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74화 (74/222)
  • 074화

    * * *

    눈앞에 서 있는 저 여인은 분명 ‘드라이어드’였다. 대부분이 ‘드라이어드가 어떻게 인계에?’라는 반응이다. ‘드라이어드’는 정령계의 종족으로 인계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시피 하는 개체.

    정령계는 다른 계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뜩이나 보기 어려운 ‘드라이어드’가 여관에 불쑥 찾아와 엑스칼리버를 보며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상황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과 여관 일동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기가 쉽지 않은 ‘드라이어드’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드래곤이랑 해골도 직원으로 있는데 무슨.’ 같은 느낌으로 여유를 가졌다.

    “이제는 내 엑스칼리버까지 탐내는 녀석이 나타나다니.”

    “저 여인이 ‘아와’ 님의 나무를 거둔 인간입니까.”

    “아와가 누군데, 여관 주인은 그런 사람 몰러.”

    “크하하, 지금 날 따라 하는 건가, 아서.”

    “아와 님은 ‘갈대 나무의 신’입니다.”

    모두가 눈을 번뜩 뜨고는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신과도 친구 사이냐?’ ‘알고 보면 델타 3세와도 관계가 있는 거 아니야?’ 소곤소곤 귓속말하는 손님들이었다.

    “자세히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갈대 나무의 드라이어드, ‘로아’입니다.”

    꽤 침착한 모습의 드라이어드 로아를 홀에 있는 빈자리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1년 전이라면 놀라서 자빠졌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패닉에 단련이 되어 있다. 장문의 이름을 가진 용 두 마리 덕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여관 손님들이 빌어먹을 만능사장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일 것이다. 혹은 델타산맥에서 망할 로또를 하고 왔을 때부터 거나.

    “어떤 방법을 통해 정령계에서 현세로 오셨을까.”

    “정령계의 나무는 워프가 있습니다.”

    “빌어먹을, 나는 이상한 것만 주워오는구나.”

    로아가 말하길 ‘이것은 아와 님과 연결되는 나무, 환계와 정령계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자원으로 아와 님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와 님의 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라며 엑스칼리버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난 또, 우리 마당에 있는 마력초 덕분에 자란 줄 알았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저 나무는 상당한 마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래서 문제는?’이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입을 여는 그녀가 나에게 전한 부분은 상당히 골치 아픈 부분이었기에, 자꾸만 관자놀이로 향하는 내 손을 렌과 아이리스가 제지하기 바쁘다.

    “아와 님은 현재 위독한 상황입니다.”

    “나무의 신이 위독한 거랑 여관 주인이랑 무슨 상관일까….”

    “아서 님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만.”

    “정령왕께서 현세에 있는 그자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그러니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절망에 침식되어가고 계십니다.”

    “괜히 들었어, 머리가 아파지는군….”

    갈대 나무의 주신 ‘아와’가 ‘절망’에 침식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예로 들어 힘을 잃은 마왕이 용사를 포식하여 부활을 노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이 예는 너무 심각하게 몰고 갔을지도)

    가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드라이어드의 이야기였다. 아와는 환계에 있는 에녹산맥에 위치한 고대유적에서 절망에 침식을 당했고, 오랜 시간 동안 정령왕에게 부재를 알렸다.

    긴 시간 동안 환계에 있는 고대유적에서 아와는 절망으로부터 침식을 막아줄 존재를 찾고 있었다. 마침 정령왕은 자신의 힘을 호롱불에 보냄으로써 아와의 위기를 알렸고, 드라이어드 로아는 엑스칼리버의 워프를 통해 찾아온 것이다.

    “절망의 이름은.”

    “원천은 ‘대절망 카니로베’입니다.”

    “하필, 절망도 아니고 대절망이라….”

    “중요한 것은 카니로베의 존속된 절망이 아와 님을 침식하고 있다는 것이죠.”

    “카니로베의 다른 무언가라는 말이 되겠군.”

    “네, 저희는 카니로베의 사역마인 그것을 ‘검은 정령’이라고 부릅니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카니로베의 사역마인 ‘검은 정령’이 혹여 아와의 침식을 성공했을 때였다.

    검은 정령에 의해 갈대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면 정령계의 생태계는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까지 도달해버릴지도 모른다.

    갈대 나무 신의 힘을 얻게 된 ‘검은 정령’이 정령계와 환계에서 정령왕을 파멸하고 끝내 그곳을 점령한다면?

    이어지는 카니로베의 최종목적은 불을 보듯 훤했다. 인계는 물론 모든 계를 침범한 뒤, 절망으로 뒤덮어 세계의 멸망이 그려진다.

    “…편안히 내버려 두질 않네.”

    “네. …네?”

    “아니야, 당신에게 말한 건 아니니까.”

    미간을 누르며 고민에 빠진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로아였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별안간 코 닿는 거리에 붙더니 ‘킁킁.’하고 향기를 맡았다.

    “뭐, 뭐야. 왜 그래. 아니 왜 그러세요.”

    “아서 님 파르파르의 꽃 드셨죠?”

    “어, 어떻게!”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르파르파의 꽃’을 구해드릴게요.”

    * * *

    일명 ‘르파르파의 꽃을 위하여’라는 계약이 성사된 이후, 그녀는 엑스칼리버로 돌아가 잠을 잤다. 침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더욱 마음이 편하다는 로아의 의사였다.

    ‘파르파르의 꽃’ 양기의 마력 농도가 너무나도 짙어서, 정령계에 존재하는 ‘성별’에 구분이 없는 개체들이 사용한다는 식물….

    이러한 개체마저도 파르파르의 꽃이 가진 양기의 마력이 너무 강한 탓에 소량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나는 몇 송이를 집어넣어 만든 포션을 꿀꺽했다.

    다시금 레니를 쏘아보지만, 그녀는 휘파람을 불며 딴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로아의 말로 따르면 레니가 들고 있던 고대서적은 본래 환계와 정령계의 서적이란다. 렌에게 ‘당장 가서 뺏어버려.’라는 명령을 내린다.

    어쨌거나.

    르파르파의 꽃이다. 나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르파르의 꽃을 말장난 마냥 반대로 뒤집어 놓은 르파르파 꽃이라고.

    양기의 마력을 듬뿍 가지고 있는 파르파르의 꽃과 다르게, 르파르파의 꽃은 음기의 마력을 듬뿍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마력 호르몬을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는 식물을 로아가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인데.

    “결국은 르파르파의 꽃도 아와가 만들 수 있다니까 나 원….”

    “마스터, 차라도 타드려요?”

    “오늘만 10번째야, 근데 타 줬으면 좋겠어.”

    “네, 조금만 기다려요♥”

    렌이 타온 차를 홀짝이며 ‘여간 입이 심심한 게 아니네, 호르몬이 바뀌었다고 생활습관마저 바뀔 줄이야.’라며 혼잣말을 했다.

    결국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와를 카니로베의 검은 정령을 떼어내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뭐든지 해결해주는 여관 주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다.

    “임자, 몸을 돌려놓기 위해서 아와를 구할 것인가.”

    “등골이 서늘한 게, 너 때문이었구나.”

    “짐이 도와줄 일은?”

    “없어, 여관이나 지키고 있으면 돼.”

    “짐은 여자로 변한 임자도 좋다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홀이나 보도록.”

    30분 정도는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음미해야 했을 차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감 시간이 한참 남은 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바뀌어 버린 목소리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기에 십상이었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리고 아이나가 여관으로 들어왔다. 그간 단골손님들은 아이나를 보며 ‘아이나, 아직도 일하고 있었어? 악덕 사장 밑에서 고생이 많네. 으하하!’라며 말을 건다.

    “단장님, 금일 의뢰 보고사항입니다.”

    “악덕 사장께서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아이나는 드래곤 길드의 의뢰현황을 보고했다. 근래에 일이 많아져 훈련 시간보다 의뢰를 수행하는 시간이 많아진 길드의 일원들. 다시금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다고.

    훈련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란베르크는 ‘훈련 시간이 줄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길드 일원들의 역량이 늘고 있습니다.’라며 반면 칭찬을 일삼기도 했다.

    프리실라를 포함한 길드의 일원들은 대부분 ‘토벌’ 의뢰에 집중하거나, 탐사꾼들이 유적을 안전하게 탐사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의뢰를 주로 맡고 있었다. 피차일반 위험하다는 부분은 전쟁과 다를 게 없었지만.

    “그리고 조사를 부탁하신, 아와의 황금 광산입니다.”

    아이나는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위에 여러 장의 종이를 얹혀두었다. 정령계에서 넘어오신 어느 드라이어드가 부탁한 의뢰 때문이었는데.

    절망에 침식되어가는 갈대 나무의 주신. 아와가 숨어있는 ‘아와의 황금 광산’에 대한 정보를 아이나에게 부탁했다.

    길드 건물에는 수많은 자료의 정보가 있었는데, 유적에 관한 자료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새롭게 창단된 드래곤 길드가 토벌 위주의 길드로 성립이 된 이후, 아이나는 유적에 관련된 정보를 여러 기관을 뛰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고.

    ‘자사의 수월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고 했었나.’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가에 따라, 자신감의 크기가 달라진다.’ 길드 건물에 있는 상당한 양의 자료들이 그녀의 말을 대변했다.

    “단장님. 대형 길드들이 유적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필 대형 길드의 표적이 아와의 황금 광산이라.”

    “네, 보이지 않았던 광산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무것도 모른 채, 황금과 보물을 노리고 오는 건가.”

    “아무래도 길드원과 함께 가시는 것이….”

    “의뢰로 다들 바쁘니까. 단독행동이 나는 편해.”

    “단장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 * *

    [ 탐욕을 먹어 치우는 : 아와의 황금 광산 ]

    환계, 에녹산맥에 위치하다.

    먼 과거 ‘마력 전쟁’ 이전, 에녹산맥에 위치한 ‘갈대 나무 부족’의 피난처였다. 마력 전쟁이 일어난 후, 광산에는 마력이 고갈되어 부족들은 끝내 그곳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그 이후의 긴 시간이 흘러, 현재 아칸 월드의 갈대 나무에도 먼 이야기라고 전해졌다. 그들에게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황금 광산을 지키는 수호자가 존재했다.

    마력 전쟁 이전, 갈대 나무 부족의 깊은 상징과도 같다 하였다. 16개의 입구로 되어 있는 광산, 입구당 10명 이상의 원정대를 권장한다.

    16개의 입구로 들어갔을 때, 도착점은 같으나 이어지는 길의 모양은 전부 다르다는 것. 여전히 공략되지 않았기에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명확하게 측정된 바가 없었다.

    ‘무엇이 나오고 어떤 함정이 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그 끝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의 보물과 황금이 있다. 과거 갈대 나무 부족이 모아온 세계의 유산이자 아와가 광산에 내린 기적.

    그렇기에 도굴꾼들이 과거의 유산을 되찾으려 광산 외부에 종종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탐욕의 대가’라고 불리는 유적이 가진 고유의 저주. 그것의 존재 여부였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모험가 대부분이 완전히 미쳐있었기 때문에 광산에서 받게 되는 저주의 효과는 전혀 알 수 없다.

    이렇게 ‘탐욕에 대가’라고 불리는 황금 광산의 저주란 모험가들이 쉽게 유적을 탐사하지 못하는 큰 문제로 자리 잡힌다.

    갈대 나무 부족이 아닌 이상, 환계의 원주민들은 황금 광산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 전문가들의 추측이었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기에 황금 광산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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