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2화 (102/222)
  • 1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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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 길드’의 제휴 여관.

    ◈ 겨울나기 시작, 플로우들의 선물을 받아보세요!

    ◈ 새로운 메뉴 ‘모멧티를 가장한 물고기 수프’

    * * *

    겨울이 찾아왔다. 콧잔등에 올라탄 시린 공기, 이전과 다르게 털이 달린 두꺼운 코트를 입고 다니는 모험가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창문에도 서리가 붙으며, 마당에서 서서히 걸어오기 시작하는 모험가의 하하, 호호, 따뜻한 날숨의 입김, 시원한 케피탄 맥주를 금방이라도 뜨겁게 만들 것 같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로브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걸걸한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브라운 아저씨는 ‘이런, 쯧쯧. 모험가들이 이 정도 추위에 떨다니!’라며 주변 모험가의 잔뜩 찌푸린 미간 사이에 놓여있기 바빴다.

    “젠장, 아저씨는 마브리우스 출신이잖아요!”

    “유난히 심한 건 우리가 아니라고요.”

    “으하하, 미안하네.”

    그렇다. 사실상 델타에 찾아오는 겨울은 사뭇 다르다. 상당히 춥다고 할 수 있었는데, 델타의 빠른 도시화로 인하여 주변의 제국들보다 겨울철의 온도가 낮은 편이었다.

    델타의 상징적인 동물이라 부르는 ‘잿빛 늑대’ 또한 이러한 델타의 겨울 덕에 산맥을 돌아다니며 번식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연이 가져다주는 마력 환경은 유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데, 잿빛 늑대처럼 특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생성되는 ‘냉기의 마력’이 생존율을 높여준다. 더욱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이었다.

    “하하, 임자야, 임자야! 이 눈사람 좀 보아라!”

    “저 녀석…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눈사람이나 만들고 있다니.”

    “좀, 아이리스… 놀지만 말고 도와줘요!”

    “플로, 플로~”

    보는 것처럼, 겨울이 찾아와 완전히 눈이 뒤집힐 정도로 신이 나버린 아이리스와 플로우들은 내리지도 않는 눈을 마법으로 만들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올해가 유난스럽게 추웠던 나머지 ‘외부 테라스는 사용하지 않을까 싶은데.’라는 내 의견에 많은 손님이 한입을 모아 ‘렌이 있잖아. 나는 벌벌 떨더라도 겨울 버전 용사의 쉼터를 즐겨야겠는데?!’라고 하더라.

    고로, 외부에서 자신의 마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고유결계를 만들어 온기가 자연스럽게 머무를 수 있도록 마법을 장치하고 있는 렌이 있었다.

    ‘마스터, 이 정도면 제게 상을 줘야 한다고요.’ 볼에 공기를 가득 채워 넣은 심술 가득한 표정의 렌에게 ‘이 정도면 되겠어?’라고 장난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그락, 달그락.”

    “퍼플, 무슨 일이야.”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아, 그래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온도가 낮아진 관계로 지면이 아주 미끄럽습니다. 아무래도 마차의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처를 해야 할 듯한데, 명령을 내려주십시오.’라는 해골의 말을 단숨에 이해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렌.

    “마스터, 이제 해골 언어를 완전히 숙달하셨네요.”

    “아니야, 가끔 요리하다가 잔뜩 화가 나버린 주방장들의 달그락 소리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니까. 음… 해골들이 흥분하면 방언이라도 튀어나오는 걸까?”

    “…에, 엣? 저, 저도 모르는데요. 드래곤이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셔도… 제 분야를 이미 아득히 초월…. 마, 마스터!”

    눈살을 찌푸리며 여관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다고, 바로 가다니!’라는 렌의 외침이 들렸으나, 딱히 얻을 것이 없는 붉은 용의 말과 이어지는 단골들의 폭소 소리를 뒤로한다.

    녀석이 깔아 두었던 온열 시스템이 멀쩡하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외부로 나왔는데, 아이리스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플로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플로, 플로!”

    “오, 플로우 고마워.”

    “하하, 고마워, 플로우.”

    “고맙다네, 플로우.”

    4마리의 플로우가 분주해진 까닭은 저물어가는 하늘과 함께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인데 다름 아닌 ‘부여 마법’을 의미했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여관 내부는 일찌감치 만석인 상태였고 여관 외부의 경우 ‘동사로 죽을 각오를 하며 케피탄 맥주를 마시려 드는 손님’을 위해, 보일러 역할을 하는 마법을 마당 전역에 설치할 수 있도록 렌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렌이 흥분하면 온도가 터무니없이 올라….’

    어쨌거나, 마지막 서비스로 4마리의 플로우가 여관 내·외부 상관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추위를 약간 덜 타게 하는 정도’의 부여 마법을 손님에게 적용해주는 것이다. 무려 24시간이나 지속이다.

    “이번 야시장은 어마어마하겠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케피탄 맥주를 마시며 가득 취해있는 사람들, 오늘의 메인 주제는 ‘겨울철 야시장’에 관련된 것이었다.

    야시장이야 늘 그렇듯이 달(별)에 한 번씩 열리는 델타의 축제가 아니던가, 그러나 겨울에 열리는 야시장은 다른 계절 중에 열리는 야시장과 다소 크기가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여름이 끝이 날 무렵. 모험가들은 델타로 돌아오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에 델타에서 열리는 야시장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진다는 것이다.

    여름은 ‘모험가의 계절’로 델타의 모험가들이 고대의 유적들을 찾기 위해 인파가 줄어드는 계절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당연하게도 여름의 야시장이 규모가 가장 적은 편이다.

    ‘모두가 모험을 끝내고, 휴식하는 계절이지.’

    모험가들은 기나긴 모험을 마치며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었고, 자영업자와 상인의 경우는 훨씬 더 바빠질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마당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장을 보며 손짓을 하는 쥬드가 보였고, 나는 이야기하던 손님에게 눈인사하고는 그에게 조금씩 걸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야시장’에 관련된 소잿거리를 듣더니 피식 웃고는 나를 향해 엄지와 검지로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자영업자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시기라는 건가.”

    “쥬드,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어, 하하.”

    “쥬드도 이번 겨울은 휴식입니까.”

    “우리 사장님은 야시장으로 조금 더 벌어보려고?”

    “흠…. 야시장이라.”

    ‘야시장’ 나는 용사의 쉼터를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야시장에 용사의 쉼터 음식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요리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서대륙에 내로라하는, 혹은 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자영업자들의 특별한 설정을 가진 상호는 물론, 요리사들까지 찾아오는 곳이 델타의 야시장이었다.

    메이를 포함한 다양한 마법 기자들도 취재를 위해 찾아온다는 야시장에 ‘고작 리소토’만 특출하게 잘하는 사장이 도전한다는 것은 웃긴 일.

    “…지금은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홉스 놀랬잖아. 언제부터 옆에 있었던 거야.”

    “금방 사장님 옆에 도착했습니다요. 하하!”

    이어서 홉스에게 등을 떠밀려 여관 내부로 다시 들어가고 있는 나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쥬드의 ‘이봐, 주문은 받고 가야지!’라는 말에 블루가 나타나 쥬드의 곤란한 얼굴을 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윽고 여관 내부로 들어온 나는, 홉스로 인하여 홀 중앙에 배치되어있는 거대한 칠판 같은 것(?)으로 끌려갔다. 이미 홀에 있는 손님들은 칠판 같은 것에 집중된 상태였고.

    이건 또 언제 산 것인가. 알고 보니 ‘의뢰 게시판’이었더라, 의뢰용지가 한 번이라도 붙어있지 않을 때가 없어서 게시판의 본모습을 몰랐다.

    ‘쳇, 매번 저랬으면 좋으련만.’

    대충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 같은데, 옆에서 자꾸만 히죽히죽 웃는 렌과 아이리스 때문에 집중할 수 없다.

    ‘과연 저 녀석들이 야시장에서 사고를 치지 않을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내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높을까.’

    이렇게, 저렇게, 이렇고, 저렇고, 이것, 저것 설명하기 바쁜 홉스의 세미나가 펼쳐졌다. 아무튼, 사장의 결재가 떨어지지도 않았으나 ‘용사의 쉼터, 겨울나기 야시장 프로젝트’가 시작된 듯했다.

    ‘그래서, 마차는 무엇을 사용할 생각이야, 퍼플은 자기 마차를 상당히 아낀다고.’라며 옆에서 히죽거리던 렌의 볼을 꼬집으며 홉스에게 말했다.

    퍼플도 자신의 마차가 야시장에서 파괴되진 않을까 하며 모공도 없는 주제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거 보라고, 퍼플의 안쓰러운 표정을.”

    “사장님, 저는 ‘마차’를 사용하자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그렇담 너의 열띤 강의는 뭐였을까.”

    언제부터 쥐고 있었던 걸까, 프리실라의 지휘봉. 프리실라의 지휘봉이지만, 프리실라에게 상당히 쓸모없는 물건으로. 그것의 끄트머리는 칠판에 그려진 어느 모양에 다가섰다.

    ‘젠장… 란베르크가 가져온 부유선이잖아!’

    ‘홉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여관 기둥에 등을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멋진 척 담당인 란베르크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여관 일동, 부유선의 실제 주인은 란베르크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당 위에서 자체 마력으로 떠 있는 거대한 부유선, 란베르크의 유대 깊은 집안 ‘블헤이드 가문’의 것이었다.

    지금은 드래곤 길드의 문양이 새겨진 전투선이 되었으나, 어쨌거나 원천은 란베르크에게 있다는 것.

    ‘집에 여러 대가 있으니, 하나 정도는 선생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라고 했다. 암, 똑똑히 기억한다.

    그러나 저 웅장한 부유선에 있는 함장실은 내게 가시방석임이 틀림없다. 혹여 지나가던 란베르크의 부친께서 볼까 봐.

    조용히 벽에 기대어 ‘용사의 쉼터, 야시장 뭐시기.’를 듣고 있던 란베르크. 홉스를 포함한 홀에 있는 인원이 쳐다본다. 란베르크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눈치를 보는 이유가 뭐지, 저건 선생님의 물건이다.”

    “그렇게 쉽게 허락하지 말라고, 란베르크.”

    “본 여관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영광이지요. 선생님.”

    약간의 웃음을 보이는 란베르크의 반응으로 인하여, ‘역시 진짜 귀족은 다르군, 하거먼 필스 따위와는 격이 틀려!’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블헤이드 가문은 그릇이 달라, 괜히 최강의 검술 명가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고!’와 같은 란베르크의 집안을 높게 평가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친애하는 아버지에게. 검을 빼지 않고도 가문의 명예를 드높였습니다.’라고 머릿속의 백지에다가 활자를 채워가는 란베르크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빌어먹을, 저건 포장마차라는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커도 너무 컸다. 드래곤 길드의 전원 입장에다가, 여관직원들을 집어놓아도 빈자리가 있다. 심지어는 렌이 용형으로 올라타도 빈자리가 있었으니.

    실로 여관의 크기와 비슷하다. 어쩌면 부유선이 더 클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저 부유선으로 야시장에서 포장마차를 대신하겠다고? 대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기획이다.

    “추가적인 야시장에 관련 기획안을 조만간 제출하겠습니다.”

    “…그래. 아 참 홉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하, 해고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사장님.”

    “내 머릿속엔 말이야, 여관 사람 항목 중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가….”

    이 마당을 포함하여 고급 자재로 만들어진 본 여관의 대통령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이 몸의 말이 끝나지 않았으나, 홉스는 성사된 계획에 들떠있는 망할 붉은, 푸른 용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축하해, 이 망할 고블린아, 너도 이제 비정상 카테고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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