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4화 (94/222)
  • 094화

    * * *

    아이리스와 함께 균열 사이로 들어가 다음 영역에 들어왔을 때. 더욱더 짙은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리스도 숨 쉬는 것이 평소와 다른지 ‘속이 거북하다.’는 말을 더했다.

    여전히 어둡다. 완전히 사방을 뒤덮은 어둠. 그리고 미세한 빛. 그 덕에 주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렵게 알 수 있다. 지면의 상태가 오래된 시체구덩이를 연상하게 했다.

    『지면에 해골 신사들이 한가득하군.』

    “그렇게 말하면, 녀석들에게 실례잖아. 인마.”

    해골 신사들이 한가득하다는 말에 지상으로 시야를 옮겼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리스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두개골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딱히 두개골 이외에는 다른 뼈대가 보이지 않았으나, 두개골 수가 너무 많은 나머지 바닥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인형 뽑기 기계 안에 두개골이 무한하게 쌓여있는 느낌과 흡사하다.

    저 두개골의 개수를 세다가는 머리가 아플 것 같으니 얼른 ‘카니로베’를 찾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아이리스와 함께 어두운 천공을 돌아다닌다.

    “도저히, 보이지 않는군.”

    『임자, 저곳을 보아라.』

    아이리스가 말한 곳에는 ‘균열’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카니로베’가 있는 영역이 아니라 제2의 영역이 된다는 소리였다.

    ‘3겹의 구멍을 만들 수 있다고?’

    3겹의 구멍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2겹 이상의 구멍을 만든 절망들은 ‘72개의 절망’뿐이었다.

    발레포르, 72개의 절망 중 하나였으나. 기운을 잃고 유적에 잠들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층을 3개로 나누어 완전히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러나 지금 카니로베의 경우는 발레포르보다 깊은 심연에 가깝다. 은퇴 이전에 혈투를 벌여왔던 72개의 절망과 비견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그렇다면… 저 균열을 향하더라도 분명 제2의 매개체가 막을 것이라는 사실.’ 첫 번째 구멍과는 달리 완전히 열려있는 균열의 모습이었다. 저기만 넘어간다면 곧바로 카니로베와 조우할 수 있겠지만.

    “말처럼 그리 쉽게 되지는 않겠지.”

    『임자, 어떻게 하면 좋으냐.』

    “먼저 정면 돌파를 강행해보자고.”

    “어떻게 나오나. 확인해 볼 가치가 있으니까.”

    아이리스가 내 말을 듣고는 멀리 보이는 균열을 향해 빠르게 날아간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대로 무사히 통과하는 것인가? 의문점을 품을 때.

    ―콰아직!

    균열 바로 앞에서 아이리스와 함께 이상한 뼈대에 강렬하게 부딪혔다. 그 충격에 의해서 우리를 막은 해골의 뭉치가 터지며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균열이 서서히 닫힌다.

    지상에 놓여있던 수를 알 수 없는 해골의 머리들이 허공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중력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공중으로 계속해서 띄워진다.

    처음에는 파악되지 않았던 붉은 색의 심장. 그것으로부터 모든 해골이 감싸더니 아벨기우스와 비견한 크기로 건축되기 시작했다.

    절망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조립모형의 정크들이 모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작은 두개골이라는 재료가 백, 천, 만, 억 개가 거세게 뛰고 있는 심장 주위로 모여 날개가 달린 흉측한 몰골의 거인을 탄생시킨다.

    심상 세계의 구현도가 너무나도 선명하다. 이것은 절망의 것이라고 부르기엔 구현되는 세계가 너무나도 인류의 것과 비슷했다.

    제2의 매개체 또한 절망이 낳은 또 하나의 새끼 절망. 이것을 보고 있던 아이리스는 천천히 입을 열어 나에게 물어왔다.

    ‘절망이라는 것이 천사의 시체에서 피어난 생명체라 알고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임자가 우매한 내게 알려주길 바란다.’ 아이리스는 탄식했다.

    “네 말이 맞아. 천사의 시체에서 피어난 잘못된 것.”

    “그 형체가 너무나도 흉측하고 기이한 것은.”

    “너희가 상상하는 모습보다, 더욱더 가까운.”

    “본래 천사의 모습일지도.”

    ‘저런 것과 함께라면 모멧티도 맛있게 먹기 힘들겠군.’이라며 해골 뭉치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저 절망은 느릿느릿한 움직임에 비해 사거리가 너무나도 길었다. 손을 뻗으면 자유 변형을 통해 더욱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우리 여관의 신사들과 달리 듣기 싫은 기분이다.

    ―카가가!

    ―카각!

    ―캉. 캉. 캉!

    아이리스는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 여러 개를 형성시키더니 거대한 얼음 조각들을 절망에 쏘아댔다.

    그 과정에서 퉁겨지고 박살 나 사방에 퍼뜨려지는 파편들은 아이리스의 공격이 실로 강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바닥에 놓인 수많은 두개골로 육체를 수복하는 절망. 아이리스는 육두문자를 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진정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크흠…. 흠.』

    “바닥을 얼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푸른 용에 의하여 허공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된다. 거대한 얼음 조각이 뱉었던 마법진의 크기보다 몇 배는 웅장한 마법진.

    지상을 나란히 마주 보는 거대한 마법진에서 푸른 서리와 한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지상에 놓인 수많은 두개골이 얼음에 의해서 꽁꽁 얼어버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을 계속해서 공격해, 최대한 심장 주위를 노려.”

    『알겠다. 임자!』

    아이리스는 내 말에 수긍을 표하며, 다시금 절망이 있는 방향으로 수십 개에 달하는 마법진을 형성한다.

    드래곤 아니랄까 봐 마력 통이 몹시도 큰지, S랭크의 마법사들이 온 힘을 다하여 간신히 형성시킬 마법진을 가볍게 만들어냈다.

    “꿀꺽, 꿀꺽.”

    『뭘, 뭘 먹는 건가. 임자야.』

    “시간을 먹고 있지.”

    가속의 물약이었다. 다만 이전에 섭취했던 것보다 농축이 많이 된 것이었다. 레니에게 부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것만큼은 제대로 만든 것 같네.

    “후우웁.”

    들숨을 강하게 마시고 아이리스의 등에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조금 강하게 등을 밀었더니 녀석이 ‘악!’하고 넌지시 신음을 냈다.

    날숨을 뱉으며 몸 안에 있는 마력을 뱉어냈다. 다시 반쯤 마신 채로 검을 가볍게 쥔다.

    아이리스는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건지 묻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온전한 집중상태이기에.

    ―탁!

    아이리스의 등을 밟아 정면으로 빠르게 쇄도한다. 등 뒤에는 쏘아지고 있는 얼음 조각들이 무자비하게 절망을 향하고 있었다. 자칫 내가 그 얼음에 맞을까 봐 눈을 감는 아이리스.

    “시작한다.”

    등 뒤로부터 절망으로 향하는 얼음 조각들을 동시에 하나, 둘 밟으며 전방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아이리스가 놀라버린 탓인지 ‘미쳤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걸 눈으로 담고 있는 너도 대단하네.’

    다시 말하지만 내 육체는 현재 가속이라는 기능이 몇 배로 중첩된 상태였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내가 얼음 조각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뭔지. 이해조차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여전히 아이리스의 얼음 화살은 심장을 품고 있는 절망의 두개골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붉은색을 토해내는 심장이 흐릿하게 눈에 잡혔다. 다시금 얼어있던 바닥의 두개골들이 움직였다.

    『어림없다! 임자를 방해하다니 무엄하다!』

    아이리스는 바닥에 깔린 동결마법이 약해지는 시기가 오면 곧바로 마법을 중첩하여, 두개골들이 꿈쩍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전과 달리 바닥에 있던 두개골들이 완전히 얼어버린 상태라 심장을 감싸는 뼈들이 부서진 만큼 자가 수복이 불가능했다. 반면 나는 가능하다. 지금이라면 저 심장을 뚫을 수 있다.

    ―픽.

    ―픽. ―――픽.

    ―픽.

    귓가에 내가 밟지 못했던 얼음 조각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뺨이라던지, 팔이라던지, 아니면 길어진 머리칼이라던지. 얼음이 베어진 까닭에 생채기가 늘어갔다.

    ―픽!

    계속해서 전방을 향한다. 얼음들이 귓등을 스치는 탄두와도 같다.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얼음을 밟는다. 오로지, 심장을 감싸는 두개골들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튀기는 곳만 바라볼 뿐.

    “신경계 완전제어술법.”

    “오른팔. 운동 신경계 중첩.”

    “가속 신경, 중첩.”

    “반응 신경, 중첩.”

    오른팔이 여러 마법진으로 강화한다. 이어서 강력한 수축을 일으키는 오른팔의 온갖 근육들이 괴성을 질렀다.

    “보였다.”

    얼음 화살로 인하여 파편이 사정없이 튀고 있는 심장 주위, 심장의 붉은 색이 80% 이상 드러났다. 기회는 단 한 번.

    ―콰아아아직!

    심장을 뚫고, 절망의 몸을 완전히 뚫고 지나간다. 머릿속에서 여러 차례 시도한 공략 방법이 완전히 재현된다.

    멀리 떨어져서 얼음 화살을 쏘던 아이리스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지상으로 떨어지는 나를 가볍게 받았다.

    “기회. 나는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지.”

    『임자는 정말… 진짜 정체가 궁금하구나.』

    “아, 아…. 마안의 뭉치가 없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

    심장이 뚫려 완전히 재로 변한 후에 사라진다. 그 심장 주위에 붙어 거대한 신체를 만들어냈던 두개골들은 맥없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이것은 완전한 승리임을 야기했다.

    ―우두둑.

    ―우두두둑.

    ―달, 달그락.

    ―달그락.

    아이리스와 함께 육두문자를 뱉었다.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의 존재하는 모든 욕을 섞어 뱉었더니, 그 말은 무슨 뜻이냐며 푸른 용이 묻는다.

    이렇게 우리가 욕을 뱉는 이유.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두개골들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심장이라고 추측되는 본체는 없다. 그저 남은 것들이 모여 ‘추적자’를 형성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또, 추적자인가.”

    “빌어먹을, 꽤 설쳐주는군.”

    6마리의 리퍼(reaper)가 만들어졌다.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낫은 뼈로 만들어졌는지 곳곳에 두개골의 형상이 남아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우리의 신사 해골들보다 상당히 흉측했는데, 저런 기괴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사 해골들이 내는 소리란 실로 귀여운 것이었다.

    어디서 만들어진 지도 알 수 없는 로브가 리퍼들의 몸을 감싼다. 구멍 안에서라면 비슷하게 어떠한 재질을 형성해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베로니카의 영향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인류의 지식에서 나온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아이리스를 등에 타고 허공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느새 균열이 완전하게 열려 다음 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암시했다.

    『가거라.』

    “너, 남은 마력은.”

    『충분하다.』

    “참 잘했어요. 도장 2개를 원하나 보군.”

    『우습군, 조무래기를 상대하는 것에 보상은 필요 없느니라.』

    『…그, 그러나, 란베르크는 3개였다.』

    녀석의 등을 주먹으로 가볍게 툭툭 때렸다. ‘참 잘했어요 2개 곱하기 2’라는 뜻과 동시에 ‘너에게 맡기마.’와 같은 응원의 표시였다.

    아이리스는 피식 웃었고.

    이내 거대한 팔로 나를 들어 균열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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