨 신문을 펼쳤다.

    이후 활자를 읽고서 눈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렌을 들먹이며 겨울 야시장 어쩌고 했던 언행이 후회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상한 게 델타로 기어들어 왔나 보군.”

    “아마 관련된 의뢰가 저희 길드에 들어올 가능성….”

    “…도 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아하하, 단장님.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어째서.”

    ‘아무래도, 근래에 델타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길드가 드래곤이니까요?’라는 대답의 아이나. 나는 그 대답으로 ‘아니, 서쪽 대륙의 최강이라 불리는 델타의 늑대도 있는데.’라며 말을 더한다.

    생각해보니 ‘델타의 늑대’는 이미 은퇴한 상태라는 점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순간 던전 할머니 여관을 델타의 늑대로 착각했다.

    ‘깁슨이라, 왕실 기사단이 이렇게 쉽게….’

    ‘아니, 왕실 기사단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은 흔치 않으니까.’

    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델타의 왕실 기사단 깁슨 사망, 전투의 흔적이 주변에 남아있는 것을 보아, 사투 중 패배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측.’

    왕실 기사단은 과거의 란베르크가 소속되어 있던 곳이기도 했는데, 내로라하는 엘리트 기사 중에서도 그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주 희박하다.

    그 말은 곧, 수많은 경험과 실력이 검증된 진짜 중의 진짜만 기사 앞에 ‘왕실’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는 것. 그 왕실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귀찮을 정도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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