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78화 (78/222)
  • 078화

    * * *

    거인의 거대한 울음이 고막을 때렸다. 로아는 꺼림칙한 괴성 때문에 완전히 겁을 먹었고, 온 몸의 근육이 별안간 마비되어 정적인 자세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아와의 황금 거인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린다. 그 행동만으로 강렬한 바람이 불어, 로아는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보였다.

    “정신 차리고, 얼른 뒤로 빠져.”

    크기가 답답할 정도로 느릿해 보이지만, 공격속도가 빨라 주먹이 곧 지면을 닿고 만다. 그리고 바닥에 수없이 깔린 금화들이 폭죽처럼 허공에 퍼지며 로아가 날아갔다.

    빠르게 이동하여 날아가는 로아를 몸으로 받은 뒤 바닥에 내려놓았으나, 이미 바닥에 금화가 사방으로 튕겨 나갈 때, 충격 피해를 받고 거의 행동불능 상태에 가까웠다.

    “이렇게 약해서야.”

    거인의 눈이 붉은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하며, 거대한 보폭으로 다가왔다. 로아에게 마력으로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시킨 뒤,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를 안고서 후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인이 지능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존재였고, 우리가 조금만 머리를 쓰고 숨어있으면 거인이 쉽게 알아챌 수 없었다.

    “내게 도움이 되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을까?”

    “네, 물, 물론입니다.”

    “아군에게 시너지를 주는 스킬은?”

    “강화 계열 마법이라면 구사 할 수 있어요.”

    “그럼 그 마법을 검에다가 적용해줘.”

    “검, 검에다가 말입니까?”

    로아는 의아해했지만 금세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후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브 안에 지니고 있던 ‘고급 장검’을 한 개 더 꺼내 들었고, 주문에 따라 마법의 기운이 2개의 검 주위를 맴돌며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방탄 지기의 가호.’

    고급 장검이 아닌 어떤 무기의 경우라도, 내구성이 아닌 방어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생명체의 경우에는 무기의 내구성이 중요하며, 유기체의 경우에는 내재 마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저런 돌덩어리나 강철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몬스터는 무기의 방어력 특성이 필수다. 전설 등급 정도는 돼야, 무기가 가진 방어력이 티가 날 수 있다고 많은 모험가가 말한다.

    전부 헛소리에 불과하다. 기사 계열이나 마법사계열의 축복 마법만으로도 마술을 부릴 수 있다. 등급이 낮은 무기를 순간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강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모험가들이 통상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스킬이 없었기에, 대부분 마안으로 해결하기 마련이었지만, 로아로 인해 공략이 수월해질 것을 예상했다.

    ‘마안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또 없어?”

    “아, 그게…. 보자.”

    로아는 머릿속에 있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리는 중이었다. 마법이 외우기 힘들 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습지 한 마법을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거대한 다리가 지면을 닿으니, 온 사방이 울리고 그 진동이 우리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숨어있던 우리를 발견하며 거인의 눈에 빛나던 붉은 기운이 여러 차례 깜빡거렸다.

    거대한 주먹을 위로 들어 올리니 다시 강한 바람이 불며, 몸을 떨던 로아는 눈을 감는다.

    “로아, 빨리!”

    .

    .

    .

    아와의 황금 거인이 공격을 가하자 바닥이 완전히 붕괴하며 돌의 파편이 사방에 흩날린다.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허공에 떠오른 금화들이 주변을 반짝이게 했다. 거인의 주먹 끝에 닿은 것은 지면이 아닌 아서가 쥔 두 자루의 검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묵직하다.’

    하체에 전해지는 거인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역시 유적 최상위 파수꾼이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발이 닿은 지면은 계속해서 부서진다.

    거인의 주변에는 푸른빛이 맴돌기 시작했으며, 아서의 눈도 푸른빛을 머금는다. 로아는 이러한 엄청난 마력 흐름에 의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별안간 아서는 자신보다 몇 배는 거대한 거인의 팔을 타고, 쉼 없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거인이 공격을 일절 따라가지 못하며 휘청거린다.

    저 거대한 거인도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자 빠른 속력으로 방어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거대한 괴물의 몸을 타고 아서는 두 개의 검으로 공격과 동시에 이리저리 이동했다.

    거대한 도끼와도 같은 일격. 푸른 섬광과 불씨의 파편이 사방을 튀긴다. 거인은 울부짖는다. 로아는 눈앞에 일어나는 광경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움직임은 이미 읽을 수가 없을뿐더러, 아서는 패턴을 모두 간파한 듯 공격을 오갔다. 이 와중에 납득이 더욱더 어려운 것, 거인과 반대로 그의 체력은 전혀 줄지 않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최상위 파수꾼이라고 불리는 개체가 모험가 한 명에 의해 사냥을 당하고 있었고, 정령왕이 직접 주선한 인물이라고 일컫는 ‘아서’가 눈앞에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로아였다.

    “넋 놓지 말고, 피해!”

    넋을 놓고 아서의 전투에 심취했던 나머지, 거인의 공격을 보지 못한 로아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주먹에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고, 이 와중에 아서는 허공 멀리에 있다. 로아가 느끼길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은 어림없이 죽음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

    엄청난 속도를 내지르는 검이 로아를 향한다. 그것은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 것과 흡사하다. 그 검이 로아의 눈앞에 빛을 내는 순간. 별안간 그 빛 속에서 아서가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서는 위협적인 거인의 주먹 앞에 놓였다. 또 다른 손에 쥐었던 검으로 그것을 가볍게 막아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서란, 푸른 불꽃과 빛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마치 신의 춤사위를 보듯, 로아는 아서가 그저 인간이라는 개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두 개의 검을 쥔 아서, 그 눈에서는 푸른 불꽃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지면과 사방이 푸른빛으로 가려지며, 거대한 검기 여러 개가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천둥이 치듯, 로아는 그 번쩍거림에 의하여 눈을 감았고 서둘러 눈을 떴을 때, 형상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전방의 모든 것이 검기에 의해서 초토화가 되어 있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유유히 자신에게 걸어오는 여인. 푸른 불꽃을 잠재워 두 검의 연기를 걷어내고, 로브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낸다.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넋 놓고 있어?”

    “그, 그게.”

    “괜히 상급 로브가 찢어졌잖아.”

    .

    .

    .

    아와의 황금 거인을 해치우자, 로아의 목에 걸려 있던 황금열쇠가 다시 반응했다. 황금열쇠에서 나오는 빛이 가리키는 곳은 거인이 파묻혀 있던 벽 앞,

    오벨리스크 아래, 바닥이 열리더니 그 안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다시 그곳으로 이동하던 중에, 황금 거인의 파편이 금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화들이 움직이며 우리들의 몸속으로 전부 흡수된다.

    [ 돌아간다면, 그것은 기적으로 남을 것이다. ]

    넋을 놓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 울림을 대변하자면 유적에서 무사히 나가게 되었을 시, ‘금화의 영혼’이라는 마법이 돈으로 형상화된다는 뜻이었다.

    .

    .

    .

    어두컴컴한 공간을 로아의 반딧불로 시야를 확보하며 내려올 수 있었다. 다만 하품이 나올 정도로 꽤 오랫동안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했지만.

    ‘아와가 있는 곳은 여기인가.’

    또 드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차원 그 자체를 옮겨다 놓았다는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황금 광산이라는 것은 산맥 내부에 있는 것인데, 산맥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아와의 황금 거인이 잠들어 있던 장소는 광산이라는 것과 흡사한 장소였다.

    이곳의 풍경이란 대부분의 색깔이 녹색으로만 느껴질 정도로 나무가 울창한 사원이었다. 황금열쇠가 가리키는 곳은 중앙에 있는 아주 거대한 거목이었다.

    우리는 열쇠가 가리키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주변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를 고대의 언어가 새겨진 돌이 지면에 박혀있었다. 그런 것들이 이끼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사원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거목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었고, 시야에 전부 채우지 못하는 거목의 크기는 조우했던 황금 거인보다 거대하다고 느껴진다.

    가까이에서 보니 거목의 거대한 뿌리가 지면 밖으로 튀어나와 주변을 어지럽혔고, 그 뿌리에 의해서 거목이 지면으로부터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을 들게 했다.

    뿌리로 인해 비어있는 공간에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에너지’ 같은 것이 있었다.

    “잠시만 멈춰.”

    “아서 님, 황금열쇠가 저 황금빛의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리고 의아했다. ‘권능’이라고 불리는 신적인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상징이 무언가에 의해서 묶여있었다. 저것은 온전히 신이라고 부르기엔 그 기운이 너무나도 옅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창조주 하위 개념의 신들은 저렇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기운을 가진 것들이 아니었다. 권능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개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운이 주변을 변화시킨다.

    “역시, 권능이 검은 정령에 의해 묶여있군.”

    옆에 서 있던 로아도 내가 의아해하는 부분을 들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황금빛의 일렁거리는 불꽃 사이로 검은색의 거대한 쇠사슬이 눈에 들어왔다. 그 굵직한 쇠사슬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지면으로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로아는 아와의 목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란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로아를 무시하고서 아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다시금 일어났고 아와를 마주한 로아의 표정은 몹시 알기 쉬웠다. 이를테면 여러 감정이 들어 있었다.

    『황금열쇠…. 너희 중 하나는 갈대 나무 부족의 아이구나.』

    멍하니 서 있는 로아의 등을, 손으로 툭 쳐서 눈치를 주었다. 머뭇거리더니 목에 걸린 열쇠를 쥐고는 아와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는 지금, 긴장을 풀지 않고서 아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로아를 지켜본다.

    “아와 님…. 제가 부족을 대표해서 주신님을 뵈러 왔습니다.”

    『말해 보아라.』

    “아와 님을 찾기 위해…. 저를 제외한 동족들이 죽어갔습니다.”

    “저희 부족이 너무나도 약했기에, 아와 님을 탐한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나.』

    “저를 마지막으로 하여금, 아와 님의 원한을 부디 거두어주시길….”

    『갈대 나무의 아가…. 사과는 내가 해야 마땅하노라.』

    아와의 말에서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미 아와가 만든 심연에 카니로베의 절망이 기생하여 상당히 오염된 듯했다.

    아와는 절망에게 침식당하고 있다. 그 절망이 아와를 완전히 침식하지 않게 하려면 아와가 가진 내면의 악의를 지워야만 한다.

    하지만 아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고려했을 시, 절망과 함께 아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이 앞서기 시작했다.

    “아, 아…. 이걸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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