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1화 (91/222)
  • 091화

    * * *

    거대한 함선은 수많은 결의를 태우고 구름을 헤쳐 지나갔다. 장대하게 펄럭이는 드래곤 길드의 돛은 델타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충분했다.

    제국을 빠져나갈 때쯤, 아네스의 위대한 용병단 델타의 늑대들이 손을 뻗으며 배웅을 했는데, 그것을 보고 있던 드래곤 길드의 전원은 들리지도 않겠다만 큰소리로 외쳤다.

    ‘반드시 돌아올 테니, 델타 제일의 용병단이라는 이명을 놓고 기다려라.’

    거친 바람이 함선 외부에 있는 인원들에게 닿았고, 머리가 날리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모두가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분수에 맞지 못한 무자비한 것을 상대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이었다.

    ‘두 개로 나눈다.’

    이번 토벌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길드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거대한 부유 함선이라는 베이스캠프가 생긴 우리는 ‘방어’와 ‘공격’을 적절히 분리했다.

    정령왕의 말대로라면 현재 카니로베는 수많은 검은 정령들을 사역마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1대1을 중점으로 둬서는 안 된다고. 그 말은 즉 실로 길드원들이 전투에 임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카니로베의 메인 공격대 인원으로는 나를 포함하여 렌, 아이리스, 프리실라, 쥬드로 배치되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함선에서 대기하거나 증원이 필요하다면 즉시 투입되는 형식이었다.

    만약 검은 정령의 수가 많다면 ‘방어’를 담당하는 조가 또다시 두 개의 분류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지대로 내려와 백병전에 투입되는 조, 하나는 함선에서 엄호나 마법을 통한 중거리 공격을 위한 조였다.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아이나가 말하길 중거리 공격에도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오히려 지금의 전술이 피해를 줄이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지금부터 영상을 녹화하겠습니다.”

    “부탁할게, 메이.”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월간 세계의 모험에서 베테랑 마법 기자로 알려진 메이는 드래곤 길드의 토벌을 따라나섰다. 다름이 아니라 훌륭한 전사들의 모험을 담아보고 싶다기에. 겁을 잔뜩 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용사의 쉼터 전속 취재진이 되었거든요, 어디든 따라가겠어요.’라며 앞으로 더욱 장엄해질 드래곤 길드를 알리는 구성원이 되고 싶다며 길드의 일원으로 들어오기까지, 일파만파 더욱 유명해질 용사의 쉼터가 될 것이라 단언했다.

    “아서, 아직 르파르파의 꽃이….”

    “괜찮아, 아와가 하루 정도면 완성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다행이지만….”

    나는 레니의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으니까, 너무 그런 표정으로 있지 마.’라고 위로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했던 행동도 아니었기 때문에.

    레니는 르파르파의 꽃이 담긴 큰 병을 다시금 집어넣었다. 아이리스의 마력이 농축된 물을 사용하여 장시간 동안 숙성을 해야만 했는데, 문제는 아직도 완전한 숙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

    부유선에 탑승하기 이전, 병 안에서 푸른빛을 내며 기이한 분위기를 보였기에 드디어 완성인 건가 싶었다.

    아와가 고개를 흔들며 ‘잎이 완전히 푸른색으로 물들여져야 한다.’고 병에서 르파르파의 꽃을 꺼내려던 나를 황급히 말렸고, 최소 하루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추신을 더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처음 먹었던 포션과는 다르게 ‘고대의 진주’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 숙성을 해야 한다는 점이 까다로웠지만, 혹시라도 ‘고대의 진주’가 필요했다면 자칫 몇 년간은 여자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니까.

    ‘더욱 문제는, 이 몸이 익숙해졌다는 건데.’

    암, 익숙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걸어 다니는 것조차 어색했는데 이제는 검을 쥐고 란베르크를 완전히 상회할 수 있는 움직임이 가능하다. 완전히 적응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진짜 아서인지 몰랐다니까.”

    “늘 말했어요. 아서라고.”

    “그, 그게…. 어쨌거나 지금 알았으니. 크흠.”

    어제, 황당할 노릇이었던 쥬드의 ‘아서를 흉내 내는 여자’라는 몹시 지독한 오명을 벗어던졌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말하길 엄숙한 분위기를 따라가니 자연스럽게 ‘진짜… 아서 인가?’라는 수많은 추측과 고찰 끝에 ‘저 여자, 진짜 아서가 맞는 것 같은데….’까지 왔다고 한다.

    카니로베 토벌을 위해 거대한 대검을 등에 착용하며, 근엄한 얼굴로 길드 함선에 탑승해준 쥬드에게 분명 감사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여자로 지내면 어떤 기분이야?’라는 물음에 ‘당신 같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서 불편하다.’ 무한 반복되는 대화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르게 한다는 점만 빼면.

    바람이 쇄도하는 난간에 몸을 걸치고 사색에 잠기기 시작한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기나긴 머리칼이 뺨을 간지럽게 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절망의 부활.’

    눈살을 찌푸리며 절망을 토하는 구멍 속에서 미친 듯이 싸워댔던 순간들을 떠올렸고, 몸에서 미세하게 올라오는 그때의 느낌이 뼈를 쑤셨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근데, 마치 관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잖아.’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녀석’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곳으로 가서 떠들어봐야 돌아올 대답도 없겠다만 ‘여관을 차리라는 네 의견을 들었다가, 지금 온갖 귀찮은 일에 빠져있다.’라고 짜증을 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스터, 저희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 르파르파의 꽃이 완성되지 못한다면 말이야?”

    “네, 아이리스와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대절망’은 위험해.”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에요.”

    “저기 프리실라의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네.”

    “최선을 다해보죠. 마스터.”

    “그래, 그래야지.”

    * * *

    남대륙의 아이리스 해안을 지나칠 때까지는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어느 정도 긴장을 풀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령의 숲에 가까워지자 길드원들의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피부가 쭈뼛해지는 엄청난 살기를 품은 마력, 렌이나 아이리스가 가진 마력과 달랐다. 악의로 가득한 날카로운 공기에 모두의 뺨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이거. 상당하군.”

    “긴장했군요. 프리실라.”

    “단장, 나를 무시하지 말게.”

    “무시한 적 없어요. 이건 당연한 거니까.”

    템피드 제국의 긴급 전언을 낮 부엉이로 회신한 오스칼이 말했다. ‘정령의 숲 주위에 있는 3개의 제국에 비상령이 걸렸습니다.’라고.

    심지어 주변 일대의 제국에 속한 작은 마을까지도 계엄령이 선포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지금 스치는 바람이 말해주고 있다.

    ‘죽음.’

    함선 내부에 있던 길드원들도 전원 외부로 나와 대열을 정비했다. 프리실라와 아이나의 통제대로 함선 난간에 요격마법이 가능한 일원들로 배치하여 긴장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선생님, 저기를 봐주십시오!”

    란베르크가 황급히 어딘가를 가리켰다.

    구멍.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었다.

    “망할, 구멍까지 열었잖아!”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정령의 숲 위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숲으로 가까워지자 온갖 잡다한 괴성이 섞인 전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높은 허공인데도 아래에서 미친 듯이 싸우는 모험가들이 보였다.

    “마스터, 아무래도 파견된 모험가 같아요!”

    숲에는 제국의 기사를 포함한 수많은 모험가가 검은 정령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멍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아니면, 숨겨졌던 것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던가.’

    프리실라의 명령에 따라 함선에서 숲을 향해 수많은 요격마법을 퍼부었다. 세가 부족했던 이들이 우리의 엄호 공격을 발견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요격으로 인해 검은 정령의 분노를 사게 했다는 점. 프리실라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별안간 나타난 날개를 달고 있는 검은 정령을 검으로 쳐낸다.

    “전원, 백병전을 대비하라!”

    아이나의 명령을 받아들이며, 길드원들은 검을 뽑아 들어 수 없이 몰려드는 검은 정령들을 공격했다.

    란베르크의 거대한 검기로 인하여 우르르 떨어지는 검은 정령들이었지만, 다시금 모여드는 그 수에는 란베르크가 5명은 더 있어야 할 듯했다.

    “렌, 아이리스!”

    “알겠습니다. 마스터!”

    “임자의 뜻대로!”

    렌과 아이리스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는 마법인 폴리모프를 해체하고 드래곤으로 변하여 허공에서 무자비하게 검은 정령들을 떨어뜨렸다.

    엄청난 난세에도, 강력한 두 마리의 용이 천공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길드원들을 포함한 함선의 인원들도 숨을 돌리기 시작하며 스테미너를 회복했다.

    날개를 달고 있는 절망들이 함선을 공격하고 있는데도, 메이는 두 눈으로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 나타난 검은 정령의 공격에 신음을 토했다.

    ―칭!

    눈을 질끈 감자, 앞에서 철의 음성이 들려온다. 공포감에 의해 쉽게 떠지지 않던 눈을 게슴츠레 올리자, 아이나가 검은 정령을 반으로 절단했다.

    “조심하세요. 제 뒤로 오시죠.”

    “고, 고마워요. 아이나!”

    메이는 계속해서 촬영했다. 붉은색으로 아주 깊게 물들어 버린 하늘을 시작해서, 검은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까지. 이 흉흉한 공기마저 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쉬워하는 그녀였다.

    “구멍을 없애려면, 구멍에 들어가야 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했지만 나를 제외한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은 구멍을 없애는 정확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저건 둥지.’

    ‘둥지’라고 불리는 구멍은 수많은 구멍 중에서도 사역마를 거닐 수 있는 절망이 사용하는 고유 차원이었다.

    둥지가 만들어지면 반경에 있는 모든 마력을 조금씩 흡수하는데, 분명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마력의 농도가 현저히 낮아져 대부분의 인원이 전투가 힘들어질 수 있다.

    구멍을 없애려면, 구멍을 만든 원천을 소멸시켜야 한다. 명실상부한 사실, 특히 저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정령들을 멈추려면 더욱 구멍을 파괴해야만 한다.

    “레니, 르파르파의 꽃은!”

    “아, 아직인 것 같아요!”

    레니가 꼭 껴안고 있던 플라스크의 담긴 르파르파의 꽃은 완전히 푸르다는 느낌이 아녔다. 옆에 있던 아와와 정령왕도 고개를 흔들며 멀었다는 의사를 표했다.

    주위의 상황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전력을 나누고 당장이라도 구멍 안으로 들어가 원천을 파괴해야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기에.

    이곳의 전력을 완전히 잡아낼 수 있는 것은 렌, 녀석은 이곳에 배치하고 곧 숙성이 끝날 르파르파의 꽃을 레니에게 받아서 구멍 안으로 들어오는 시간까지 충분하다. 녀석은 누구보다 빠르니까.

    “아이리스!”

    『임자야, 불렀는가!』

    “나를 등에 태워, 그리고 구멍으로 들어간다.”

    『짐이 가장 흠모하는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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