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0화 (100/222)
  • 100화

    * * *

    ‘대의의 신전’

    웅장한 신전의 자태는 제국의 위상을 알려주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신전이라는 것이 수많은 제국에서 셀 수 없이 많다고 하지만, ‘대의의 신전’ 만큼은 경우가 틀렸는데.

    이름만큼이나 근사한 열한 개의 회색빛 기둥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다름 아닌 ‘아크론 제국과 데크 에던 제국’의 것이었다.

    그렇다. ‘아크론과 데크 에던의 것’이다.

    대의의 신전은 데크 에던 제국의 중심부,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황제의 성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지하였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권력가나 정치가들도 대의의 신전이라는 건축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곳에는 별이 뜨고 진다는 의미의 한 별(달) 중 한 번, 서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아크론과 데크 에던 정권의 수장들이 모였다.

    그들이 대륙에 내로라하는 검사처럼 옆구리에 아주 희귀한 검을 차고 다니는데, 그것은 실제 검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고, ‘영웅’이라고 불리는 최고 등급의 기사를 의미했다.

    실제로 자신의 생명줄을 담당하는 수호 기사를 타인에게 설명할 때. ‘내 검’이나 ‘내 칼’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사실상 물건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서대륙의 장로들.

    서서히 옆구리에 걸어 다니는 검을 차고 등장하는 장로들이 대의의 신전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쇠했으나 당찬 발걸음이 그 말을 대변한다.

    그들은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착용하는, 얼굴의 앞면을 가릴 수 있는 새하얀 천을 착용한다.

    새하얀 천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통과되어 보이는 주름이 빗어진 얼굴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야욕과 야망이 담긴 웃음이 가득하다.

    10명의 장로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치 페지르의 교황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거대한 왕좌와도 같은 것에 앉기 시작했다.

    거대한 신전 내부는 그들의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웅장함으로 울려 퍼졌다. 걸어 다니는 검들은 그 옆으로 서서 자리하고는 조용히 이들을 수호한다.

    “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그중에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던 왕좌에서 울리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모두가 똑같은 행세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 이들의 얼은 이들끼리만 아는 비밀놀이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델타산맥에 드리운 그림자는, 어떻게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그 그림자를 모두 덮었지요.”

    “그렇다면, 별이 열 번이 지기 전에 가능하겠군.”

    “아, 아. 충분합니다.”

    원형을 이루고 있는 10개의 왕좌 중앙에는 거대한 원탁이 있었다. 하나의 대륙이나 제국으로 연상되는 모형이 그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새하얀 천안에서 바라보고 있던 것의 정체였다.

    거대한 산맥이 그 모형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아, ‘델타 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 ‘델타 제국’이 틀림없었다.

    델타산맥의 주변에는 인구가 몹시 작은 마을 몇 개가 있었는데, 외곽지역과 비슷한 경우로 마을의 발전이 거의 없다시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주변 말이네. 마을 인구의 유동은.”

    “또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바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가 생을 마감하기 한 별(달)전부터 계획은 끝나있었습니다.”

    폭소를 터트렸다. 어디서 흐르는지도 모르는 광기가 담긴 그 웃음은 분명 좋은 것이 하나 없는 악의가 담긴 것이었다.

    뒤이어 많은 이들이 그 웃음을 웃음으로 화답한다.

    “이런, 이런. 결국 죽어버렸다는 건가.”

    “이용 가치가 많았는데, 성하께서는 아쉬우셨나 보군요.”

    “아쉬워? 아쉽다…라. 자네는 내 웃음을 그렇게 이해했는가.”

    “성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저의 불찰을 용서하소서.”

    비범하고도 위엄이 가득한 권력자들 사이에서 ‘성하’라는 의미로 불리는 자는 장엄한 왕좌에서 일어났다.

    모형 산맥에 있던 ‘큰 바위’로 간주하여지는 작은 말을 손아귀에 쥐더니, 바닥으로 떨어트려 무자비하게 밟아 산산조각을 낸다.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르지 못하지만 조용한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규칙성을 찾더니, 입을 열었다.

    “산적이라는, 한낱 가축의 배설물보다 못한 존재가.”

    “서대륙을 장악하고, 사계를 집어삼킬.”

    “위대한 제국 ‘비르테리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생각하면! 짐이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잖은가.”

    사악한 웃음소리가 신전 내부를 계속해서 울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수많은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마치 충성과 존경을 모두 받치겠다는 느낌으로.

    왕좌의 반은 ‘아크론’의 상징색이라고 할 수 있는 푸른색, 반은 붉은색으로 ‘데크 에던’의 상징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을 토대로 ‘아크론’과 ‘데크 에던’은 완전한 주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두 개의 세력이 함께 앉아 같은 웃음을 짓는다는 것은 특이점이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중앙. 가장 거대하고 장엄한 왕좌의 색은 무색이었다. 색이 없음을 채워주는 듯. 그것을 대신하여 자주색의 거대한 제국 깃발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아크론이나 데크 에던의 국기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위대한 제국이라고 불리는 ‘비르테리아’의 상징만이 대의의 신전에 권력처럼 유일무이하게 존재한다.

    그 무색의 왕좌에 다가가, 비르테리아의 상징을 바라보며 양손을 뻗어 고요히 입을 열었다. 조용한 신전에는 그의 모든 음절이 똑똑히 울릴 수밖에 없었다.

    “두 제국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9개의 왕좌에 앉아 있던 모두가 제자리에서 일어나, 권력의 중심이 뱉은 거창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겸허히 받아들인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사계의 위엄을 잉태한 성하를 위하여.”

    “대륙에 떨칠, 비르테리아를 위하여.”

    지금까지는 잡담에 불과한 회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모형은 그 누가 보더라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델타를 빼다 박은 것처럼 흡사하다.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르테리아의 상징이 델타를 빼다 박은 모형 곳곳에 놓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침략과 정복을 의미했다.

    비르테리아라고 불리는 제국은 서대륙에서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 속에 들어 있는 데크 에던은 심지어 델타의 건실한 동맹국이자 혈맹이었다.

    혈맹이라는 말은 곧 혈판을 찍어 굳게 맹세를 다짐한 숭고한 관계. 델타를 모방한 모형에다 비르테리아의 상징이 놓일 때마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데크 에던의 상징이 놓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델타의 군사력을 신경 쓸 필요는 없겠는가.”

    “두 개의 제국이 밀어붙이면 아주 쉬운 일이지요.”

    “하물며, 이름난 전사들은 대게 은퇴에 가까운 상태이니.”

    “암, 100일 전쟁의 아네스도, 힘을 못 쓴다고 들었다.”

    강국이 사방을 꿰차고 있는 서대륙에서 델타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제국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명실상부 델타의 늑대들이었다.

    ‘노튼 아네스’ 그 이름은 델타의 강함을 상징하는 그 자체였다. 델타의 늑대들을 이끈 우두머리 늑대.

    델타의 주적이었던 ‘비루스 제국의 정예군단’을 단 100일 만에 완전히 격파한 비공식 SSS등급의 인물이다.

    계속해서 듣고 있던 비르테리아의 황제는 자신의 주름진 손으로 턱을 괴더니, 조금씩 입을 열었다. 그 속에서 나오는 모든 음절은 상당히 무겁고, 단단하다.

    “경제력. 델타는 근래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경제력과 함께 중심 권력의 나태함도 늘었으니.”

    “쯧, 쯧. 타성에 젖은 이들이여….”

    “짐의 왕좌가 부르짖는 아성과 함께 녹아내릴지어다.”

    대의의 신전에 있는 정복자들의 원탁, 그 끝에 이들의 위엄을 보여주는 거대한 문이 열렸다. 이들과 같은 행세를 하며 천천히 걸어오는 자.

    “아, 마침 오는군.”

    단절된 걸음, 새하얀 천이 얼굴의 앞면을 가리고 있기에, 그 역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10명의 장로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오는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의의 신전이란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큰 공을 세운 권력가들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내로라하는 영향력을 지닌 자들도 쉽게 오를 수 없는 야망의 공간.

    원탁 앞에서 서서히 무릎을 꿇고는 장로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장로들은 주름진 손으로 그를 향해 조용한 박수로 환영한다.

    “축하하네, 11번째 장로가 된 기분이 어떠한가.”

    “성하를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일 뿐입니다.”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되었는가.”

    “침공에 문제가 될, 두 가지 요소의 해결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온갖 여관에서 정보를 모으고 다녔으니.”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그림자 기둥’은 짐의 정보원이 아니더냐.”

    “하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합니다.”

    “건실한 기둥의 수장인 그대. 이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장로 중에서 가장 권력이 강해 보였던, 일명 ‘성하’로 칭송받는 이는 새로이 대의의 신전에 입성하게 된 인물에 대해 큰 신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원탁으로 다가갔고, 그곳에 아주 작은 여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관보다는 붉은 용으로 추측되는 모형이 더욱 눈에 집혔다.

    “이전에 말씀드렸던. 붉은 용.”

    “곧이어 폭주 상태가 찾아오는데.”

    “이전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그때, 죽을 수 있을 만큼 약체가 된다고 하더군요.”

    “용살이 가능한 전사 10명.”

    “제게 준비해주신다면, 조용히 1번 문제를 처리하겠습니다.”

    다시금 장로 중 최고의 권력을 지닌 자는 광기가 담긴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쩌렁대게 신전에 울리는 그 노쇠한 웃음소리는 어떠한 것보다 우렁차다.

    모두는 탄성을 내며, 새롭게 등장한 11번째 장로를 향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귀찮은 문제 하나를 자신감 넘치게 정리할 수 있다던 그를 향한 신뢰의 의미를 상징했다.

    “아주 훌륭하다. 그리고 2번 문제의 해결책은.”

    “2번 문제는….”

    “1번 문제가 종결될 시. 서서히 무너질 것입니다.”

    대의의 신전에서 고요하고 단절된 음성이 많은 장로의 신의를 아우르게 했다. 지켜보고 있던 권력의 중심은 괴었던 턱을 풀고는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몸을 앞으로 숙인다.

    그리고 대면식. 나머지 일원을 위해 11번째 장로의 모습이 공개될 차례였다. 앞을 굳건하게 가리고 있었던 새하얀 천을 스스로 들어 올린다.

    생각보다 그리 고운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닌지, 꽤 평지풍파를 겪은 얼이었다. 잔상처가 군데군데 남아서 순탄하지 않았던 세월을 암시한다.

    이어서 잿빛의 거대한 왕좌로부터, 11번째 장로를 향해 지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틀림없었다.

    “수고했네, 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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