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3화 (103/222)
  • 103화

    * * *

    [ 서대륙 델타 / 던전 할머니 여관 ]

    여관의 휴일을 맞이하고, 여관 일동은 던전 할머니의 ‘할머니’를 담당하고 있는 ‘노튼 아네스’에게 찾아갔다. 다름 아닌 야시장에 관해서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야시장 준비로 인하여 더욱더 바빠진 까닭에 거대한 상자를 몇 층이나 세워서 옮기는 ‘델타의 늑대’ 출신의 직원들. 그것을 보며 탄성을 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처럼 귀를 막고 있는 손님도 꽤 있네.’

    평소에도 바바리안을 포함한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가득한 곳이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막은 묵직한 둔기로 찍히는 기분일 것이다.

    “오, 단장!”

    멀리서 상자의 탑을 가장 높게 세워서 들고 가던 프리실라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거대한 상자들을 구석에다 옮겨놓고 콧잔등에 먼지를 털어내는 그녀.

    ‘잊지 마. 나는 언제나 단장의 부하라네.’라는 말을 건네고서 비장한 표정으로 여관에서 나갔는데,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네스를 돕기 위해서 던전 할머니를 찾아온 듯하다.

    “…단장, 우리도 곧 야시장 준비를 할 예정이지? 그때는 용사의 쉼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도와줄 테니, 내가 이곳의 일손이 되는 것을 이해해주면 좋겠어.”

    “프리실라, 이런 건 그냥 아무 말 안 해도 된다고요, 꼭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구두쇠 같잖아요.”

    “역, 역시…. 단장의 깊은 마음은 잴 수 없군!”

    프리실라가 말하길, 매해 열리는 ‘겨울 야시장 1등 상호’에 영광을 거머쥐는 것은 ‘델타의 늑대들이 운영하는 던전 할머니’라고 했다.

    프리실라가 ‘태양 새의 용병단’을 창설했을 때에도, 던전 할머니의 겨울 야시장 진출을 계속해서 도와주었다고.

    문제는 지금의 프리실라는 ‘용사의 쉼터 여관’의 직원이기 때문에, 델타의 늑대 측으로부터 알 수 없는 눈치를 받은 듯했다.

    끽 해봐야 던전 할머니에 들어오는 프리실라에게 ‘우와, 용사의 쉼터 직원이다!’라는 식의 추파를 던지는 농담이었으나….

    별거 아닌 것에 상당히 진지한 프리실라는 근래 느꼈던 최고의 스트레스였단다. 후에 이 이야기를 듣던 아이나와 길드원들은 상당히 폭소했다.

    “단장은… 단 한 번도 야시장에 용사의 쉼터로 진출하지 않았으니까, 이번 해에도 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제 홉스의 열띤 강의가 시작되고, 표정이 굳어있었던 거네요.”

    “그,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용사의 쉼터로 잠깐 열리는 그 야시장에서 장사해보지 않은 이유? 당시에 요리가 자신이 없었던 것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나는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즐기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재야의 아주머니(고수)를 상대하는 것도 무섭고.’

    이번에 열리는 겨울 야시장도 ‘어떤 음식이 나를 기다릴까.’라며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부유선을 끌고 야시장 진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프리실라는 내 얼굴에 근접하고는, 손날을 만들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필 그게… 드래곤 길드가 델타의 겨울 야시장에 출전한다면, 델타의 늑대들을 제치고 1등에 가장 유력한 후보다. 라는 기사가 나서 말이야.”

    “아네스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끔 우리 여관에다 자기 손님을 보내는 사람인데, 그런 기사가 뭐가 중요하다고.”

    “저길 보라고, 델타의 늑대들. 표정 말이네.”

    “꽤, 진지한 표정이잖아요.”

    “전장에서 뛰어다니던 그 늑대들의 표정이다.”

    “…갑자기 어디서 불타오른 건데.”

    “내가 볼 땐, 플로우들을 구하러 갈 때 말이야.”

    “그때가 왜요.”

    “부유선을 타고, 잔뜩 들뜬 나머지 우리 길드원들이 한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고.”

    “….”

    “반드시 돌아올 테니, 델타 제일의 용병단이라는 이명을 놓고 기다려라!’

    “…빌어먹을, 그때 프리실라 목소리가 제일 컸잖아요.”

    ‘하하, 아무튼 델타의 늑대 VS 드래곤의 전장을 겨울 야시장에서 벌일 생각인가 보더라고, 델타 제일의 용병단이라는 이명을 놓고서.’라며 돌연 눈인사를 건넨 그녀는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이 사단의 원흉은 결국 프리실라라는 거잖아.’

    * * *

    [ 던전 할머니 여관 / 아네스의 방 ]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여관 운영이나 겨울 야시장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제일 걱정이 되던 부분인 ‘부유선을 사용해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에 아네스가 말하기를.

    ‘움직일 수 있는 수레나, 이동수단을 쓸 것.’

    ‘즉, 부유선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말일세.’

    ‘다만 손님이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생각해보는 게 좋겠군?’

    부유선을 사용하여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오른손은 관자놀이를 향했고, 꽤 고풍스러워 보이는 카펫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네스의 방은 프리실라의 방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동물의 두상 같은 것도 없었고.

    가장 눈에 띄는 침대 옆에 놓인 사진. 애송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린아이 모습의 프리실라, 그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주름의 개수가 적은 아네스가 분명했다.

    “레르 마을의 말썽꾸러기였다.”

    “아, 프리실라 말인가요.”

    “그래, 커서 저렇게 될 줄 알았고.”

    “레르 마을은 어떤가요.”

    “많이 좋아지고 있어, 여전히 제국에서는 손댈 기미가 없지만.”

    “외곽지역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델타니까요.”

    레르 마을은 아네스의 고향이자 프리실라가 자라온 터였는데. 델타가 상당한 성장세를 이루고 외곽지역의 발달을 미루다 보니 점차 마을의 기능을 잃고 있었다.

    프리실라가 구태여 델타를 향한 반항이라고 치자던 아크론의 편에 선 것도, 전부 레르 마을을 위한 것이었다.

    이야기 중에 아네스는 기침을 하며 옅은 피를 이불에 뱉어냈다. 당장이라도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채로 여관 홀에서 진두지휘해야 할 텐데.

    지금처럼 갑옷이 아닌 튜닉 같은 것을 착용하고는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까닭은 전부 몹쓸 병 때문이었다.

    “건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직 현역이네.”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걸요.”

    내가 회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부상에 관련된 것’이지 ‘이미 죽음을 향하는 운명’을 치료해 줄 방법은 없다.

    ‘마력이 이동하는 혈로가 대부분 손실되거나, 끊겨있다. 게다가 심장에서 보내는 마력의 순환이 너무나도 얕다.’

    ‘젊었을 적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저는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네스.’

    더군다나 불사의 기적을 적용할 수 있는 건 ‘나와 녀석’의 해당 사항. 내가 아네스에게 치료를 한다는 것은 레니가 렌을 회복한다는 것과 같다. 마안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상’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표정이지만, 괜찮다네.”

    “다음부터는 사람 속을 훤히 들여다본다는 말 앞에 ‘델타의 아네스처럼’이라는 말을 꼭 붙여야겠어요.”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곧 죽을 것 같지도 않아.”

    “제가 봐도요, 더 오래 사실 겁니다. 노쇠해서 죽는다는 느낌으로다가.”

    “크하하.”

    의자에 기대어 있던 아네스는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무엇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아네스를 쳐다보았다.

    “근래에 수집한 정보라네.”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시네.”

    “가볍게 몇 장만 읽어보게나.”

    아네스는 서랍에서 100장은 족히 될 법한 양피지 뭉치들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나는 양피지로 되어 있는 종이 덩어리의 맨 위, ‘델타와 전제국의 관계’라는 글자를 똑똑히 보게 된다.

    ‘아네스가 정보를 준다는 것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휘말리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라는 말이 떨어졌다.

    ‘전제국.’

    ‘전제국’이라는 말은 곧 천계의 ‘페지르’를 의미하기도 했는데,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정교 ‘페지르’라고도 한다.

    교황으로부터 이끌어지는 아칸 내에 가장 오래되고 신뢰받는 정통교회. ‘지고한 시작의 창조주’을 믿는다. 많은 종교 중에서도 대륙에 가장 오래되며, 역사적으로 길이 보존될 만큼 전통이 깊다.

    여기서 델타와 전제국의 관계란 곧 ‘연결점이 없다.’는 것인데, 델타는 페지르의 ‘신성 혈맹 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래에 델타로 찾아오는 페지르의 일원들이 있다. 라….”

    “추가적인 문제로, 심지어는 ‘이그리스 십자회(egris―Brotherhood)’의 얼을 보았단 사람이 몇몇 있더군.”

    “이그리스 십자회(egris―brotherhood)”

    페지르 교황청에 있어서 상당한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다. 성법자의 최고 권위 ‘상품 추기경 천사자 아이올레드 카미드헬러’가 이끄는 ‘하품 심판관’들로 구성된 집행부.

    신성한 교회 이름에 먹칠한 이단을 파멸하는 자비 없는 심판관. 이들은 이그리스의 묵시록을 통해 ‘계약 천사’들과 계약하여 어마어마한 기적을 만들어 낸다.

    마녀들로 구성된 ‘황동의 언덕’의 씨앗을 이들이 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업적을 남긴 이그리스 십자회에 대해서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정교소속 관계자들과 신도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시내에 보지 못했던 성당들이 여럿 생겼다고 하더군.”

    “설마 해서 묻는 건데, 델타가 신성 혈맹 제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압박을 가하기 위해 찾아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그런 가벼운 이유는 아닐 걸세, 다만 이그리스 십자회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아네스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걱정을 할 정도라니.”

    “헤르메딕트 성가대라네.(harmedict choir)”

    “오, 이런.”

    “페지르에게 있어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자네도 알고 있으니, 이 늙은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걸세. 자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관자놀이를 당기게 만드는 생각.”

    “설마요, 아니겠지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델타는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방문을 공식 날짜까지 공개했다네. 그들을 대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일종의 사교 같은 것일지도.”

    “델타의 황제가 페지르의 방문이라 그저 들뜬 건 아닐는지, ‘페지르에서 오시다니 어서 오십시오!’ 같은.”

    “크흠…. 그래도 우리가 삶을 잇는 터, 제국의 황제라도 그건 못 참지.”

    “아하하, 저도 못 참을 것 같네요.”

    ‘자네와 나는 닮은 점이 있어,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야. 게다가 고민은 남들보다 많은 편이라 평생 두통을 안고 살지.’라는 아네스의 말에 극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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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메딕트 성가대(harmedict choir)’

    페지르 교황청에 존재하는 최고의 성가대로 ‘상품 추기경 천사자, 헤르메딕트가 만 명의 성법자들과 함께 헤르미딕트 성가를 부르게 되면 ’성역(holy place)‘과 ‘성역(holy work)’을 펼쳐낸다. 이 성역은 페지르교에 속한 모든 일원에게 거대한 기적을 부여한다.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만 명이 모여서 ‘기적을 현세 위에 표방한 성역을 창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행하는 어떠한 종류의 전쟁이든 성전(holy war)으로 탈바꿈하여 숭고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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