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9화 (69/222)
  • 069화

    * * *

    여관의 분위기는 상당히 엄숙했다. 아서는 고개를 젖힌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캡틴이 가져온 시원한 수건을 얼굴에 얹혀 열을 식히고 있다. 얼굴 전체를 덮어버린 까닭에 표정이 보이지 않아 더욱 섬뜩한 아서의 분위기였다.

    아서 진영이 엄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관 사람들이 프리실라 진영을 걱정한 탓에 그런 것이다. 다음은 무엇보다 이가 빠질 정도로 바득거리던 여관 주인 때문이었다.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진영이 엄숙할 수밖에 없다. 평소처럼 아서에게 조크를 던지다간 멀쩡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필스라는 귀찮은 벌레가 붙은 나머지 아서의 기분이 상당히 시원찮았다. 이마에 잔뜩 올라온 열십자의 혈관이 자꾸만 꿈틀거린다.

    ‘저렇게까지 화난 모습은 처음인데… 진짜 아서에 의해 하거먼 가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라고, 늘 하던 것처럼 적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여관 손님들이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쿠웅!

    여관 마당에 7명의 인적을 알 수 없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낙하에 의해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구멍들을 보며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손님들. 이 안타까움은 7명을 향한 것이었다.

    7명의 S랭크 중 리더의 격으로 보이는 자가 여관 마당을 훑어봤다. 드래곤 길드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의자에 앉아 있고 휴식이라도 취하는 것처럼 얼굴에 수건을 덮고 있다.

    그 뒤로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가 있었지만, 딱히 전투를 위한 인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외에 자기들을 하찮은 벌레처럼 바라보는 푸른 장발의 여인이 있었다.

    나머지는 전원 여관의 손님들이거나 마법 기자 혹은 길드 관리기관의 관계자들이다. 병력으로 추측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적의 최종 진영, 리더는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웃기는군, 무슨 배짱으로.”

    “강한 기운을 풍기는 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그러네요. 이렇게 황당할 수가.”

    필스 진영에 날아온 동료 1명에 의해서 상대 진영에는 무명의 실력자가 있음을 파악했다. ‘S랭크 7명이면 무찌르지 못할 것은 없으니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며 어려운 전투에 의한 긴장감을 안은 채, 아서 진영으로 찾아온 것이다.

    음주하며 이를 아무렇지 않은 듯 지켜보는 손님, 고개를 젖히고 심지어 수건을 덮은 채 앉아 있는 적의 수장, 병력으로 취급할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이런 곳에 S랭크 일곱을 움직이게 했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건드린다.

    “가소로운 네 목을 긋고, 공성전 따위 끝내도록 하지.”

    그들의 리더는 거대한 장검을 빼 들었다. 누가 들으면 분명 섬뜩한 소리라고 생각한 자기 자신이었지만, 여관에 있는 그 누구도 리더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떠들려면 마음껏 떠들어라. 딱 그런 느낌이다. 7명은 동시에 앞으로 다가갔다. 이들이 일부로 엄청난 마력을 뿜어대는 이유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 그러나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

    7명은 이동을 멈추었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행동이 멈춰진 것, 동시에 아래를 내려 보더니, 무릎까지 단단히 얼어있는 얼음을 발견한다.

    “임자께서는 열등한 네놈이 움직여도 좋다 하지 않았다.”

    푸른 장발의 여인. 그녀의 차가운 표정은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다. S랭크의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었다. 비로소 모든 것을 납득하고 저 여인이 비장의 카드라는 것을 추측한다.

    “하물며, 그대들은 들어라.”

    아이리스가 뱉는 음절들은 귀에 단호히 스며들어 간다. ‘정중하게 우리 조합원들을 위해 사과하라.’ 사지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은 콧방귀를 끼면서 ‘개소리하지 마라.’는 식의 답변을 들려준다.

    “임자께서 말하길, 정중하게 사과한다면.”

    그 무엇보다 진심을 담은 아이리스의 지시였다. 아무렇지 않게 우스운 개소리라고 생각했던 7명의 S랭크들은 사지에 붙은 얼음을 파괴하며 마지막 문장이 완성된 답변을 듣는다.

    “살려는 주겠다.”

    급기야 얼음을 완전히 박살 낸 이들은 분노와 함께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며 마법진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마법에 무지한 손님들도 ‘저 정도면 6랭크 이상의 파괴력이겠는데.’라며 반응한다.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사내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그저 평범한 사내의 목소리였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흉흉함이 느껴졌다.

    “너희는 뭔가 화려한 싸움을 기대하고 온 듯하지만.”

    허공에 S랭크들이 생성한 거대 마법진에서 온갖 화려함이 섞인 마법 공격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어떤 원소로 되어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저 자기가 가진 최고로 화려한, 최고로 강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삐이이이이이.

    손가락 총 한 방. 허공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은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티끌도 없이 소멸했다. S랭크들은 일어난 상황에 패닉보다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앉아 있던 사내가 자신의 얼굴에 덮어둔 수건을 유유히 걷어냈다. 새하얀 깃털들이 허공에 맴돌았다. 이내 일곱 명은 사내의 시선을 마주했고, 이것은 신의 농락임이 틀림없다고 절망했다.

    “이곳에서는 그런 싸움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네, 네 녀석은….”

    “이제 여관이 부서지는 건, 정말 질색이니까.”

    저 사내는 아벨기우스 토벌 때 마주했던 AA랭크였다. 마중 나온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돌연 사라진 형식을 알 수 없는 강자.

    “그래서 드래곤 슬레이어는 되셨나.”

    “하, 하아….”

    “그렇담, SS랭크라도 되었는가.”

    “오, 오지 마.”

    “이런,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없군.”

    아서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이들에게 말했다. 목숨을 업신여겨 너희들이 상처를 입힌 내 부하들에게 사과해라. 그거면 살려주겠다며.

    이들은 떨리는 몸으로 하나둘 무릎을 꿇더니 사과하기 시작했다. 이 비굴하고 안쓰러울 정도의 급변한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켜보는 이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아서가 내뿜는 기운은 이 세상의 것이라기에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그 어떤 개체라도 소멸시키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것만 같다. 인류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그런 아득히 초월적인 기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서가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제압했는지 중계가 나가지 않았다. 누차 이럴 경우도 있음을 메이에게 설명했기 때문에, 아이리스가 신호를 주는 찰나 중계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이가 멀쩡하게 중계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형식을 넘어선 사내를 보며 정체가 무엇인가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란베르크.”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인적을 알 수 없었던 어느 사내가 뒤를 돌자, 일곱 명의 S랭크들은 고속검의 란베르크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는 ‘도대체 이 여관은 어떻게 굴러먹은 건데.’라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아, 그리고 관계자님.”

    “예, 예!”

    “저 아까 전투적인 대응을 했잖아요.”

    “네, 네… 그렇습니다.”

    “못 본 척해주세요.”

    “그, 그럼요!”

    “여관에 오시면, 서비스 드릴 테니까.”

    란베르크는 마당 정면으로 걸어간다. 적당히 이동하여 다리를 지면에 완전히 고정하더니 긴 호흡을 들이마신다. 이내 상당한 풍압이 란베르크 주위로 터졌다.

    정면에 보이는 필스 진영의 건물. 선생님이 지시한 ‘편안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줘라.’라는 명령을 따른다. 그리고 어디선가 지켜볼 프리실라를 향해 말했다.

    ‘이것이 네가 넘어야 할 벽이다.’

    우레가 치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긴 호흡이 끝나고 란베르크는 허공을 순식간 베어낸다. 그것은 단순히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행위가 아니었다. 고도로 응집된 마력, 전방으로 거대한 검기가 모든 환경을 베어내며 뻗어 나갔다.

    * * *

    [ 드래곤 길드 / 프리실라 진영 (50명) ]

    렌의 도움으로 인해 S랭크의 무자비한 공격에서 벗어나, 몸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길드원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에 날을 죽이지 않는 거였는데, 다시 날을 세워야 하잖아.’라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정신력을 잃지 않는 이들이다. 렌은 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콰가가가가가가!

    허공에 울리는 거대한 굉음, 푸르고 거대한 마력의 검기가 빠른 속도로 머리 위를 스쳤다. 프리실라는 이것을 보며 진즉 ‘란베르크의 것.’이라 알 수 있었다.

    ‘인정하지, 넘어야 할 산이 아득히 높다는 것을.’

    이내 그것은 필스 진영의 건물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무식한 파괴력을 보여준다. 더는 전투를 강행할 수 없는 필스 길드의 상황이었다.

    완전히 초토화되어버린 건물을 보고 있으면, 필스가 과연 살아있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고개를 흔들며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사실 생각해보면 저만큼 당해도 상관없을 녀석이었다고 다시금 눈살을 찌푸린다.

    길드 관리기관에서 승패를 판가름할 심판의 역할을 위해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 이들은 필스에게 뇌물을 받아 필스 편으로 넘어 간 지 오래였다.

    여관 인물들의 입이 벌어지는 힘을 봤던 나머지 필스에게 받았던 금화 뭉치를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죽고 싶지 않으면 해야 할 마땅한 행동이었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승리의 나팔 소리가 온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그을리거나, 대지가 내려앉은 초원 위에서 전사들의 묵직한 환호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여관까지 전해진다.

    프리실라의 많은 것들이 담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양손을 허리에 올려 사내처럼 서 있는 그녀였지만, 울음소리는 실로 여성이 따로 없었다.

    자신의 나약함, 강하지 못했기에 무너져 내리는 자신감.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리는 감정과 조우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반성을 반복했다.

    “프리실라. 고생했어요.”

    “렌도 고생했네.”

    “아주 멋진 전투였어요. 그죠?”

    “암, 최고의 전투였다.”

    “부단장은 더욱 강해질 겁니다. 렌이 보장하죠.”

    “아하하, 정말 고맙네, 렌.”

    전투를 사랑하는 레드드래곤은 거짓을 일절 담지 않았다. 그녀가 행했던 전투를 멋지다며 칭찬한다. 프리실라는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에 감사함을 느끼고 들고 있던 검을 더욱더 강하게 쥔다.

    그것은 연민을 느낀, 동정심을 느낀 칭찬 따위가 아니었다. 렌이 실제로 보던 프리실라는 다른 누구보다 발전 가능성이 상당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란베르크마저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초원 위를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프리실라, 400명의 군사를 홀로 몰아세우며 전장의 선점을 확보한 그녀. 그것은 단연 AA랭크에 견주어도 문제가 없을 훌륭한 실력이었다.

    “나, 프리실라. 누구보다 강해지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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