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3화 (93/222)
  • 093화

    * * *

    “이거, 내가 설칠 필요도 없겠어.”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속도로 검은 정령을 박살 내는 란베르크였다. 실로 내가 설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광경.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은 저 광기의 미소는 즐기고 있음을 말했다.

    확실히 나 또한 가속 마법을 중첩해서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녀석의 움직임을 읽기 쉽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매서운 속도였다.

    일반인들의 시야에는 푸른 광선이 어둠을 쏘다니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이참에 감각을 깨우치면 좋으련만.’

    가속 마법을 이용하던, 어떠한 방법으로 속도에 관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게 될 때. 그때 초월적인 감각을 깨울 수 있다.

    이어서 그 감각을 몸에 익히기만 한다면 가속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평소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육체적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간단히 감각을 몸에 배게 한다면 그것이 곧 유전적인 영향으로 미칠 것.

    시간의 흐름이라는 선이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없으나, 가속 마법을 사용하여 100배를 중첩한 몸으로 쾌속 이동을 반복한다면.

    마치 시력이 나쁜 이들이 ‘안경’을 대신 착용한 것처럼. 그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겠지.”

    “신났네, 신났어. 물 만난 고기야.”

    란베르크는 엄청난 속도로 검은 정령들을 완전히 초토화하고 있었다. 거의 푸른 섬광에 의해 녹아내리는 검은 정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검은 정령들이 10m 이내로 란베르크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저 푸른 섬광은 지속해서 지그재그같이 복잡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강행하고 있다.

    ‘검이 바뀌더니, 그 파괴력마저 고스란히 들고 가는군.’

    ‘가문의 의지’였던가, 녀석이 들고 있는 검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흉흉한 물건이었다. 아니 흉흉하다는 표현보다는 도대체 이런 검을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상당히 귀한 물건 같았다.

    그렇게 굵은 크기는 아니었으나, 길이는 길고 폭은 상당히 얇아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양날 검이었다.

    막상 들어보니 그 무게는 야윈 칼날에 맞지 않게 대검처럼 무거웠다. 마력으로 정제한 광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농도가 아주 짙은 날이 무슨 방법으로 벼려냈는지 궁금할 정도.

    칼집에서 검을 빼내자마자 가까운 환경에 마력을 단절시키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저 칼집에서 검을 빼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마력을 양단시켜버렸다는 의미다.

    “선생님, 따라오시죠!”

    란베르크가 계속해서 푸른 섬광을 만들어내며 일렬로 직진한다. 가문의 의지를 쥐고서. 달라붙는 검은 정령들이 열 조각 이상으로 양단되는 것은 쉬운 일.

    아무리 많은 검은 정령들이 정면을 막거나 사방을 막더라도 움직이는 것에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면을 돌파한다.

    나는 위 행동을 따라 란베르크의 뒤에서 공기저항의 느낌조차 없이 수월하게 따라붙는다.

    검을 사용하여 주위의 적을 공격하기는커녕 그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열린다.

    “좋았어, 그대로 한 대 꽂아버려!”

    “네, 선생님.”

    정면을 계속해서 돌파하자 제2의 매개체로 간주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검은 정령을 포착한다. 이어서 란베르크는 양손으로 검을 쥐어 횡으로 강하게 그으며 나아갔다.

    ―카강!

    느긋하다 못해, 움직이는 속도가 답답할 정도의 십자가 검은 정령이었으나, 별안간 엄청난 쾌속의 횡 공격이 가볍게 막힌다.

    십자가 녀석은 여전하다. 등에 있던 십자가가 허공에 둥둥 떠서 란베르크의 공격을 막은 것.

    “뭐, 뭐야.”

    “조심해!”

    높은 곳으로 순식간 십자가가 띄워졌다. 아니 올라갔다. 그리고 붉은 에너지 응축체가 눈으로 샐 수 없을 만큼 만들어지더니, 지상을 향해 쏟아진다. 비처럼.

    “아이리스!”

    『걱정하지 말게, 그대들부터!』

    “치잇!”

    내려오는 붉은 비는 상당히 날카롭고 빨랐다. 지면을 두부처럼 뚫고 지나가는 무력을 고려했을 때, 웬만한 방어로는 쉽게 막을 수 없다.

    검에 마력을 최대한 둘러서 내려 떨어지는 붉은 비들을 최대한 막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빌, 빌어먹을!』

    아이리스도 터무니없는 마력 보충을 해주느라, 전체적인 체력이 많이 떨어진 듯했다. 최대한 빠르게, 저 십자가 녀석을 없애야만 한다.

    ―쨍!

    플라스크의 뚜껑을 깨트려 안에 있는 내용물은 빠지지 않도록 조절했다.

    날카롭게 단면이 만들어진 플라스크를 쥐고 있던 나를 모자란 란베르크는 ‘그게 뭡니까, 선생님?’이라고 물었다.

    “가속의 약이야.”

    “뭘 하시려고요.”

    “넌 아직 따라 하면 안 돼.”

    나는 깨진 플라스크의 날카로운 입구로 팔 한쪽에 깊은 상처를 내었다. 와중에 아이리스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임자야 그렇게 하지 말아라!’라고.

    그리고 깊게 팬 상처를 따라 플라스크 내부에 있는 내용물을 부어낸다. 상처에 고스란히 흡수되기 시작하는 가속의 약이었다.

    “이렇게 사용하면, 간에 안 좋아.”

    “가, 간에 안 좋다니요.”

    가속 마법이 100배가 중첩된 상태에서 오른쪽 손에 운동 신경계를 다시 한번 더 각성시켰다. 이것은 미친 짓이었다.

    절망이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저렇게 피곤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별안간 정면으로 사라지는 나를 보고는 황급히 쫓아오는 란베르크, 이번에는 포지션이 바뀌었다.

    정면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검은 정령들을 신속하게 베어나갔다. 다시 처음부터.

    ―콰직!

    …500M.

    ―콰강!

    …300M.

    ―치――잉.

    …100M!

    그대로 흐름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저 십자가 녀석에게 공격에 성공할 수 있다. 십자가의 공격을 내가 제압할 수만 있다면, 란베르크가 스위치를 통해 본체를 타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캉!

    아니나 다를까 십자가는 내 공격을 곧바로 막았다. 그리고 뒤에 숨어있는 본체.

    내 오른손에 가속의 약으로 다시 중첩된 운동 신경계는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쾅!―――――캉!

    ―캉!

    하늘로 올라가는 십자가.

    본체는 완전히 결점이 가득한 상태.

    십자가는 다시금 붉은 비를 생성했다.

    “지금이야, 본체를 공격해 란베르크!”

    “하, 하지만. 십자가가!”

    “내게 맡겨!”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서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푸른 용은 자신의 양손을 깍지를 끼고 달려오는 나를 기다린다.

    나는 그 깍지를 발판삼아 허공으로 강하게 벅차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향해 비상했다. 지상에 있는 란베르크나 아이리스가 손톱보다도 작아지자 눈앞에 떠오른 십자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빙고.”

    사방으로 퍼지는 붉은 비를 재빠른 참격으로 모조리 튕겨냈다. 이미 본체를 향하기에는 늦었다. 본체는 란베르크가 진작 타격에 성공했을 터.

    “이거, 십자가가 없으니. 미지근하네.”

    란베르크는 거북이가 등껍질을 잃어버린 것처럼 너무나도 밋밋해 보이는 본체를 사정없이 베어갔다.

    그 속도는 본체가 절대적으로 따라갈 수 없으니 양단의 개념이 아니라 완전히 티끌처럼 쪼개지는 제2의 매개체였다.

    “저기, 선생님이 떨어지고 있어!”

    『짐이 받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몸을 혹사한 까닭에 온 신경계가 과부하 상태에 돌입했다. 허공에서 맥없이 떨어지는 나를 받아주는 아이리스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그대로 꽂혀버렸을지도.

    『임, 임자야. 다친 곳은 없느냐!』

    “암, 조금만 쉬면 괜찮아져.”

    『이 바보 멍청이가, 자꾸 멍청한 짓을 하고!』

    “나를 꾸짖기 전에 렌이랑 싸우지나 마라.”

    『크흠!』

    지상으로 무사히 도착하자 우리는 주위를 둘러 상황을 다시 파악했다. 그 많던 검은 정령들이 대지에 녹아들더니 온데간데없다. 완전히 사라지고 균열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뭡니까. 선생님!”

    란베르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 ‘추격자’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격자까지 생성되는 구멍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추격자잖아.”

    “추격자?”

    “균열로 이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매개체들이다.”

    “강함의 정도는요.”

    “십자가 녀석보다는 약하지만, 개체의 수가 많아.”

    “계속 생성되고 있습니다.”

    순식간 7명의 추격자에게서 둘러싸이고 만다. 멀리서 다시금 형성되는 수많은 추격자가 조금 전에 보았던 검은 정령들의 세와 비슷해진다.

    “가십시오.”

    “혼자 남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소리를 하면 100점이야.”

    “여기는 제가 막을 테니, 아이리스와 함께 가십시오.”

    “이런, 참 잘했어요. 도장 세 개를 주마.”

    “그,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상이란다.”

    “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란베르크의 얼굴에서 ‘걱정하지 말고 출발하세요.’라는 문장을 이어 붙인다. 문제는 녀석이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현 상황을 완전히 즐기는 중이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보아 개의치 않고 아이리스의 등에 올라탔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만 같은 란베르크에게 말했다.

    그 와중에도 침을 뚝뚝 떨어트리는 녀석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굶주려있는 짐승을 보는 듯하다.

    “웃통이라도 벗고 싸워라, 안 덥냐.”

    “그, 그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 * *

    [ 드래곤 길드 ― 함선 진영 ]

    “반나절이나 지났는데, 단장이 소식이 없군!”

    프리실라는 함선 외부에서 달려드는 검은 정령을 베어가며 외쳤다. 이미 장시간 동안 전투를 벌여온 까닭에 길드원들은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일반적인 타 길드의 전투원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 가능했던 전투. 일반적인 전투원 같았으면 진작 피로 누적으로 인하여 쓰러졌을 것이다.

    ‘란베르크 교관의 훈련이 탁월했어.’

    물론 란베르크의 체력훈련이 무서울 정도로 길드원들에게 많은 발전을 안겨주었지만, 본래부터 전투를 오랫동안 강행해온 이들이었기에 더욱더 괴물 같은 체력이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이 세는 너무 많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아이나!”

    “예, 프리실라!”

    아이나는 대열이 무너지지 않게끔 여러 조를 병행해가며 지휘하고 있었다. 프리실라 또한 무거운 갑주를 착용한 상태에서 이들의 선봉자 역할을 꾸준히 해냈다. 둘은 핵심이 되어 진두지휘했고, 그 많던 검은 정령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으, 윽… 이건 절대 줄 수 없어요!”

    레니가 어느새 나타난 검은 정령들에 의해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안고 있는 플라스크의 담긴 르파르파의 꽃, 푸르게 빛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절대 놓을 수 없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일곱의 해골들이 갑주를 입은 채로, 레니를 감쌌다. 주변의 검은 정령들을 하나, 둘 베어나간다.

    란베르크의 교육을 받은 터라 투구만 착용했더라면 명실상부 하급 기사로 착각할 정도였다.

    “고, 고마워요. 다들!”

    “레니, 많은 이들의 체력이 감소하고 있네!”

    옆에 있던 아와와 정령왕은 심연에 잠식되고 있는 터라,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함선 외부에서 회복 마법으로 길드원들의 체력을 보충해주는 레니를 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느낀다.

    ‘이 아와가 도와줄 테니, 로아와 함께 초월 마법을 준비해보세.’ 레니가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초월 마법’이라는 의미 때문에 머리를 망치로 때려 맞은 듯했다.

    로아는 곧바로 레니의 등에 손을 얹혔고, 정령왕과 아와도 레니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마력을 보충시켜주며 정령왕이 다음 문장을 이어 뱉는다.

    “모든 이들의 체력을 되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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