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7화 (107/222)
  • 107화

    * * *

    착용하고 있는 깔끔한 턱시도 위로 ‘생명력이 넘친다는 표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개골, 뭔가 세상에 거대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의 사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충분하다.

    물론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아서와 퍼플이군, 으하하!’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으나, 다만 우리를 아는 대부분의 손님이 부유선에 몽땅 모여서 진탕 마시며 놀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직시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퍼플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마법으로 고기를 구워주는’ 상호를 찾아 헤맨다.

    “달그락, 달그락.”

    “이런, 이런. 저건 내가 찾는 게 아냐, 퍼플.”

    “달그락….”

    야시장이 끝나기까지의 시간이 다소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그런데도 야시장이 열리는 시기보다, 기분이 고조되는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의 인파가 늘어나는 시간인가보다.

    시장 내부란 밀도가 상당히 높은 도시를 보는 것처럼, 다양한 가게와 사람들로 인해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곳에서 퍼플과 흩어질 뻔했던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확실히 겨울 야시장은 다르다는 건가.’

    ‘퍼플의 떨어진 팔도, 벌써 3번이나 주웠다고.’

    워낙 사람이 많고 붐비는 곳이기에 턱시도 안에서 퍼플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마차를 몰기 위해 거센 채찍질을 반복해도 빠지지 않는 녀석의 팔이었는데.

    ‘하긴, 바바리안 같은 모험가들 사이에 끼면 답이 없으니까.’

    쪼그려 앉아 퍼플의 팔을 줍는 중에 퍼플이 사람들 사이에 파도처럼 밀려 나간 것도 3번, 이 숫자가 전부 삽시간에 일어났다. 퍼플은 살점 하나 없는 손가락으로 영혼 없이 아무 상호나 가리키며 ‘달그락’을 외친다.

    “미안해, 미안해. 지쳤지?”

    “달그락, 달그락….”

    잔뜩 너덜너덜해진 퍼플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왜냐면 마법으로 구워주는 고기를 먹을 때까지 이 야시장을 돌아다닐 예정이기 때문이니까!

    ‘조금만 더 찾아보자, 너도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분명 먹어보면 좋아할 거야.’라고 녀석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넸다.

    우리는 계속해서 야시장 거리를 맴돌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렌이 델타의 늑대 전원을 꺾고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시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축제와 비슷했다. 다양한 조명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고, 다양한 먹거리의 냄새가 ‘오늘은 다른 걸 먹어볼까.’하고 내 의지를 자꾸만 꺾으려고 만들었다.

    “달, 달그락!”

    “또 영혼 없이 아무거나 가리키면 혼난다.”

    “달, 달, 달그락!”

    “에이… 거짓말하지… 말란.”

    수많은 사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퍼플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마법으로 고기를 구워드리는 가게.’라는 상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기분, 나와 퍼플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크고 우렁찬 소리로 밝은 인사를 건네는 사장.

    고고학자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7인의 영웅들, 그들의 숨겨진 유품이라도 찾은 것마냥, 눈물 나게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크하하, 뭔가 눈시울이 붉은데요.”

    “아, 아닙니다. 오늘도 나오셨군요.”

    “당연하지요, 근래에 야시장에 나오시지 않은 것 같던데.”

    “바쁜 일이 많이 겹쳐서….”

    “이런, 그래도 야시장에 나오실 때마다 늘 찾아주어 감격입니다.”

    “일단 침이 멈추질 않으니, 좌우지간 2개 부탁드립니다.”

    퍼플이 평소와 다르게 격양되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좀처럼 열지 않던 턱이 열리고는 ‘딱, 딱’ 소리를 계속해서 내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어 고기를 굽고 있던 주인에게 건네려 했고, 그가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을 확인하더니 ‘손님은 특별히 공짜입니다. 가끔은 공짜로 먹는 음식이 더욱더 맛있는 법이죠.’라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월간 세계의 모험에서 봤다고요, 그쪽이 창설한 길드가 큰일을 해냈다고.”

    “아….”

    “다 떠나서, 늘 찾아와주시는 단골손님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하하.”

    긴 막대에 고기를 마구잡이로 잘라 듬성듬성 꼽아둔 꼬치를 건네받으며, 향기롭게 피어오르는 숯의 향을 느낀다. 그가 만드는 요리는 여관에서 흉내 낸 것과 달리 깊은 향이 있다.

    델타 외곽에 자라는 ‘엉거주춤 나무’로 만든 꼬챙이라고 했던가, 이 가게의 주인장 말대로라면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나무로 만든 이것이 고기에서 피어오르는 숯의 향기 외에 쓸데없는 잡내를 제거해준다고.

    ‘드, 드디어.’

    퍼플이 턱으로 고기를 잘근잘근 씹는 모습을 보며, ‘녀석 아무 말 안 하고 음미하는 것 좀 보게.’라고는 웃으며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저것들은 무엇인가.

    로브를 입고 우리 쪽을 뛰어오는 누군가, 그 뒤에서 5명 정도의 로브를 입은 추적자가 쫓고 있는 느낌의 모양새였다.

    멈출 줄 모르는, 속도감.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 중에 지금이야말로 내가 맞설 수 없는 최고의 고난이라는 막대한 불안함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꽈당!

    “…이, 이 무슨.”

    “…죄,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은 부리나케 일어났고, 사람들의 인파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완전히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뒤에서 쫓아가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자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져 흙가루가 잔뜩 묻어버린 나의 꼬치’를 보란 듯이 무자비하게 밟으며 지나간다.

    완전히 으깨져버린 탓에 마치 함박스테이크를 연상하게 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망할’이라는 외침을 가속 마법을 중첩한 채로 외치고 싶은 심정.

    “아, 아….”

    “달, 달그락.”

    “아… 아직 한 입도 먹지 못했는데.”

    “달, 달, 달그락.”

    “…퍼플은 벌써 다 먹었네?”

    “달, 달, 달, 달그락.”

    정말이지 눈물을 삼키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장면에 가게주인이 아무 말 없이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며 새로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영혼이 털려 백화가 되어버린 나에게 다시금 꼬지를 내밀었고, 지금이야말로 내게 있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까 하며 고민하게 만든 가게주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 감사합니다.”

    “이걸로 뚝 하세요. 그나저나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던데.”

    “아무렴 어떻습니까, 확 잡혀버리라지요.”

    “으하하,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

    가게주인의 호탕함이 섞인 웃음을 뒤로하고, 가벼운 작별 인사를 마치며, 다시금 야시장 거리 속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퍼플과 나였다.

    * * *

    아바마마의 말씀이 옳았다.

    아직은 세상에 나오기 일렀다. 내가 가진 운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섣불리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무지한 과오. 그 과오가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던가.

    분명 나는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내게 세상은 보란 듯이 넘을 수 없는 역경을 선물해주고 말았다.

    하지만 방법은 달리 없다. 내가 왕실에 남아있다간 델타의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절망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말 것이다.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들은 온갖 더러운 단어를 섞어가며, 이 땅을 신성한 불로 태워버린다고 빌어먹을 소리를 해댈 것이다.

    ‘…제발, 그냥 지나가 줘.’

    야시장에 있는 수많은 인파에 섞여서 도망가면 나를 찾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그림자 기둥’의 냄새를 맡는 코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반기 아닌 반기를 들고, 로브를 뒤집어쓰며 숨을 죽이며 성에서 빠져나오던 때, 이 무지한 나를 지키기 위해 따라나섰던 기사 ‘깁슨’

    ‘나온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깁슨은 나를 야시장으로 도망치게끔 도와주기 위해, 그림자 기둥과의 혈투 속에서 죽어갔다.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어떻게든 도망가야만 한다.

    ‘델타에서 최대한 멀리, 왕족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야시장 내부에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곳, 최대한 숨을 죽이며 관리자는 딱히 없을 법한 정원 같은 곳에 진입했다.

    그렇게나 시끌벅적하던 야시장 거리와 다르게, 소음이 일절 없는 이곳은 내 얕은 숨소리마저 크게 만들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에게 먹잇감이라도 던져주는 듯, 이 빌어먹을 운명이 마냥 신의 못된 계략 같기만 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숨을 죽이며 운명에 발버둥 치는 것.’

    거대한 나무 뒤에서 왕실에서 배웠던 몸을 숨기는 법을 떠올리며, 최대한 마력 유동을 줄이는 것에 집중했다.

    어깨가 아프다.

    언제 베였는지, 혹은 화살 같은 것에 맞았는지. 아니면 그저 도망치는 것에만 집중한 탓에 나무뿌리 같은 것에 찔렸을지도 모른다.

    “찾았다.”

    “…!”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등지고 있는 나무 위에는 이미 5명의 그림자 기둥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살쾡이와 닮았다.

    잡힐 수 없다. 잡히면 델타는 끝이다.

    5명의 그림자 기둥은 나무에서 내려와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고, 나는 도망을 위해 그 사이를 비집고 뛰어가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역시, 더러운 피라서 그런가.”

    “끝까지 숨기려 들다니.”

    순식간에 달려든 그림자 기둥의 일원은 나의 등을 밟고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웃음으로 호흡을 뱉어댔다.

    .

    .

    .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흐릿한 시야에 잡히는 사내. 등 뒤에서 기도를 강하게 압박하는 그림자 기둥의 암살자 때문에 사내의 자세한 인상착의는 보이지 않고 실루엣만 잡힌다.

    그 사내는 꼬챙이 같은 것을 들고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우리에게.

    턱시도를 입은 해골 같은 것이 그 사내의 옆에 있었다. 그래… 야시장을 뛰어오며 부딪쳤던 일행인 듯했다. 내 곁에 있는 이자들은 위험하다며 외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쳇. 하필.”

    그림자 기둥의 암살조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하나가 쓴소리를 뱉었고, 그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나머지 암살자들은 단검 같은 것을 들고서 사내에게 별안간 덤벼들었다.

    나는 눈을 질근 감으며, 평범한 삶을 살았을 델타의 시민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깁슨처럼 또 무고한 자가 죽는 것인가.

    ―!

    결과는 참담했다. 참담한 것은 그림자 기둥의 내로라하는 최고의 암사자들이었다. 꼬챙이 하나로 그 견고한 단검이 파괴되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분명 보았다.

    “뭘까, 목소리가 어디서 제법 들어본….”

    뒤에서 나를 압박하던 암살자와 지면에서 사내에게 덤벼들었던 암살자들은 희뿌연 연막을 터뜨리며 순식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전투에 전자도 모르는 나였으나, 분명 이들은 이 사내로 인하여 도망을 간 것이 확실했다.

    “괜찮으십니까.”

    “….”

    “원래 말수가 적으신가.”

    “달그락.”

    “그렇지, 퍼플 그런 것 같지?”

    “….”

    “자, 여기 탄산수 쿠폰이요.”

    그 뒤에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사의 쉼터’라고 했던가, 그렇담 방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은 고작 여관주인.

    인계 대륙의 ‘소리 없는 죽음’이라고 불리는 그림자 기둥의 암살자를 꼬챙이 하나로 때려눕힌 것인가. 곱씹어 생각해도 실력이 좋은 검객마저 불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모조리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가 건넸던 이상한 종이 쪼가리를 낚아챘다.

    전력을 다해 도망쳤던 터라 근육통이 잔뜩 쌓인 다리, 터질지도 모르지만 있는 힘껏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뜀박질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뒤에서 ‘저, 저기요!’라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도망칠 수밖에 없다. 델타의 모든 이들은 나와 엮여서는 안 된다.

    나는 곧, 페지르가 델타를 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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