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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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륙 아이리스 해변 ]
용사의 쉼터 일동은 오늘 자로 1박 2일의 휴양을 시작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해변을 뛰어다니는 해골 신사들, ‘아 나의 터….’라는 사색에 잠겨 해변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리스.
렌은 ‘치명적인 용이 되겠어요.’라며 옆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태닝을 하고 있었다. ‘넌 이미 존재 자체가 치명적이야 렌.’이라며 태클을 걸어보지만 늘 그랬듯 걸리기는커녕 미동도 없음을 잊지 말자.
캡틴과 란베르크는 남대륙에서 유명한 바다 수박을 모래 위에 세워두고는 ‘심안’이라는 타령을 하며 막대기로 수박 깨기를 하고 있었다.
렌은 치명적인 용이 되기를 포기한 건지 ‘저도 끼워줘요!’라며 하던 태닝을 멈추며 수박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간다.
“플로, 플로”
“너희들도 좋나 보구나.”
“플로.”
짚으로 만들어 놓은 파라솔 아래에 차분히 누워, 야단법석 미친 듯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내 직원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다가 내가 비로소 휴양의 승리자임을 만끽했다.
뜨거운 햇볕에 몸이 약간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지만 플로우와 함께라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며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행복 에너지가 가득하구나!
‘정말 시끄러운 일들이 많았어.’
남대륙 아이리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해상여관 바다거북’으로 찾아갔고, 바다거북 여관 주인 리엔 호크를 포함한 모멧티 씨가 나를 몹시도 반겨주었다.
“임자야, 임자야!”
렘수면에 가까워질 때쯤, 아이리스의 앙칼진 목소리가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아채자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냥 자는 척해야지.’
나는 드래곤의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다시금 슬쩍 들어 올렸던 고개를 원래대로 두었다.
‘임자, 짐이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고개를 들더니, 모래와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무시해버린다면 짐은 이 해변이 아무리 내 고향이라고 할지라도 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파괴할 수밖에 없느니라.’라고 하더이다.
“왜. 또, 왜.”
“이것을 보아라!”
아이리스는 손에 쥔 유리병을 보여주었다. 이게 뭘까 싶어서 자세히 쳐다보았더니 단단히 입구를 막아 놓은 코르크 마개 내부로 종이가 들어 있었다.
“그게 뭔데.”
“보물 지도이거늘!”
“버려.”
“그, 그럴 순 없다. 어마어마한 보물이!”
“제발. 플래그 좀.”
나는 무릎을 꿇고 아이리스에게 손을 싹싹 비비며 부탁했다. ‘우리 휴양 온 거잖아. 그치? 모멧티 물고기를 뺏어 먹은 것 때문에 나 계속 괴롭히려고 붙어있는 거지? 한 번만 용서해줘, 부탁이야!’라고 말할 때쯤이었다.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리스가 들고 있던 유리병에 시선이 잔뜩 가 있는 렌이 어느새 그림자를 만들며 다가왔다.
“아… 한 마리 더 붙었다.”
나는 바닥에 있던 모래를 빠른 속도로 파내어 얼굴만 집어넣는 선택을 했다. 일명 비트라고 부르는 것인데, 대충 얼굴 정도만 숨긴 채로 죽은 척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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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맙소사.”
로빈슨 크루소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해변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드래곤으로 변한 아이리스 위에서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 말은 즉 빌어먹을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아이리스, 오른쪽!”
“달그락, 달그락!”
“선생님, 정신이 드십니까.”
“아니, 나는 이대로 정신이 들지 않으려고 해.”
“어, 어! 란베르크! 마스터 잡아요! 해변까지 뛸 생각이에요!”
“안 가, 안 간다고. 망할 지도가 맞는지 좀 보자.”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렌이 쥐고 있던 종이를 뺏어서 펼친다. 딱히 지도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애 장난에 불과한 낙서였다. 이걸 보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야, 야. 이건 그냥 낙서잖아.”
『임자, 낙서를 유리병에 넣어놓을 리 없지 않은가.』
“그, 그것도 그렇지만….”
『그리고 이미 다 도착했거늘.』
도착했다는 말이랑은 아득히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우리는 휑한 바다 중앙에 놓여있었고, 지도상에는 빨간색 X표가 섬 같은 형태 위에 그려져 있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전설적인 유적탐험가들을 데리고 와도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낙서를 보며 너희가 어떤 해석으로 여기까지 온 거냐고 묻자 ‘그저, 감이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하하. 감이라니.
“흠, 확실히 섬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요.”
“그냥 낙서라니까, 돌아가자.”
『그래… 비밀은 이것이었구나.』
보글보글 물 안에서 공기가 튀는 소리, 바다에 거대한 얼굴을 집어넣고는 무언가 알아냈다는 듯이 말하는 아이리스.
『아래에 있다.』
아이리스가 말한 ‘아래에 있다.’는 뜻은 곧 바다 밑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래서 뭐 어쩌려고?’ 아래에 있는데 지상에 사는 생물답게 곱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며 계속해서 으름장을 놓았다.
『모두 짐을 꽉 잡도록.』
‘꽉 잡으라니 무슨…’이라는 말이 단말마의 비명으로 바뀌며, 아니 아서의 비명으로 바뀌며 바다 안으로 쇄도하여 들어간다. 잠수부처럼.
다른 이들은 당연히 일어날 일이라는 듯이 아이리스를 부여잡고 있었고, 이 여관 주인은 꼬르륵 소리와 함께 관자놀이를 눌릴 뿐이었다.
‘다들 1시간 정도씩은 숨참을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아이리스에 물음에 ‘이 미친 악마 같은 푸른 용아, 지혜의 드래곤은 개뿔!’이라며 녀석의 등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치는 동작을 반복했다. 물이 소리를 잡아먹어 ‘꼬르륵’ 소리만 나는 비명 행세나 다름없었지만.
산소 없이 1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생존할 수 있는 빌어먹을 드래곤이라 그런지 녀석들은 문제가 없다.
해골 녀석들도 무슨 원리로 숨을 참는지 점점 더 강한 수압을 느끼며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어쨌거나 평범한 모임이었음 싶었는데, 란베르크도 멀쩡한 걸 보아, 평범함을 방자한 모임은 앞으로도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생각보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란베르크를 이해할 수 없게 되자,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억지로라도 이해하기로 했다.
『저것은…. 마치.』
『거대한 조개와도 같은 모습이구나.』
‘여기서 멀쩡히 우리 귀에 들어오게끔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너뿐이란다 아이리스.’라고 손가락으로 녀석의 등에다가 글자를 적어주었더니, ‘오늘따라 임자가 몹시 적극적이군, 짐은 그런 것도 좋아하느니라.’라며 짜증이 나는 소리를 해댔다.
아이리스가 거대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분명 그것은 조개의 형상이었다. 아주 깊은 바다 아래에서 잠들어있는 거대한 보물 같은 기분.
크기로 따지자면 최소 용사의 쉼터 전방 건물과 견주어도 문제가 없었다. 이끼가 가득 피어있어서 초록색에 가까웠다. 저 거대한 조개로부터 짙은 농도의 마력 기로가 이어지는 것은 확실했다.
『짐이 한번 열어보겠다.』
‘조개 안에 있다면, 진주가 있겠고, 저렇게 거대한 조개 안에 진주가 있다면, 그 진주는 아주 거대할 테니, 내 이것을 임자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수지타산을 비교하며 계산해본 결과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빌어먹을 나의 심상이었다. ‘하하. 얼른 진주를 나에게 가지고 오거라 아이리스여.’
『흐읍…. 흠?』
『짐의 힘으로도 열리지 않는다니. 흠!』
미동도 하지 않는 조개, 단단히 닫혀있는 것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아이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란베르크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자신의 검을 뽑아 들어 조개에게 수없이 공격을 가하지만 서대륙 최강의 검사도 기진맥진이 되어 버린다. 고속검에 ‘아직도 나는 멀었어.’라며 우울감에 빠지게 만드는 거대조개였다.
‘하여간, 지혜만 추구하는 개체들은 가끔 이런 일을 못 한다니까.’라며 비웃던 렌이 급기야 용으로 변해 거대한 조개 위로 올라탄다. 날카로운 손톱을 아주 미세한 조개의 이격 사이로 집어넣는다.
『흐읍!』
『…하하하, 이제 시작이에요. 마스터.』
자신의 양팔을 빙빙 돌리며 어깨를 푸는 거대한 붉은 용이었다. 여러 차례 몸을 풀며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지 다시금 자세를 잡고 조개를 열어보려고 했으나….
『흐읍…! 열려라. 쪼옴!』
『이렇게 붉은 용은 2번째 패배를 맛보았다.』
『시, 시끄러워요. 아이리스!』
아이리스와 렌은 자신이 용이라는 개체로써 이것은 너무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라며 거대조개를 발로 차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시작한 건 너희들인데, 왜 그래….’
한참을 씩씩거리던 녀석들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거대한 송곳니를 자랑했다.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듯이 거대한 조개를 세로로 세운다.
‘그냥 너희 마법을 쓰면 되잖아.’라고 태클을 걸어보았지만 ‘그럼 안에 있는 진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요!’라며 화를 내는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이 안에 진주가 있긴 한 건지.’
둘은 자세를 잡기 시작하더니 조개를 각각 쥐어 잡는다. 진주고 뭐고 완전히 뜯겨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란베르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당초 그러한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레드드래곤과 블루드래곤. 서로를 마주하며 카운트를 때린다.
『하나!』
『두울!』
『세엣! 흐으아아압!』
―!
조개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더니, 내부에서 주먹 크기의 진주가 보였고 노란빛을 뿜어대는 것이 여간 비싼 물건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자 군침을 삼켰다.
‘잠깐, 이건… 레니가 말했던.’
[고대의 진주]라는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레니가 어떤 포션을 제조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이것이 새로운 회복제 개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챙겨가는 것이 맞다.
『아하하, 마스터도 성질 급하시긴.』
얼른 저것을 챙겨가야 한다는 본능이 아이리스의 등으로부터 떨어져 진주를 붙잡게 했다. 원래부터 이러한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개는 진주를 빼앗기자마자 엄청난 진동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볼일 끝났으니까, 대충 마법으로 태워버려.’라는 말을 ‘주먹으로 때려서 기절시켜.’라고 해야 했는데….
내 명령을 경정직행(徑情直行)이라고 곧이곧대로 들어버린 렌은, 바다 안에서 고위 마법을 발현한다. 반경 1km가 증발해버리자 강제적으로 휴양은 종료되어 용사의 쉼터 직행코스 줄행랑이 선택된다.
‘미안해요, 아이리스 해변에 거주하는 분들!’이라는 말을 뱉자. ‘이곳은 짐의 터이니라, 사과하고 싶으면 짐에게 하도록!’이라는 대답을 하는 푸른 용 아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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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알게 된 사실을 늘어놓아 보자면, 우리가 고대의 진주를 얻을 수 있었던 출처인 거대조개의 정체는 ‘에이라스 조개’라고 불리는 ‘세계의 유산 중 하나’였다. 하하.
이 조개를 고고학자에게 넘겼더라면, 녀석이 물고 있던 노란빛의 진주 값어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보상받아 ‘4대륙 용사의 쉼터 프랜차이즈’의 꿈을 실현했을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