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4화 (84/222)
  • 084화

    * * *

    우리 여관의 귀여움을 담당하는 ‘플로우’들의 집은 주류 창고이다. 창고에 작고 귀여운 아기 정령들을 재운다는 것이 말이 되냐! 라고…. 묻는다면 내부시설이 후방 건물의 재질과 맞먹는다고 받아치겠다.

    ‘7성급 두바이호텔 맞먹는다고.’

    주류라는 개념은 모두가 알다시피 술과 같은 마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온갖 오크통들이 정렬된 이곳은 적절한 온도조절이 필요한데, 공간이 두 개로 구분된다.

    하나는 와인이나 양주계열의 주류를 보관하는 공간, 하나는 얼음이 꽁꽁 얼어 플로우들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공간. 크기는 두 공간을 합쳐 레니의 ‘드래곤 엘릭서 오두막’ 정도가 되겠다.

    웬만한 마법이 아니고서야 술 창고 같은 지구의 현대문물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텐데, 플로우들이 거처를 지점하고 자신들의 기운을 감싸 영역을 갖춘 덕에 대륙 최고의 술 창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

    ‘외에도 녀석들이 있어서, 분위기가 좋으니까.’

    그것도 사실이었다. 플로우들은 가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여관 밖을 나다니거나, 홀에 들어와 손님 주변을 날아다니며 재롱을 부렸다.

    “플로, 플로.”

    “그래, 오늘도 활기차구나. 너희들은.”

    하루에 한 번은 주류 창고에 들러 플로우들의 상태를 살피거나, 주류의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근래 들어 플로우들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와의 조언에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주류 창고가 하루에 몇 번 열리냐고 묻는다면, 1번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렌이나 아이리스도 플로우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 들락날락하니 대충 20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쪽으로 와볼래?”

    “플로.”

    4마리의 플로우들은 주류 창고 내부에 있는 오크통 위에서 일어나 나에게 날아왔다. 녀석들이 평소에도 활기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건강 체크는 하고 넘어가자.’

    플로우의 몸은 꽁꽁 얼린 눈 뭉치와도 같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촉하기에 상당히 시리다고 할 수 있다.

    인류와 정령이 쉽게 신체적 접촉이 불가한 이유였다. 물론 계약자의 경우에는 계약된 정령과의 속성내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현재 나는 마안의 뭉치를 사용할 수 없는 관계로 속성내성이 대폭 감소한 상태였다. 이를 응용해서 녀석들의 건강을 파악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살짝 시리다. 근데 완전 시리지는 않은데?”

    “플로?”

    4마리의 플로우들은 내 손바닥 위에 전부 들어가는 크기였다. 여유롭게 들어온다는 느낌보다는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인데. 이 정도의 눈 뭉치를 손에 올려두고 있으면 엄청 시릴 법도 하지 않은가.

    “너희 어디 아픈 거 아니니?”

    “플로, 플로!”

    녀석들은 내 손바닥 위에서 정좌를 취하더니, 코에서 시원한 바람을 ‘킁!’하고 불었다. 마치 ‘완전 튼튼하니까. 얕보지 마.’라는 느낌이었다.

    “귀엽기는. 알겠어. 그래도 아프면 말해.”

    “플로, 플로”

    렌이 주류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류 창고 바닥에 누워 플로우들과 뒹굴뒹굴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내 모습을 보며 ‘가뜩이나 마스터의 이런 모습은 익숙하지 않은데, 성별까지 바뀌니까,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던졌다.

    “됐고, 무슨 일이야.”

    “아이참, 마스터 있잖아요. 들어보세요.”

    오늘 아침 아이리스가 렌에게 시비조로 물었단다. ‘너는 언제쯤 이곳을 떠날 생각인가, 떠나게 된다면 짐에게 얘기하도록,’ 이후 붉은 용의 ‘그런 일 없으니까, 내 자리 탐내지 말고 당신이나 사라지세요.’라는 대답으로 VS 사인이 시작된다.

    “아, 싸울까 봐 온 거구나.”

    “그, 그러니까요.”

    “설… 마. 이미 한탕 한 건… 아닐 거야?”

    “그, 그러니까…요.”

    * * *

    “크하하! 아서의 얼굴이 오늘도 근사한데!”

    “아저씨…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만.”

    “봤어, 마당이 작품이 따로 없더군. 그래. 크하하!”

    작품이 따로 없다는 말은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류 창고의 문을 열고 마당을 눈에 담았을 때는 실로 ‘비극’이 따로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소생 불가라고 생각했던 비극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지만, 어쨌거나 반지름 5M 정도의 깊은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는 것은 변함없다.

    구멍의 정체를 보아하니 아이리스가 렌에게 허공에서 맞고 떨어진 자국이 분명했다. 아이리스는 코피를 흘리며 씩씩거리고 있었고, 렌은 머리를 긁으며 ‘하하, 제가 너무 과했나 봅니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덤비지 말라니까.’라는 식으로 아이리스에게 말했다. 형한테 대드는 남동생에게 어쩔 수 없이 으름장을 놓는 어미의 심정이 따로 없었다.

    만약 엑스칼리버에 문제가 생겼거나, 이를테면 르파르파의 꽃이 손상되어 버렸다면 실제로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됨으로써 두 용과의 인연을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오늘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들.

    “오늘도 아서는 없나 보네.”

    “아… 그러니까. 내가 아서라고요. 쥬드 씨.”

    “이 양반 또 이러네, 레니 보다 한술 더 뜨는 주사인데.”

    메인테이블 앞에 있는 아서 전용 의자에 팔을 기대어 ‘시니컬하다 못해 살짝이라도 부딪치면 하악질을 할 것 같은 느낌’으로 앉아 있던 나를 아직도 ‘엘레나’ 혹은 ‘엘리자베스’로 알고 있는 쥬드였다.

    “오, 정령왕 양반!”

    “호오, 브라운!”

    딸랑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홀로 들어선 정령왕을 향해 인사하는 브라운 아저씨, 그리고 그 인사에 자신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호응하는 정령왕이었다.

    “오늘 아서의 표정이 더욱더 어둡구나.”

    “크하하, 밖에 작품 봤나?”

    “암, 나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인 줄 알았는데.”

    “크하하! 이 정령 보게!”

    아칸 사람들에게 단순히 블랙 조크라는 개념으로 넘길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홀에 있던 손님들은 대거 폭소하기 바빴다.

    “자네, 괜찮나?”

    “아니요. 전혀요.”

    “저 마당이 문제라면 짐이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그래도 제안(1)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자네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두 용이 그러더군.”

    “이제는 웍을 잡지 않는데, 아쉽네요. 하하.”

    “음식을 만들어 준다면, 저 마당을 고쳐주지.”

    나는 정령왕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걷었다. ‘오, 오!’라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우리도, 우리도!’ 라던가 ‘이참에 많이 만들지 그래!’라는 소리를 뱉었다.

    “들었는가, 대용량이라네.”

    “문제없습니다.”

    근래 여관 식구들이나 손님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오랜만에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언젠간 해줘야 할 것 같으니 빨리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부엌으로 이동한다.

    “달그락!”

    “오늘은 내 차례야.”

    “달그락, 달그락.”

    “자, 자. EX랭크의 웍을 가지고 오도록!”

    주문한 대로 해골 삼인방은 거대한 웍을 가지고 부엌에 나타났다. 그 크기는 실로 거대했다. 보통 웍에 비하면 30배는 넘을 법한 사이즈로 홀에 있는 손님들을 먹이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자네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준비해야 할 거야.’라는 정령왕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부엌칼을 들었고, 옆에서 보조를 위해 서 있던 요리 삼인방이 달그락거린다. 아마 ‘어떤 요리를 하시려고 합니까?’ 인 것 같다.

    “리소토.”

    오렌지가 동공도 없는 주제에 눈을 번뜩이며 재료 준비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아 덧붙인다.

    “알라 페스카토라.”

    ‘달, 달그락!’ 소리와 함께 삼 인의 턱시도를 입은 요리사들은 느낌표를 머리 위로 정확히 3개 이상을 띄우고 아이리스에게 달려갔다.

    반대로 물음표를 머리 위로 3개 이상 띄우는 아이리스. 그녀를 붙잡아 해골들은 달그락거리기 바빴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푸른 용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답답한 모양인지 오렌지는 여관 밖을 뛰어나갔다. 아이리스가 남대륙에서 직접 공수해오는 해산물들을 가져오려는 것이다. 옐로우와 그린은 야채를 손질하거나 웍을 달궈놓기 시작한다.

    ‘알라 페스카토라라… 뭔가 굉장한 고대어 같잖아.’라며 여관 손님들이 호기심을 느꼈다. 고대어에도 능통한 우리 웨이트리스들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라는 아쉬운 대답을 던졌다.

    그러하다. 이것은 리소토 알라 페스카토라(risotto alla pescatora)

    새우, 조개, 오징어, 홍합 등과 같은 해산물을 주재료로 하는 리소토, 색을 더하기 위해 토마토소스가 사용되기도 한다.

    본 요리는 렌과 아이리스에게 처음 먹인 음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 중 하나이기도 하고.

    여관을 운영한 지 1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 레니를 만나 몇 별(달) 간의 지독한 훈련을 통해 업이 쌓여 잘 만들 수밖에 없는 요리.

    “최단 시간으로 완성해야 해, 20분 내로 클리어하자!”

    “달그락, 달그락!”

    “그리고 웍이 너무 뜨거워, 조금 식혀야 해.”

    리소토는 시간이 생명이다. 너무 오랫동안 웍에서 쌀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전분이 많은 쌀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다행히 여관에서 사용하는 쌀은 ‘델타산’으로 전분이 많은 편이다.

    녀석들과 함께 리소토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인방을 포함한 우리들의 모습을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한창 일을 잘할 법한 시기의 조리병이 삽자루로 쌀을 볶는 느낌일 것이다.

    “완성.”

    “달그락, 달그락.”

    ‘오, 오.’라는 탄성이 홀 안에 가득 찼다. 추억의 향을 맡기라도 한 듯 아이리스와 렌은 킁킁거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힘이 좋은 쥬드의 도움을 받아 웍을 홀 중앙으로 끌고 나왔다. 쥬드의 여성에 대한 매너가 나의 편리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캡틴과 블루, 네이비는 웍에 담긴 리소토를 여관 손님들에게 배식한다.

    리소토를 그릇에 담아 정령왕에게 가져다주는 렌, 그것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마치 꼭 해야만 하는 의식처럼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냄새를 맡고 있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리소토를 만지려고 하는 우리의 정령왕. 렌이 그의 손목을 잡아 밥맛이 떨어질 것만 같은 행동을 막았다.

    숟가락으로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리소토를 푸더니 입에 집어넣는다. 실제 정령왕의 모습은 인간의 형상이 아닌 듯하지만, 음식의 냄새를 미친 듯이 맡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도 않았다.

    조금씩 입안에서 리소토를 씹어 넘기는 정령왕, 분명 지금쯤이면 입안에서 알라 페스카토라 고유의 향이 번질 것이다. 정령왕이여 네 힘으로 파괴된 나의 마당을 고치도록!

    “꿀꺽…. 실로 굉장하군.”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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