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화
* * *
아와로부터 긴 이야기를 듣는다. 마력 전쟁이 발발하고, 황금 광산에 일어났던 신과 신자들의 참혹한 비극을.
세계는 저마다의 이유로 권능을 가진 ‘중간 신’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자연에 섞여 머무른다. 자신의 고유 차원을 어느 광산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아와는 아칸에 현존하게 되었고.
아와가 자리한 곳은 ‘갈대 나무 부족의 드라이어드’들이 마력 전쟁이 발발하고 숨었던 허름한 광산이었다. 그들의 전투력은 없다시피,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나약한 생명체였다.
가녀린 그들은, 온몸이 부서지라 힘겹게 광물과 나무를 일궈냈다. 그것은 가치가 크지 않았다. 광물과 나무를 팔아서 적은 돈을 얻게 되면, 마석을 구해 삶을 연장했다.
그런 방법을 선택한 그들은 사냥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했기 때문이었다. 아와는 광산 안에서 그들의 행적을 지켜보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와가 가진 권능은 자신의 기운으로 어떠한 물질을 재물의 가치를 만드는 것. 광산 벽에 붙어있던 일반적인 광물들을 황금이라는 재물로 바꿔주었다.
갈대 나무 부족들은 그 황금을 캐어 인간에게 팔았고, 그들의 삶은 풍족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와는 그들의 앞에 나타나, ‘너희들을 보살펴주겠노라’라며 진실을 말했고,
갈대 나무 부족의 드라이어드들은 주신을 섬길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행복해했다. 긴 유대의 시간 동안 갈대 나무 부족은 아와를 섬기며 풍요롭게 살아갔다.
아와 또한 그들을 보살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갈대 나무 부족을 축복했다. 그러나 점차 마력 전쟁에 의해 세계가 황폐해지고 아와는 권능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갈대 나무 부족에게 주는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들며, 황금의 수도 줄어갔다. 세계에 있는 모든 마력이 고갈되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갈대 나무 부족도 여럿 죽게 된다.
어느 날 아와에게 ‘절망’이 찾아왔고, 권능은 ‘절망’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아와는 갈대 나무 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로 인해 죽어가는 드라이어드들에 대한 아와의 감정이 절망이 만든 심연에 의해 완전히 잠식되고 만다.
여전히 마력 전쟁은 진행되고 있었다. 광산 외부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의 마력을 뺏어 생존에만 몰두하였고.
아와의 황금 광산에 있는 드라이어드들은 더욱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갈대 나무 부족들은 광산에 숨어서, 남아있는 마력으로 어렵사리 연명한다.
마력 전쟁이 이어지는 시간은 길었다. 황금 광산에 있는 마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갈대 나무 부족들은 끝내 아와의 생명력을 갈취하려 들었으며, 그렇게 아와가 그들에게 내리는 대답은 이러하였다.
‘아가들과 너희들이 살 수만 있다면, 나는 괜찮다.’
하지만 갈대 나무 부족을 위한 마음보다 새롭게 피어나는 증오가 커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권능과 마음을 지배했던 것은 어느 순간 나타난 이름 모를 절망이었고, 알게 모르게 아와는 갈대 나무 부족을 미워했고 또 증오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감히 지금까지 보살펴준 나를, 이렇게 하다니.’
‘썩을 놈들이구나, 평생 증오하겠다. 너희들을.’
당연히 갈대 나무 부족들은 아와의 심상 내부에 기생하는 절망의 존재를 몰랐고, 그렇게 아와의 모든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했던 갈대 나무들은 절망을 자신에게 심고 만다.
아와가 영겁이라는 말이 무색한 잠에 빠져들고. 그들은 서서히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탐욕의 대가, 아와에게 찾아온 절망이 만들어낸 저주.
몇 년을 더 연명할 수 있는 마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탐욕에 빠진다. 서로를 죽이고 죽여, 황금 광산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고 더욱 그들은 심연으로 기어들어 갔다.
결국 마력 전쟁이 끝날 때쯤에는 갈대 나무 부족의 남은 드라이어드들이 100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귓가에는 아와가 아닌, 아와의 심연의 목소리가 들리고.
퀭한 눈으로 평생을 죄책감으로 물들어 살아간다. 그것은 후손까지 이어져갔다. 또다시 긴 시간이 흐른다.
아와는 눈을 떴고 여전히 절망은 자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절망은 다시 또 현세를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부르며 탐욕하는 자를 찾았다.
* * *
『이미, 내 권능이 절망에게 잠식되어버린 나머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아와, 절망이 찾아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내게 심어진 작은 절망…. 분명 그것의 이름은 검은 정령이었다.』
『그대들에게는 내가 사과하겠다. 검은 정령을 막지 못하고 그것을 내게 두었으니.』
황금빛으로 일렁거리는 아와가 여러 형태로 모양을 바꾸더니, 그 빛 사이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고, 서서히 로아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모두 뜻밖의 상황에 의해서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인의 형태를 유지하며 걸어오는 아와.
이내 로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았다.
『갈대 나무의 마지막 아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고맙구나. 너희들을 용서하며 그리고 용서를 받고 싶구나.』
드디어 부족의 사명에서 해방된 듯, 로아는 고개를 떨궈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아와가 인간의 모습을 하여 우는 로아를 달래주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귓가에 퍼지는 아와의 양 손목에 걸린 쇠사슬의 소리가 미간을 찡그리게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대들이 이곳을 떠나고 난 뒤, 절망과 함께 무가 될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그 방법이 최선일 테니까요.”
『내 남은 권능의 힘으로 고유 차원과 함께 멸하는 것이지.』
“절망을 데리고 저세상으로 가겠다는 말이군요.”
『나에게 저세상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겠군.』
“절망을 따로 없앨 수 있는 떼어내는 방법은.”
『검은 정령을 따로 없앨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좋아지겠으나, 권능이 잠식된 나는….』
『역시나 검은 정령을 안고 무로 되돌아가는 것이 저주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말한 그 검은 정령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나요.”
『바로 이곳의 아래층, 16개의 입구로 들어가면 결국 조우하게 되는 탐욕의 끝점.』
“그래서, 쇠사슬이 지면과 연결되어 있었군.”
슬픈 표정은 로아뿐만 아니라, 아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검은 정령이라는 작은 절망에 의해 타락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러웠던 것일까. 고독하다고 외치는 듯했다.
아래에 있는 절망 또한 결국 아와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감정일 듯싶었다.
아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쇠사슬이 소리가 자꾸만 거슬렸다. 로아도 지금의 상황이 측은하게 받아들여졌는지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내가 만약에 그 심연을 없애준다면.”
아와가 어리둥절하게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별안간 배를 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한낱 작은 미물이, 나에게 기생하는 절망을 없앤다니.』
아와의 발언에 몹시 기분이 나빴기에 이마에 혈관을 튀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 마주 보고 선 채로,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요.”
『웃기는군, 그래…. 무엇을 원하나.』
“르파르파의 꽃. 그거면 됩니다.”
『그래, 그대가 검은 정령을 떼어내 준다면 얼마든지 좋다.』
『그것이 가능하다면야, 그대가 무슨 소원을 빌든 내가 이뤄주겠노라.』
멈췄던 폭소가 다시금 시작되었고, 로아는 내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그 웃음소리가 주변에 퍼지는 것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아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 차라리 가능하면 좋으련만.』
나는 바닥을 부숴서 곧장 들어가겠다고 전했다.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아와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 *
[ 아와의 황금 광산 – 16개의 입구 中, ‘아젤의 길드공격대’ ]
‘아젤’을 포함하여 30인으로 이루어진 공격대가 황금 광산에 들어섰다. 근래 의뢰 게시판이나 정보꾼들에게 가장 열광되고 있는 아와의 황금 광산.
철혈의 검이란 전쟁에 참여하는 조합이기 때문에, 공격대를 만들어 유적을 공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와의 황금 광산의 경우 수많은 금화를 얻을 수 있다는 정보로 유명했으며 실력 유지 차원에서 광산을 공략하여 골드를 벌어오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시되었고. 다수결 투표에 의해 공격대를 선정하여 이곳 황금 광산에 오게 된 것이었다.
공격대 인원들의 수다 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고, 아젤은 선봉대로 앞장서서 걷는다. 쭉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움직였더니 금화가 깔린 바닥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격대 인원 중 한 명이 바닥에 깔린 금화를 줍자, 웅장한 소리가 들려온다.
[ 탐욕의 대가를 원하느냐. ]
“무엇인지 모르니, 당장 놓도록 하라.”
“네, 길드 마스터님.”
그렇게 금화를 줍지 않고 탐욕의 대가라고 불리는 저주를 기껏 피했건만, 그 여파로 인해 서서히 공격대의 정신 상태가 이상하게 변질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젤이라고 다를 건 없었으며 눈이 퀭해지다가 알게 모르게 금화 쪽으로 손이 가고 말았다. 다만 이것은 미끼가 분명했다.
아젤은 공격대에 큰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다. 길드 마스터로서 우매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참아야 했다.
[ 탐욕의 대가를 원하느냐. ]
“누가 또, 금화에 손을 댔는가?”
[ 탐욕의 대가를 원하느냐. ]
“다들 놓도록 해라.”
[ 탐욕의 대가를 원하느냐. ]
유적에서 울리는 소리는 탐욕의 대가를 주겠다는 섬뜩한 문장이었다. 오히려 금화를 수북하게 집어 든 공격대의 일원은 퀭한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진 모든 회복 아이템을 버리고, 골드를 담기 위해 무게를 줄였다. 길을 따라 깔린 황금빛의 금화를 줍는 그들,
아젤은 그들을 말리지 못했다. 딱히 탐욕의 대가라고 해서 주어지는 저주가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행복한 얼굴을 하는 그들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전방에 거대한 공간으로부터 빛이 새어 나와 이들을 반긴다. 16개의 다른 입구로 들어갔던 모든 모험가가 한 공간에 모이는 중이었다.
모험가들은 그저 바닥에 있는 금화를 줍는다고 주변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아니면 아와의 황금 광산을 당연히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서서히 사람들은 미쳐서, 별안간 탐욕에 의해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지면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온다.
광산 내부가 흔들리자, 모든 인원은 잠시 멈칫하다니 입을 뻐끔거리며 다시 금화를 줍는다. 200명이 넘어가는 이 많은 인파가 바닥에 수북이 쌓인 금화에 미쳐있다.
그리고…. 세로 길이도, 가로 길이도 평수라고 쳤을 때 10만은 그냥 넘어갈 거대한 공간.
천장과 사방에서 칠흑 같은 나무의 뿌리들이 천천히 나타났고, 모험가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아니 잡아먹고 있다.
서둘러 이동하여 그 뿌리들을 하나둘, 공격해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재생속도가 너무 빠른 턱에 그것을 따라가기가 절대 쉽지 않다.
수많은 실력가를 제치고 랭커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전투와 전장을 거쳤지만, 아젤에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중앙에는 그 나무뿌리들의 중심체로 보이는 붉은 수정이 있었다. 그것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거대하고 굵직한 쇠사슬이 천장과 연결되어 흔들린다.
주변보다 마력 유동이 유난히 강한 것을 보아, 저 붉은 수정이 본체일 확률이 있다.
[ 절망에 삼켜지는 것을 원하는가. ]
[ 검은 정령에게 삼켜지는 것을 원하는가. ]
미믹은 상자 안에서 기생하는 몬스터, 다만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곳 자체가 미믹 상자 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려면, 본체로 추측되는 붉은 수정을 부셔야 한다. 계속해서 검은색의 나무뿌리들이 모험가들을 잡아먹고 있었고,
남은 모험가들의 공격과 마법 등 모든 수단이 이 괴물에게는 통할 생각이 전혀 없다. 실리프레스, 엘도라도, 마도 연맹, 등의 길드 공격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고전하는 가운데 타 길드의 공격대에 전파하는 아젤.
“저, 붉은 수정을 공격해야 한다!”
탐욕의 대가에서 피한 인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나무뿌리들을 공격하며, 수정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다시 재생되어 자신을 공격하려는 나무뿌리들, 이 모든 상황에 의해 전원 무력함만 느끼고 만다.
“제기랄, 다른 길드는 왜 랭커들을 데려오지 않은 거야!”
대형 길드가 4개나 있는데, 랭커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아젤은 타 조합들의 우매한 판단과 실책에 화를 내기 시작한다.
“다들, 시간 좀 벌어주세요!”
아젤은 자신의 공격대를 포함한, 타 길드의 공격대에 말했다. 그리고 모든 마력을 소진해서 기술을 준비했다.
아젤, 인계 기준 정점에 도달한 검사 중 1인. 모든 시간과 세월을 검에 투자했고, 이어지는 기술들 또한 오랜 노고가 쌓인 업.
“발검, 섬광(閃光)”
―번쩍이는 섬광,
온 사방은 풍압과 동시에 마력이 튀기며 붉은 수정을 향해 거대한 마력의 검기가 충돌한다.
지켜보던 모든 모험가는 아젤이 공격대에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태산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검기, 비단 검은 정령에게는 어림없는 공격이었다.
붉은 수정은 그 검기를 그대로 흡수하고는 아무 미동도 없다. 이어서 아젤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에는 조금씩 절망이 피어났다.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영원한 저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