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7화 (87/222)
  • 087화

    * * *

    정령왕의 기운을 통해 플로우들이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오스칼은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드디어 찾았는데, 아이들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라며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템피드의 피가 이어져 있군.”

    “어떻게 그걸….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령왕은 오스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했고, 이내 눈을 감자, 오스칼의 주변으로 초록빛이 맴돌았다. ‘그랬군, 그랬어.’라고 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난 그대의 조부와 인연이 깊은 사이.”

    “저희 할아버지와… 인연이.”

    ‘정령왕’이라는 말을 꺼내자, 오스칼은 공손히 고개를 낮추어 인사를 건넸다. 예로부터 템피드 혈족의 깊은 관계를 이어온 정령왕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오스칼이었다.

    “너무 그러지 말게, 지금은 이 아이들이 우선이니.”

    “제국에서도 현재 검은 정령에 의해 많은 정령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검은 정령’ 그것의 원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플로우들을 살려낼 수 없었다. 원천을 없애지 못한다면 플로우들의 절망화도 지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정령왕과 오스칼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섣불리 그들에 대화에 낄 수 없었던 것은 분명 이들의 대화 끝에 해결방안이 나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이 아이들에게서, 내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저희 템피드 혈족에게서만 내려질 수 있는 정령왕님의 기운으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이 작은 것이 세계의 유산이 되었단 말인가.”

    “한참 부족한 제가 맡게 되어, 아이들이….”

    “그래서… 대절망이 이 아이들을 원하는 것이었군.”

    단순히 얼음 속성의 하급 정령이라고 생각했던 플로우들은 무려 ‘세계의 유산’이었다. 카니로베라고 불리는 대절망은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세계의 유산이 가진 기적이 필요한 듯했다.

    세계의 유산이란 자연 마법으로 태어난 아주 특별한 생명체나 사물을 의미한다. 그 안에 내재하여있는 신묘한 힘은 매우 거대하여, 영생에 가까운 마력을 무한하게 생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니로베는 분명 큰 목적을 품고 있는 것.

    ‘마탑을 찾아가야겠어.’

    그도 그럴 것이 플로우들의 본 계약자는 베로니카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칼의 등장으로 그녀의 증언에 금이 갔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마탑을 찾아가야 했다.

    “오스칼님의 의뢰 항목을 추가하도록 합시다.”

    “당, 당신은 누구시죠?”

    “후, 아서입니다. 아서. 파르파르의 꽃을 먹었거든요.”

    “아… 파르파르의 꽃을 언급하는 걸 보니, 아서가 맞나 보군요.”

    “이 친구들은 제 식구이기도 합니다. 오스칼.”

    * * *

    [ 서대륙 델타 – 마법 학교 : 태풍의 탑 ]

    정령왕도 동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오스칼과 함께 정령계를 포함한 현세에 벌어지고 있는 검은 정령 사태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여관에 남아있는 쪽을 택했다.

    아와 또한 로아를 포함한 수많은 정령과 현세에 있는 검은 정령의 기운을 추적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은 모든 의뢰를 중단하며 아네스 여관의 소속 델타의 늑대들과 함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시시비비 드래곤의 등 뒤에 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뒤로했다. 나는 렌에게 부탁하여 최단속도로 델타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태풍의 탑으로 향했다.

    허공에서 바라보는 태풍의 탑은 실로 거대했으나, 문제는 크기를 논하며 입을 벌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태풍의 탑 외부가 상당한 몰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여긴, 또 왜 이런 거야. 하.”

    『마스터, 우선 아래로 내려갈게요.』

    거대한 폭풍이라도 몰아치고 갔는지, 단단한 암석으로 구축된 탑이 이리저리 박살 나 있었다. 이를테면 풍비박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성한 곳이 하나가 없었다.

    외벽 바깥으로부터 정령들과 함께 태풍의 탑 일원들은 건물 외벽이 파괴되며 나온 부산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들이 외치며 말하길 ‘외벽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해서 작업하세요!’라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두고 하는 말이 오갔다.

    최대한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도록 태풍의 탑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착지를 시도했다.

    아무래도 이러한 상황에서 빨간색 용까지 봐버린다면 렌이 아무리 멍청한 용이라고 설명한다 한들 저기 있는 사람들은 가히 절망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꾸물꾸물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렌을 보며 ‘아직도 저건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야.’라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마스터, 출발하시죠!”

    “그래, 빨리 와.”

    거대한 문 앞에는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부산물들을 치우는 학생들도 보였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부족한 탓에 학생들도 도와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표정이 영 좋지가 않아.’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부산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자신의 일자리나 다니던 학교가 풍비박산이 났으니 그도 그럴 것인데, 진짜 문제를 직시했을 때에는 애꿎은 이빨을 긁어댈 수밖에 없었다.

    “마, 마스터. 정령들이….”

    “완전히 저질러 주셨군그래.”

    멀쩡하게 일을 돕는 정령들도 있었지만, 비단 많은 개체가 색을 잃어가거나 혹은 계약자에 품에서 힘없이 안겨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우리들을 보며 ‘누구지?’하는 표정을 짓지만 거기서 끝으로 그들은 다시금 부산물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중 앉아 있는 어느 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베로니카 선생님을 찾고 있어요.”

    “….”

    학생은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눈물이 맺힌 소녀의 표정은 온갖 증오와 분노가 섞여 있는 기피감이 드러났고, 서서히 꺼내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관자놀이가 격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 가증스러운 이름을, 어째서 물어보는 거야.”

    렌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작은 돌을 집어서 나에게 던지는 소녀, 렌은 급하게 자신의 몸으로 나에게 튀는 돌을 막았다.

    렌의 애꿎은 머리에 돌이 맞자, 나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털어주고는 소녀에게 말했다. 그 와중에도 소녀는 다음 돌을 던지기 위해 앉아 있던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미, 미안합니다.”

    급하게 렌의 손목을 잡고는 소녀를 뒷전으로 마탑 내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렌은 머리에 돌을 맞았다는 것이 화나지도 않는지 방긋 웃으며 ‘마스터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전혀 괜찮지 않잖아, 네가 맞았는데.”

    “마, 마스터는 가끔 그렇게 훅 들어온다니까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자.”

    “하하, 네. 마스터.”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외벽이 뚫려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내부의 상태를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어서 조금만 걸어도 대리석 파편의 먼지가 허공을 맴돌 정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마스터.”

    “검은 정령과 관계가 있는 일이겠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많은 학생에게 ‘베로니카는 어디에 있나요?’라는 물음을 건네자 돌을 던진 소녀와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30명이 넘었다.

    “몹쓸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마스터, 인간은 자고로 악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종족이라고도 하죠.”

    어슬렁거리던 우리를 발견하여 말을 걸어오는 선생이 한 명 있었다. 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했더니 ‘그렇게 마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다녔으니, 돌을 맞을 만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베로니카가 마녀라고?’

    남자는 고개를 흔들며 교장실에 안내해줄 테니 이야기를 잘해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쪽 이야기가 무슨 일이건, 이 이상 태풍의 탑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추신을 더하며.

    마녀라는 말을 했다. 마녀는 과거에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나타난 절망을 숭배하는 암흑마도사를 일컫는 단어로, ‘천계 : 페지르’에 맞서는 완전한 이단이었다.

    베로니카가 마녀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마녀라고 불리는 자들은 모조리 파멸했기 때문인데, 렌도 마녀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래전에 씨가 말라, 후손이라고 불리는 자도 보기가 어려운데.’라는 말을 더했다.

    “교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교장실이라고 적힌 거대한 목조로 만들어진 문에 노크했다. 교장실의 문 또한 몰골이 말이 아녔다. 이어서 ‘들어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어주는 선생.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나요?”

    묵직한 중저음은 분명 그때 들었던 교장의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마탑의 중심인물로서 많은 고충이 섞인 한숨을 뱉고 있었다.

    “저는 이전에 찾아왔던, 아서라는 사람입니다.”

    “아, 정령왕님의 기운을 받아 호롱불을 만드셨던.”

    상당히 길게 늘어진 테이블을 돌아 나에게 교장이 다가왔고, ‘분명 남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라는 의구심이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게… 파르파르의 꽃을 먹어서요.”

    파르파르의 꽃을 먹었다는 말을 뱉자마자, 피식하고 웃는 교장이었다. 지금 이 묵직한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나마 바꿀 수 있다면 나 하나쯤 희생되어도 괜찮으니까.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파르파르의 꽃을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정령왕님의 기운을 받을 때부터…. 참 신묘한 분이십니다.’라고 자꾸만 피식거리는 교장이었다.

    “그때, 데려온 정령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나 봅니다.”

    “네, 탑의 상태도 보아하니 여간 말이 아니네요.”

    ‘그리고 데리고 오셨던 정령의 주인이 마녀도 아니란 것을 알았을 테죠.’라는 교장이 뱉은 문장. 이로부터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베로니카는 ‘마녀’였다.

    명실상부 교장의 말은 거짓이 없음을 느꼈던 것이 베로니카는 처음 마탑으로 배정되어 이곳에 기록되어 있던 그녀의 인적사항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이다. 모든 진실이.

    상당히 치밀한 위장 마법을 통해, 지금 인적사항에 대한 용지를 보면 백지상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저 그 백지에는 ‘베로니카’라는 이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높은 등급의 마법사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알아차렸다는 얘기는 베로니카가 평범한 존재가 아닌 것이 증명된 바나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다음, 사태가 일어나는 날이었다. 마탑에 있던 정령들이 모조리 절망화가 시작되어 검은 정령으로 변했다.

    별안간 일어난 일에 마력을 추적한 결과 교실에서 유유히 웃음을 짓고 있던 베로니카가 있었고 ‘마녀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자주색의 기운’이 담긴 마력을 흉흉하게 풍기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덕분에 부활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었다.’

    평소에 행실이 곱고 바르던 베로니카의 모습에 학생들은 완전한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계약자가 있는 정령들도 대거 절망에 침식됐다.

    이후 거대한 마력 폭풍이 일어나며 마탑은 부서졌다. 하물며 변질한 정령들은 계약자들에게 공격적이거나 그 폭력성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끝내, 정령을 소멸시키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에 기대고 있던 팔을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교장이었다. 작은 움직임 때문에 놓여있던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베로니카는 남아있는 잔존 마녀 중 하나로.”

    “절망을 부활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가 떨어졌고, ‘베로니카’라는 이름만이 남아있는 그것을 주웠다. 어이가 없게도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빌어먹을’이나 ‘망할’이라는 말을 붙일 틈도 없이, 무연한 표정과 함께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베로니카.’

    ‘거꾸로…. 읽으면.’

    ‘카니로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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