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90화 (90/222)
  • 090화

    * * *

    『베로니카의 일기 中 마지막 장 발췌.』

    나는 마녀로 태어났다.

    아니, 마녀의 운명으로 잉태 당했다.

    세계에 내로라하는 수명이 짧은 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종족이었던 인간,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마녀라는 지독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여 엘프와 버금갈 수 있는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미, 그래 나의 어미. 아니 내 조상이라고 불리었던 모든 이들은 천계 페지르 교황청에 완전한 이단으로 취급받는 ‘황동의 언덕’의 일원들.

    마법사로 이루어진 암흑마도의 학계 ‘황동’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진작 파국에 치닫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버림받은 아이로 부모의 얼굴도 알지 못한 채 절망을 토하는 구멍과 마력 전쟁 속에서 살아내느라 바빴다.

    ‘그래서 나는 하늘이 원래 붉은색인 줄만 알았고.’

    암흑마도의 학계 ‘황동’이자 ‘마녀’의 상징으로 불리는 보랏빛의 눈은 어딜 가든지 나를 ‘죽음’으로 내몰게 하는 악몽 같은 것이었다.

    가끔가다 존재 모를 잔존 암흑마법사들에게서 아름다운 눈이라며 그들만의 심상으로 던진 말이 칭찬인 줄만 알았다.

    그 오명을 모르고 사람들에게 ‘내 눈, 아름답죠?’라며 말했다가 화형을 당한 것은 부지기수였다.

    ‘이 보랏빛의 눈이 아름다운 것으로 착각했으니.’

    화형을 당한 것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거짓된 부활을 당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마녀로 태어난 나는, 몸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황동’이 탄생시킨 자연 마법 ‘악몽’은 사람들의 생명력에 직결되는 마력을 빼앗아 나의 목숨을 대신하는 것. 그들의 모든 악의와 고된 노고의 시간이 담긴 결과물은 하필 나에게 보존되어 있었다.

    내 몸에 불을 지핀 모든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마녀에게 붙인 불이 자기에게 돌아오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탄 냄새가 지독한 깊이 모를 눈앞의 검은 덩어리가 죽음을 암시했을 때. 이미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토하며 죽는 사람들이었다.

    그때였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10살의 어린 소녀, 3일 동안 죽음과 부활을 반복했다. 신을 대행하는 거룩한 십자가에 묶인 채로.

    물론 고통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이빨을 너무 강하게 깨물어 어금니고 뭐고 모조리 빠져버리기에 십상이었지만, 10분.

    이빨이 나기 시작하여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 어쩌면 처음 사귄 친구의 이름은 ‘고통’이나 ‘아픔’일 것이다.

    마녀는 평범한 방법에 죽지 않는다며, ‘화마의 기둥’ 같은 무서운 마법으로 3일 내내 마녀가 묶인 십자가를 태우는데, 그 뜨거운 불꽃의 기둥과 함께여야만 했다.

    ‘그때. 나는 고통에 통달했다.’

    ‘그래도, 신을 원망하지 아니했다.’

    고통이라는 상식이 내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가 10살이었다.

    그때는 내가 마녀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보랏빛의 눈을 가지면 이렇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인간이지만, 인간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나를 절망을 부르는 존재로 부르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먼저 눈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으로 눈을 짓눌려 터트린 횟수가 수백에 달하자, 끝내 유일 방법으로 마법 같은 것을 통해 눈동자의 색을 바꾸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 처음 사용해본 마법이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채로 그저 살기 위해, 그저 고통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잔재주.

    ‘악몽’을 떨쳐내고 싶었다. 이미 처음 사용해본 마법은 눈동자를 바꾸는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상 잉태되고 있을 때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악몽’이라는 마법이었다.

    ‘남을 희생하여, 부정한 부활을 일삼는 마법.’

    나는 내 어미를 포함한 조상이 이룩한 사악한 비보가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그래서 이 마법을, 이 ‘악몽’을 떨쳐낼 온갖 수단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마법이라는 학문에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인간이지만 ‘인간’으로 변장하여 계속해서 인간들 사이에 숨어 인간들처럼 행동하며 지냈다. 나는 인간인데도. 같은 뿌리를 지닌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던 와중, 내가 보랏빛의 눈이라고 해서 피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쯤.

    모든 것을 놓고, 나를 이해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마녀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결과적으로는 ‘악몽’을 떨쳐낼 수 없다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정령들을 보며 불사의 몸을 가진 내가, 감히 함께하고 싶다.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일생일대의 소망을 이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령들이 내 삶의 유일한 관찰자였음을.’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상’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으며 마을을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일상을 원했다.

    굳이 보랏빛의 눈을 감추지 않더라도 길거리를 배회하며 남들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노력을 거듭하여 보랏빛의 눈동자를 까먹을 정도로 오랫동안 인간으로 흉내를 내며 살아왔고, 누구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마탑의 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

    ‘정령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정령이 아닌 인간들도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항상 타인에게 베풀며 살아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마녀로 오인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내 뜻도 그랬다.

    이를테면 나를 해하려고 하더라도 웃음으로 그에 대한 화답을 전했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기에.

    ‘그 아픔을 알기에.’

    학생들도 나를 인자한 선생이라 생각해주었다. 모든 정령이 나에게 가까워지고 나는 따뜻하고 마음이 고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정말. 행복했다.’

    금은보화를 원하던 것이 아녔다. 권력을 원하던 것이 아녔다. 호화로운 집을 원하던 것이 아녔다. 존경받아 마땅할 명예를 원하던 것이 아녔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원했다.’

    ‘그저 인간이니, 인간처럼 살고 싶었다.’

    배를 뒤집어 까무러치듯 우습게도, 그런 작디작은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마치 정해놓은 운명처럼, 당연한 듯이 다가오는 이야기의 엔딩처럼.

    신은 나의 평범한 하루를 원하지 않았다.

    내 몸에 흐르는 혈액, 핏줄을 이어, 심장에서, 심장에서, 심연으로. 내 몸이 분명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또 하나의 인격?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점이란 이것은 어둡다. 아주 어둡다. 무섭다. 나를 갉아 먹는다. 계속 파먹는다. 내가 없어진다.

    어느새 얼굴에 어둠이 자리 잡히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자, 사악한 웃음이 담긴 내가 있었다. 그건 내가 아닌데, 분명 저건 내가 아니지만 보란 듯이 거울 안에 있었다.

    ‘이것은 심연이었다.’

    ‘악몽’이라고 불리는 ‘황동’이 낳은 암흑의 보고는 ‘절망’을 탄생시키는 마법이었다. 실수, 그래 남을 희생하여 부활을 일삼는 마법이라 판단한 오만한 나의 착각이자 실수였다.

    계속해서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것처럼, 분명한 것은 내 의식이 점점 심연 안으로 묻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니로베.’

    내 몸에 불을 붙인 어느 사내를 보고 있을 때부터, 속삭이는 듯이 귓가에 퍼지는 단어였다. 아, 아. 그 단어는 영원했다. 내 이름 ‘베로니카’를 스스로 짓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심연이 나를 잠식하여 절망을 부활시킬 씨앗이라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나는 점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울어 몸이 삐쩍 말라 일어설 힘도 없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정령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수많은 마법을 걸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기생하고 있는 심연은 정령의 모든 생명의 기운을 잠식하려고 했다. 죄책감을 넘어설 수 있는 단어를 만들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기꺼이 나일 수밖에 없다.

    내가 온전한 베로니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8시간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정령들과 절망의 부활을 막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카니로베도 베로니카가 살아온 정보와 지식을 기반하기 때문에.

    ‘아, 아….’

    누가 이 고통을 끝내주시길. 나는 절대 나로 남을 수 없기에.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비록 이단의 종자라고 불리는 마녀라고 했지만, 매일같이 신께 기도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저주받은 나를 처단할 훌륭한 심판자를 보내 달라고. 당신의 그 거룩한 힘으로 나에게 폭력을 대행할 존재를 보내 달라고.

    어이없는 생명이다. 나를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마녀로 태어난 줄만 알고 내 핏줄을 증오하며 살아왔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희생에 불과했다. 자기희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황동의 최종목적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오만하게도 내가 결과물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다. 내가 노력하면 인간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착오, 착오. 완전히 거짓된.’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내가 베로니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채 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나를 막을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막아줘야 해. 부탁이야.

    * * *

    여관 마당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란베르크가 직접 공수해온 길드용 부유 함선이었다. 500명은 족히 탑승하여 하늘을 누빌 수 있는 거대한 범선을 보며 넋을 놓는 길드원들.

    “란베르크, 정말로 괜찮은 거 맞지?”

    “네, 선생님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그렇긴 하지만… 이런 걸 가지고 올 줄은.”

    란베르크는 이런 함선쯤은 별것 아니라며 10개 정도는 더 구해올 수 있다고 하였다. 블헤이드 메인 가문의 자손다운 발언이었다. 하거먼 필스와 비교하면 지금까지 겸손의 끝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암.

    녀석은 본 함선을 드래곤 길드의 전용 함선으로 사용하자는 의사를 표했는데. 빠른 수긍 이후 이 거대한 함선을 누구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냐는 가장 큰 난제 앞에 홉스가 자신감을 표출하며 ‘제가 운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홉스, 너는 못 하는 게 없구나.’라며 많은 이들이 녀석을 칭찬했으나, 고개를 흔들며 ‘아닙니다. 전투력도 없는 제가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함선 면허 자격증을 따놓은 것이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는지 홉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드래곤 길드를 포함하여 여관 유니폼을 제작해주는 브레드 씨도 부유 함선의 수많은 돛에 장착할 천막을 무상으로 제작해 주었다. ‘어린 정령 친구들의 목숨을 구해주게.’라는 추신을 더하며.

    허공에서 붉은 천막에 용이 그려진 돛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은 탄성을 뱉었다. 브라운 아저씨가 제작한 드래곤 길드의 갑주를 입은 전사들이 초원 위를 걷는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전했다. 분명히 내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서 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대륙. 카니로베를 향하여.”

    “드래곤 길드의 총력을 가세합니다.”

    여관 일동이 문을 열고 전원 용사의 쉼터에서 나오자, 렌이 마지막으로 문턱을 밟으며 여관 추가 사항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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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사의 쉼터 ‘전원 출동’

    ※ 식구를 지켜내기 위해서 휴업합니다.

    ※ 기간은 ‘카니로베 토벌’을 성공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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