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6화 (96/222)
  • 096화

    * * *

    “…뭐야, 어째서.”

    그 어째서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내가 무슨 이유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인가, 과거. 구멍을 처음 마주하고 인정할 수 없었던 운명에 대한 반항심.

    그때 외에는 눈물이라는 것을 지면에 떨궈본 적이 없었다. 무력함이 가득했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몸 안에서 거센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 같다.

    “그렇군, 그랬어.”

    굳이 얼굴에는 비극이라는 것이 표현되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이것은 파르파르의 꽃이 내게 주고 있는 영향이기도 했지만, 마안의 뭉치를 사용하지 못하는 영향이기도 했다.

    “감정을 장악하기 위한 장치가 망가졌어.”

    구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죽지도 않겠다만, 온전히 구멍을 파멸하기 위해. 신의 기계적 장치가 되었던 나는, 마안의 뭉치가 가진 수많은 기능에서 ‘감정조절’이라는 장치가 기본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구멍과 절망을 없애야만 하는 내게, 마검의 뭉치라는 36장의 날개는 나의 ‘이성적인 목표’를 의미했으니, 집고 있던 그것을 놓음으로 구멍에 대한 이성적인 목표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

    “그런 모든 장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가장 증오스럽고, 미웠던 구멍의 존재들.”

    “당신을 이렇게 마주했으니.”

    “내가 이 모양이 될 수밖에.”

    이 말도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런 증오의 감정에서 만들어지는 슬픔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직시했을 때. 나는 배신을 해야만 했던 베로니카가 미워죽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죽일 수 없다는 생각까지.

    “어떡하면 좋지?”

    “난 지금의 상태로 당신을 죽일 수 없어.”

    검게 타올라, 새까만 재를 연상하게 만드는 마녀의 형상. 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흉측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그저 절망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렸다.

    그 거대하고 얇은 양팔이 앞으로 움직이며 내 뺨을 닦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주기 위함인 듯했으나, 눈물이 닦이는 동시에 검은 재가 얼굴에 묻어 더러워지기만 했다.

    『시간이…. 없어요.』

    『곧 카니로베가 깨어날 겁니다.』

    『플로우들을 위해… 힘내주세요. 심판자여.』

    놓았던 단검을 다시 집고는 베로니카를 향했다. 파르르 떨리는 양팔이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려움은 내게 없는 것과도 같은 감각이었는데, 손이 저릴 정도로 단검을 쥐고 있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마안의 뭉치를 개안한다.”

    [ 해당 육체를 EX등급으로 지정할 수 없음. ]

    이것은 베로니카를 죽일 수 없다는 죄책감에서 나오는 떨림. 다시는 베로니카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상상. 두려움은 계속해서 나를 압박한다.

    “마안의 뭉치를… 개안한다.”

    [ 권능[email protected] 결!#@*속에 대한 부정 발생. ]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시간이 계속해서 흘렀다. 그녀가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도 검을 쥔 채로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스스로 으름장을 놓거니, 괜스레 미간을 강하게 찌푸려보거니, 최선을 다했지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베로니카를 직시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

    뺨을 어루만지던 얇고 흉측한 양팔이 기다리기 지쳤는지 내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방의 보랏빛의 눈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구멍 속, 심연의 기운이 계속해서 짙어진다.

    ―꽈직.

    ―꽈직.

    목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진다. 들어 올린 양팔에 의해서 내 몸이 축 처지기 시작하자 시야가 더욱더 흐릿해진다.

    완전한 무력상태가 되자, 쥐고 있던 단검으로 두 양팔을 찍어보려 노력했다. 지금 취하는 행동은 일찌감치 늦은 듯했다.

    그저 고통스러움을 의미하는 거친 쇳소리의 날숨이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올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멸하라, 열등한 인간이여.』

    막상 죽음이라는 것을 눈앞에 마주했더니,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여관은? 플로우는? 나머지 애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계속해서 졸려온다. 목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는 마치 자장가와 유사하다.

    ―콰앙!!!!

    카니로베와 나의 대치상황에서 이뤄질 수 없는 지면의 충돌음. 엄청난 연기가 사방에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주변이 뜨거워졌다. 열기로 가득해진다.

    그 열기는 몹시도 뜨거웠다. 태양이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할 정도로, 연기 때문에 자욱한 나머지 시야가 제대로 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것이었다.

    확실한 점 하나는, 어느 팔이 내 목을 조이고 있던 카니로베의 팔을 분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를 온전히 받아내는, 그것은 ‘렌’이었다.

    “감히…. 마스터를.”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마스터.”

    카니로베로 변한 것이 확실하다면 개의치 않고 녀석을 처단하겠다. 베로니카가 말했던 심판자의 모습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할 차례가 다가왔다. 기회가 다시금 잡힌다.

    ―콰가가강!

    별안간 렌과 나는 사방으로 퉁겨져 멀리 떨어진 벽에 부딪혔다. 반대편으로 튕겨 나간 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다는 거네.’라는 표정으로 이빨을 긁었다.

    나 또한 벽에 흉측한 몰골로 동공을 움직이는 붉은 눈들 사이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절망을 느껴보아라.』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혼성의 목소리가 구멍 내부에 울리더니, 엄청난 압박감이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육체를 완벽히 봉쇄하는 절망의 힘.

    렌 또한 드래곤 슬레이어가 자랑하는 용살 마법 공성 전멸기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움직일 힘을 지녔지만, 비단 균형을 쉽게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짙은 늪을 밟은 듯 전방으로 걸어가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렌, 얼른 내게 르파르파의 꽃을!”

    내 부름에 서둘러 움직이려는 렌이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힘겨워 보인다. 그 움직임은 마치 몸에다 무거운 추를 달고 걷는 것 같았다.

    녀석은 답답했는지 용의 형태로 돌아가 움직이려 했다. 이어서 마력 파장이 커지자 더욱 움직임이 무거워진다.

    ‘젠장, 너무 우습게 봤어!’

    카니로베라는 절망은 실로 대절망의 힘과 비견했다. 그것도 봉인된 것이나, 힘을 잃은 것이 아닌 최상의 힘을 발휘하는 상태의 온전한 대절망과 비견한다.

    나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신체 조건 자체가 현 환경에 전혀 따라가질 못했다. 가속의 약도 더는 없었다.

    베로니카가 말했던 자신을 죽여 카니로베의 영향을 줄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느릿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이는 렌에게, 검은 뿌리가 거세게 날아와 공격을 일삼았다. 일방적인 공격.

    렌이 아니었더라면 몇백 번을 죽어 마땅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를 입는 와중에도 멀리 있는 나를 보며 다가온다.

    “렌, 피해!!”

    “아니에요, 마스터. …윽! 기다리세요.”

    렌도 자신이 대절망을 완전히 상대할 수 없음을 느꼈는지, 어떻게든 르파르파의 꽃을 내게 가져다주려는 듯했다.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공격을 피할 수 없음을 파악한 렌이었다. 가속의 약을 마시고, 헤이스트를 중첩한 내 속도를 따라잡은 검은 뿌리들은 현재 렌의 상태로 피할 수 없다.

    렌의 무력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파졌다.

    렌이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왔지만, 여러 차례 이어지는 검은 뿌리의 공격에 그 단단한 피부마저 피를 뱉기 시작했다.

    바닥이 흥건하게 용의 피로 젖어가는 이 장면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제에, 용이라 단단하군.』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르파르파의 꽃이 담긴 플라스크를 주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붉은 용, 거대한 몸집이 더욱더 느리게만 느껴진다.

    ―푸욱.

    ―푹.

    마치 너무나도 물렁물렁한 피부에 거대한 칼날이 꼽히는 소리와 흡사했다. 이전보다 크기가 거대한 두 개의 검은 뿌리가 용의 허리와 가슴 주변을 무자비하게 통과했다.

    검은 뿌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 검은 뿌리는 거대한 사냥감을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허공으로 렌을 들어 올렸다.

    녀석은 일말의 비명조차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카니로베가 만든 영역으로 인해, 가지고 있는 운동에너지가 완전히 장악 당했다. 손가락 끝조차 미동이 없다. 미세한 떨림은 그저 발악에 불과하다.

    이내 멀리서 거대한 검은 뿌리 하나가 내 몸을 관통했고, 당연히 각혈을 토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은 나머지, 소리 없는 단말마를 허공에 뱉는다.

    이것은 카니로베 토벌 불가의 상태를 의미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이들이 도망을 치거나 멀리 떠나야 했다.

    란베르크는? 아이리스는? 녀석들이 이 구멍에서 무사히 빠져나가야만 해.

    『멸망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카니로베는 얇고 흉측한 양손을 모았고, 그곳에는 푸른빛이 맴도는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절망이라는 이름과 교차하는 밝은색. 완전히 검은 반점에 침식된 채로. 플로우가 소환되었다.

    『유산을 흡수하고.』

    『이 카니로베는.』

    『절대적인 힘과 함께 부활할지어다.』

    『세상을 절망으로 물들어, 용납하지…. 못해.』

    『절대, 플로우들은, 네…. 시끄럽다!』

    『내 이름은… 카니로베가 아니야.』

    『베로니카. 나의 이름.』

    카니로베 속에 내재한 베로니카의 정신이 계속해서 플로우들을 흡수하려는 행동을 막으려고 하는 듯했다.

    카니로베가 플로우들을 구멍 내로 소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까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현재 유산을 흡수하기 위해 플로우들이 강제적으로 소환되는 상황을 조우하자, 납득이 되기 시작한다.

    플로우를 흡수하려는 카니로베와 그것을 막으려는 베로니카. 사방에서 둘의 목소리가 울렸다. 렌은 그 음성에 의해 잃은 정신을 다시금 찾는다.

    희미한 눈동자는 곧 사라질 생명을 의미하는 것처럼 연약했고, 나조차도 정면을 제대로 직시할 수 없을 만큼 죽음에 가까운 상태였다.

    다가온다.

    렌이 계속해서 내게 다가왔다. 이 영역이 완전한 대절망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엄청난 무리를 안겨주는 속박을 끌고 다가왔다.

    “마…. 마스터.”

    점점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검은 뿌리가 박힌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최대한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레…엔.”

    “…드디어 닿았다.”

    녀석은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고는, 플라스크의 코르크를 열어 자신의 입에 담으려고 했다. 그 행동을 멈추더니 다시금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녀석.

    고통과 공간의 무력. 미간을 찌푸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내 얼굴에 손을 얹히며.

    “싫으시겠지만,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걸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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