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1화 (101/222)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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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나의 터, 나의 고향.

아템과 지옥 같던 구멍 생활을 끝내고, 녀석과 함께 이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시들어 있던 서로의 감정을 보듬기 바빴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곳, 이 세계에서 첫 시작을 이룩한 섬. 우리가 해냈던 일들의 남은 자취를 생각하고, 또한 기억하며 어깨를 토닥이던 이들.

‘나의 고향, 메르헨.’

나의 고향 메르헨. 사실 한국이 내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 메르헨이 내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선물이라도, 챙길 걸 그랬나.’

탐험가라는 업에 종사하거나, 내로라하는 뛰어난 모험가들도 ‘메르헨’에 대한 정보는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신비로운 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신이라고 불리는 작자가, 거대한 기적의 힘을 지닌 이방인을 숨기기에 적합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시금 추측해보면 메르헨은 무언가를 꼭꼭 숨겨두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다.

메르헨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꽃들이 존재한다는 신의 화원이라 불리는 곳. 세간에 알려져 있는 전설은 그랬고, 실제로 그곳에서 지냈던 나도 그 전설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니까, 레니가 오면 딱 좋아할 곳이다.’

꽃이라면 파르파르 꽃에 의해서 관자놀이가 물씬 당겨오기 마련이었으나, 다행히 신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메르헨에서 망할 파르파르의 꽃을 볼 수 없었다.

애당초, 내가 파르파르의 꽃을 알았더라면 엑스칼리버에서 피었던 그것을 먹지도 않았겠지. 그러니까 신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이곳도 모든 꽃이 존재한다는 말이 마냥 진실인 것은 아닐지도.

보기 좋게 부풀려진 전설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마을과 강이 이어져 있고 수많은 꽃으로 뒤덮인 메르헨은 ‘신의 화원’이라는 말을 붙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다.

‘무엇보다, 녀석과 나의 고향이니까.’

“자, 이제 숲을 지나 볼까.”

거대한 섬 속, 그것을 반으로라도 가른 것처럼 거대한 숲이 하나가 있었고. 황혼의 숲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쭉 따라가면, 황혼의 강을 넘어 정원사들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종족은 외부와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데, 모두가 한입을 모아 이야기하길 상처받는 일에 지친 영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머무는 곳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구가 천 명이 되지 않은 이곳에는 왕도, 신도,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도 없다. 그저 이곳은 휴식과 자유만이 존재할 뿐.

‘그러니까… 황혼의 숲을 지나서~….’

‘그… 그다음은 뭐였을까.’

4개의 거대한 대륙으로 나뉘는 가운데, 그 주변에도 대륙이라 불릴 법한 정말 다양한 섬들이 있다.

게다가 이름 모를 섬들이 줄을 치고 있는데, 이곳에서 누구 하나 섬의 주인이라고 박박 우기기라도 한다면….

정말 그 섬들이 선착순으로 ‘내가 주인입니다.’라고 외쳤던 사람이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농담이긴 하다만. 그만큼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는 ‘주인이 없는 섬’이 많다는 점인데, 그도 그럴 것이 아칸이라는 이 세계는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거대했기 때문이다.

메르헨은 더욱 그랬다. 지금도 주인이 없는 섬이고, 앞으로도 주인이 없을 섬이었다.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정원사가 되어 피어나는 꽃에 생명의 숨결을.

어렵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 아름다운 곳을 소유하고자 하는 존재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니까.

‘젠장, 오랜만이라 기억이 흐릿한데.’

분명 ‘숲’을 지난다. 라는 점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지만, 정확히 아템이 잠든 위치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노래의 가사가 ‘황혼의 숲을 지나서, 작지만 넓게 펼쳐지는 얕은 강에는.’ …그러니까 녀석과 불렀던 그 노래의 뒤 가사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 파랑새.”

눈앞에는 어느새 파랑새가 다가와 있었다. 녀석이 얼마나 반가운 존재일지 모른다. 나는 찌푸리던 눈매를 바로잡고 파랑새에게 입을 열었다.

“얘야, 가능하다면 지금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안내를 받고 싶은데.”

파랑새는 내 손등으로 올라왔고, 손을 올려 파랑새가 내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닿을 수 있게끔 해주었다.

메르헨에 사는 파랑새는 굉장히 특별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처럼 파랑새는 길조를 의미하며 파랑새가 대상의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대면 대상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아템과 나는 심각한 길치였다.

늘 파랑새들에게 도움을 받아 마을 어귀를 찾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을 때쯤이 되자, 보란 듯이 나타난 파랑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서 아템에게 데려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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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숲.

해가 지고 어스름이 찾아올 때, 푸른 잎사귀를 거닐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황혼의 숲이 심장처럼 대지의 고동을 틔고 숨을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던 반딧불이가 지면에서 허공으로 날갯짓을 하며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마워, 늘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줘서.”

파랑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고맙다는 인사조차 듣지 않고서 날아가는 것도 여전해.’ 그리고 얕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아템이 보였다. 내 반쪽이 보였다.

아템을 머금은 아주 작은 강은 꼭 그녀를 위한 곳 같다.

매년 찾기 어려운 이곳에 와서, 바지가 젖을까 하며 미간을 찌푸렸던 나였지만. 그래도 신이 말했듯 천생연분이라는 농담 앞에 구겼던 얼굴을 펼 수밖에 없었다.

어스름이 찾아오고 강마저 붉은빛으로 녹아들어야 수지가 맞을 법한데, 유독 어울리지 않게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주변을 반사하는 강은, 분명 아템의 보금자리였다.

강으로 들어가, 녀석을 바라보았다. 란베르크가 보게 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문의 의지보다 더욱더 훌륭한 검이라 할 것이 분명했다.

은빛의 고운 결을 가진 검 날은, 아템의 신념을 의미했다. 나를 지키겠다던 신념이었다. 그 끝에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손잡이, 다름 아닌 내 손때가 묻은 자취.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 내 마검의 뭉치가 맞다.

나는 아템의 앞에 놓인 작은 바위에 앉았다. 노르트를 위한 자리였다. 이제는 아서를 위한 자리가 되었지만.

‘네가 말했던 여관 말이야.’

‘다 좋은데, 너무 시끄러워졌다고.’

‘어이,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란 말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녀석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노르트, 나 말이야. 조금 쉬어도 될까?’

메르헨에 있었던 우리가 대륙으로, 사계의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날이었다.

녀석이 했던 말이 그저 ‘잠을 좀 자도 될까?’라는 말로 이해했지만, 그 의미는 정확하게 빗나갔다.

‘미안한데, 이제 나 좀 죽어도 될까?’와 비슷하다. 가장 의지했던 전우가 듣기에 거북한 소리였단 말이다.

노르트와 아템, 그리고 노르트 아템. 우리는 이 이야기의 파국을 막는 장치.

이야기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저 신의 의지에 따라 결말을 유도하는 수법이었다.

그 장치가 망가질 때쯤이 되어버리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부품 하나는 스스로 부서지길 바랐다. ‘나 때문에, 그대마저 부서지면 큰일이니까.’라며.

‘그러니까, 여관 같이하자고 했잖아….’

나는 멍하니 턱을 괴고서 강에 꽂혀있는 아템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혼잣말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 절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니까.

물론 깨워보려고 저 시니컬한 검을 빼어다가 허공에 휘둘러보았던 적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느낌은 어느 시장에서 파는 검과 다른 것이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검은 더는 ‘아템’이라고 부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네가 가보고 싶다 했던, 바다거북 여관 말이야.”

“다녀 와봤어, 글쎄 이름이 구름바다로 바뀌었더라.”

“네 말대로 음식은 괜찮았는데 말이지, 지금 내 여관 주방장들이 더 잘해.”

“네가 깨어있었다면…. 지금쯤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겠다.”

“아 참, 이빨을 긁는 습관 말이야. 고쳤다고.”

“망할 보상 효과로 관자놀이를 누르는 습관이 생겼지만.”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었던 녀석이었기에 지금 이렇게 아무런 대답이 없는 모습도 어색하지는 않았다.

“보고 싶어. 아템.”

“제에길…. 뜬금없이 토악질 나는 소리를 해버렸네.”

우리의 순간들을 되새겼다. 잊지 않기 위하여.

그 지옥 같던 나날들을, 절망의 피로 물들어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서로의 등에 닿았던 그 체온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나와 메르헨에 도착하여,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던 그 짧은 시간을 떠올렸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여행을 했다. 그 끝에 녀석은 나에게 ‘아서’라는 이름을 주고서, 끝내 이 이야기는 둘이 아닌 혼자서 하게 되었고.

“고마워, 내 검으로 있어 줘서.”

“가봐야겠다. 다음에 또 올게, 아템.”

나는 무릎 아래로 젖어버린 바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바위에서 일어났다. 꽂혀있던 아템의 아래에는 발견하지 못한 꽃이 피어있었다.

‘이 꽃은 뭐지, 작년에는 보지 못했는데.’

‘망할 파르파르만 아니면 된다고.’라며 얼굴을 들이댄 뒤, 물에 반은 잠겨있던 그 꽃을 바라보았다.

꽃잎은 강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강 위에 피어나있는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자랐다가 수면 위로 꽃의 얼굴이 피어난 것이 분명했다.

은빛을 머금은 꽃잎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의 꽃이었다.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히아신스(hyacinth)를 닮아있었다.

“참 너다워. 작별 인사도 특이하게 하네.”

어스름은 사라지고, 드넓고 푸른 밤을 등지며 숲을 걸어 나왔다. 반딧불은 더욱 신이 났는지, 허공에 청초한 별을 대신하듯 주변을 날아다닌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그 인기척은 꽤 익숙했던 기운이라 최대한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고개를 숙였다.

“노르트?”

“어, 어, 어라, 숲에는 무슨 일이야.”

“굉장히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데요.”

“하하, 에르미 무슨 일로 여기에.”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죠!”

“아아, 아템을 보러왔어.”

“근래에 인사도 없이, 찾아왔으면 마을에라도 들리던가!”

그녀는 ‘에르미’였다. 메르헨의 정원사로 마을에 거주하며 이곳에 자라나는 생명을 관리했다. 게다가 잔소리가 심하다. 아템과 나는 에르미의 잔소리를 가장 무서워했으니까.

“아니야, 조금 여유로울 때 찾아오려고.”

“사람이 정말! 떠난다는 말도 없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안부 좀 전해줘.”

“후, 그래서 아템을 잘 만나고 왔나요?”

“응, 오래 있진 못했지만 말이야.”

“아템은 좋은 친구를 두었네요. 누구한테는 안부도 없는데.”

“…하하, 그나저나 에르미. 궁금한 꽃이 있는데 말이야. 은빛의 히아신스… 아니지.”

“…히아신스? 들어보지 못한 꽃인데, 은빛이라.”

“은빛의 꽃이야. 메르헨에 피는 꽃인가?”

“은빛의 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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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빠져나오며, 에르미에게 전하지 못했던 근황을 이야기했다. 에르미는 계속해서 마을에 잠시 머물다 가라고 권유했지만,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한다고 전했다.

그녀의 어떤 가족들과 지내냐는 말에, ‘붉은색 용이랑…. 파란색 용이랑…. 후. 그냥 메르헨으로 돌아올까.’라는 대답이 그녀를 폭소케 했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에르미가 ‘그래도,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라는 말을 뱉으며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에르미의 이명인 ‘메르헨의 매운 손’을 다시금 떠올리는 순간.

“가볼게, 에르미.”

“네, 다음엔 가족분들과 함께 오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마을 사람에게 안부 전해 줘.”

에르미가 숲 외곽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 길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에르미가 말했던 아템의 아래에 피어 있었던 꽃의 정체를 생각하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은빛의 꽃잎을 가진 꽃이라면 ‘프리게’라는 꽃밖에 없어요. 메르헨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꽃인데 그걸 어디서 보셨을까?’

에르미의 그 음흉한 미소와 함께 놀림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아템에 아래에서 자라나고 있더라고.’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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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게(prighe), ‘은빛의 여인’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꽃말로는 ‘또 만나요, 내 사랑.’과 ‘그대의 유일한 연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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