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6화 (106/222)
  • 106화

    * * *

    테이블에 앉은 자르문이 ‘자네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군, 준비할 수 있겠는가?’라며 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공교롭게도 여관에는 현재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해골 삼인방)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하는 것 보다, 그들의 음식이 더욱더 맛있을 겁니다.’라고 자르문에게 권유했다.

    ‘미안하네. 내가 경솔한 발언을 했군.’

    ‘남의 여관에 쳐들어와서는 그 주인에게 음식을 만들어오라고 했으니. 그대가 기분이 나빴으면 내가 사과하지. 그들의 요리로 만족하겠네.’

    나는 자르문과의 대화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느꼈다. 란베르크가 성격이 ‘냉정한 오락가락’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에게 기본적인 예우를 갖추는 성향은 그 부친을 닮아 그런 듯하다.

    ‘역시, 명문가는 다르다는 건가, 하거먼 가문과는 완전 딴판이네.’

    고민하던 찰나, 나는 옷깃을 걷으며 ‘아닙니다. 저희 직원의 부친께서 직접 찾아오셨는데, 제가 직접 대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더 경솔했군요.’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겠는가,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지.”

    “제가 자신 있는 음식은 리소토뿐입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노쇠한 검객의 공복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네.”

    .

    .

    .

    자르문은 김이 폴폴 나는 리소토를 음미하기 시작했고, 일반적인 고객의 반응과 달리 그의 표정은 무덤덤하며 리액션이 없었으니, 나는 기가 죽어 마땅했다.

    “아서라고 했는가, 훌륭한 음식이군. 아네스가 칭찬할 만해.”

    “아네스를 알고 계십니까?”

    무덤덤한 표정에서 나오는 음식에 대한 칭찬보다, 그의 입에서 나온 ‘아네스’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되고 말았다.

    접점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들어보아 꽤 가까운 사이인 듯했다. 허리에 검을 차고서 부유선 경호 활동을 하는 란베르크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자신의 말을 이어가는 자르문이다.

    “현역이라고 칭하던 시절에.”

    “내가 넘지 못했던 검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시절, 최강의 검이라 불리던, 드사덴 아젤.”

    “그 시절, 혁명을 이끄는 검이라 불리던, 노튼 아네스.”

    ‘드사덴 아젤’은 서대륙에서 검으로 가장 권위가 강한 ‘아젤’ 제국을 세운 검사였다. 일전에 보았던 ‘모르딕 아젤’의 부친.

    수년 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산송장의 모습을 하고도, 대륙에 내로라하는 검객 천 명을 단번에 해치울 수 있는 실력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블헤이드 메인은 이러한 드사덴이 이끄는 아젤가문을 넘지 못하여 늘 2위에 머물렀으니, 그의 입에서 넘지 못했던 검으로 ‘드사덴 아젤’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근데, 아네스라…. 그녀가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란베르크 말이네.”

    “돌려보내라고 하신다면, 당장 돌려보내겠습니다.”

    “녀석은 우리 가문에 있어서 유일한 희망일세.”

    “….”

    일전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란베르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적어도 블헤이드 메인 가문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르문은 ‘아집이 강하고, 그 아집을 못 이겨서 늘 사고를 만드는 녀석.’이라며 내가 관자놀이를 누르는 시늉과 비슷한 느낌으로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란베르크는 지금까지의 블헤이드 메인 종자들과는 격이 틀렸다. 이를테면 ‘노력하는 천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임에 틀림없다.

    드사덴의 영애로 태어난 ‘모르딕 아젤’을 뛰어넘는 것은 한참 오래전이었다. 심지어는 ‘베르히만’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사내가 란베르크였다.

    자르문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드사덴도 들지 못했던 7인의 영웅 속 인물, ‘젊은 검사, 불세출의 검, 베르히만.’

    “그 아집이 란베르크를 강하게 만들었다네.”

    “그 아집이 강한 란베르크가, 대뜸 나에게 검을 보았다며 말하더군.”

    “나조차도 판단하기 어려운 강함을 지닌 사내라고 생각했다네.”

    “처음에는 녀석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눈빛, 내가 드사덴을 보며 일격을 위한, 검을 쥐었을 때.”

    “나는 그에게 한참 부족한 검사였고, 그 눈빛을 보았다.”

    “그 어떠한 노력으로써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다만, 성장하면서 그와 대등해질 때쯤이 되니, 그자에게서 그런 눈빛이 더 보이지 않더군.’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캡틴이 가져온 차를 마시는 자르문이었다.

    “나보다 더욱이 노쇠한 드사덴보다, 지금의 내가 강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최강이라 불리던 시절에 넘지 못한 것은 변함이 없지.”

    “아비보다 뛰어난 아들이 경외하는 어느 여관주인.”

    “아이러니… 하게도.”

    “내 앞에 있는 사내에게, 노쇠하지 않은 드사덴의 눈빛을 볼 줄은.”

    ‘아하하…. 자르문경. 그런 이야기는 손님이 듣지 않는 곳에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공손히 부탁했다. 문제는 주위의 몇몇 손님이 귀가 좋아 들은 듯하다.

    ‘아네스 같은 조력자가 한 명 더 생긴 기분이라 좋긴 하다만.’

    ‘자르문도 아네스처럼 내게서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드사덴 아젤과 노튼 아네스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을 란베르크가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더했다.

    나는 아네스의 이야기도 들려달라며 자르문에게 응석 아닌 응석을 부렸지만, 어느새 란베르크가 나타나 자르문에게 대뜸 ‘슬, 나가 주시죠.’라며 블헤이드 메인가의 가주를 내쫓기 시작했다.

    “쯧쯧, 성격이 급한 건, 지어미를 쏙 빼닮았군.”

    “어머니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성으로 찾아와 직접 보라는구나.”

    “그리고, 성격이 급한 건 아버지를 닮아 그렇습니다.”

    “크흠, 이만 물러나겠네. 아서 군.”

    “…네, 들어가시죠.”

    멀리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호위 검사가 자르문에게 다가오더니, 자르문은 블루드래곤으로 변해있는 아이리스를 보며 ‘그대가 태워주는 것인가?’라고 입을 열었다.

    “올 때는 붉은 용, 갈 때는 푸른 용이란 말인가.”

    “짐의 등을 허락받는 것은 전부 임자의 덕이니라.”

    “암, 영광이네, 대륙을 넘나드는 지고한 용과 검사….”

    “그 시절이었다면, 드사덴을 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하하.”

    흰 머리칼과 수염을 날리며 유유히 사라지는 블헤이드 메인의 가주, 응당 그의 퇴장에 가벼운 인사라도 할 줄 알았던 란베르크는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떠나자, 란베르크는 내게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불편해하실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군요.’라는 말을 건넸다. 도리어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내 대답을 더했다.

    시간이 흐르자, 용사의 쉼터 부유선을 포함한 야시장의 전 상호들은 시끌벅적한 소리로 무르익었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부유선에서 들리는 바드의 노래는 물론, 지상에 있는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웨라, 하늘에서 켜는 소리는 어때요.”

    “아서, 감회가 새로워요. 그러나 지상에 있는 바드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겠죠.”

    웨라는 우리 용사의 쉼터 일등공신 바드로 여관에서의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엘프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관의 직원이 없을 때, 웨라의 연주가 없었더라면 손님은 진즉에 오지 않았을지도, 그때 그녀가 손에 굳은살을 만들어가며 연주했던 노래들이 어쩌면 지금 용사의 쉼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쉬면서 하세요. 다른 바드도 있으니까요.”

    “아하하, 그편이 좋겠어요…. 근데 아서 저건 뭐죠?”

    웨라는 자신의 금은보화라고 일컫는 ‘기타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를 자칫 떨어뜨릴 뻔했다. 조금 놀란 기색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갑판의 끝이었다.

    “선생님, 델타의 늑대들이 지상에서 앵커를 사출하여 밧줄로 부유선에 오르고 있습니다. 음, 중대 정도의 규모로 판단됩니다.”

    “등장하는 방식이 완전히 악질 해적이잖아….”

    “밧줄을 전부 베어버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그러다가 정말로 그들과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란베르크는 내 말에 수긍하더니, 뽑았던 검을 다시금 집어넣었다.

    20명, 30명, 아니 몇몇을 제외하고 델타의 늑대들 전원이 부유선에 오르고 있었다. 프리실라의 말대로라면… 델타 제일의 용병단이라는 이명을 놓고 ‘기다려야’ 할 텐데, 왜 쳐들어오고 있는 걸까.

    “빌어먹을, 뭔가 할 작정이구먼, 도망가야겠어.”

    “선생님, 외출입니까?”

    “응, 잠깐 자리 비울래, 머리 아픈 건 질색이라고.”

    “다녀오십시오.”

    갑판의 난간 끝에 다리를 올려서 이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다가, 전원 부유선에 오르는 단계까지 눈에 담는다.

    손님들은 이들을 보며 당연히 ‘델타의 늑대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드래곤 없이 부유선에 도착한 이들도 손님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음식을 먹기 위해서 찾아온 거 같은데.’

    ‘역시, 아네스. 우리 여관 음식을 적당히 팔아주고 오라는 의미인가.’

    ‘하하, 별걱정을 다했어, 그래.’

    그러나 델타의 늑대 중, 거대한 사내 한 명의 외침이 난간에서 요지부동으로 앉아있던 나를 곧바로 지상에 떨어지게끔 만드는 데 충분했다.

    “던전 할머니 표 최강의 이벤트, 델타의 강한 팔!”

    “야시장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용사의 쉼터 전원에게 도전합니다!”

    “용사의 쉼터 여관 직원 모두!… 우리 델타의 늑대들을 꺾어보시오!”

    호응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상을 향해 쇄도하는 중에도, 거친 바람이 귓등을 스쳐도, 부유선에서 들리는 환호 소리와 함성이 끊이질 않았으니까….

    마침 지상에서 할 일이 줄어든 ‘레드드래곤’은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을 튀기며 부유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정확히 내가 지상을 향하는 것과 녀석이 부유선으로 향하는 위치가 교차하면서, 나는 유유히 승리의 미소를 머금는다.

    힘과 대결에는 사족을 못 쓰는, 전투에 환장한 광란의 드래곤 ‘렌’이 아니던가, 마치 놀이터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기겁을 하며 놀기 위해 뛰어가는 모습과 유사하다.

    ‘노는 게, 제일 좋아. 같은 건가.’

    ‘저 빌어먹을 진지한 눈빛은 아무래도 마지막에 남을 나를 찾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마지막에 찾을 마스터는 부재중이란다. 하하.’

    여유롭게 지상에 착지한 나는 퍼플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퍼플은 나를 향해 갸우뚱거리며 두개골 회전하기를 대뜸 행했다.

    “하하, 나는 지금부터 마법으로 굽는 고기를 먹으러 갈 테야.”

    “달그락?”

    “퍼플도 함께 할까.”

    “달그락!”

    어차피 야시장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각자 어느 포차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손님은 ‘이번 모험은 어땠고, 저랬고.’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겨울 야시장의 밤을 동화 같은 모험담으로 이어갈 것이다.

    대충 바닥에 널브러진 판자에다가 퍼플의 손가락을 빌려, ‘용사의 쉼터, 여관 부유선은 현재 만석입니다.’라며 영혼이 담긴 구라를 적어두고, 퍼플과 손을 잡고서 야시장 거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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