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9화 (99/222)
  • 099화

    * * *

    길다고 말하자면 길었던 3일간의 외출을 마치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델타의 거대한 국문이 눈에 들어오며 더욱더 바빠질 여관을 떠올리며 ‘아, 아….’를 운운했다.

    여관의 휴일에 맞추어 2일간의 휴일을 가지려고 했으나, 2일만으로는 도저히 그곳에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아 여관의 휴일도 1일을 추가하여 3일간의 여관휴무를 공지했다.

    ‘녀석들도 잘 쉬었겠지.’

    언제부터인가 늘어만 가는 여관의 식구들, 사실 내가 생각했던 직원들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관에서 일꾼으로 굴릴 수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었)다.

    물론 그 무지한 판단도 잘못된 것이었다. 매일같이 싸움해대는 두 마리의 광란의 뱀들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르는 것이 어느덧 버릇되어버렸다.

    “달그락.”

    “오, 퍼플!”

    델타의 국문 앞에서 용사의 쉼터 마차를 끌고 대기 중이던 퍼플이 보였다. 아무래도 멀리서 돌아오는 나를 마중하기 위해 나와 있는 듯했다.

    “어라, 렌과 아이리스는 보이지 않는걸.”

    “달, 달그락.”

    “뭐지, 그 당황스러운 분위기는.”

    “달, 달, 달그락.”

    달, 달그락은 무조건 당황스럽다는 표현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또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맹신할 수밖에 없는 나의 추측. 손을 관자놀이를 향하게 만든다.

    보통이면 두 마리의 용들이 퍼플을 따라서 마중을 나오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마차에는 녀석들의 흔적 한 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담?

    “마당이 부서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달그락!”

    퍼플은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이 빠르게 끄덕거렸다. 확실히 마당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 듯하다.

    일단은 여관으로 돌아가 봐야 아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퍼플이 끌고 온 마차에 다가갔다.

    “…마차가 왜 이래?”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마차 앞, 대충 1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서서. 손가락으로 눈앞에 놓여있는 꽃마차를 가리켰다. 물론 알 수 없는 의구심을 가진 표정은 덤이었고.

    퍼플은 이리저리 몸으로 이 마차에 대해서 얼렁뚱땅 넘기려 노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사를 하듯 캐묻고 싶었으나 녀석의 노력을 봐서라도 일단은 마차에 올라타기로 한다.

    꽃마차였다. 분명 여관의 마차는 지붕이 있는 클래식 감성이 풍부한 디자인이었는데. 꽃밭에 몇 시간 동안 나뒹군 마차가 있다면 내가 타고 있는 이 마차가 아닐까 싶다.

    내부도 꽃으로 가득했다. 왜 꽃인가, 향기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홉스가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라도 고안한 것인가, 서비스를 여관주가 직접 체험해보라는 그런 의미?

    “달그락.”

    “뭐, 뭐야. 이건.”

    “달, 달그락.”

    “그러지 않아도, 꽃을 실컷 보고 왔는데.”

    퍼플은 마차에 타 있던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머리에 꽃과 식물로 만든 화관을 씌워주었다. 자세히 보니, 퍼플의 정장 주머니에도 꽃이 달려있었고, 마차를 끄는 말들도 꽃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홉스, 이제 웨딩사업이라도 하자는 이야긴가.’

    마차는 델타의 국문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마차에 연결되어 있는 말들의 움직임을 위한 채찍과 고삐도, 꽃과 줄기를 연결해 만든 것이다.

    * * *

    꽃마차가 여관의 마당을 지나, 여관 문 앞에 도착했고. 퍼플은 간단한 정비를 마치며 들어가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나는 늘 하던 것처럼, 마당에 깔린 마력초를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은 뒤에, 숨을 크게 들어 마시며 여관 문을 연다.

    “불도 켜두지 않고, 뭐 하는 거지?”

    보통 휴일이라고 하여도, 여관 홀에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메이가 설치해 준 영상 마법 기기를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정적은 무엇인지, 괜스레 퍼플이 당황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관자놀이가 당겨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내가 관자놀이를 누르게 될 것이라는 플래그.

    ““생일, 축하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관 일동들은 숨은 곳에서 하나둘 튀어나와 나에게 난데없이 ‘생일 축하 합니다!’라고 외쳤다. 다행스럽게도 관자놀이의 버튼을 누를 전개는 아녔다.

    다들 아주 활기찬 목소리를 보아하니, 나 몰래 이벤트를 준비했던 것. 오는 길에 나를 몹시도 부끄럽게 했던 화려한 꽃마차는 이 상황을 암시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기쁜 표정을 짓는 렌, 아이리스, 홉스, 프리실라, 란베르크, 해골 신사들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해골들이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리는 없고, 기쁨의 표시인 두개골 회전시키기를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라는 거지만….’

    황당하게도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다. 그래도 돌려서 생각해보면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

    열심히 준비한 녀석들에게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데.’라고 말하기엔 녀석들의 웃는 얼굴이 부담스럽고 귀여웠던 터라, 피식거리며 ‘고맙다.’라는 말을 전했다.

    캡틴으로 인해 등을 떠밀려 식탁으로 향했고, 요리 삼인방은 식탁 위에 있던 거대한 천을 걷었다.

    ‘와, 장난 아니잖아.’

    근사한 음식들이 누가 더 맛있는지 자랑이라도 하는 듯, 몹시도 미려한 점심이 될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퍼져나가는 음식의 향이 코로 모조리 스며들어왔다.

    “고생했어, 모두.”

    “마스터,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그래 볼까, 그러지 않아도 배고팠어.”

    모두가 거대한 식탁에 앉아, 삼인방이 만든 요리로 식사를 했다. 프리실라가 ‘카니로베 토벌 이후로 길드에 들어오는 의뢰가 여간 많은 게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란베르크의 ‘큰 사건도 마무리했으니, 선생님과 잦은 대련을 원합니다.’ 등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홉스에게 ‘꽃으로 덮인 엄청난 마차가 마중을 나왔더라고, 나는 네가 새로 기획한 웨딩이벤트라도 되는 줄 알았다니까.’라고 말하자 모든 이들이 폭소했다.

    “임자, 꽃마차의 아이디어는 퍼플이었느니라.”

    “달, 달그락.”

    “하하, 그랬군요.”

    쑥스러워하는 퍼플을 보며 다시금 폭소를 터트리는 여관 일동. 이벤트 담당 기획을 퍼플에게 믿고 맡겨봐야겠다는 말을 더하는 홉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꽃마차의 수준은 대단했으니까.

    “단장, 지금부터 선물 수여식이 있겠네!”

    프리실라가 생일선물을 위한 시간을 시작하겠다고 말하자, 급격히 어두운 표정을 짓는 렌과 아이리스였다. 뭐랄까 자신이 없는 느낌이 역력하다.

    “이런, 선물까지 준비했다니.”

    “암, 먼저 이 프리실라의 선물을 보여주지!”

    프리실라는 거대한 족자(?) 같은 것을 펼쳤고, 나는 그것이 펼쳐진 모습을 보며 역시 프리실라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다가 둘지도 고민이다.

    “짜잔, 델타산맥의 아르고스 털로 만든 장판!”

    “우와… 고마워요. 프리실라.”

    “뭐지, 단장의 그 미지근한 반응은.”

    ‘둘 곳이 여관 홀밖에 없는데, 뭔가 던전 할머니처럼 되어가네요.’라는 말을 붙이고는 홀에다가 그녀가 선물한 ‘아르고스의 털로 만든 카펫’을 깔았다.

    은은한 잿빛이 도는 때깔 때문이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맵시가 좋았다. 다행이다. 곰 머리 같은 것을 선물로 주지 않아서.

    이어서 프리실라가 ‘크흠’이라는 소리로 목소리를 다듬더니 사회를 보기 시작한다.

    “다음은 여관의 열렬한 매니저, 홉스!”

    “홉스도 준비했구나. 궁금한걸.”

    홉스는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는 이것이 실로 완벽한 선물이라며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아린의 찻잔’이잖아.”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하하.”

    “이걸 어떻게 구했지?”

    “조금 힘겹게 공수했지요. 사장님이 차를 좋아하니까요.”

    “고맙다…. 최고야.”

    자신이 주었던 선물의 반응과 완전히 딴판이라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는 프리실라였다.

    이 조그마한 찻잔이 자신이 가져온 카펫보다 좋은 것이냐며 의구심을 품고는 이리저리 찻잔을 살펴보는 근육질의 여전사.

    ‘아주 훌륭한 물건이다. 이건!’

    그도 그럴 것이 이 찻잔의 제작자는 ‘아린’이었다. 그는 인계 대륙에서 최고의 조각가로 불리는 수많은 명성의 별칭을 가진 예술가.

    독이 잔뜩 차 있는 뱀만큼이나 수집 욕구가 강한 상인들 때문에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을 텐데, 홉스의 능력이 더욱더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저는 별것 없습니다. 받으십시오.”

    “으, 이건 검이잖아.”

    “명색에 길드 수장인데, 명품 검은 가지고 계셔야지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 싸우라는 의미 같다고.”

    “대륙 저편에 존재하는 성검이 아닌 것에 안심하셔야 합니다.”

    “하하, 등이 오싹했어. 보아하니, 저 두 녀석이 가져올 뻔했나 보군.”

    성검을 가져다가 선물로 하겠다는 두 마리의 용을 말리느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두 마리의 용은 고개를 숙인 채로 쑥스러움을 표했다.

    란베르크가 내게 준 선물은 다름 아닌 검이었는데, 이어서 설명을 붙이자면 특수한 방법으로 재련한 작품이었다. 브라운 아저씨의 힘을 합쳐 만든 이름하여 ‘수장의 검’이 되시겠다.

    예리한 칼날에 일반적인 양손 검과 형태가 흡사하다. 다만 날에 그려져 있는 미세한 용의 비늘과도 같은 문양이 상당히 인상적. 마브리우스의 강철을 여러 차례 재련하여 만든 고가의 물건이라고 한다.

    “음, 이건 뭐지.”

    나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발견했고, 그것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의문점을 품었다. 이내 ‘아차!’라는 반응을 보이며 홉스가 말하길 ‘로아님의 선물’이라고 설명을 더 했다.

    열어보았더니, 다름 아닌 입기 좋은 로브가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아와의 황금 광산에서 찢어져 버린 로브에 대한 로아의 답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때, 내가 입었던 것보다 좋잖아.’

    쭈뼛한 자세로 약간의 긴장감을 보이던 두 마리의 용들은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고, 다양한 선물 세례 때문에 기가 죽은 듯했다. 과연 용들의 선물은 무엇일까.

    “눈, 눈을 감아보세요. 마스터.”

    “얼, 얼른… 임자야!”

    거듭 강조되는 ‘눈을 감아보세요.’라는 두 마리 용의 명령에 수긍하고 눈을 감았다. 양팔을 각자 하나씩 부여잡더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마, 마스터. 눈을 떠보세요.”

    눈을 떴더니, 양 손목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가죽으로 되어 있는 팔찌가 있었고, 그 팔찌의 중앙에는 육각형 모양의 이상한 철 재질로 되어 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오, 꽤 나쁘지 않은데. 이 철은 뭐지?”

    “그, 그건.”

    선물이 괜찮았다는 반응을 보이자, 녀석들이 부끄러운지 머리를 숙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대강 이 팔찌의 포인트 재질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근데, 그렇게 함부로 해도 괜찮아?”

    “괜찮아요. 뿔 중심의 심지만 건들지 않으면 다시 자라니까.”

    “뭐, 뭐라고? 난 손톱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하하, 하하. 으….”

    * * *

    진짜 내 생일은 아니지만, 생일이라고 쳐도 나쁘지 않을 오늘, 거한 파티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와 취침하려 했다.

    침대 위에 놓여있는 작은 상자, 오늘따라 상자를 많이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그 상자를 향해 다가가 정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조크지만 혹시 하거먼 필스가 나를 암살하기 위해 몰래 잠입해서 남겨둔 폭탄일지도 모른다.

    “레니가 두고 갔구나.”

    상자를 열어보니, 10개의 양초가 들어있었다. 그 위를 가리고 있던 편지에는 선물에 대한 출처로 ‘레니가’라는 손으로 쓴 글씨. 봉투를 뜯어 내부에 있는 편지를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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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감사한 아서 님에게 >

    아서, 레니입니다.

    근래 ‘파르파르의 꽃’ 때문에 몹시 심기가 불편한 상태로 지내느라 죄송했습니다. 하하…. 발레포르 사건부터 시작하여, 용사의 쉼터를 통해 회복제 연구까지 지원해주시고. 많은 것을 도와주신 아서에게 저는 폐만 끼치고 말았네요.

    아서가 아등바등 여관을 운영하겠다며 이상한 언덕에 용사의 쉼터를 세웠을 때, 정처 없이 사색에 빠져 맴돌던 제가 그 언덕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서와 인연이 없었을 텐데. 그것을 생각하면 늘 하늘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아서는 많은 여관에 오는 손님들을 가족으로 생각해주시니까요. 당신이라는 분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부터 렌과 아이리스가 용사의 쉼터에서 아서의 생일에 관해 이야기하던 것을 엿들었는데, 혹시 생일이 바뀌었나요? 생일이 바뀔 수도 있는 건가요?

    아무튼. 바뀌었다면 오늘이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아서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기에 이렇게 편지를 적었답니다.

    사실 여관 일동과 함께 생일을 축하해드리고 싶었지만, 편지가 부끄러운 나머지 이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 주사가 회복 마법인 레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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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파르의 꽃이 아니었음.’

    ‘플로우를 살려낼 수 없었을지도 몰라.’

    ‘사실, 고마운 건 이쪽이니까.’

    밤이 깊었지만, 여전히 밝게도 불이 올라있는 드래곤 엘릭서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가끔 피어오르는 연기가 혹시나 파르파르꽃에 대한 연구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버린 나머지. 별안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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