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1화 (81/222)
  • 081화

    * * *

    아와는 황금 광산에서 심연을 떼어낸 후, 로아와 함께 우리 여관에 찾아왔다. 현재 엑스칼리버에 지대를 뚫고 나온 뿌리에다 르파르파의 꽃을 심는 중이었다.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끝났다.”

    “고맙습니다. 자라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적어도 한 별(달) 정도는 지켜보아야 한다.”

    “망할….”

    갈대 나무의 주신이라 르파르파의 꽃 정도는 단번에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며 투덜댔는데.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절망을 통하는 구멍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나 참.

    나는 ‘구멍이 열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남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지 거기에다 비유를 하면 여관 주인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게, 난데없이 파르파르의 꽃을 왜 먹고 난리야.’라는 대답이 돌아오겠다. 그래요. 난데없이 먹은 거라 나도 어이가 없네.

    드래곤 엘릭서의 오두막, 레니가 안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곳을 향해 쏘아보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야만 기분이 풀릴 것 같아서.

    “대절망은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카니로베를 말하는 것인가.”

    “검은 정령은 없앴다고 하더라도, 아직 대절망은 남았으니까요.”

    “그것은 내가 정령계로 돌아가 이야기를 해보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갈대 나무 주신 아와’의 자리가 정령계에서 공백이었다. 그녀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 갈대 나무 부족의 드라이어드들이 정령계와 환계의 나무들을 가꾸고 보살폈기에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것이고.

    절망에 잠식되어 내면에 심연이라는 꽃을 피우게 해버린 갈대 나무의 주신. 깊은 반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나, 정령계의 생태계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로아’의 설명을 듣고는 쏜살같이 정령계로 달려가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대절망 카니로베.’

    지금 사태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을 하는 대절망의 이름. 정령계의 검은 정령이라고 불리는 작은 절망을 풀어 하급 정령부터 상위 정령까지 천천히 잠식하게 만들었다.

    영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정령의 존재를 훔쳐 가는 것. 아와도 마찬가지였다. 갈대 나무의 드라이어드를 살리기 위해 황금 광산에 내려갔다가 어두운 내면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검은 정령이 침투하여 아와의 몸을 완전히 뺏어 버린 것.

    “대절망이라면 현세에도 피해가 올 수 있을 텐데.”

    “그래, 그것이 큰 문제로다.”

    현세에 뿌리를 내린 대절망들이 조금씩 절망을 피워내고 있었고. 보통 유적이나 힘을 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봉인이 되어 있어야 망정인데, 절망들에 의해서 세계의 분위기가 묘하게 비틀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카니로베의 경우도 그렇다.

    “정령왕과 이야기를 해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저번에 호롱불 만들 때, 기운 빌려줘서 고맙다고 전해줘요.”

    “호오…. 정령왕이 그대에게 기운을 나눠주었나 보군.”

    “덕분에 사람들이 쳐다보고 난리가 났으니, 참 좋았죠.”

    “그는 자신의 힘을 그렇게 쉽게 나눠주는 자가 아니야.”

    엑스칼리버를 쓰다듬고 있던 아와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주신이 정중하게 고개를 낮추어 인간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있었다.

    아와는 엑스칼리버의 워프를 열어 정령계로 이동하려고 했다. 주류 창고에 있는 줄만 알았던 플로우들이 아와에게 날아와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자 그녀는 플로우들에게 ‘아가.’라며 웃는 얼굴로 이들에게 인사했다.

    4마리의 플로우들은 아와 주위를 날아다니며 ‘플로, 플로.’라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아와 또한 활기찬 새끼 요정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아가들아….”

    “플로?”

    플로우들에게 손짓을 하며 자신에게 가까이 와보라는 아와, 플로우들은 아와의 양어깨와 손 위에 올라와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서.”

    “네.”

    “플로우들이 최근에 건강을 잃은 적이 있었나?”

    “아…. 저희 직원이 레드드래곤이라 상성 문제 탓에.”

    “상성 문제라….”

    “무슨 일이시죠? 이미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저 의심에 불과하다만.”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플로우는 화사한 웃음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짓는 아와를 보자 그녀의 뺨을 만지며 불안해했다.

    “괜찮다. 아가. 놀라지 말아라.”

    아와는 플로우들의 뺨에 입맞춤을 대신하여 자신의 기운을 전달했다. 내가 현 상황에 대해 납득을 하지 못하자, 그녀는 ‘아가들의 기운이 다른 개체들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를테면 ‘영양실조’ 같은 개념이었다. 플로우들에 충분한 영양공급을 해주고 있었다는 자신감이 대폭 낮아진다. 아와를 향해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지 물었다.

    “녀석들의 마스터는 아니지만, 저도 자격 박탈이네요.”

    나는 직접적으로 플로우들과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현재 플로우들이 머무르는 곳은 용사의 쉼터이며, 녀석들은 여관 일동의 식구로 자리하고 있다.

    하물며 우리 여관 손님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 주류를 최상의 상태로 보존해 주는 이들에게 이렇다 할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문제가 없다.”

    “위로는 제가 받을 것이 못 되네요.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와는 옹기종기 손바닥에 모여 있는 플로우들을 쓰다듬다가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플로우들도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기분 좋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령계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최상품질의 마력초가 언덕을 차지하고, 온갖 고급재질의 사양을 갖춘 아가들이 머무르는 주류 창고, 하물며 푸른 용의 마력이 정제된 수분을 섭취하기까지. 이 정도를 마련할 수 있는 계약자는 상당히 드물어. 아니 자네가 유일한 존재일지도.”

    “그럼 저희 가게 붉은 용을 해고해야겠네요.”

    “전에 이야기했지만 상성 문제 탓이 아니니까.”

    상성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괜스레 렌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스터, 봐요. 내 탓이 아니라니까요?’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아는 건지 마침 여관 내에서 재채기하는 녀석의 소리가….

    아와가 말하길 빨간색 용이라는 개체가 불의 최상급 정령과 맞먹거나 그것을 상회하는 불의 기운을 가지긴 했으나, 렌이 직접적으로 플로우들을 괴롭힐 작정이 아니라면 상성 문제로 새끼 요정들의 건강이 나빠질 이유는 없다고 했다.

    “이 목걸이는 자네가 만들어 준 것인가?”

    “아, 그건 본래 플로우의 마스터가….”

    “기묘하군.”

    “네?”

    플로우들이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의 정체는 베로니카가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를 4개로 나누어 새롭게 탄생시킨 아티펙트. 분명 플로우들의 상성 문제를 완화해 줄 것이라고 했던 아이템이었다.

    “아니네.”

    “한국 사람들은 하던 말 관두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요.”

    “한국이 뭔가.”

    “…아닙니다. 그냥.”

    플로우들이 아와의 손에서 일어나 허공을 향해 날아갔고, 엑스칼리버 앞에 앉아 있던 그녀도 다시금 일어나 워프를 열었다.

    뒤돌아보며 나를 향해 ‘흠, 여자의 모습도 미려하고 좋은 듯한데.’라고 말하자 나도 모르게 중지를 올려 주신을 향해 큰 죄를 지을 뻔했다.

    * * *

    “오늘도 아서는 외출인가 보군?”

    “쥬드, 그러니까 제가 아서라고요!”

    “이 양반 또 이러네.”

    “내가 아서라니까!”

    “그럼 그, 뭐냐. 하델의 어쩌고 써보던가.”

    “지, 지금은 무리인데요.”

    ‘뭐야, 전혀 못 믿겠는데.’라는 표정을 짓는 쥬드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귀찮은 여자.’로 완전히 확정 짓는 느낌이었다.

    인제 와서 여자가 된 이래로 능력을 쓸 수가 없어요! 라며 변명을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관두기로 한다.

    ‘하하, 아서 양 이쪽에 케피탄 맥주 좀 가져다줘요.’라며 사장 놀리는 것이 도가 트인 마커스를 향해 ‘요즘 사냥이 잘 되나 보죠, 사냥하기 힘들게 만들어 줄까요?’라고 화답을 했다.

    이번에 있었던 로아와 아와에 관한 이야기로 여관 사람들의 수다거리가 늘어나 한참 시끄러울 때쯤이었다.

    문을 강하게 열고 들어오는 프리실라가 나타났다. 옆에서 ‘아서 단장님이 여관에 들어올 때, 문 살살 열라고 했잖아요.’라며 고개를 흔드는 아이나도 있었다.

    “아서, 오늘도 아름답군.”

    “제발요.”

    “하하,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엽군그래.”

    “…제발요.”

    다섯 개나 되는 토벌의뢰를 마치고 돌아온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이었다. 대형 토벌을 5개나 해치운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더니 렌과 아이리스에게 케피탄 맥주를 우선으로 주문했다.

    “프리실라, 프리실라!”

    “렌, 오늘도 에너지가 넘치는군!”

    “당연하죠, 의뢰는 어땠어요?”

    “그렇게 강한 녀석들이 아니라 금방 해결했네.”

    “후후후, 프리실라. 강해졌군요.”

    어깨동무하며 홀에서 방방 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평소와 다르게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손님들도 이를 보며 ‘이럴 때는 둘 다 천상여자인데….’라고 피식 웃는다.

    프리실라의 등장으로 한층 더 시끄러워진 여관의 홀에서 캡틴이 란베르크에게 차를 가져다주는 모습을 발견한다.

    “달그락.”

    “오, 캡틴. 고마워.”

    “달그락, 달그락.”

    “잠시, 이 그림을 보던 중이야.”

    “달그락!”

    “하하, 얼른 가봐.”

    금일 드래곤 길드원의 훈련을 마치고, 별안간 나타난 란베르크가 말없이 여관 벽에 있는 그림을 본 지 1시간이 넘었다. 웬만한 서대륙 예술평론가보다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사색에 빠져있는 란베르크에게 다가갔고, 인기척을 느낀 녀석은 뒤돌아보더니 흠칫했다. 아무래도 아직 여성으로 변한 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벌써 1시간째인데.”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란베르크는 손을 자신에 턱으로 옮기더니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림과 나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그림은 당연하게도 용사의 쉼터 명물이라는 ‘7인의 원정대’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이 그림 속에 있는 로브의 존재가 선생님입니까.”

    “흠… 어떻게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으니까…. 묻는 겁니다만.”

    그림 속. 긴 로브를 착용한 데다가 뒷모습을 하고 있어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은 어느 존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란베르크를 향해 말했다.

    “많은 손님이 이 존재에 대해서 내가 아니냐며 묻고는 했지만.”

    “묻고는 했지만?”

    “이 존재는 내가 아니야.”

    “그렇군요.”

    “애당초 7인의 영웅들을 만난 적도 없고.”

    “아득히 오래된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란베르크는 다시금 그림을 응시했다. 아니 그림을 보고 있다는 말보다는, 그림 속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맞는 듯했다.

    7인의 원정대라는 이름의 작품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란베르크는 잠시나마 깊은 사색에 잠겨있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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