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5화 (85/222)
  • 085화

    * * *

    “오호라, 그러니까 광폭화 상태에 빠진다?”

    “이해가 되나요. 마커스.”

    “렌은 광폭화 이후에 2,000살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에이션트 드래곤이 될 기회가 생기는 거죠.”

    벌써 1시간째였다. ‘드래곤이 마지막 성체가 되어 2,000살을 먹으면 광폭화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2개월간 본능에 충실해진다.’라는 이야기.

    가끔가다 렌이 흘리는 드래곤만 알고 있는 정보. 이를 충실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멧돼지 한 마리도 잡기 어려운 마커스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손님들은 ‘그렇구나, 그래.’라는 반응이 전부였지만 마커스는 사내 가슴 속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남모르게 목표로 하는 것인지 '붉은 용의 잡지식을 메모하는 수준'이었다.

    “에이션트 드래곤이라면 고대룡을 의미하잖아!”

    “맞아요.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기적’을 가진.”

    “렌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하!”

    렌은 이어서 설명했다. 광폭화 상태에 빠지기 이전에는 전체적인 능력이 퇴행하기 때문에, 젊은 용들의 공격으로 진화를 제지당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드래곤의 평균적인 사망 시기는 대부분 2,000살이란다.

    ‘2,000살 살았으면 오래도 살았네. 뭐.’

    마커스는 멀리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네 마스터가 도와주겠지.’라고 말했으나, 그저 고개를 돌리며 관자놀이를 누를 뿐이다.

    ‘아하하, 어차피 그 시기가 되면 제가 잠시 떠나있으려고요.’라는 말을 던진 렌이었는데, 일전에 아이리스가 ‘언제 떠날 거냐.’라는 말을 시비조로 던진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2,000살이라는 암모나이트 뺨을 여러 차례 때릴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녀석이 설명했던바 ‘광폭화’라는 상태에 빠지는데 ‘델타 제국 정도는 가볍게 날릴 수 있을 심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심상’이라는 뜻은 ‘평소에도 델타 하나쯤은 가소로우나 굳이 건들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라는 것에서부터다.

    ‘광폭화에 빠지면 성질이 더욱 고약해지기 때문에 마스터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제일 중요한 문단을 추가하는 렌이었다.

    즉 광폭화 상태가 되어버리면 정말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질 더러운 드래곤의 모습’이 되어버린다는 뜻이었다.

    “또, 광폭화 이전에는 능력이 상당히 쇠퇴합니다.”

    “으음… 쇠퇴해도 렌은 튼튼할 것 같아.”

    “하하,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마커스.”

    쇠퇴하는 시기가 광폭화 시기랑 비슷하게 2개월간 이어진다는데, 지팡이를 쥐고 다니는 수준으로 쇠퇴하기 때문에 본 시기에는 되도록 드래곤 슬레이어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녀석이 저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해지나 보네.’

    ‘그렇담 쇠퇴한 렌은 몇 명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마커스의 물음에 렌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음… 일곱? 아니… 다섯. 정도일까요?’라고 대답했다. 쇠퇴했는데 다섯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상대한다는 것이 기가 찼던 나머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앗, 마스터 웃었다. 지금 걱정했죠.”

    “아니. 드래곤 슬레이어가 불쌍해서.”

    렌은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볼에 바람을 집어넣는데 ‘마스터, 미워요!’라며 어디론가 사라지진 못하고 일단은 브라운 아저씨의 주문을 받으러 갔다. 바보.

    내기 이전에도 렌이 설명했다. 자기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개체는 500살이 되면 성체에 가까워지는데, 그때쯤부터 나이를 세어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다들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경향이 크다고.

    어차피 2000년이라는 세월이 작은 것도 아니고, 렌은 2,000살에 가깝다고 했으니. 광폭화시기가 찾아오려면 적어도 10년은 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 아직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가 오면, 내가 도와줘야겠지만. 렌도, 아이리스도.’

    여전히 아서 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의자에 팔을 걸치고 시니컬하게 앉아 있는 내게 ‘아서는 아직도 휴가인가.’라고 이빨을 보이며 웃는 너무나도 멍청한 쥬드를 향해 콧방귀를 낀다.

    “단장님.”

    “아이나, 무슨 일이지?”

    “오늘 의뢰에 대한 서명을 받으러 왔습니다.”

    “아, 깜빡했어.”

    일단은 내가 길드 마스터라는 권한을 가진 드래곤 길드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아이나가 관리하는 길드의 의뢰를 체크하고 서명해야 했다.

    오늘은 5개의 의뢰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적에서 나온 마물들을 퇴치하는 의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꼼꼼하게 ‘읽어보는 척’을 하며 신중하게 사인을 했다.

    “어라, 이건.”

    “아, 그건 오늘 들어온 의뢰입니다.”

    “언제까지야.”

    “수행 기간은 따로 정하시지 않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의뢰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저희 길드를 이용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아이나에게 어떤 의뢰를 받은 것인지 계속해서 설명을 듣고 있었으나, 의뢰자의 이름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의 말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흠…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

    “오스칼이라면 유명한 연금술사입니다. 단장님.”

    “아! 그래, 오스칼!”

    “안면이라도 있으신지?”

    “이 길드를 창설할 수 있게끔 도와준 큰 인물이야.”

    “단장님이 모험가 랭크를 위해서 하셨던 그 의뢰의 주인공?”

    “정답. 그자는 ‘제국’ 연구원이거든. 랭크가 높을 만하지.”

    직접적으로 길드를 창설할 만큼의 크게 기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스칼의 AA랭크 의뢰 덕에, 귀찮았지만 신속하게 길드 마스터 권한 기본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근데, 왜 얘기하지 않은 거야.”

    “단장님이 분명 귀찮아하실 게 뻔해서. 아하하.”

    “그러게. 틀린 말은 아니네. 하하.”

    아이나가 이어서 설명해주는 ‘오스칼의 의뢰’란 ‘자신의 정령을 찾는 데 도움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이것을 주선한 것도 아네스였다.

    자신이 계약했던 정령의 마지막 자취가 델타산맥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오스칼은 그곳을 떠돌다가 불쌍하게도 바위 산적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그것을 프리실라가 구해줬고. 내가 구했다고 말하기에는 프리실라가 너무 날뛰었지.

    “그때는 AA랭크였지만, 지금은 S랭크입니다. 단장님.”

    “S랭크의 의뢰라… 흠 길드랭크가 오르겠는… 데. 뭐?”

    “그러니까 오스칼이 신청한 의뢰의 랭크는 S입니다.”

    도대체 무슨 의뢰를 신청했기에 ‘S랭크’로 등재가 되었는가, 아이나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템피드 제국에서 직접 등록한 의뢰라 제가 올린 게 아녜요.’

    “아이나, 의뢰신청서를 내게 가져다줘.”

    “후후, 그럴 줄 알고 챙겨왔습니다.”

    의뢰신청서에는 대포만 한 크기로 ‘템피트 제국 특별 의뢰’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냥 휘갈겨 쓴 글씨와는 다르다. 완전히 마력으로 각인되어 있다. 제국기반의 계약서가 확실했다.

    아이나는 아니나 다를까 추가로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나에게 건넸다. 여관은 분명 시끌벅적한 분위기였지만 아이나와 나는 본 의뢰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템피드 제국’

    남대륙에서 가장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제국으로 자연과 고대문물에 대한 탐구를 중점으로 하는 지혜의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템피드’라는 가문은 ‘아이리스’의 푸른 용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남대륙 사람들은 늘 지식에 목말라하는 것 같단 말이야.’

    자연과 고대문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정령. 이러한 정령과의 접촉이 가장 진보된 제국이 템피드였다.

    실제 본 제국의 통솔자라고 불리는 ‘템피드 오스만’은 정령사로서 다양한 정령들과 어울리는 친숙한 리더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어서 그의 영향으로 템피드 제국은 수많은 정령사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보십시오.”

    “음, 이건 오스칼에 대한 정보인가.”

    “보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얼마나 놀랍다고. 보자….”

    ‘템피드 오스칼’ 바위 산적으로부터 붙잡힌 사내를 구했던 우리는 그저 연금술사를 살려낸 것이 아니라 ‘템피드 오스칼’이라는 제국의 혈통을 살렸던 것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제국의 중요 연구원이라고 하더라도 AA랭크로 측정될 수 없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

    “제국에서는 왜 직접 움직이지 않지?”

    “템피드 제국 자체가 무력에 대한 영향력이 작은 편입니다.”

    “쉽게 말해서 강자들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네, 기사들도 타 제국들과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고요.”

    “그럴 만도 하지. 아이리스도 보면 드래곤치고 약하….”

    “뭐라고 했나, 임자?”

    “아니야. 저기 쥬드가 부르는 것 같아.”

    의뢰를 받아서 문제 될 것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녀석이 잃어버린 정령을 찾는다는 말인가? 4대륙을 통튼다고 생각하면 터무니없을 정도의 막막함이 다가온다.

    그러나 정령왕의 제안(1)에 대한 부분과 접점을 생각해본다면 드래곤 길드에서 움직이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네스가 오스칼을 위한 추천장을 작성해준 것일 테고.

    “이 의뢰는 최종적으로 단장님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수락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단장님.”

    ‘진행해.’라는 느낌으로 멋들어지게 발음했으나. 잘 깔린 중저음보다는 미려한 여성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고, 아이나는 이를 보며 웃더니 ‘단장님이 서명해 주셔야지요.’라며 종이를 들이밀었다.

    “크흠, 자.”

    “아하하, 진짜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 않은데요.”

    “왜 자꾸 다들 그 소리야.”

    “그만큼 단장님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이야기겠죠?”

    “나는 달린 게 편하다니까.”

    “어머.”

    아이나와 이야기를 끝냈더니 여관 홀에서 날아다니던 플로우들이 내 주위로 다가왔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짓는 녀석들. 귀엽잖아.

    “플로, 플로.”

    “기분이 좋나 보구나.”

    ―.

    입이 벌어지며 동공이 확장된다. 별안간 허공에 있던 플로우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놀란 나머지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먼저 떨어진 플로우를 잡지 못했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진 않았으나 그것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어서 힘없이 떨어지는 나머지 플로우들을 재빠르게 달려가 넘어지며 간신히 받아냈다.

    갑작스러운 몸부림으로 여관 손님들의 이목이 집중되더니,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플, 플로우가 이상해!”

    “마스터, 무슨 일이에요!”

    “임자, 플로우들이 갑자기 왜 그런 것이냐!”

    해골 일동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안겨있는 4마리의 플로우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왔다. 손님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던 홉스도 짧은 다리를 있는 힘껏 던지며 다가왔다.

    “정, 정신 차려. 플로우!”

    “플… 로.”

    그러지 않아도 작은 몸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시체처럼 늘어졌다. 품 안에 있는 플로우들이 차갑게 느껴져야 할 텐데. 그저 뜨겁기만 했다.

    “얼른 로아를 불러!”

    ‘아서!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당장 아와 님과 정령왕님을 모시고 올게요!’라며 여관의 문을 열고 정령계로 향하기 위해 밖을 뛰어가는 로아였다.

    홀에 있던 정령 손님들이 애처로운 얼굴로 플로우들을 바라봤다. 상위 정령인 자신들의 기운을 나눠주려고 했으나, 주위를 감싸는 어두운 기운이 플로우들을 향한 상급 정령들의 기운을 무자비하게 튕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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