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9화 (89/222)
  • 089화

    * * *

    열흘이라고 했다. 아와가 말하길 정령계가 빌어먹을 ‘베로니카’를 거꾸로 읽은 ‘카니로베’로 인하여 완전히 오염되어 현세에 피해가 오기까지 열흘이라고.

    여관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내 경우에도 현재 마안의 뭉치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르파르파의 꽃으로 완벽한 물약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레니.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네.”

    “아하하, 브라운 아저씨가 자꾸 장난을 걸어서요.”

    문제는 르파르파의 꽃이라는 것이다. 파르파르의 꽃과 다르게 르파르파의 꽃은 피어난다고 해서 바로 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그 이유는 르파르파의 꽃의 경우 특별한 방법으로 숙성을 강행해야한다고 했다.

    아와의 말로 따르면 아이리스의 푸른 용이 가진 마력의 물을 용기에 담아 그 안에 두어 4일 정도 숙성을 한다면 음기의 마력이 완전히 순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스터, 뭔가 아이리스의 마력을 사용한다는 게 기분 나쁜데요.’라며 쏘아보는 녀석을 뒷전으로 얼른 엑스칼리버에 르파르파의 꽃이 완전히 피어나길 기다릴 뿐이다.

    ‘르파르파의 꽃이 완성되지 못한다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렌이나 아이리스를 데려가서 몽땅 박살 내 버리자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어린 장난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예를 들자면, 발레포르나 아벨기우스가 있는데. 녀석들은 엄연히 잠들어있거나 본연의 힘의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그러니까 살아있어도 거의 죽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인데, 은퇴 이후에 심각하게 약해진 이 몸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즉 이러하다. 지금 새롭게 부활하거나, 탄생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힘이 완전히 비축된 ‘카니로베’는 실로 구멍 안에 있던 절망들과 다를 바가 없다.

    ‘구멍을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절망을 토하는 구멍 이외에도 대절망에 경우에는 둥지라고 불리는 자신의 작은 구멍을 만들 수 있었다. 일명 고유결계라고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둥지 안에도 작은 구멍이 무한히 뻗어져 있고, 또한 이 구멍을 사태가 일어났을 때 아칸 허공에 수없이 뒤덮었다.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마스터.”

    “그래, 정말 너희들이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렌이 말한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것은 엄연히 렌이나 가능한 소리였다. 이것은 명실상부였다.

    그러나 지금 아칸에 살아있는 존재 중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절망과 대적해본 녀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도 절망이 가진 진정한 어둠의 크기를 모른다.’

    렌이나 아이리스의 경우는 정말 필요한 보험 같은 것인데, 발레포르토벌을 위해 보험으로 데려간 쥬드와는 일방적으로 다르다.

    쥬드는 정말 혹여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지만, 두 마리의 용을 데려간다는 것은 안전수칙을 온전히 따르는 것과 같다.

    * * *

    “알아냈네.”

    근엄한 표정을 하며, 용사의 쉼터 휴일을 맞춰 찾아온 정령왕이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드래곤 길드의 프리실라, 아이나, 란베르크. 웨이트리스의 렌, 아이리스. 홉스와 해골 신사들을 포함하여 앉아 있었다.

    레니와 브라운 아저씨는 베로니카 토벌로 인한 장비나 회복제를 제조하기 위해 지금쯤 각자의 작업실에 서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을 것이다. 브라운 아저씨는 아마 케피탄 맥주 냄새와 함께이지 싶다.

    “흠.”

    “이야기해보시죠.”

    ‘피해를 본 정령들의 마력 기로를 따라갔더니, 남대륙을 끝으로 카니로베가 숨어있는 위치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네.’라며 정령왕은 대답했다.

    이 또한 마안의 뭉치가 있었더라면 쉽게 찾아냈을 터, 정령왕의 정보 이외에도 아네스가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남대륙에 존재하는 많은 제국의 정령사들이 검은 정령 현상에 머리를 아파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메이가 말하길 월간 세계의 모험 소속이나 다양한 신문사들의 마법 기자들이 남대륙 이상 현상에 의해 대거 취재를 향했다고.

    “남대륙 이외에 별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자세한 위치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네.”

    “마녀가 손을 썼나 보군요.”

    “완벽한 부활을 위해 계략을 꾸민 것일 테지.”

    그도 그럴 것이 부활을 방해할 존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베로니카였다. 최소 인류에 섞여서 살아온 그녀라면 더욱더 그렇겠지.

    문제는 ‘들키지 않도록.’이라는 문장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베로니카라는 것이다.

    태풍의 탑으로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심지어는 오스칼의 계약 정령인 플로우들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최면을 걸어 진짜 계약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는 점.

    이것은 보통내기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남대륙’이라는 위치를 계산했는데.

    베로니카가 지금까지 이룩한 부활, 그 일말의 과정들을 돌이켜본다면 아주 치밀하게 숨어있을 것이다.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진정 대절망으로 새로운 부활을 하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인명피해도 생각해야 한다.’

    옆에 서 있던 해골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온갖 용품들을 쥐고 나타났다.

    캡틴은 머리에 냄비를 투구처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정령왕을 포함한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다.

    “달그락, 달그락!”

    “뭐야, 너희들도 따라가고 싶다고?”

    “달그락!”

    “자칫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달, 달그락.”

    “너희는 여관을 지켜줘.”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갑자기 시끄러워진 여관 내부였다. 이른 아침이라 손님들도 없는 해골들의 턱뼈를 부딪치거나 관절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홀을 가득 채운다.

    “임자야.”

    “안 돼.”

    “그래도, 이들은 플로우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달그락!”

    “제 목숨이 아까워 숨어있는 것보다는 배로 훌륭하다.”

    해골들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동공도 없는 주제에’ 나를 열정적인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플로우들과 해골들과의 관계는 내가 너무 섣불리 판단했다. 이들도 서로가 소중한 식구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라. 해골들과 플로우들도 동거, 동락.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했던 여관 일동이 아니던가.’

    캡틴이 홀을 쏘다닐 때 녀석들이 함께 다녀주거나, 네이비와 블루가 빨래를 할 때도, 없는 땀도 흘릴 불길 앞에 있던 요리 삼인방에게도, 심지어 마차를 운행하고 돌아오는 퍼플을 마중하거나, 알게 모르게 이들은 함께해왔다.

    “란베르크.”

    “예, 선생님.”

    ‘미안하지만, 저 녀석들 말이야.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야지 내가 일을 시킬 것 아냐, 몸을 지킬 실력만 만들어줘.’라고 말하자, 피식하고 웃으며 ‘알겠습니다. 선생님. 제 전문이니까.’라는 말로 대답이 돌아온다.

    * * *

    오스칼은 남대륙과 서대륙을 오가며, 최대한 검은 정령과 카니로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여관에 보고했다. 의뢰자의 입장이지만 현 상황에 대해서 템피드 제국의 소신을 담아 정령계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듯.

    “아서 씨.”

    “예,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고.”

    “아직도, 플로우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해요. 으흐흑.”

    나는 오스칼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돌아올 겁니다.’라며 위로했다. 물론 눈을 얇게 뜨고 ‘베로니카처럼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템피드 제국을 파멸시켜버리겠어요.’라는 추신을 전했다.

    “아하하, 아버지… 제국의 운명은 제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수집된 정보는요.”

    오스칼은 등에 있던 가방을 홀의 메인테이블 위에 얹히더니 그것을 열어 수많은 종이를 펼쳤다. 못해도 30장 정도는 족히 넘을 수의 종이였다.

    이것은 템피드 제국에서 직접 추출한 마력 기로에 대한 스케치였다. 수많은 연구원과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게, 어째서 핏방울 같은 것이 종이에 묻어 굳어있을까.

    “으, 그 피는 제가 흘린 코피입니다.”

    “고생하셨네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헤이스트를 1시간마다 사용하면서 하루를 세웠으니.”

    “대단해. 저희 여관에서 일할래요?”

    “갑, 갑자기요?”

    “소질이 있어 보여서 그만.”

    오스칼이 가져온 정보를 축약하면 이렇다. 베로니카는 남대륙 어딘가에 있는 것이 확실하며, 그녀의 마력 유동과 기로가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템피드 제국에서 멀지 않은 ‘정령의 숲’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정령의 숲이라. 고대유적이잖아.’

    ‘정령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 숲은 ‘고요한 숲’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근 10년 전부터 숲이 아니라 ‘고대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들지 않아, 베로니카가 그곳에 숨어있을 확률이 있지만, 남대륙을 떠나 사방팔방 ‘정령 훔치기’로 인하여 마력 기로가 산발적으로 퍼져있었기 때문에 100% 확정할 수는 없었다.

    “렌.”

    “네, 마스터.”

    “드래곤 길드를 포함해서 전원 소집 시켜 줘.”

    * * *

    용사의 쉼터 마당 앞, 70명의 가까운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저 가볍게 전달할 사항이 있어서 모이라고 한 것인데, 프리실라는 나를 굳이 당황하게 만들려는 심보인지 길드원들을 각에 맞춰 배치했다.

    차려 자세로 미동도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이들을 향해 ‘쉬어.’라고 말하자, 갑작스럽게 아이나는 나를 보며 ‘단장님도 혹시 기사단 출신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군대는 어쩌고저쩌고 말하면 길어질 것이 분명하니 ‘크흠.’으로 대답을 대신에 한다.

    “이렇게 모여주어서 고맙습니다.”

    “단장의 명령으로.”

    “3일 뒤, 카니로베 토벌을 실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말을 잠시 멈춘 나를, 빤히 직시하는 모두였다. 한 치의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조용한 바람이 귓가를 스칠 뿐, 모두가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니, 참가하지 않을 길드원들은 뒤로 빠져 주세요. 되도록 모두가 뒤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단장의 바람입니다.”

    나는 허공에다가 대고 아무개한테 말한 것인가? 꿈쩍도 하지 않는 길드원들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란베르크도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물론 렌과 아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입니까. 다들.”

    “단장에게 말할 것이 있네.”

    프리실라는 모두를 대표하여 앞으로 조금씩 걸어 나왔다. 자신의 플레이트 갑옷을 툭툭 때리며 외쳤다.

    “한 명이 맞고 오면 전원이 가서 때려준다.”

    “이것이 바로 ‘태양 새의 용병단’이 가진 소신.”

    “그러나 ‘드래곤 길드’의 소신은 이러하다.”

    드래곤 길드의 일원 전원이 갑옷에 새겨져 있는 붉은 용의 상징을 주먹을 쾅쾅 때렸다. 이것을 보고 있던 렌을 포함한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그 행동을 따라 한다.

    “식구가 맞고 오면, 식구가 가서 때려준다.”

    “식구를 아프게 하면, 식구가 가서 아프게 해준다.”

    “누구 하나가 원한다면, 그것이 세계정복이든.”

    모두의 표정은 프리실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쩌면 프리실라가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모든 이들을 대변하고, 나를 대변하는 용감한 발언일지도 모른다.

    “이곳에 플로우들을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는 없다.”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만약 있다면. 뒤로 물러나도 좋다.”

    “그리고.”

    “이 프리실라의 검으로부터 죽음을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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