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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72화 (72/222)
  • 072화

    * * *

    식구끼리 모처럼의 여행인데,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던 홉스였다. 그런 녀석에게 ‘아니, 정말 잘했어.’라고 대답하자.

    울상을 지으며 ‘저는 식구가 아닙니까요?’라고 이야기하기에, 아이리스 해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미간을 누르며 설명해주었다.

    박장대소를 하며 ‘고블린은 1시간이나 숨을 참질 못하니, 자칫했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겠다. 인간도 1시간이나 숨을 참는 건 불가능하다고.

    홉스가 용사의 쉼터 일동 휴양을 마다하면서까지 찾아간 곳은 박물관이었다. 그런 녀석이 내가 들고 왔던 ‘고대의 진주’를 레니에게 건네는 모습을 보자 흠칫 놀라더라.

    고대의 진주는 서대륙에 단 2개 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레니는 얍삽하게도 내가 쥐고 있던 빌어먹을 진주를 낚아챘다.

    “에이라스를 박물관에 기증했더라면….”

    “그래, 세계의 유산이라 했나, 홉스….”

    “생각해보면 들고 오는 것도 일이겠지만요. 하하.”

    고대의 진주를 품고 있던 ‘에이라스’ 거대조개는 이른바 ‘세계의 유산’으로 등록된 개체 중 하나였다.

    물론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될 개체였지만, 붉은 용에 의해서 티끌 하나 남지 않고 소멸했으니 완벽한 범죄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듯.

    “…조금만 더 생각해볼걸.”

    “마스터?”

    순한 얼굴로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우는 렌, ‘드래곤 두 마리를 데리고 사는 마스터가 세계의 유산이 아닐까요. 아하하.’라며 내 뒤로 성큼 다가오더니 안마를 했다.

    “오, 시원한데.”

    “마스터, 많이 뭉치셨네요.”

    “너희 때문일지도 몰라.”

    “후후, 그렇군요.”

    “야, 어깨만 하면 돼. 어딜 더 내려가.”

    “넵.”

    레니는 어느새 ‘고대의 진주’를 들고 튀어버렸다. 아마도 5평 정도 되지 않는 마당의 ‘드래곤 엘릭서’로 향한 듯했다. 일명 레니, 연구소라고 하더이다.

    어떤 효과를 내는 포션이라도 그것의 재료가 고대의 진주나, 뭐 파릇파릇? 아무튼 그런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면 최종결과물을 기대해볼 법하지 않은가.

    재료만 보았을 때는 불로불사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레니의 신작 포션 제조 도전을 다 함께 응원하도록 하자.

    어쨌거나.

    레니도 연구를 위해 사라졌으니, 오픈 이전까지 브라운 아저씨에게 찾아가 ‘비 바잔 드래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장비들을 검수하러 갈 차례였다.

    ‘비 바잔 드래곤’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따라가지만, 사실상 브라운 아저씨의 케피탄 맥주 냄새가 그윽한 대장간이니 모두는 ‘그냥 브라운네 대장간’이라고 부르기에 십상이었다.

    “퍼플, 마차를 준비해줘.”

    “달그락.”

    * * *

    [브라운 대장간 / 비 바잔 드래곤]

    화로에 올린 거대한 가마솥은 물이 끓고 있었다. 대장간의 내부는 펄펄 끓는 쇳물과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불꽃에 의해서 땀이 뚝뚝 떨어지게 했다. 이어서 망치가 철을 두드리는 굉음이 계속된다.

    사방으로 어질러진 출처를 알 수 없는 재질의 쇳덩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갑옷의 어깨 부위, 대충 브라운 아저씨의 성향을 알 수 있을법한 분위기였다.

    “브라운 아저씨.”

    “오, 아서 왔는가.”

    “작업은 잘됩니까?”

    “물론이지, 한번 보게.”

    브라운 아저씨는 이상한 고글을 벗어 던지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에서 우당탕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사실상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어지럽히는 느낌이 강하다.

    그는 숱한 쇠 질로 단련된 팔을 자랑하며 방어구를 들어 올렸다. 나는 평소에 그가 제작했던 방어구랑 차이가 뭔지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브라운 아저씨는 ‘여기, 여기.’라며 손가락으로 방어구의 가슴 부위를 가리킨다.

    “이게 뭐죠.”

    “크하하, 자가 수복이 가능한 갑옷이라네.”

    “예?!”

    브라운 아저씨는 걸걸한 목소리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설명을 했다. 그 설명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자 이 사람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하고 진지한 의문이 들었다.

    방어구의 원천이 되는 재질과 ‘마석’을 함께 녹여서, 가슴 부위에 결합하여 있는 동일한 ‘마석’과 연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즉 방어구가 어떠한 부위에 공격이 가해져 파손이 일어난다면 가슴 부위에 결합한 마석이 반응하여 해당 파손 부위에 마력을 공급하여 수복이 가능하게 한 것.

    하물며 장착된 마석의 마력이 완전히 소진되면, 그저 다른 마석으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즉 갑옷에 포션을 먹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은 천재입니다.”

    “크하하, 그 정도까진 아니고.”

    “아뇨, 이건 어쩌면 큰 발견이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가지고 왔나?”

    “아, 케피탄 맥주요.”

    내가 방어구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가진 드워프도 아니고, 검수라는 말은 사실상 총회장의 입장으로서 해본 소리나 다름이 없다. 그저 브라운 아저씨가 부탁한 오크통을 가져다주기 위함이었을 뿐.

    “50개 정도를 며칠 안에 만들 생각이네.”

    “천천히 하셔도 되는데. 아이참.”

    실룩샐룩 웃는 내 얼굴을 이해하지 못한 브라운 아저씨, 당신이 만든 방어구는 어쩌면 서대륙 최고의 상품이 될지도 모르는데.

    당분간 용사의 쉼터에 자주 나오지 못할 것 같으니 케피탄 맥주라도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는 브라운 아저씨의 부탁이 ‘나 진짜 열심히 할게.’라는 소리로 들렸다. 아무렴 얼마든지 가져다드립디다.

    * * *

    “사실입니까, 사장님?”

    “그렇다니까!”

    “허….”

    브라운 아저씨가 제작한 신작 방어구에 대해 홉스에게 이르자마자, 녀석은 어마어마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옆에서 엿듣고 있던 붉은 용과 푸른 용이 ‘자가 수복이 뭐가 어렵다고?’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아무리 나 홀로 대륙 무쌍이 가능한 너희들이지만 인간의 지혜를 무시하다간 큰코다친다며 대답하자. 여관 손님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멍하게 쳐다본다.

    “아서.”

    “쥬드? 갑자기 왜 그렇게 쳐다본답니까. 다들.”

    “눈알도 다시 만드는 녀석이… 읍!”

    나는 쥬드의 입을 틀어막고 귓속말을 했다. ‘그런 것까지 손님들이 알게 되면, 여기 여관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같은 괴상한 소문이 돌고 만다니까요.’라고.

    ‘으하하, 이미 자네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네.’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모험가들은 수다가 많은 직업이라며, 타 대륙까지 아서의 이야기가 7인의 원정대만큼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고 몇몇 손님들은 감히 여관의 블랙리스트 등록 권한을 가진 나를 놀리기 바쁘다.

    .

    .

    .

    마감의 시간이 다가오자, 퍼플은 마지막 손님들을 태우고 시내를 향했다. 우리의 여관 일동들은 모험가들이 휩쓸고 가버린 홀을 정리했다.

    “임자, 그러고 보니 오늘은 레니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드래곤 엘릭서에 있나 보군.”

    “마당에 똥간만 한 연구소 말인가.”

    “하하, 똥간이라니 레니가 들으면 서운하겠어요.”

    일은 일이고 휴식은 휴식이다. 라는 주의를 가진 브라운 아저씨와 레니. 이들이 여관에 나오지 않고, 자칭 ‘아서 협회’를 위한 연구에 힘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사실 레니는 주사가 피곤해서.’

    내 제안은 그들에게도 분명 돌아오질 않을 최상의 기회. 앞으로 이들이 창조하는 물건들은 죄다 베네핏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레니한테 다녀올게.”

    ‘청소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임.’이라는 속내를 대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홀을 쓸고 있는 해골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마당으로 빠져나온다. 이어서 레니의 똥간, 아니… 연구소로 향했다.

    ―펑!

    “펑?”

    레니의 작고 작은 오두막에 들어서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크의 까만 연기가 올라왔다. 얼굴에 재를 뭍인 그녀가 ‘하, 하, 하.’라는 단절된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실, 실패?”

    “아니요. 성공입니다.”

    “아니, 딱 봐도 실패잖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그녀가 음흉한 웃음으로 플라스크를 쥔 채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의미는 분명 나에게 임상시험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루를 꼬박 새운 것도 아닌데 다크서클이 왜 내려왔냐며 폭소를 하자, 그녀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요. 일단 와보세요.’라며 계속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 잠시만!”

    “이리 와요.”

    레니가 강하게 멱살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묵직한 플라스크를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마치 부모님의 숟가락 비행기 슈웅 밥 먹자에도 격렬한 거부를 일으키는 아이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모습이었다.

    ‘잠, 잠깐만! 여, 여기서 시체 냄새가 난다니까!’라고 발버둥 치자 ‘냄새는 중요하지 않아요. 쓴 약이 보약이라잖아요.’라는 빌어먹을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레니와 한참을 실랑이다가, 바닥에 놓인 플라스크를 밟고 그녀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나와 레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하아, 하아.”

    “레, 레니.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으으… 피차일반 아서도 마찬가지잖아… 요.”

    레니가 정신을 차리며 내 위에서 엉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일어났다. 쏟았으면 너무나도 좋았을 법한 시체 냄새의 플라스크는 멀쩡했고.

    여기서부터는 극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온 렌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던 우리의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남편의 바람을 목격한 여인의 표정으로 나를 직시했다.

    “마… 마스터.”

    “야, 야. 잠시만 너 뭔가 큰 오해를….”

    현 상황에 대해서 너무나도 순수하게 반응해버린 레드드래곤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벌써 미간이 찌푸려졌다. 수많은 상황이 머리를 스친다.

    말을 잇지 못하고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 입은 뻥 뚫린 성벽처럼 벌어져 있었다. 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찰나, 레니는 플라스크를 내 입속에다 들이부었다.

    “쿨럭! 우욱… 우우우우웁!”

    ‘꿀꺽, 꿀꺽.’이라는 소리가 마당까지 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니는 기어코 입을 벌린 내게 시체 냄새가 나는 무언가를 먹이는 데 성공한다.

    이미 상체가 레니에 의해서 반쯤 묶여있는 상태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약을 토해내는 시늉을 했다만, 무자비하게 폭포처럼 쏟아지는 액체들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레, 레니. 먹었다고, 먹어버렸다고!”

    “하하, 그래요.”

    “하하, 그래요. 라니!”

    “어차피 아서는 웬만한 걸 먹어도 안 죽잖아요.”

    “안 죽는다니, 죽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그건 잘 모르겠다니!”

    육체에 이상적인 반응이 곧바로 오지 않는 이유는 마안의 뭉치가 미리 반응하여 모든 해독작용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플라스크에 들어 있던 시체 냄새가 나는 액체의 맛은 절대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으… 썩어버린 슬라임을 먹는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엑, 왜 반응이 없죠?”

    “후… 너 렌에게 가서 설명 잘… 우, 우웩!”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나저나 어때요.”

    ‘방금 토악질을 보고도 어떠냐는 말이 나와?’라는 답변과 함께 순정을 빼앗긴 사내처럼 바닥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내가 무언가로 변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처럼 대답을 기다리던 레니를 쏘아보며 외쳤다.

    “최악의 맛, 최악의 기분! 평점 1점! 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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