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70화 (70/222)
  • 070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 길드’의 제휴 여관.

    ◈ 금일 ‘용사의 쉼터’ 파티타임.

    ※ 승리를 위한 축배를 함께 듭시다.

    ※ 물론 케피탄 맥주 무료입니다.

    ◈ 2일간 ‘용사의 쉼터’ 일동 휴가 출발.

    ※ 남대륙 아이리스 해변으로 갑니다.

    ※ 올 때, 메로나 없어요!

    * * *

    용사의 쉼터가 개업한 이래, 오늘은 가장 시끄럽고 북적한 여관의 모습이 되겠다. 필스 길드와의 모의 공성전의 중개를 지켜보았던 많은 모험가가 가입서를 작성해 들고 온다거나, 서대륙에는 관심도 없던 마법 기자들이 나타나 인터뷰를 원한다던가.

    하물며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과 단골손님들의 수다를 떠드는 소리, 브라운 아저씨의 걸걸한 웃음, 온갖 잡다한 수다 소리가 섞여 여관의 지붕을 뚫을 것만 같았다.

    물론 모두가 즐겁도록 금일 ‘파티타임’이라는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사실상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운 용사의 쉼터와 다를 바가 없으니 허탈한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봐, 홉 총무, 홉 총무도 와서 마시게!”

    “크하하, 홉 총무란다.”

    “저기, 저… 제 성은 홉이 아닙니다만.”

    얼떨결에 브라운 아저씨로 인하여 성이 ‘홉’이 되어버리고는 이름이 ‘스’가 된 여관의 매니저였다. 홉스는 분주한 홀을 돌아다니며 여관 손님들에게 안부를 나누고 있었는데, 브라운 아저씨의 어깨동무로 인하여 이리저리 사방팔방 끌려다녔다.

    “아서, 엑스칼리버가 많이 자랐던데요?”

    “맞아 레니. 식물학자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니까.”

    “그럼 저 엑스칼리버에 뭔가를 좀 해도 될까요?”

    ‘뭔가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레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 로또가 탐나는 거라면 레니도 용서하지 못해.’라고 이야기하자 식은땀을 흘리며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뒷걸음치더라.

    식물학자가 엑스칼리버를 평가한 이후, 우리 여관의 귀여움을 맡은 플로우들도 여간 관심이 장난 아니다. 물론 엑스칼리버를 마당에 심었던 이래로 그 근방에 자주 머무르는 경우가 늘긴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여관에 손님으로 찾아오는 정령사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계약이 되어 있는 정령들이 대개 엑스칼리버 근처에 다가가 휴식을 취하거나 관심을 두기 십상이었다.

    웨라 씨도 자신의 고향에 있던 나무와 비슷한 기운을 풍겨서,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좋아했다.

    “내 나무에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데?”

    “무, 무슨 짓이라뇨.”

    레니는 ‘드래곤 엘릭서’라는 이름으로 포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수많은 서적을 통해 공부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마법 약품 제조’에 관한 수업을 듣기 위해 마탑의 학생으로 입학할지 고민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허리에 차고 있던 포션이나 약재를 담아두는 가방에서 빈 플라스크를 꺼내더니 나에게 대뜸 들이밀었다.

    “이, 이게 왜?”

    “엑스칼리버에 핀 꽃을 제게 줘요.”

    “나무에 꽃이 피었다니.”

    “그럼요, 몰랐어요?”

    레니는 내 손목을 잡고 여관 밖을 향해 끌고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렌과 아이리스는 의문점을 품기보다는 질투의 눈빛을 쏘며 노려본다.

    “이거 봐요. 그죠.”

    “그러네. 정말 꽃이 피었어.”

    밤이라 그런지 잘 보이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여관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주황색의 빛,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영롱한 달빛, 정령왕의 기운이 담긴 호롱 불빛.

    전자의 빛들이 비치는 곳을 지긋이 바라보니, 지대를 튀어나온 거대한 뿌리에 꽃이 피어있었다. 잎이 아주 싱그러운 노란색이었다. 고향의 민들레와 닮아있다.

    “이걸로 포션을 제조해 보겠다는 건가.”

    “맞아요. 제가 서적에서 읽은 바로는….”

    레니는 오목조목한 입술로 서적에서 읽은 활자들을 내게 늘어놓았다. 이 민들레는 정령 학자 레노브가 집필한 서적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진짜 개체명은 민들레일 리가 없었고, ‘파르파르의 꽃’이라고 한다.

    “고대의 진주가 재료로 쓰이긴 하는데.”

    “고대의 진주는 처음 들어보는데.”

    레니의 추가적인 설명으로는 노란빛을 내는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바다 진주라고 했다. 문제는 가격도 비싸지만 ‘보물’에 가까운 등급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플로, 플로.”

    “플로우 너도 이 꽃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 그럼 몇 송이만 훔쳐 가겠습니다.”

    ‘많지도 않은데 다 뽑아 가던지.’라는 말을 하자 플로우가 부리나케 내 입을 막으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다 가져가면 어떡해!’ 같이 화난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그, 그러다가 큰일 날걸.’ 같은 느낌의 난처한 표정을 짓는 플로우였다. 별안간 녀석의 귀여움에 매료되어 레니와 함께 미소를 짓는다.

    “알겠어요. 걱정 마요. 두 송이만 가져갈게.”

    “플로우가 엑스칼리버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그런가 봐요. 아서. 아하하.”

    레니가 꽃을 꺾어서 가방 안에 집어넣을 때쯤, 언덕 아래로 시끄러운 마차의 바퀴 소리가 지면을 울렸다.

    이 시간에 마차를 타고 올 손님은 없는데, 과거의 프리실라였으면 모를까 지금은 프리실라가 여관에서 함께 지내니 그것도 아니었다.

    오크통을 잔뜩 실은 로건 마차는 이미 오전에 다녀갔다. 금일 케피탄 맥주 공짜라는 이벤트로 부족한 맥주를 채워야 했기 때문. 브라운 아저씨는 이런 날이면 오크통 몇 개는 기본이었다. 사실 이 아저씨 이벤트만 기다리니까.

    마차의 바퀴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 혹은 그 이상이다. 언덕을 타고 올라와 내가 아끼는 마력초들을 그대로 짓밟고 넘어온다.

    주차구역이라는 팻말을 다시 만들어야 하나. 오랜만에 관자놀이를 눌리게 하는 저 녀석들의 정체를 확인했고, 마차에는 ‘검찰 기사단’이라는 글자의 각인이 눈에 들어온다. 마차 안에서는 두 사내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여기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검찰 기사단의 정갈한 제복을 착용한 기사들이 수많은 마차에서 떼거리로 내렸다. 누가 보면 마치 마피아의 수장이라도 잡으러 왔다.

    대화가 들리던 마차에서 유유히 내리는 기사, 그리고 그는 검찰 기사단의 증표를 내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델타 제국 현행법을 어긴 자영업자 ‘아서’를 구속합니다.”

    ‘띠용―’ 이라는 느낌을 아는가? 레니와 나는 물론이고 옆에 날아다니던 플로우들마저 ‘띠용’이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이들에게 첫 단어를 내뱉기 이전에 곰곰이 생각했다.

    ‘설마, 렌과 아이리스 때문에?’

    ‘아닌데, 그럼 뭘까.’

    단순히 유희를 위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내가 도벽이 심한 도둑이라거나. 아니면 내가 모르는 현행법을 어길만한 버릇이 있다거나?

    아무것도 켕기는 것이 없다. 나는 은퇴 이후로 너무나도 깔끔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착한 시민상이라는 게 있다면 본인이 받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제가 무슨 현행법을 어겼….”

    “아서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증거확보를 위해 인원을 투입하겠습니다. 들어가.”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마차에 내렸던 수많은 기사가 용사의 쉼터로 우르르 입장했다. 기사는 쥐고 있던 종이를 보며 턱을 쓰다듬는다.

    “제가 무슨 현행법을 어겼는데요.”

    “당신은 동맹국의 재물손괴죄로 체포됩니다.”

    “제가 데크 에던의 무슨 재물을 손댔는데요?”

    “발리아트의 포도.”

    빌어먹을 맛 좋은 발리아트의 포도를 떠올리자, ‘아니 무슨 발리아트의 숲이 자기네들 것도 아니면서, 휴전이라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발리아트의 숲에 대한 권한은 데크 에던이나 아크론이나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로건에게 받은 것이라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뭣하다. 여기서 ‘사실은 로건이 제게 준겁니다!’라고 고자질하기에는 앞에 이야기했던 ‘착한 시민상’을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 진짜 누가 꼭 만들라고 이거.

    “뭐야, 음?”

    황급히 여관을 나온 기사 1명이 나와 마주하고 있던 기사에게 귓속말했다. 조금씩 속닥거리는 소리가 길어지더니 이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야, 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델타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망할 델타 제국의 영광은 너나 주시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란베르크 일등 기사님!”

    프리실라와 ‘검’에 대한 논의로 한창 불타오르던 란베르크였다. 취기가 적당히 오른 채로 여관 밖에 나와서 나를 체포하려던 기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케피탄 맥주의 냄새가 그윽하게 퍼진다. 아유! 브라운 아저씨 냄새.

    여관 식구들이 목이 빠지라 기다리는 바캉스를 위해, 오늘 같은 날 빌어먹을 필스의 농간에 놀아나는 일은 있을 순 없다. 고맙다. 선생님도 좀 쉬자!

    “이봐, 여기는 내 은사의 집이라고.”

    “그, 그렇군요.”

    “뭐어? 바아아알리아트?”

    “네, 넵!”

    “대답을 두 번 하는 기사가 어디 있나, 빠졌어?”

    “아, 아닙니다!”

    “검찰 기사면 대가리가 똑똑해야 할 거 아니야.”

    “그,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네가 볼 때는 저게 지금 훔쳐 온 거냐?”

    “제, 제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돈 먹었지?”

    “아, 아닙니다.”

    기사의 머릿속에는 현재 ‘X됐다. 란베르크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뭘까?’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시선을 회피해 보지만 그윽하게 느껴지는 정면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는 기사였다.

    이어서 란베르크는 그가 내렸던 마차로 다가가 문을 보란 듯이 뜯어냈다. 진정한 재물손괴는 여기에 있는데 기사 나리, 말 좀 해보시지.

    “여기에 쥐새끼가 있네.”

    “흐, 흐악!”

    마차에 내리지 않고 있던 사람은 ‘제보자’로 추측되는 성이 ‘빌어먹을’인 ‘하거먼 필스’였다. 녀석은 란베르크의 눈을 마주치자마자 몸을 움츠리며 완전히 겁을 먹고야 만다.

    “야, 야. 애들 데리고 꺼져.”

    “분, 분부 받들겠습니다!”

    “아님 계급장 떼고… 아 참 나 이제 기사 아니지.”

    “델타 제국의 영광을 위하…!”

    “그리고 필스야.”

    란베르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필스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난처한 표정으로 ‘하하….’거리며 웃는 고약한 하거먼 필스. 이번에도 완전히 밟힌다. 거의 잡초가 따로 없었다.

    “다시 이 여관의 주인을 귀찮게 했다가는… 정말 네 가문이 사라질지도 몰라! 명실상부한 증거가 있어, 이렇게 보란 듯 나도 있고. 저기에 계신 분은 더욱더 그렇지.”

    “네….”

    “마지막으로 경고 한다. 너로 인해 또다시 거슬리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블헤이드 메인가’의 선전포고라고 말이야.”

    “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그래 좋아. 얼른 꺼져버려. 들어가서 케피탄 맥주 마실 거니까.’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 많던 마차들이 부리나케 마당에서 도망친다. 마차의 바퀴 자국이 남아 바닥에 누워버린 마력초들을 보며 아, 아를 운운한다.

    “선생님. 이 정도면 얼씬도 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완벽했어. 박수.”

    지켜보던 여관 손님들을 포함해 레니와 나는 손뼉을 치며 란베르크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어서 ‘뭐…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녀석의 반응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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