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6화 (86/222)
  • 086화

    * * *

    내가 안고 있던 플로우 4마리를 아이리스가 대뜸 자기 품에 안았다. ‘녀석들은 지금 원소 마력이 부족하니, 짐이 도와주겠다!’라는 말과 함께 푸른빛의 기운이 주위를 맴돌았다.

    현재 상위 정령이 여관에 없는 관계로 플로우에게 적용된 알 수 없는 저주를 뚫어서 마력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이리스밖에 없었다.

    아이리스는 품에 안고 있던 플로우들에게 마력을 옮기고 있었고, 플로우 주변에서 검은빛의 기운이 아이리스의 마력의 반할을 상쇄시켜버렸다.

    “젠장, 플로우들에게 무언가가 걸려있느니라.”

    “무슨 말이야, 아이리스!”

    “썩을. 이 불순한 기운은… 무엇이냐.”

    ‘짐도 잘은 모르겠지만, 짐의 마력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방면에서 제일 믿음이 가는 아이리스도 플로우의 불길한 현상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로아가 빠르게 정령왕과 아와를 데려오는 수밖에.

    적막을 유지하는 가운데 캡틴이 별안간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고 모두는 그런 캡틴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달, 달그락!”

    “캡틴 무슨 일이….”

    캡틴은 여관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이어서 여관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런 목소리였기에 황급히 홀에서 빠져나갔다.

    “아, 아서!”

    “저건… 또 무슨 일이야.”

    외부시설에 앉아 있는 손님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둥근 원형 사이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어느 정령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검은색의 액체를 토해내고 있었다.

    로아는 정령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정령에게 검은색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더니 가까이 다가서는 정령들이 고통을 느끼며 접근이 불가했다.

    “로아!”

    “아, 아서…. 이, 이게 무슨 일.”

    “뒤는 맡기고, 얼른 정령왕을 불러와.”

    패닉에 빠진 로아는 마당에 앉아 있었고,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엑스칼리버로 뛰어갔다.

    괴성을 지르던 정령은 검은색으로 변질하여 어떤 원소를 가진 정령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가히 절망이라고 불리는 마물들의 형태. 그것과 흡사하게 변질한 정령을 바라보고는 손님들은 뒷걸음질을 치더니,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르륵, 크륵.”

    “임자, 저건 검은 정령인 것 같구나.”

    “빌어먹을…. 대충 감은 왔어 나도.”

    “이미 저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느니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하필이면 우리 여관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지만, 주변 정령들이 안타까운 얼굴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다.

    저 정령은 검은 정령에 침식되어버렸다. 정령계의 생태계가 검은 정령에 의해서 망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저런 것인가.

    심지어 주변에 있는 기류가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정령왕의 기운이 담긴 호롱불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던 정령들은 저 검은 것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기운에 정신이 오염되고 말았을 것이다.

    밖이 요란스러웠던 나머지 길드 건물 내부에 있던 프리실라를 포함하여 남아있던 길드원들이 대거 밖으로 나왔고, 프리실라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나를 불렀다.

    “아서, 무슨 일인가!”

    “프리실라, 손님들을 대피시켜주세요!”

    프리실라는 멀리서 외치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전원 손님들의 대피를 우선으로!’라는 명령과 동시에 길드원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드에서 보유하고 있는 중형마차는 7대 퍼플과 함께 마차를 배치하여 길드원들이 손님들을 이끌고 마당에서 멀어졌다.

    “사장님… 저것은 정신 마법, 침식 오염입니다.”

    “홉스, 자세히 설명해봐.”

    홉스는 마계 첼로니아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이수했던 ‘정신 마법’ 과목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설명했다. 저 정령의 상태는 현재 ‘정신 마법과 침식 오염’에 관한 것이었다.

    과거의 존재했던 암흑 주술사들이 마계의 중추 마법연맹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저주계열 마법.

    마계에는 다른 계에 비해서 마력 유동이 강한 편이라, 기술자가 본 마법을 대상에게 적용해도, 그 대상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인계였다. 마계에 비하면 마력 유동이 심한 편이 결코 아니었다. 이에 대해 묵묵히 홉스의 말을 듣던 아이리스가 자신의 지식을 덧붙였다.

    ‘모험가의 시즌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적의 기운으로 인하여 인계가 평소보다 마력 유동이 심해진 것을 고려하면 문제가 없겠지.’라고.

    “게다가 대절망 카니로베의 소행이라면, 더욱더 쉬웠을 테니.”

    “아이리스, 그럼 저 정령을 어떻게….”

    “소멸시켜야 한다.”

    아이리스 입에서 소멸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지켜보고 있던 여관 일동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은 정령이 되어버린 저것을 묵묵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이미 저분은 ‘절망’의 형태가 되어버렸군요.”

    “렌, 그대가 하겠나, 내가 하면 되겠는가.”

    “제가.”

    둘은 괴성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정령 앞에 서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렌은 괴로워하는 정령을 보며 고개를 흔든다.

    “크르륵!”

    “부디, 원망하지 마시길.”

    거대한 불꽃을 손에 둘러 검은 정령의 목을 단숨에 비틀어버리는 렌이었다. 검은색의 그것은 이미 정령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불순한 기운이 가득했다.

    하물며 그것이 렌의 손아귀에서 재처럼 바닥에 흘러내리는 모습은 ‘절망’의 죽음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란베르크가 검을 쥔 채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 아니냐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녀석은 페이즈 2의 시작을 알렸다.

    “선생님. 저는 때마침 도착했는데 섭섭합니다만.”

    “오자마자 또 이상한 플래그 세우고 있어.”

    “주위에 저것과 비슷한 것이 가득하더군요.”

    란베르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네발로 기어 오며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그것’은 우리를 별안간 감싸고 있었다.

    “임자, 저 썩을 것들이 노리는 것은 플로우들이구나.”

    실제로 그 말이 옳았다. 그것들은 흉흉한 분위기로 우리를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붉은빛으로 흩날리는 기괴한 시선은 분명 플로우들을 향하고 있었다.

    “사장 명령이다.”

    쿡쿡 쑤시는 관자놀이를 금방이라도 누르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분노에 의한 감정 때문에 이빨을 먼저 바득바득 갈았다. 여관 일동들도 나와 비슷한 기분인 듯했다.

    “식구를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겠어.”

    * * *

    여관 일동은 플로우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수십 마리의 검은 정령을 각개 격파했다. 전원 분노가 가득했던 탓이라 마당의 마력초고 뭐고 중요한 것이 아녔다. 그저 덤벼드는 검은 짐승들을 무자비하게 소멸시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 사태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는데, 정령왕과 아와는 엑스칼리에서 빠져나와 난장판이 되어버린 여관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고 ‘여기도 점점 검은 정령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늦게 온 것에 대해 으름장을 놓으려던 순간, 이들은 ‘정령계도 지금 검은 정령에 의해 몹시 혼잡한 상태.’라는 말을 전했다.

    정령왕과 아와도 별안간 정령계에서 발생한 ‘검은 정령화’를 막고 오는 길이었다. 여관 일동은 고개를 흔들며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플로우들은 어디에 있나.”

    “짐이 마력을 나눠주는 중이니라.”

    “그대는 푸른 용, 응급처치로서 탁월했다.”

    “얼른 플로우들의 상태를 보도록 하여라.”

    정령왕과 아와는 아이리스의 품에 있던 플로우 4마리를 받아서 바닥에 살포시 놓아두었다. 거친 호흡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

    푸르게 빛나기만 했던 플로우들에게서 검은 반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는데, 이 반응은 절망에 의한 저주였으므로 계속해서 놔둔다면 플로우들도 검은 정령이 되거나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죄송해요…. 아서.”

    “레니,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아까부터….”

    “레니가 미안해할 건 없어.”

    “제가 만든 것을 먹지 않았다면….”

    “레니. 그건 문제가 될 순 없어.”

    레니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파르파르의 꽃을 먹어 여자로 변한 까닭에 마안의 뭉치를 사용하지 못하니, 기적을 통해 플로우들의 저주를 해결하지 못해 미안함을 전한 것이다.

    아벨기우스 토벌 때도 이름 모를 모험가의 저주를 마안의 뭉치를 통해 없애주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당장 플로우들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검은 정령화가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정령왕의 말대로 원천이 되는 대절망을 없애지 못한다면 정령들은 계속해서 절망으로 변해갈 것이다. 갈대 나무의 주신이라고 불리는 권능의 존재 아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얼른, 태풍의 탑으로 가야 해.’

    정령왕은 양손을 펼쳐 플로우들 위로 가져다 대었고, 아와도 함께 그 행동을 따라 했다. 그러자 초록빛이 맴돌며 플로우들을 감싸더니 녀석들을 반쯤 감싸고 있던 검은 반점들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거친 호흡에서 편안한 호흡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 플로우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 괜찮다는 안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힘겹게 자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뒤에 서 있던 레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렌은 레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왜, 레니가 울고 그래요. 마스터가 평소에 너무 성질내서 그래요.’라고 말하자 ‘그래, 내가 평소에 너무 갈군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레니, 이건 그저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이야.”

    “마스터 말이 맞아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녜요.”

    “하, 하지만. 나는….”

    “됐어. 평소에 성질내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장난이었으니까.”

    이제는 정말 정령왕의 제안(1)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나의 소중한 식구인 플로우들이 달린 문제였으니까.

    “플, 플로우!”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숨이 차올라 힘겹게 달려오는 사내. 다름 아닌 자신의 정령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신청한 오스칼이었다.

    오스칼은 쓰러져 있는 플로우들에게 다가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제 플로우들의 상태가 왜 이런 겁니까!’ 기운을 차리며 조금씩 그 목소리의 출처를 바라보는 플로우들, 오스칼이 녀석들의 주인임에도 낯선 표정과 함께 의아해한다.

    “나,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고, 모두는 흐느끼는 오스칼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낯선 얼굴에 겁을 먹은 듯 플로우들은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오스칼 씨 설마….”

    “네… 제가 찾던 정령은 이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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