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8화 (98/222)
  • 098화

    * * *

    메이가 작성한 마법 기사를 읽어 내리는 여관의 손님들. 홀 내부에서 플로우들의 생생한 움직임이 이 모든 사태를 온전하게 해결하였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베로니카는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왜 흐르는지도 모를 눈물을 닦기 바빴고.

    메이를 포함한 다양한 마법 기자들은 ‘드래곤 길드’의 활약을 중심으로 많은 기사를 썼다. 물론 연계되는 용사의 쉼터까지, 그 파급력이 향상되자 델타 제국에서 직접적인 보상을 내렸다.

    기본적으로 상당한 이득이 되는 부분은 길드랭크의 상승이었다. 본래 B등급 언저리에 있던 드래곤 길드는 A등급으로 선정되어, 실로 ‘델타의 늑대’들과 견줄 수 있는 조합이 되었다는 것.

    프리실라를 포함한 모든 길드원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함성을 지르며 기쁨을 표하기 바빴다. A등급의 길드가 어디 쉽게 볼 수 있었던가.

    길드원들이 착용하고 있는 ‘비 바잔 드래곤’의 방어구들은 세간에 퍼지기 시작하고, 여관에 찾아와 브라운 아저씨를 찾는 대상인들이 늘었다.

    여관 자체도 쉽게 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란베르크가 가져온 거대 부유선이 마당 상공에 떠 있는 관계로 ‘여기는 용사의 쉼터입니다.’라는 최고의 안내표시이자 광고가 될 수 있었으니.

    더군다나 정령계의 일원들도 검은 반점이 사라지고 카니로베에 의한 절망침식이 멈췄다. 정령계의 생태계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정령계에서 넘어오는 손님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된다.

    ‘더해서 정령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템피드의 정령술사들.’

    지구에 있는 반려동물 카페도 아니고, 자신의 정령을 데려와 풀어놓고는 여유를 즐기는 식이었다. 물론 볼거리가 더욱더 많아지니 나쁜 점은 없다만.

    “이건, 너무 바쁘다고.”

    “아서, 표정이 왜 그래요.”

    “보면 몰라, 바빠서 그렇잖아. 레니.”

    “엑, 바쁘면 좋은 거죠.”

    “내가 남자로 돌아왔다고 안심인지, 꽤 당당하네.”

    “아하하…. 어쨌든 돌아왔으니, 다행이죠.”

    꼴에 여성의 상태로 시간을 다소 보냈던 상태라, 남자로 돌아왔을 때는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차를 마시기 위해 컵을 들었다가 깨부순 것만 열 번이 넘는다. 문을 열려고 했다가 문자체를 뜯어버린 것은 부지기수였고.

    ‘그래도 역시 이 몸이 제일 편하단 말이야.’

    마안의 뭉치도 카니로베를 뚫었던 하델의 마안을 사용했으니, 작동에는 문제가 없음을 확신했다.

    앞으로 얼마나,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겠으나…. 사용할 일을 절대적으로 만들지 말자는 소신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리고 웬만큼 한 싸움하는 이들이 여관에 거주하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비단 그 녀석들이 여관을 부수는데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관자놀이 작동 버튼의 역할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고장 나버린 장치를 쓸 수는 없다.’

    ‘아니, 삐걱대는 기계는 언제 고장 날지 모르니.’

    베로니카. 그녀와의 이야기는 내게 꽤 많은 영감과 조심성을 안겨주었다. 은퇴 전에 내 삶은 언제나 구멍을 향한 이성적인 판단이 전부였기에.

    조금 더 감정적인 상태일 수 있었던 르파르파의 꽃으로 인해, 그녀가 플로우를 흡수하려는 카니로베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베로니카를 죽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했다면. 마안의 뭉치를 사용하여 카니로베에게 곧바로 하델의 마안을 사용했더라면.

    ‘과연 플로우들이 살 수 있었을까?’

    시대에 도래한 절망을 토하는 구멍. 그 모든 재앙을 끝냈던 나의 힘, 늘 말해오듯 지금의 나는 본래의 힘보다 현저히 약화된 상태였기에.

    카니로베는 단숨에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간에 플로우들을 흡수하여 더욱더 무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노력했겠지.

    ‘확실한 것은.’

    여관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무르익어갔다. 카니로베 토벌을 시작으로 여러 모험담이 홀에 울려 퍼지고, 케피탄 맥주의 탄산이 튀는 소리가 함께했다.

    레니는 어느새 ‘히끅’거리는 소리와 함께 케피탄 맥주가 가득 들어 있는 컵을 허공에 들더니, ‘용사의 쉼터!’를 외쳤고,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손님은 한 입을 모아 ‘만세!’를.

    “정말, 운이 좋았다.”

    * * *

    “응~ 너희 선조,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맞고 뒤짐.”

    “으이윽, 네, 네 녀석 선조도…!”

    “야, 야. 그만 좀 해라.”

    터울 없는 사이가 되었는지, 매일같이 말싸움을 일삼는 레드드래곤과 블루드래곤을 중재하는 아서였다.

    이른 아침부터 가방을 메고는 어디론가 향할 것만 같은 채비의 모습을 하는 여관 주인.

    렌과 아이리스는 아서를 배웅해주기 위해, 마당에서 부대끼다가 말싸움이라는 단계까지 번진 것이었다.

    게다가 싸움의 핵심 내용은 ‘임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들었는데, 어떤 방법으로 르파르파의 꽃을 섭취했는가?’였다.

    거기서 렌이 얼굴을 붉히며 ‘그, 그게….’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아이리스는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어서 대응을 해버린 아이리스를 향해 ‘너희 선조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맞고 뒤짐.’이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자체 휴가 3일을 보고하고는 여관의 마당을 유유히 넘어가는 아서.

    렌과 아이리스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는 그를 보며 손을 흔들기 바쁘다.

    “그나저나, 지금 싸울 때가 아니라고요. 아이리스.”

    “크흠, 그렇긴 하지.”

    오늘은 아서의 휴가 출발이자, 여관의 휴일이기도 했다. 이들이 하던 싸움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 이유란 ‘아서의 생일’ 때문이었는데.

    렌이 어느 날 아서의 방에 침입했다. 늘 일삼는 행위지만. 이어서 침입에 가장 큰 이유는 침대에 잔존해있는 그의 체취를 맡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과정에만 집중하는 붉은 용이라 그런지, 그의 방이 어떻게 생기었는지, 자세히 관찰할 겨를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침대 바로 옆, 탁자에 놓인 액자. 그 액자에는 아서가 검을 쥔 채로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가만히 보니 은퇴 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

    마스터의 과거 모습에 흠뻑 젖어있을 때쯤, 사진에는 자그마한 크기로 숫자가 적혀있었다. 9별의 14일.

    ‘9별의 14일.’

    이것은 장엄한 전투만을 벌여온 붉은 용이 쉽게 이해하거나 추측할 수 없는 숫자, 아무리 인간들 사이에 섞여 지냈다고 한들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박식하다시피 지혜를 먹고 사는 푸른 용에게 물었더니, ‘아무래도 생일을 의미하는 것 같군.’이라는 결과가 떨어진다.

    그렇게 ‘9별의 14일’은 ‘아서의 생일’이다. 라는 결과까지 도착하게 된다. 그리하여 아서의 생일선물을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나, 라는 주제로 두 마리의 용은 싸우던 것을 멈추고 머리를 맞댄 것.

    “그날의 음식은 삼인방 녀석들이 맡기로 하였으니.”

    “저희는 선물만 준비하면 되는데.”

    “란베르크는 어떻게 한다고 했느냐.”

    “홉스, 프리실라, 란베르크도 생일선물을 준비하겠다고 했어요.”

    “역시, 우리도 질 수 없군.”

    질 수 없었다. 이들은 정말이지 생일선물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다. 다른 생명체들과 용이라는 개체가 생각하는 갭의 차이는 몹시 크다고 볼 수 있었는데….

    마계 저편에 있다는 전설의 성검을 구해다가 선물로 줄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니 이름난 용의 주리를 틀어 마당 장식 거리로 선물을 줄지.

    이 둘은 용들의 집이라고 부르는 둥지에 금은보화를 저장해두거나 하는 용의 기본자세라고 볼 수 있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다른 드래곤이 사는 둥지에 금은보화를 털자는 얘기가 나왔을까.

    그렇게 어젯밤, 두 마리의 용이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것을 훔쳐 들었던 란베르크가 곧바로 경악하며 조언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것도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선물의 기준을 주는 사람이 정하면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며.

    당신네가 언급한 선물은 분명 선생님의 관자놀이를 누를 확률이 백이면 백, 지금의 프리실라가 자신의 고속검을 받아치지 못할 확률과 동급이라 단언했다.

    “그렇다면…. 검도 아니고 용도 아니면 역시 갑옷인가.”

    “아이리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기사단장이 착용하는 갑옷 정도는 되어야….”

    “오호라, 값어치도 상당히 높겠어요.”

    “역시, 기사단장의 방어구를 훔쳐 오는 것이다!”

    “그렇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네 녀석이 전투를 좋아하니, 네 뿔을 걸고 전투 내기를 하….”

    “달그락, 달그락….”

    이들의 옆을 지나가던 캡틴이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느낌으로 받아드렸던 두 마리의 용은 캡틴을 바라보고는 ‘이것도 아니야?’라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빌어먹을, 프리실라는, 프리실라는 뭘 준비하지?”

    “휴, 이미 무언가를 준비하러 어디론가 떠났답니다.”

    다시금 둘은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생명의 탄생일을 축복하는 행사 따위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용들에 생일이란 아서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처럼 몹시도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상 선물이라는 개념도 제물 공양과 흡사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기분이 좋을 물건’이라는 말이 모순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들의 사상은 이랬다. 대상을 향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선물도 거대해지는 법이니, 받는 이가 부담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좋은 선물…. 좋은 선물.”

    “임자가… 좋아할 만한.”

    “부담이 없는…. 부담이 없는.”

    “임자가… 당황해하지 않을 만한.”

    머리를 쥐어뜯더니, 홉스가 늘 챙겨보던 마법신문을 가득 들어 테이블 위에 펼치는 렌이었다. 아이리스는 평소에 보던 신문과는 다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종이를 보며 혀를 찼다.

    “이것은 좋은 지식에 관여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건, 박식한 지혜만 따지는 아이리스 기준이고요.”

    지혜를 갈구한다던 아이리스는 신문을 보더라도, 정치나 세계에 관련된 중요한 지식을 양식 삼아 읽는데.

    렌이 펼쳐놓은 신문은 홉스가 여관 운영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보던 ‘유행’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이었다.

    계속해서 신문을 빠른 속도로 넘기던 와중, ‘연인’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눈에 포착한 렌은 곰곰이 읽어보기 시작했다.

    근래에 ‘연인,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유행하는 것들이었다.

    ―최저의 가격으로 모십니다.

    ―사랑을 서약하는 팔찌와 반지!

    ―직접 마력으로 빗어 만드는 공방 프로모션!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해보세요.

    두 마리의 용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테이블에 상체를 들이밀어 신문을 바라보았다. 이를테면 동공이 길게 늘어나 종이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렌과 아이리스의 마음 같아서 자신의 드래곤 하트라도 아서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자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아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자리 잡히자 황급히 보류.

    “하지만, 이거라면 가능해!”

    “아주 훌륭한 것을 발견했구나, 렌!”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라는 문장과 ‘사랑을 서약하는 팔찌와 반지.’라는 문장을 이어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위 문장의 개념을 완전히 재해석했다.

    ‘심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뿔도 있다는 것을.’ 이들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음흉하게 웃어댔다.

    이를 지켜보던 해골일동. 안타까운 듯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두개골을 천천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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