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5화 (95/222)
  • 095화

    * * *

    [ 드래곤 길드 ― 함선 진영 ]

    레니가 사용한 초월 마법에 의해서 함선 전체가 초록빛의 신성한 기운으로 물들었다. 물론 레니의 단독적인 능력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닌 정령왕과 아와, 그리고 로아의 힘이 결합한 것이었다.

    “오, 오!”

    “뭔가, 엄청나게 힘이 솟아오르는데!”

    “레니가 엄청난 일을 해냈군!”

    함선에 탑승하고 있던 모든 이들은 탄성을 내며 레니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비단 초월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신기했던 레니는 ‘어, 어라. 진짜 해버렸네.’라는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옆에서 함께 했던 정령왕과 아와는 ‘역시, 소질이 있었어.’라는 말을 뱉으며 레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아 또한 ‘초월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라고는 레니를 향한 칭찬 일색이 자꾸만 이어졌다.

    함선 위로 올라타는 검은 정령들과의 혈투가 다시금 벌려지고 있다. 체력이 원점으로 돌아온 이들은 검은 정령들과 장시간 전투를 벌였던 전사.

    초월 마법의 비상한 체력 복구뿐만 아니라, 경험이라는 시너지가 겹쳐진 탓에 세의 흐름이 드래곤 길드에 완전히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렌은 허공을 날아다니며 지속적인 공중전을 강행했다. 지상에 있는 타 대륙의 제국 기사들이나 모험가들에게 큰 세가 되어주는 공적을 쌓는 중이었다.

    ‘8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반응이 없어.’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자신의 마스터를 포함한 인원들이 구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던 렌은 당연하게도 불안감이 매섭게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며 무자비한 불꽃으로 검은 정령을 재로 만들다가도, 레니가 들고 있는 르파르파의 꽃을 애타게 바라보는 것만 여러 차례 반복했다.

    “…르, 르파르파의 꽃이!”

    마침 그 불안함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르파르파의 꽃이 푸른빛을 강렬히 사방으로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명도가 틀리다.

    레니는 르파르파의 꽃이 담긴 유리병을 안은 채로 정령왕과 아와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에서 작은 플라스크를 꺼내어. 르파르파의 꽃을 숙성시킨 물을 옮겨 담는다. 간절함과 함께 코르크 마개를 닫아 밀봉을 끝냈다.

    * * *

    [ 카니로베의 구멍 – 3번째 균열 ]

    어둡다. 터 없이 짙은 어둠이 3번째 균열 내부를 완전히 감싸 안고 있었다. 시각에 마력을 집중하여 전방으로 걸어갔다. 지면은 멀쩡히 존재했기에 걸어 다니는 것이 불편하진 않다.

    ‘베로니카.’

    그 이름을 생각으로밖에 읊지 않았는데, 발끝으로부터 상당한 증오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본래 내가 가진 성격이 그랬던가. 배신감에 의해 베로니카를 마주할 상상을 했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특별한 지형지물이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바닥을 제외한 완전히 어둠으로 만들어진 무에 가까웠다. 이전과 다르게 신발 앞창을 때리는 사소한 돌부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나아간다.

    내부의 공격도, 이렇다 할 이상 현상도. 그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저 끝없는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힌 시각을 통해 걸어갈 뿐.

    ‘빌어먹을, 마력이 탁해졌어.’

    마력이라는 원소가 구멍에서 완전히 소실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우주에서 공기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구멍에서는 마력 대신 본체가 되는 매개체의 암흑기운만이 기류를 만든다.

    ―.

    벽 사방에서 거대한 ‘눈동자’들이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전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벽에서 본래부터 기상해있었던 것만 같은 눈동자들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수를 세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눈동자이었고,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동공의 색이 ‘보라색’이라는 것이었다. 그 보라색의 동공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소스라치는 기분, 긴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은퇴 전의 감각들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말았다.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카니로베는 완전체에 가깝다.

    『…죄를 씻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베로니카의 것이었다. 나는 그 음성이 고막에 스며들자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플로우를 생각했을 때 더욱 그랬다.

    “지금…. 또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제정신이 남아있을 때, 정신을 소멸시켜야 해요.』

    칼을 빼낸다. 전방에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몰골이 있었다. 변해버린 거대한 무언가에 칼날을 향하게 한다. 베로니카라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검을 겨눈 채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베로니카에게 다가간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사방, 보라색 동공들은 나의 모든 행동을 관측하며 일제히 집중했다.

    ‘저 동공들은 나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였어.’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보라색의 동공들이 내 마력 흐름을 완전히 추적하고 있었다. 심상결계 안에 또 하나의 심상결계를 만든 걸 보아, 저 마녀의 능력은 실로 보통이 아녔다.

    『카니로베의 정신은, 저와 이어져 있습니다.』

    『제가 구멍 내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쥐고 있을 때.』

    『카니로베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 영혼이 깃든 심장을…. 꿰뚫어 주세요.』

    마안의 뭉치 따위는 필요 없다. 오로지 내 모든 마력을 퍼부어 저 녀석을 양단하면 그만이었다. 좋은 인연인 줄 알았던 그녀가 악연으로 마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니로베의 심장과 베로니카의 심장. 하나의 심장에 두 개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베로니카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심장 하나를 줄여서 카니로베의 영향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갈 거니까.”

    『신은…. 마지막 기도만큼은 들어주셨어.』

    그래서 또 속겠다고?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내가, 왠지 모르게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 것.

    구멍의 영향? 아니다. 나는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진작 베로니카를 최단 시간으로 토벌하려 했으니까.

    계속해서 감정적으로 된다. 처음부터 믿고 있지 않았던가, 내 촉은 절대 틀림없었다. 베로니카는 나쁜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 파르파르의 꽃 때문이다.’

    파르파르의 꽃이 가져다준 많은 변화는 단순히 육체적인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호르몬의 체계가 전체적으로 뒤틀려 이성만으로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버텨온 나와는 완전히 구조가 맞지 않는다.

    “감정적인 것이, 이토록 마음이 아픈 것이라니.”

    이름 모를 평범한 장검을 들고, 아니 브라운 아저씨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최고의 강도를 지닌 검을 쥐고, 전방을 향해 쾌속 이동한다.

    ―.

    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간다. 베로니카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원래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다. 플로우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카니로베를 파멸해야 한다.

    ―콰직!

    ―콰앙!

    아니나 다를까, 검은색의 날카롭고 거대한 뿌리들이 나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것이 솟아났는지 알 수 없으나, 사방이 분명하다.

    ‘이 영역은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베로니카의 의사가 아니다.’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침입자를 향한 거부반응과 보호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 이를테면 보라색의 눈동자들이 침입자를 제거하는 행위였다.

    계속해서 뿌리를 피해 전방으로 나아간다. 베로니카를 죽이기 위해. 다만 속도와 유도성을 지닌 검은 뿌리들의 움직임이 내 진로를 자꾸만 방해했다.

    “꿀꺽…. 꿀꺽.”

    “이러다가, 정말 간이 남아돌지 않겠어.”

    하나 남은 가속의 약을 먹는다. 신체를 회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체력을 회복하거나 혈액을 생성하는 기능의 약을 먹을 수 없다.

    혈류에 맴돌고 있는 운동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높여주는 가속의 약. 상처를 회복하는 약과 중첩되면 신체 외부로 그 기능을 담당하는 영양소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모르겠고, 한두 번인가.”

    날카로운 뿌리의 끝점을 검으로 받아치며 계속해서 전진한다. 분명 지금의 속력도 상당히 빠르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완벽하다시피 나에게 뻗어오는 뿌리의 속도도 비등했다.

    ―치이잉!

    ―칭!―――치잉.

    전방으로부터 직렬로 뻗어오는 거대한 뿌리 하나를 검으로 흘린다. 수를 셀 수도 없이 몰아치는 검은 뿌리들을 하나씩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거대한 뿌리 하나를 검으로 긁으며 방패 삼아 다시금 전진한다.

    ―치지지지직!

    거대한 뿌리가 위를 막아주는 덕분에 사소한 공격을 편하게 피할 수 있었다. 얇은 뿌리의 형태를 만들어 아래에서 공격해 오는 것들은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으로 교묘히 받아친다.

    ‘조금, 조금만 더.’

    가속하는 움직임, 직렬로 뻗어오던 검은 뿌리를 계속해서 긁으며 나아가자 검의 날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날이 닳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전진, 전진. 단검이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일격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카니로베의 흉측한 모습이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다른 손에 있던 단검을 강하게 쥐었다.

    베로니카를 끝내야만 카니로베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진다. 실패한다면 돌이킬 수 없다.

    ‘이성적으로. 늘 그랬던 것처럼.’

    마치 검은 마녀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그저 인간을 잔뜩 흉내 낸 괴물에 가깝다. 눈에 담는다.

    지면을 밟고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옆구리를 스치며 거대한 상처를 남기고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내 뒤로 계속해서 넘어가는 검은 뿌리.

    각혈을 토하며 허공에서 중심을 잃었으나, 개의치 않고 공중이라는 축에서 임시방편의 지대를 마력으로 형성한다. 그것을 밟는다.

    카니로베를 향해 쇄도한다.

    이가 완전히 닳아버린 검을 내팽개친다.

    ―.

    단검을 거꾸로 쥐어, 양손으로. 아이스픽(Icepick) 그립의 상태를 만든다. 체내의 온 운동에너지를 내려찍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 공격은 용의 뼈조차 맥을 추리지 못할 것이다. 심장을 완전히 꿰뚫어버린다는 생각으로 내려찍는다.

    “어…. 뭐야.”

    양손에는 분명 베로니카의 심장을 꿰뚫기 위한 모든 신경이 반응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그려진 대로.

    표적이 되었던 심장을 터뜨리고 카니로베의 힘을 줄이는데 가차 없어야 했을 터. 검을 쥔 채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 누구의 방해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자신을 막는 행위였는데.

    투박하고 건조한 회색 지면 위.

    ‘뚝, 뚝.’ 소리를 내며, 무언가 떨어진다.

    “눈물을 훔친다고, 봐주진 않아.”

    『…아니.』

    『우연하게도….』

    『떨어지는, 이 눈물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