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2화 (92/222)

092화

* * *

『마스터!』

“렌은 이곳을 부탁해.”

아이리스의 등에 탑승하는 나를 보더니 렌은 아연실색을 했다. ‘저를 두고 저곳으로 들어가시겠다는 생각인가요?’라는 표정이 명확하다.

본 진영의 가장 큰 무력이 되어야 할 포지션이 없어지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강조했고, 르파르파의 꽃이 완전히 숙성될 때, 그것을 가지고 구멍으로 들어오라며 명령을 내리자 거대한 용의 두상을 말없이 끄덕거렸다.

“출발하자, 아이리스.”

“선생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대뜸 란베르크가 아이리스 등에 함께 올라탔다. 어차피 무력은 렌으로도 충분할 테고, 프리실라가 중심이 되어 길드원들을 통솔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구멍공격대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함선 진영은 붉은 용이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멍에 들어가는 인원의 힘이 부족하다면 본 작전은 완전히 무산되고 말 것입니다.”

『임자, 짐도 이 의견에 찬성이니라, 비록 짐이 따라간다고 한들 내부에는 그대가 말했듯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이 검객과 함께하는 것이 좋은 판단으로 보이는군.』

마찬가지로 나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멀리서 보이는 프리실라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이곳은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더욱 강해졌다.’라는 의사를 표했다.

아이리스는 곧장 시야에 잡히는 구멍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았다. 허공의 거센 바람이 란베르크와 나의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시야에 검은 정령들이 구멍을 막고 우리의 침입을 거부했으나, 란베르크의 두 눈동자에 섬광이 번쩍이고, 정면을 향해 거대한 검기가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콰가가강!

무자비하게 파편을 튀기며 사방으로 퍼지는 녀석들을 뚫고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우리들은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공기가 완전히 무거워진다. 마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아챈 아이리스와 란베르크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는지 약간의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내 내재 된 마력으로 호흡을 천천히 이어갔고, 금방 정신을 차리는 데 성공했다. 보통 인원들이었다면 패닉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

마력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구멍이 아닌 세계의 마력으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에게는 아주 큰 타격임이 틀림없다. 구멍 내부에 흐르는 마력은 완전히 이 공간의 주인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건 심상결계라고 할 수 있어.”

“선생님, 심상결계라면….”

“그래, 완전한 ‘자기 영역’을 의미하지.”

구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순히 ‘둥지’의 역할을 하는 구멍과 ‘완전한 집’을 의미하는 구멍.

간혹 이 두 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멍이 있다. 이곳은 명백하게 두 가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멍이었다.

외부에 마력이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본체를 향해 흡수되고 있는 점.

구멍 내부의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형태가 아니라 어떠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

분명히 이 둥지는 ‘완전한 집’을 의미했다. 저기 보이는 ‘균열’이 보인다는 것은 ‘둥지 안에 둥지’ 완전한 집을 이루고 있는 구멍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 균열을 열어야 해.”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아니, 잠깐!”

다시금 날갯짓을 하려고 했던 아이리스가 의아함을 표출하며 급발진을 멈추었고, 나는 푸른 용의 등을 가볍게 툭툭 치고는 ‘조금 기다려 봐.’라며 흥분한 아이리스를 말렸다.

분명 아이리스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 허공에 균열이 있는 곳을 노려 몸으로 받아버리면 깨질 것이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그렇게 쉽게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허공에 떠 있는 와중에도 멀리서 날아오는 대거의 검은 정령들이 있었는데, 란베르크는 내가 주변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아이리스의 등에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저 균열을 열기 위해서는 ‘껍질구멍’의 심장을 파괴해야 해.”

“껍질구멍은 무엇입니까. 선생님.”

‘완전한 집이라고 불리는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절망은 외벽이 되는 구멍을 지은 다음, 그 구멍의 차원을 깨트려 완전한 영역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그 영역구멍에 자신의 심상 차원을 기생시켜버린다.’

‘껍질구멍이라는 거대한 틀을 만들어, 본래 세계에 있는 차원을 깨트리고 자신의 영역구멍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의 둥지에는 균열이 가게 되어 있다.’

“그 균열을 완전히 부수기 위해서는 껍질구멍의 핵심이 되는 본체의 제2 매개체를 없애야 해.”

『즉, 이곳의 대장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군.』

“정답이야. 지금 나는 그 대장을 찾고 있고.”

아와의 황금광산도 자칫 완전한 집이 될 뻔했다. 아와가 본체라면 제2의 매개체는 아이리스와 렌의 도움을 받아 처리했던 검은 정령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아와에게 ‘네 심연이 어디에 있지?’라고 물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외니까, 하필 마안의 뭉치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본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보통 대절망이 만드는 심상결계는 지옥을 연상하게 만들거나,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대지에 그윽한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봐왔던 구멍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다. 마치 황폐해진 마을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부서지다 못해 불에 모조리 타버려서 재앙이 휩쓴 마을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런 심상을 절망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카니로베의 원천은 대절망이 아니다. 엄연히 베로니카라는 마녀가 탄생시킨 절망, 그렇다면 이 심상은 베로니카의 것이라는 말인가.

“선생님, 저 검은 정령은 형체가 특이합니다.”

란베르크가 눈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황폐해진 대지에 거대한 십자가를 끌고 다니는 기이한 형태를 가진 거대한 크기의 검은 정령이었다.

나는 십자가를 짊어진 검은 정령에게 극도의 집중을 하여, 마력의 유동을 살피려고 노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중이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묵직한 공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다.

“집중의 연산.”

“눈치가 빨라. 가르쳐 준 건 없지만 수제자네.”

“아닙니다. 선생님.”

란베르크는 내게 ‘집중의 연산’이라고 불리는 꽤 고위 마법에 속하는 정신계열의 마법을 적용했다.

저것의 심장으로부터 희미한 마력의 경로가 균열에 이어져 있음을 파악했다. 분명 저 십자가를 짊어진 검은 형상이 제2의 매개체가 확실했다.

“당첨이야. 저것을 없앤다.”

『둘 다, 짐을 꽉 붙잡도록!』

지대에 내리자마자, 허공에 떠 있던 수백의 검은 정령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아이리스가 곧바로 날개를 휘둘러 검은 정령들을 튕겨 나가게끔 했다.

란베르크와 나는 검을 빼 들어 지상에 있는 검은 정령들을 공격하며 십자가를 짊어진 검은 정령에게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짐이 허공에 날아드는 녀석들을 맡겠다!』

“부탁할게, 아이리스!”

허공에 떠다니는 검은 정령들의 수도 터무니없이 많았지만, 지상도 다를 것은 없었다. 사방을 둘러 우리에게 다가오는 검은 정령들의 수는 징그러운 바퀴벌레 떼를 연상하게 만든다.

“란베르크, 검기로 전방을 뚫어 줘!”

“분부대로!”

또다시 란베르크의 검에 엄청난 전격이 둘리고, 이내 전방을 향해 날카롭고 거대한 검기가 날아갔다.

스치는 검은 정령들은 무자비하게 반으로 썰려 나갔으나 여전히 수가 많아서 고전을 피할 수 없었다.

한 마리가 아닌 한 번의 움직임으로 수십 마리가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에 이미 우리 셋은 일당백은 기본으로 하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검은 정령들에게 몇 초면 둘러싸이고 만다.

“선생님, 생각보다 세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핵심을 파괴하지 못하면, 계속 재생할 거야.”

가장 큰 문제는 재생. 검은 정령들에게 일반적인 공격은 다시금 재생하여 부활을 하게 만들 뿐이다. 즉 시간 낭비나 다름이 없었는데 마력을 두르지 않은 공격에는 최소 3번은 재생을 통해 부활했다.

구멍에 있는 마력을 흡수하지 못하는 우리가, 마력이 담긴 큰 공격을 계속해서 강행한다면 결국은 체력싸움에서 패배라고 말 것이다.

‘차라리 단번에 끝내야 해.’

란베르크의 강력한 마력이 담긴 참격에 의해서 적들의 세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으나, 지면을 통해 피어나는 검은 정령들의 수는 끝이 없다.

“란베르크, 속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당연합니다. 그 발언은 다소 저를 무시하는 발언이군요.”

“무시하지 못하는 발언을 해주마.”

나는 란베르크의 정면에 있던 검은 정령을 검으로 베어버리고는 손바닥을 펼쳐서 이야기했다. 양손을 펼쳐서 정확히 숫자 10을 나타냈다.

“더하기.”

“더하기?”

“90번 중첩해.”

“헤이스트(가속 마법)를요?”

“그 정도면 30번의 검격을 날릴 마력인데요.”

“가속의 끝을 보고 싶지 않나 보네.”

“설, 설마… 지금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겁니까.”

“맞아, 헤이스트를 최대 몇 번까지 중첩해봤어?”

“많아도 3번,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100번까지 가능하니까, 준비해.”

“100번 말입니까?!”

“내 안목이 정확하다면, 넌 성공할 수 있어.”

사실 학계에 알려진 바로는 헤이스트의 최대 중첩은 4번까지라고 알려져 있다. 수많은 마법사의 연구를 통해 발견된 정확하고 명확한 사실이었다.

2번을 중첩하면 혈관이 축소되고, 3번을 중첩하면 심장이 2배로 빨리 뛰기 시작한다. 4번을 중첩하면 심장이 과부하를 일으켜 터져버리거나, 멈춘다.

‘즉 그다음은 없다는 말이 되겠다.’

심장을 마력으로 보호한다. 심장에 ‘방탄 지기의 가호’를 두르고 계속해서 이어질 중첩에 대비하여 마력을 보충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바로 저 하늘에 날갯짓을 하는 푸르고 거대한 마력 덩어리에.

“아이리스, 란베르크와 내게 지속적인 마력 보충을 해 줘.”

『짐은 초월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만!』

“의미 없어, 이곳은 외부와 완전 다른 곳이야.”

초월 마법은 자연 마법을 토대로 한다. 자연 마법은 세계의 기운을 받아 최상의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이므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통하는 외부의 유일한 물리법칙은 오로지 무력.”

“이어서 생명체의 운동에너지를 의미한다.”

이곳은 구멍. 자연 마법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원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에 초월 마법이 구성될 수도 없을뿐더러,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업이라는 무력이 담긴 검사의 검기가 아닌 이상 이곳의 존재들에게 완벽한 타격을 입힐 수 없다.

“준비해, 란베르크.”

“예, 선생님!”

멀뚱하게 하늘에서 검은 정령을 쳐내고 있던 아이리스가 우리에게 마력을 보충해주기 시작했다. 마나 체인을 연결하여 블루드래곤의 거대한 마력이 몸 안에 흐르기 시작한다.

“아이리스는 우릴 엄호한다.”

『짐에게 맡겨라.』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

들숨과 함께 헤이스트를 하나, 둘씩 중첩하기 시작하는 란베르크를 보며 나 또한 중첩을 이어갔다.

달려드는 검은 정령들을 아이리스가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며 무자비하게 쳐냈다.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숨은 란베르크의 가슴을 압박했지만 개의치 않고 가속 마법의 중첩을 이어간다.

신체의 운동신경을 가속한 탓에 피부로부터 나오는 마력의 잔재가 조그마한 파편처럼 튀기 시작했다.

란베르크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마력이 응고체가 되어 주변에 흩날리는 것에 눈동자를 굴렸다. 한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중첩해나가자 100번에 가까워진다.

‘마력의 응고체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처음이라 놀랬나 보군.’

‘네가 자랑하는 고속검을 맞받아친 속도를 느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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