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2화 (82/222)
  • 082화

    * * *

    오늘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브라운 아저씨는 여관 홀에 들어서자마자 캡틴에게 케피탄 맥주와 함께 감자에 치즈를 듬뿍 바른 요리를 주문했다. 실컷 흘린 땀이 얼마나 작업을 열심히 했는지 알려줬다.

    “아서, 거의 끝나간다네.”

    “길드원의 방어구 말입니까.”

    “맞아, 마석비용과 기타재료비용이 딱 들어맞았다고.”

    “드디어 ‘비 바잔 드래곤’의 이름을 건 첫 작품이 탄생하네요.”

    “크하하, 나도 영광일세.”

    브라운 아저씨는 서대륙뿐만 아니라 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대장장이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그가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보여준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길드원들의 주력 방어구가 될 ‘자가 수복 갑옷’은 더욱이 그랬다. 렌이나 아이리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상대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치명상을 높은 확률로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마치 볼보가 탄생시킨 3점식 안전벨트 같은 것이었다.

    ‘비 바잔 드래곤’이라는 브라운 아저씨의 대장간은 용사의 쉼터 제휴 브랜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속해있는 드래곤 길드에게 방어구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자가 수복 갑옷의 길드원 임상실험(?)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판매 계획을 실행할 예정인데, 각 대륙에 있는 상인들과의 협업으로 다양한 곳에 유통이 가능하도록 루트를 설계했다.

    “내가 만든 아이들이 다른 대륙까지 넘어가다니!”

    “명성을 떨치셔야죠. 이렇게 솜씨가 좋은데.”

    “크하하. 고맙네, 자네 것도 새로 만들어야겠어.”

    “저는 필요 없는데, 이미 만드셨나 보네요?”

    “암, 만들었지. 근데 사이즈가 달라졌으니 새로….”

    브라운 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종이를 꺼내어 치수를 적거나, 갑옷의 실루엣을 새롭게 스케치했다.

    지금의 아서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브라운 아저씨의 스케치를 멈추게 하고는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금방 돌아온다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상한 플래그 세우지 마라니까는!”

    “크하하, 캡틴 여기 이 양반 좀 데려가게.”

    “달그락.”

    코쟁이 털보 대장장이 앞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나의 손목을 잡고는 홀의 중심으로 데려가는 캡틴이었다. 이를 보던 다른 해골들도 두개골 회전시키기를 통해 즐거움을 묘사하기 바쁘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홀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레니가 케피탄 맥주를 실컷 마셨는지 홀을 활보하며 힐을 하고 다녔다.

    와중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방긋방긋 웃으며 ‘성질 더러운 여자.’라고는 급기야 내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너 때문인데, 너 때문인데!

    급기야 옆에 있던 네이비의 두개골을 떼어내 건틀렛 삼아 주먹을 집어넣자, 아이리스가 나를 말리기 시작했고.

    렌은 조심스럽게 레니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말리지 말란 말이야, 이 대형 도마뱀들아!

    “임, 임자. 진정하면 좋겠군.”

    “네 임자는 성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 그건 임자가 근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렇다.”

    “후우…. 렌 여기 마실 것 좀 가져다줘.”

    “네, 넵!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마스터!”

    홀 전체를 초록빛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으니, 이미 마력을 몽땅 사용해버렸을 레니는 끝내 웨라의 옆에 조용히 앉아 악기연주를 들으며 스르르 잠자리에 들었다.

    ‘용사의 쉼터, 치유 마법 이벤트 종료.’

    웨라는 연주를 하는 와중에 레니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오늘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레니, 주사를 보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웨라밖에 없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딸, 랑.

    고개를 떨궈 여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누가 들어오는지, 들어오는 사람이 단골인지, 처음 온 것인지, 3년 정도 운영을 하다 보면 척이면 척으로 알아낼 수 있으니까.

    ‘처음 온 사람인가.’

    대부분 딸랑하고 이어지는 소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금 들어온 손님의 경우에는 ‘딸, 랑.’이었다. 이 말은 즉 입구에 있는 ‘여관 이용 추가 사항’을 한번 훑었다는 뜻인데, 처음 온 손님이 확실했다.

    용사의 쉼터에 자주 오는 손님들은 이것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거나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전부 훑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딸, 랑.’이라는 울림은 단골의 등장과는 거리가 멀다. 기어코 어떤 손님인지 보기 위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오호라, 이곳이 바로 용사의 쉼터인가.”

    “달그락.”

    “오호, 자네는 망자군.”

    “달그락, 달그락.”

    “오호…. 망자 주제에 영리하구나.”

    “달그락.”

    “따라오라는 겐가? 그래, 안내해보게.”

    캡틴은 새롭게 찾아온 손님을 마중하여 빈자리로 안내했고, 렌이 어느덧 나타나 캡틴의 뒤를 이었다. 여관 복장의 렌을 보더니, 손님은 입을 열었다.

    “호오, 자네는 용이구나.”

    “아하하, 맞습…. 어, 어떻게 아셨죠?!”

    “짐은 척하면 척, 알 수 있다네.”

    “신, 신문을 보고 아셨나요?!”

    “나는 마법신문을 보지 않는다만.”

    긴 장발의 사내였다. 사내인 것 치고는 란베르크처럼 미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길게 내려온 연두색의 머리칼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웨라와 흡사한 느낌으로 ‘엘프’ 종족의 느낌이 물씬 풍겼으나, 귀를 보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렌이 용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걸까.

    자신을 일컫는 ‘짐’이라는 단어는 아이리스를 연상하게 했고, 그러한 이음새 때문인지 혹시나 저 손님이 ‘그린드래곤’이 아니냐며 아이리스에게 귀띔했는데. 다행히 ‘그린드래곤’이라는 건 없다고 했다.

    “포레스트드래곤은 있다만.”

    “그게 그거잖아.”

    “임자여 진정해라, 저 인물에게서 용의 느낌은 나지 않으니.”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안심이지만….”

    손님은 메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것을 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질문을 받은 우리 가게 웨이트리스는 케피탄 맥주와 비비큐 계열을 추천했고. 손님의 승낙 끝에 요리 삼인방에게 주문을 넣는 렌이었다.

    이윽고 나온 음식에도 한참을 쳐다보기 바쁜 손님이었다. ‘이것은 어떻게 먹는 음식인고?’라는 표정을 지으며 냄새를 맡거나, 손가락으로 만져보기도 하며 입에 넣기 전에 진득한 호기심을 표현했다.

    “크하하, 어서 한번 잡숴보게.”

    “자네의 말을 따라, 한번 먹어보지.”

    옆에서 참다못한 브라운 아저씨는 손님에게 먹는 방법에 대해 적당히 설명해주고는 어서 먹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이목이 쏠린 탓에 많은 손님이 침을 삼키고 있었다. (하여튼 가게 손님들 오지랖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

    “오, 맛이 아주 미려하구나!”

    “크하하! 어때 맛있나?!”

    “정말, 아주 맛있군.”

    “재밌는 양반일세,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짐은 정령계에서 왔다네.”

    “정령계라… 크하하.”

    ‘정령계라… 크하하. 라는 반응이 나올 게 아니잖아요?’ 연두색 장발 사내와 어깨동무를 하며 벌써부터 죽마고우처럼 느껴지는 브라운 아저씨를 향해 속으로 외치던 여관 사람들이었다.

    “자네의 이름은 뭔가!”

    “나는 따로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네.”

    “크하하, 이름이 없는 존재가 어디 있는가.”

    “모두가 나를 일컫는 말은 있다만.”

    “말해보게, 녹색 양반.”

    “인류는 나를 고대어로 ‘오베론’이라 부른다네.”

    “오베론?”

    “아, 미안하군. 인류의 발음으로 ‘정령왕’이라는 뜻이지.”

    ‘아저씨 방금 정령왕이랑 친구 먹었다고!’라며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난리를 떨기 시작했다.

    저 연두색의 머리를 가진 사내가 정령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신출귀몰 여관 등장이라는 전개에 완전히 익숙해진 손님들.

    ‘정령왕이 확실해.’라며 마치 자기네들이 초월급 고수라도 된 것처럼 당연시한 반응을 했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젠장, 이제는 정령왕이 등장하네.’라고 조용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아서라는 자를 찾고 있는데.”

    “여관의 사장이라면 저기에 있어.”

    ‘말하지 말라고, 이 멍청한 사냥꾼 마커스야!’

    정령왕이라고 일컫는 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시선을 피하다가 이내 다가오는 정령왕을 바라보며.

    ‘하하, 저는 아서가 아니라 아서의 연인 엘리자베스입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디선가 ‘아하하! 저번에는 엘레나라고 했잖아. 아서!’

    꿍한 표정을 지으며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홀 쪽을 바라보며 ‘딱 봅시다. 다들.’이라는 말을 던진다.

    “크흠, 흠. 제가 아서입니다.”

    “호오, 자네 정말 파르파르의 꽃을 먹었나 보군.”

    “망할 그 파릇파릇인지 저기 취해서 잠든 여자가 먹인 거라고요.”

    “호오…. 역시 내 힘을 빌려 갈 만한 재목이로군. 상당히 기가 강해.”

    “빌어먹을 ‘호오’ 좀 그만해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더니, 홀 중앙에 걸려 있는 ‘정령왕의 기운이 담긴, 아니지 녀석의 기운이 담긴 호롱불’을 만지작거렸다.

    ‘호롱불에 내 기운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강대한 마력으로 자기장을 만들어냈군.’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정령왕.

    그래서 ‘나의 순탄한 자영업자의 삶을 망치려는 너의 목적이 무엇인지 당장 말하라!’ 같이 뛰어가서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지아비라도 만난 듯 어느새 나타난 플로우들이 녀석을 반기는 모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하급 정령들 앞에서 정령왕의 멱살을 잡으면…. 좀 그렇지.

    “아가들아.”

    “플로, 플로.”

    “그래. 아와에게 들어 잘 알고 있다.”

    “플로, 플로, 플로.”

    “암, 네 직장 상사가 도와줄 것 같구나.”

    “뭐요, 저 안 도와줄 거예요.”

    정령왕은 시익 이빨을 보이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부탁할 것도 있고, 제안할 것도 있으니. 잘 들어보라고.’ 3가지 부탁 및 제안을 말했다.

    하나. 정령계의 순환을 되돌리기 위해 ‘카니로베’를 제거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아줬으면 하는 것, 현세에 오랫동안 강림할 수 없는 상황인 정령왕의 대리역할을 수행하는 것.

    이 부분에 대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이미 그런 부탁을 할 줄 알고 찾아온 것도 알고 있다며, 근래에 피곤한 일들이 많았고, 더군다나 여관 운영에 의해 힘들 것 같다는 의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부탁은 거두어야겠군.’이라며 생각보다 빠른 수긍을 하는 정령왕.

    둘. 현세와 정령계를 오가는 엑스칼리버를 그대로 두어, 근래 길을 잃고 주인을 잃은 정령들의 나침반이 되어줬으면 하는 것. 자신의 기운이 담긴 정령의 호롱불이 길 잃은 정령들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엑스칼리버를 놔두어서 손해를 볼 것이 전혀 없으니 정령왕이 말하는 두 번째 제안을 가볍게 수락했다. 이를 통해 마당에 속출하는 하급 정령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알 수 있었고.

    그리고 세 번째 제안을 들었을 때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옆에서 듣고 있던 홉스도 마찬가지였다. 뿌옇도록 안경에 김이 올라온 홉스는 ‘창출’의 냄새를 맡았다.

    “세 번째, 정령계의 손님들을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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