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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73화 (73/222)
  • 073화

    * * *

    온몸이 찌뿌둥한 느낌과 동시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시계를 보고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비해 4시간은 침대에 누워 수면을 취하고 있었던 것. 기지개를 피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어제였다. 어느 돌팔이가 강제로 먹인 시체 냄새 폴폴 나는 액체 때문에 괜스레 속이 매스꺼운 느낌이다. 정말 그 향을 떠올릴 때면 구역질이 절로 나오기 십상이다.

    ‘훈련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나도 어지간히 잤나 봐.’

    단 한 번도 늦잠을 자본 적이 없는 터라, 잠을 이겨내는 것이 몹시 힘겨운 렌에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 쑥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

    후방 건물은 복도로 나오기만 하여도 아주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늘 강조하던 건물의 자재가 몹시 구하기 어려운 고급재질이기 때문이었다.

    중앙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곧바로 후방 건물의 정문이 시야에 잡히는데, 캡틴이 관에서 나와 이른 시간부터 통풍을 위해 열어두곤 했다. 마침 열려있는 문을 가볍게 걸어 나와 내리쬐는 햇빛을 맞이한다.

    ‘너무 상쾌한 아침이구나!’

    후방 건물과 전방 건물 사이에는 일렬로 통로가 있다. 통로라고 부르기에는 사실상 거리가 멀고, 그저 후방 건물에서 전방 건물로 이동하는데 강렬한 빛이나 비를 막아주는 차양막 정도의 묘사가 맞지 않을까.

    “달, 달그락.”

    건물 사이. 식탁보와 같은 여관에서 나온 빨래를 널던 ‘블루’가 보인다. 눈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손을 올리고는 인사를 건넸으나, ‘턱’을 떨궜다. 뭘까, 혹시 마력이 부족한 탓인가. 아닐 텐데.

    ‘녀석의 저런 반응은 또 처음이네.’

    나는 알 수 없는 블루의 반응을 뒷전하고 전방 건물의 후문을 열어서 들어갔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니까, 일단은 밥을 먹는 것이 우선이었다. 뭐랄까, 평소보다 식욕이 왕성해진 기분이었다.

    보통 기상을 하고 나면 옐로우가 타다 준 커피 한 잔과 가벼운 독서로부터 아침을 시작했는데 왠지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일종의 일탈을 거두는 기분.

    웍이 불에 타는 소리, 야채를 볶는 소리. 냄새가 전방 건물의 후문까지 퍼져 내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침을 흘리는 것도 처음이다.

    “달, 달, 달그락.”

    “…달, 달그락?”

    홀로 들어섰더니 나를 먼저 발견한 캡틴과 네이비. 블루처럼 턱을 떨구는 반응을 하진 않았으나, 왠지 모를 이질감이 가득한 반응이라는 것은 블루와 다름이 없다.

    녀석들을 보며 ‘오늘 뭐, 잘못 먹었나.’라고 생각했다. 정장을 입은 해골들이 귀여운 탓에 피식 웃음으로 그 반응을 대신한다.

    메인테이블에는 우리 여관 식구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음식이 나오기 직전까지 무언가에 집중하는 탓이라 내가 온 지 모르는 듯하다. 초록색 난장이가 자리에 없는 걸 보아 홉스는 집에 있는 것 같다.

    아이리스는 마법신문을 펼쳐 조용히 활자를 읽어가고 있다. 프리실라는 단검을 꺼내 들어 소형날갈이를 가지고 연삭을 하고 있다. 정확히 렌은… 오른손에 포크, 왼손에 나이프를 쥔 채로 머리를 테이블에 박고 있다.

    ―끼익.

    항상 내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테이블 끝자락 중앙, 의자를 뽑아 들자 마찰음에 의해서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거긴… 단장의 자리라고 할 수 있네만… 어?”

    “…마스터가 왔나요? …으, 응?”

    “이, 이, 이 여인에게서 임자의 기운이!”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헛소리냐며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블루부터 수상했는데…. 혹시 녀석들 나 몰래 이벤트라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반응이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

    정적이 흐른다. 아침을 맞이하고 처음 뱉은 문장인 ‘반응이 왜 그래’,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스스로 뱉은 소리에 정적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설마’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단어를 수없이 머릿속에 띄우며 다시금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본다.

    “내 얼굴에 뭐….”

    “내 얼굴에….”

    “내…. 끼야아악!!!!!!!!!!!!!!!!!!!!”

    일동 전원, 자리에서 헐레벌떡 일어나 패닉에 빠진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마스터가 맞는 거 같아요!’, ‘세상에 아서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임자, 임자야! 나는 여자라도 좋다!’ 다양한 말들이 허공을 떠돌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앉았던 의자에서 곧바로 일어나 홀에 있는 거대한 유리를 향해 달려갔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사내의 모습인 아서’가 아니라 ‘여인의 모습인 아서’가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 * *

    “저 아리따운 여인은 누군가, 홉스?”

    “마커스 씨, 그, 그게….”

    “크하하! 아서라네, 아서!”

    “브라운 아저씨도 참, 말도 안 되는….”

    “자세히 보라고, 으하하.”

    “가만, 관자놀이를 누르는 시늉이 완전 아서잖아.”

    ‘매일 허탕만 치는 사냥꾼’이 ‘방어구 제작으로 인해 자주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여관에 나타난 대장장이’의 말을 이해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어색한 동작으로 이리저리 살펴본다.

    눈을 얇게 뜬 채로 ‘여관 주인 맞아요!’를 반복하자 급기야 배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져 폭소하기 바쁜 마커스. 지금껏 가게로 입장한 손님들은 대게 이와 같은 반응이었다.

    아, 아…. 그렇다.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몇 시간 전… 눈물을 머금은 채로 당장 레니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으면서까지 ‘빨리 나를 원상복귀시켜 놔! 제발!’이라며 한없이 외쳤지만.

    그녀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어리둥절한 반응이었고, 그 표정을 보니 이 돌팔이는 나를 원래대로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검을 등에 찬 사내, 쥬드가 등장한다. 당연히 여관 홀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의구심을 가진다. ‘손님은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느낌으로.

    “뭐야, 이 아가씨는 누구?”

    “쥬드, 접니다. 저! 아서라고요!”

    “하하, 비슷하게 흉내는 낼 줄 아는군.”

    “… 말을 말자.”

    내가 어디서 고용한 연기자라고 생각했는지… 이대로 여관의 마감이 찾아 올 때까지, 심지어는 그다음 날까지도 쥬드는 여인으로 환골탈태해버린 내가 아서라고 믿지 않았다.

    “그 잘나신 힘으로 돌아오진 못했나 봐? 하하!”

    “아, 아… 나도 다 해봤다니까요. 쥬드.”

    사실이다. 나도 당연히 해봤지, 해보지 않았을 리가. ‘내 몸에 적용된 이상한 현상을 파괴할 수 있는 마안을 결속한다. 제발!’ 비단 초월 마법도 애장난인 마냥 단번에 때려 부술 수 있는 마안세트가 말하길.

    [ 해당 육체에 특이점 없음. ]

    해당 육체에 이상이 없을 리가 있나, 달렸던 게 사라지고, 없던 게 막… 달리고 그랬는데! 특이점이 없다니, 수백 번을 말을 바꿔 외쳐도 보았다. 아무 소용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얇고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만 지겹도록 들릴 뿐. 사실 미려한 목소리이긴 했다만 본 주인의 성향 때문인지 ‘독기가 상당히 오른 여인의 목소리’라며 프리실라가 추가적인 견해를 말해주었다.

    ‘누구의 견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쭈뼛한 자세로 케피탄 맥주를 홀짝이는 레니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레니는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피하더니, 매일같이 정장만 입는 캡틴에게 ‘오늘따라 정장이 잘 어울리네요.’라며 말을 돌렸다.

    “레니, 10일 안에 나를 되돌릴 방법을 찾아내.”

    “…네, 네!”

    ‘아니면 빌어먹을 발레포르를 되살려서라도 탑을 다시 공략하게끔 해줄 테니까.’라며 말하자, 울상을 짓는 레니였다. 이를 보며 ‘여사장님 너무 쏘아붙이지 마시죠.’라고는 폭소와 함께 태클을 걸기 시작하는 빌어먹을 손님일동이다.

    “여자가 되었다고 힘을 잃은 건 아닙니다.”

    “크흠, 흠… 네이비. 여기 맥주 하나.”

    “오, 오랜만에 발리아트 포도주가 먹, 먹고 싶구먼.”

    레니가 만들려고 했던 포션의 효능은 ‘자율회복 마력순환의 최대화’였다. 오로지 남성에게만 적용이 가능한 포션이다. 일단 레니가 누차 설명한 것은 그랬다.

    음기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양기의 마력이 높은 포션을 복용시키면 양기의 마력이 적절하게 흘러 자율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고.

    ‘파르파르의 꽃’은 양기의 마력이 상당히 농도가 짙어 본 제조법의 메인 재료로 부각되어 있었는데, 정량은 ‘잎 하나’였다. 애당초 레니는 파르파르의 꽃이라는 재료를 너무 과다하게 사용했다.

    그러니까 양을 얼마나 넣었냐고 레니에게 물었더니, 밤중 엑스칼리버 뿌리에 피어난 꽃을 모조리 꺾어서 집어넣었단다. 그때 두 개만 꺾어갔잖아. 망할 돌팔이야. 밤중에 기어코 나가서 전부 뽑아왔다니.

    ‘정량은 잎 하나라잖아?!’라고 이야기한들 ‘고대어는 잘 몰라서….’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레니가 ‘파르파르의 꽃’과 ‘고대의 진주’를 조합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빌어먹을 서적을 열어 아이리스와 한참을 의논하기도 했다. 내가 아이리스와 굳이 이마를 맞대어 이 서적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서적의 활자 대부분은 ‘고대어’로 되어 있었고 박식한 푸른 용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었다. 마지막 활자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성공사례 없음.’

    ‘달그락’소리와 함께 퍼플은 해골마차의 출발에 대한 의사를 표현했고, 나는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고 손을 흔들며 다녀오라는 시늉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로 ‘다녀와.’라고 하기엔 속이 너무 매스껍다.

    “마스터, 차라도 내드릴까요?”

    “아냐, 나는… 그래 줘, 입이 심심하네.”

    심지어 양기의 마력과 음기의 마력이 지속해서 충돌하자 기초대사량이 현저히 높아진 기분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말인가.

    ―딸랑!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와 함께 퍼플이 ‘달그락, 달그락!’ 거리며 내게 헐레벌떡 다가왔다. 손가락뼈로 마당을 가리키는데 ‘뭐야, 또 빌어먹을 하거먼 필스라도 온 거야?’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퍼플이 내게로 다가와 황급하게 종이에다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는데, 거대한 작대기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긴 머리…. 여성으로 간주되는 자가, 음….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관계로 퍼플이 이끄는 곳을 향하기로 한다.

    움직임도 평소보다 상당히 불편하다. 마음이라는 것이 육체화가 되어서 그런 것인가, 분명 똑바로 서 있는데 앞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기분이다. 어째서 갓 일어났을 때는 알지 못했을까.

    “최소… E, 아니 F도 가능할지도 몰라.”

    “아서는 여자로 변해도 엄청나네, 그래….”

    “나가, 이 변태들아.”

    홀에 있던 마커스와 브라운 아저씨를 노려본 뒤, 다시금 여관의 정문 쪽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인기척이 들어서며 여관으로 들어오는 누군가.

    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용모, 아니 마계에서도, 천계에서도 볼 수 없는 용모였다. 굳이 이를테면 ‘환계’에 사는 이들과 흡사한 기운.

    홀에 들어선 여인은 온갖 나뭇잎과 식물들로 만들어진 로브의 후드를 젖히고는 입을 연다.

    “저 나무를 심은 자가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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