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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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박살 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지고, 동공이 커진 아와가 보였다.
높이가 생각보다 있었던 모양이라 지면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했다. 끽해야 1분 이내겠지만 그래도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 짧은 순간 안에 16개의 입구로 들어가면 나오는 이 공간을 눈에 담는다.
‘이거, 거의 절망적인 광경이구먼 그래.’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하는 모험가들이 떨어지는 내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주변에는 마치 타버린 것만 같은 나무뿌리들이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라 한참을 고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본체가 무엇인지 대놓고 알려주는 붉은 수정이 보였고, 때마침 그 위로 떨어지고 있으니 가볍게 공격을 시도한다.
“아서 님, 마법을 적용하겠습니다!”
현 상황에 대해 빠르게 납득한 로아는 천장 구멍 속에서 떨어지고 있는 내게 ‘방탄 지기의 가호’ ‘빛의 가호’ ‘신성한 기운’을 부여했다. 여러 마법의 기운이 검을 덮는다.
“고마워!”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떨어지는 동시에 붉은 수정에게 강한 일격을 가했다. 이내 첫 타격에 의해서 수정에 금이 가는 것을 본 모험가들은 ‘우린 너에게 희망을 걸었어!’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부유선에서 만났던 아젤이었다.
“다른 사람을 한곳에 모아주세요.”
“저는 검은 정령의 공략을 같이 도와….”
“다른 모험가들을 지켜 줄 인원도 필요하니까요.”
“아, 네….”
붉은 수정이 심장 고동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주변의 마력 유동이 유난히 강해졌다. 아까보다 더 많은 나무뿌리가 빠른 속도로 사면을 덮어간다.
나무뿌리의 끝이 뾰족해지며, 어쩌면 창보다 더 날카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유의 화답인 듯. 실제로 창의 형태를 만들어 모양을 마무리할 줄은 몰랐다.
천 개의 창, 다수의 머리카락 같은 창들이 나를 노려보는 듯 향한다. 기다리기가 지친 모양인지 천 개의 창들이 나를 공격했으나 쥐고 있던 최고급 장검 하나로 전부 쳐내는 데 성공했다.
“버프 매너 모르는 양반이네, 5초 이 새끼야.”
바닥에다가 속도의 비약을 담아두던 플라스크를 던졌다. 그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 다른 차원 위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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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젤은 입을 벌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요란하던 모험가들의 잡담 소리가 멈추고, 푸른 섬광의 움직임에 눈동자를 다 함께 굴렸다. 모험가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준 천 개의 나무뿌리와 호각을 다투고 있다.
심지어 계속해서 잘려 나가는 천 개의 나무뿌리는, 저 로브를 두른 모험가의 공격으로 인해 재생력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아젤은 작년 ‘검성’과의 결투를 떠올렸다.
그때도 그녀는 검성에게 처절한 패배를 맛보며, 대륙에 ‘검성’을 이길 모험가는 절대 없을 것이라 단언했는데, 아젤은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려먹었다는 것을 느꼈다.
저 로브를 두른 자는, ‘검성’과 비교할 레벨이 아니다. 푸른 섬광의 전투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다.
“저런 모험가가 존재했을 줄이야….”
로브를 두른 저 모험가가 자신에게 방해만 된다고 하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낀다. 괜히 나서서 도와줬다가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저 모험가의 시야만 가릴 뿐.
‘대충 모험가들을 옮기긴 했나 보군.’
아서는 ‘아젤’이 모험가들을 모서리 한구석으로 모이게 한 것을 확인했고, 슬슬 검은 정령을 소멸시키고 르파르파의 꽃을 얻기 위해 마무리를 하려 했다.
붉은 수정을 가리듯 전방에 있는 나무뿌리들을 모조리 베어나가며 전진했다. 환경을 조성하는 마력은, 이상의 마력 유동으로 인하여 스산한 기운으로 퍼졌다.
넓은 공간 전체를 푸른 불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로브를 감싼 그림자 안에서는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마안이 없어도 이 정돈 고만하네. 귀찮을 뿐이지.”
눈을 아프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빛이 모험가들의 시야를 가리고, 전방으로 뻗어 나가는 여러 개의 거대한 검기들이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모험가들은 이 절망적인 상황을 가볍게 정리해주는 구세주를 보는 듯했다. 천장의 구멍 사이로 보고 있던 아와도 ‘아서’에 대한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인간이 저 정도의 초월적인 힘을 낸다는 것은, 가히 영웅들과 동급이라는 소리였다. 이미 아서가 평범한 모험가는 아닐 것이라 예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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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처박혀 있던 모험가들이 박살 난 붉은 수정을 보더니, 환호하기 시작했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옆에 멍하니 있던 아젤도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걸어왔다.
뭔가 시원한 느낌도 들지 않고, 등골이 묘하게 서늘하다. 공략에 성공했으면 저기 보이는 아와의 쇠사슬이 소멸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아직 오지 마세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으니.”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금화를 밟으며 뛰어오는 수많은 모험가에게 말했다.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희망을 부수는 내 발언 때문에 이들은 얼음처럼 몸이 굳는다.
“알아서 할 테니까, 기다리세요.”
여전히 검은 정령이 뿜어대는 어두운 기운이 유적 내부에서 맴돌았다. 절망의 기운이 남아있다는 것은 검은 정령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다는 의미. 그것은 곧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마안 없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만 나와라. 제발.”
다시 부서진 붉은 수정이 재결합하여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에 붉은빛이 돌았다. 엄청난 그 기운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사방에 빛을 튀기기 시작했다.
[ 아와는 심연에 일부가 되리다. ]
별안간 천장에서 아와가 괴로워하는 음성이 들리더니 그 소리가 층 안에 넓게 퍼졌다. 소리를 들은 모험가들은 공포감에 의해 몸을 떨며 멍하니 소리의 원천을 지켜볼 뿐이었다.
바닥에 깔려있던 금화들이 한곳으로 몰리더니 서서히 형체를 만들어간다. 모험가들의 발밑, 아니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에 깔린 모든 금화가 공중에 부유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거대한 거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흉흉한 절망의 기운이 내재한 느낌.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금화들이 묶여 탄생한다. 4마리의 거대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현재의 나는 가속의 물약도 부족한 상태라 저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아….”
막 떠오른 생각 덕에 실소하기 시작했고, 모험가들은 여전히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마 ‘이제 방법이 없어서, 미쳐버린 거야.’라고 하는 듯했다. 다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네.
“얼른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모험가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두 장의 스크롤을 찢어버리자 굉음과 함께 차원에 균열이 생겼고, 어느새 그사이를 비집고 깨트려서 유유히 등장하는 두 명의 존재가 있다.
―파지지지직!
“임자, 내가 왔노라.”
“마스터, 제 말 듣기 잘했죠?”
“임자야 저기 덩치 4마리만 없애면 되는가.”
“부탁한다.”
아젤을 포함한 모든 모험가는 현 상황에 따라가기 힘들었고, 로브를 쓰고 있는 한 모험가. 엄청난 기운을 뿜는 두 명의 존재 앞에 주인처럼 거느렸다.
아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왕 녀석들을 소환했으니, 목적은 마케팅이라고.
“사장 명령이다.”
“끝나고 쿠폰 뿌리도록.”
조용히 ‘사장님 가라사대!’라 대답하고는. 엄청난 기운을 사방에 내뿜으며 거인들 앞에 서는 둘.
그 모습을 보며, 모험가들 사이에는 탄성과 감탄이 반복된다. 사장인 나는 팔짱을 끼고서 우리 여관 웨이트리스의 전투를 여유롭게 구경했다.
엄청난 굉음이 몇 번 튀기더니 렌은 거인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다시피 했다.
강렬한 포효소리 몇 번, 아이리스는 거인의 사지를 가볍게 박살 내고 있었다. 공포에 물들어 있던 모험가들은 급기야 이들의 전투에 열광했다.
어쩌면 나보다 녀석들이 거인을 해치우는 시간이 더 빠른 것 같은데. 두 마리씩 상대했는데도 가볍게 이기고 있으니, 렌의 소환 스크롤 의견을 채택하길 잘한 듯했다.
이내 유유히 내게로 걸어와 입을 여는 녀석들. 흐뭇한 표정으로 어깨를 휙휙 돌리고 있다.
“마스터, 벌써 끝나버렸는데요.”
“임자, 이런 녀석들에게 고전하다니 실망이군.”
“됐고, 쿠폰 돌려.”
렌과 아이리스가 항상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쿠폰 뭉치를 꺼내어, 수많은 모험가에게 ‘용사의 쉼터’ 홍보를 했다.
어째선지 부유선에서 용사의 쉼터에 관해 욕을 하고 있던 모험가들은 보이지 않았고, 타 모험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쿠폰을 받으며 ‘아! 이분들이 그 유명한 최강의 웨이트리스!’라며 반응을 보였다.
아젤은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 렌에게 ‘용사의 쉼터로 놀러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쿠폰을 받으며 실제로 마법 기자들이 실은 신문에 나왔던 그 여인이 맞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그녀는 언제나 용사의 쉼터에 가보고 싶었던 하나의 손님이었기 때문에, 렌과 아이리스가 유적 내부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쿠폰을 나눠주는 모습이 아젤에게는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연예인을 보는 기분처럼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면, 저 흑발 여인이 아서라는 자?’
궁금함으로 인하여 수많은 모험가 사이에서 속앓이를 실컷 하는 아젤이었다. 상황을 뒤로하고 기회가 될 때 용사의 쉼터로 꼭 가보자고. 그리고 현 상황을 타개해준 ‘아서’라는 여인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여관을 꼭 들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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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들의 홍보 타임을 뒤로하며 아와와 로아가 있는 천장을 향해 도약했고, 이 와중에도 모험가들은 ‘혹시, 저 여성분이 사장?’이라며 의구심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요. 원래는 남자입니다.
아와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올라온 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머릿속에 ‘르파르파의 꽃’이라는 단어밖에 존재하지 않으니!
“고맙구나, 인간이여.”
“이제 르파르파의 꽃 줘요.”
“그, 그래. 내가 구해주겠다.”
“구해주겠다니, 당장 줄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르파르파의 꽃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크흠, 흠… 나는 거짓말을 모르는 신….”
관자놀이를 누르며 풀썩 주저앉은 나를 보더니, 로아와 아와는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자는 파르파르의 꽃을 잘 못 먹었나 보군.’이라는 갈대 나무 주신의 말이 비참하게 들렸다.
‘르파르파의 꽃이 자라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라고 묻자 ‘최소한 별(달) 정도는 걸릴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겠다.
너무 낙심하지 말라며 마당에 있는 엑스칼리버에 르파르파의 꽃이 자랄 수 있도록 기적을 내려줄 것이라 약속한 아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